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사망을 이기시다 (요20:11~18) 2025.04.07

다이나마이트2 2025. 4. 7. 10:41

2025 40일 특새[29] 사망을 이기시다 (20:11~18) 말씀: 배행삼, 이우람 목사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신 [스트로 벨]목사님은

“[부활]은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과 그분의 가르침을 궁극적으로 입증하는 사건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백]“[부활]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증거이며,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분의 [고백]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바로 무신론자였을 때, 고백했던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1)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명백한 사실임을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고,

”[성경]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본 사람이 [마리아]이고,

이 사람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로마 법정에서는 [여자]의 증언은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의미였는데, 이러한 [사실]이 만약에 거짓말이었다면,

그 사실에 신뢰성을 더하기 위해서, [남자]를 증인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 그 자체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꾸밀 필요도 없었고, 성경의 기록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부활 사건 이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데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만 하더라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마라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례]를 들어 보면,

유명한 [바울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처음에 그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잡아오던 사람이,

나중에는 그가 뜨겁게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박해와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들은 카타콤으로 들어갔고, 나중에는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할 때, 자고 있었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숨어 있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많이 변했습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바뀌기를 위하여,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넘어지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마음 한 구석에는 “[내 신앙]이 진짜 신앙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초대교회 성도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예수님께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머물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제자들이 [사도 바울], [초대교회 성도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달라질 수 있었던 이유,

바로 나의 현재의 삶, ”영혼과 맞닿게 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영혼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부활의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들 안에 들어갔기에, 그들은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이 사라졌고, 습니다.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무덤 앞에서 예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러 왔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 무덤이 비어 있고, 시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할 수 있는 게 눈물 흘리는 것밖에 없을 때,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보아도,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을 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이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죽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시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렸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날 때, 그녀의 [슬픔][기쁨]이 됩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가끔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과연 내가 지금, 옳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흔들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문제]꺾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잠시 마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완전히 꺾여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마음]이 꺾이지 않기 위하여, [그 마음]이 꺾이기 전에, 우리는 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환란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3)셋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감격은 사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18절에,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주를 보았다는 것과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20:18)

 

[마리아]는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외칩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자신의 삶에 [가장 큰 가치]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가치[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이니까, 그것이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자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소망]은 반드시 전해야 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의 역사를 뒤바꾸는 전환점이고, 우리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은 고난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소망]을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소망]단순히 바라는 감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셨기에 그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명]은 감격으로 다가와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받은 은혜를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명]에 따라, 비전에 따라 움직이게 행동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요한복음 2021절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듯이, 이제 [그 사명][우리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명]을 받았으니, [복음의 소망]을 품고, “복음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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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을 이기시다 (20:11-18)  말씀: 이우람 목사

 

[부활 신앙]은 무엇입니까?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환란이 찾아왔을 때,

오히려 그 순간에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믿음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부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부활 신앙]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환란]은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두려움][절망]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절망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살아갑니다.

 

그들은 돈을 따라 행동하고, 명예를 따르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썩어져 없어질 육체의 향락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지금 [나의 삶], 소망이 없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님, 내 안에 들어 오셔서, 나에게 기쁨이 있는 삶을 만들어 주시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경험되도록, 나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시오.

그래서 나에게 소망을 회복시켜 주시고, 내 생활에 기쁨이 있게 하시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인생으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우리를 살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부활]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리아]가 전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제자들과 각 사람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제, [부르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16절에,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하시자,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어로 랍오니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20:16)

 

[마리아]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녀에게 시선을 향하십니다.

[마리아]는 빈 무덤을 향하여 시선을 두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향하고, “마리아야?”라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실 때,

비로소 그가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으시는 [목자]입니다.

[목자][]을 찾고, []은 목자를 알아보게 됩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깊은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찾으십니다.

 

여기서 [마리아]부활의 소식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니까,

[마리아]는 두려움 속에서 울고 있으며, 주님을 찾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함께하실 때, 모든 [두려움][기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모든 [두려움][기쁨]으로 변화시킵니다.

 

17절의 말씀에서,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

너는 내 형제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하여라.”(20:17)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관계로 초대하십니다.

[마리아]예수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곧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리아]기 예수님을 만나자, 기쁨으로 맞이하고 싶었으나,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관계로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누리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온누리교회]선교를 위한 교회로, 사회적 의무를 감당하는 교회로,

직장과 가정에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절대 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사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명자]로 복음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