2025 40일 특새[3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2~19) 말씀: 김태완, 오현교 목사
오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시 찾아와, “격려해 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숯불을 피워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숯불]은 밤새 차가운 갈릴리 바다에서 지친, 제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숯불]은 “베드로에게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배신하던 바로 그날 밤,
”똑같이 숯불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 13절의 말씀에,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으라.‘ 다들 그분이 [주]신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 중, 감히 그분께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요21:12~13)
이 [말씀]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실패와 좌절에 빠져,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던 제자들이지만,
”다시 [부르심의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따뜻하게 불을 피워놓고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나게 했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 초, 안산에 있는 [온누리 M센터]에서 섬김을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서 김밥을 나눠주던 이디오피아 여학생 [에덴]을 만났는데,
김밥을 받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덴]은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기에, [난민 가족]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 왔고, [안산 M센터]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간호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도 성탄절 전날DP, 아버지의 실수로 양초에 불이 붙어서 집에 화재가 났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머물 장소가 없게 되자, 섬기시던 권사님께서 제공해 주신 숙소에, 임시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작은 예수 40일 새벽 기도 기간“이라, 노규석 목사님께서 [에덴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하니까,
하나님께서 큰 감동을 주셔서, 많은 성도들이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되어, 학비와 등록금이 채워졌고,
그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문화 청년들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일]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안산 M센터]에는 모로코에서 난민으로 와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어린이와,
[군산 M센터]에서 골절상을 입은 어린이의 사연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온누리 교회 성도님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이주민과 다문화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부활하신 어린 양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21장 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육지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물 안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들어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이렇게 많았는데도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요21: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로, 양 무리를 돌보고 섬기는 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다가온 이주민들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모습에 마음이 찢어집니다.
가끔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감당하지?“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향한 주님의 그물]이 ”결코 찢어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동안 온누리 성도님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의 사랑]이 ”이주민들과 나그네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2~19) 말씀: 오현교 목사
방금 우리는,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만나주시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실패한 베드로]가 ”다시 [사명]을 받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15절의 말씀에,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요21:15)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베드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 [질문]은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베드로]는 ”네,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질문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고, [베드로]도 동일하게 세 번 모두 같은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런 [베드로의 고백]은 이전과 같이, ”자신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기 전, 마지막 만찬 때의 [베드로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요한복음 13장 37절에서,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여, 어째서 제가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바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목숨을 바칠 만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이런 [베드로의 고백]에, ”예수님은 베드로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자신의 고백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베드로]가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은 야단치시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는 염치없지만, 죄송한 마음으로,
“예, 주님, 제가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나지막하게 고백합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대답]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전히 [베드로의 고백]은 두려운 마음에서 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간 이후에,
[베드로의 모습]에 진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에,
“그제야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한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부분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의 고백]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쏟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어디에도 “베드로가 회개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후회]와 [회개]는 어떻게 다를까요?
①[후회]는 “이전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치는 것”이고, 하지만
②[회계]는 후회를 넘어서서, [회개]는 하나님에게 “자신의 삶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것은 “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영혼 내의 변화”까지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옛 본성]을 벗어버리고, “그에 맞는 행동의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리하면,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다.”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두려움에 함몰되어, [예수님]을 철저하게 배신하며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벗어나서, 정신을 차린 후에도,
[베드로의 모습]은 “여전히 [회개]는 없고, 그저 [후회]만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괴로워하면서,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베드로의 모습]에서, 왠지 낯게 보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이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우리도, 예수님을 처음 만나면, 그 순간에 베드로와 같이 고백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제 인생을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고백했지만,
하지만/ 거친 세상 속에서, 각박한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고난]을 만나고, 이겨내기 어려운 [슬픔]에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다스리는 삶“이 아니고, 다시 [이전의 모습]에서 후회합니다.
하지만/ 바로 오늘 말씀에서, 후회하는 [베드로]에게 찾아오는 [예수님]을 보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은 ”단순히 사랑만을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마음속이 있었던 [자책감]”을 어루만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죄책감을 이겨내는 것을 넘어서서, “그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의 고백]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회개하는 인생]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시 찾아온 예수님을 통해서, 결국 비로소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좌절에서 회복시키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절 끝에, 예수님은 한 가지 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나를 따라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후회가 아닌 회개”로 지난날의 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삶”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증인이 되리라 (행1:3~11) 2025.04.11 (0) | 2025.04.11 |
---|---|
제자 삼으라 (마28:16~20) 2025.04.10 (0) | 2025.04.10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눅24:13-35) 2025.04.08 (0) | 2025.04.08 |
사망을 이기시다 (요20:11~18) 2025.04.07 (0) | 2025.04.07 |
버려짐 속에서 이루신 구원 (마27:45~54) 2025.04.04 (0) | 2025.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