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의 진노 (계6:1~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인류의 역사가 [BC]와 [AD]로 나누어지게 된 것은
①“죽임 당한 어린 양이 행하신 일“과
②”장차 행하신 일로 나누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께서 이루신 일“은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통해,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승리하신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영광스러운 사자“라고 말하는 것은 [역설]입니다.
그러나 [사자]와 [어린 양], 이 두 가지 ”동물이 주는 교훈“은 계시록의 핵심이고, 진리입니다.
[어린 양]이 죽임 당하심을 ▶”왜, 승리했다,”고 하나요?
①[죽음]으로써, 그분의 [피]로 사람들을 구속하신 일,
②죄인들을 대신하여 희생되심으로써, 죄인을 구원하신 일,
③그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속받은 이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
④[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신 승리”를 이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정복]당하심으로써 정복하셨고, 죄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지도자도 이런 방식으로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정복당함으로써,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린 양]께서 장차 이루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①[악]에 대한 “심판을 완전히 실행하시는 일“입니다.
②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 사탄의 종노릇하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시는 일“입니다.
[요한]은 계시록 1장에서, ”승리하신 어린 양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또 그리고 승리하신 어린 양께 드려지는 ”경배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예배] 가운데서 [요한]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요한]이 슬피 운 까닭은 ”심판 계획을 담고 있는 [책]”이 인봉되어서,
누구도 그 인봉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악이 다스려지고 있는 세상”에 슬픔을 느끼고 있을 때,
그러나 하나님은 망가진 세상에,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께서 악에 대한 심판”을 행하시도록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인봉된 책“을 펼쳐 볼 수 있는 [자격 있는 분]은 ”오직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십니다.
지난주 살펴본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보통 일반적인 어린 양과 다른 모습입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①완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고, ②지혜를 가지신 분으로서,
③악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④심판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처럼 [악]에 의해, ”망가진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양]이 ”악을 심판하시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원수를 정복하실 것이며,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권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계시록 11장 15절의 말씀에,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 그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다.’“(계11:15)
이것이 ”어린 양의 역할“입니다.
”어린 양의 역할“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에 온전히 세우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세상에 대한 심판자“로 나타나십니다.
[어린 양]이 ”일곱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심판이 하나씩 실행됩니다.
이런 [심판]은 마지막 심판 때,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에 보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것은 전쟁, 기근, 질병,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 고통스럽고, 위험한 것은 계시록에 의하면,
①그것은 [악]에 근거한 것이며, ②사탄에 의한 것이며, ③동시에 ”악과 사탄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심판하실 때, 언제나 [의로운 이]들을 사용하시지 아니하고,
[악]이 [악]을 심판하고, 스스로 자멸하도록 만드십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런 심판 가운데 더욱더 [연단]될 것이며,
또한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써, 사람들을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일곱 인들의 재앙, 일곱 나팔들의 재앙, 일곱 대접들의 재앙“이 연이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재앙들이 세 번씩 반복해서 나옵니다.
[성경]에서, ”세 번씩 반복되는 것“은 강조할 때, 사용합니다.
또 ”7번씩 주어졌다.“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어기서 ”[인]을 뗀다.“는 것은 ”내용이 공개된다.“는 것이고,
[나팔]이라는 것은 ”알리는 도구“이고, 그것은 ”심판이 전해진다.“는 뜻이고,
[대접]이라는 것은 [물]이 대접을 엎으면,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쏟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심판이 드러나고, 심판이 전해지고, 심판이 쏟아진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점점 더 강화되고, 반복되면서 내용이 추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6장에서는 여섯 번째 인까지 떼어집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①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까지는/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고,
②다섯 번째 [인]은 그 가운데 교회가 받을 고난과 핍박을 말씀이고,
③여섯 번째부터 일곱 번째는 ”주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인의 재앙]에서 모든 심판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순찰하고, 전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네 마리 말]은 ”동서남북“을 상징하고, ”온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고,
[말]은 전투형 동물이니까, 전쟁을 의미하고,
[나귀]는 수송형 동물이니까, 전쟁에 물자를 나르는데 시용합니다.
지난주에도 보여드렸던 ”레벨레이션 인카운터“라는 그림에, [네 마리의 말]이 나옵니다.
①제일 앞서 나온 말은 [흰말]입니다. [흰말]을 탄 사람은 [활]을 가지고 있고, 또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가서 싸우고, 또 이기려 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로마 시대의 사람들“의 이미지로, [군대]를 의미합니다.
②두 번째 [붉은 말]은 [칼]을 가지고 있어, ”[전쟁과 피흘림]“을 상징하고,
③세 번째 [검은 말]은 [저울]을 가지고 있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④네 번째 [푸르스름한 말]은 [사망]을 의미하고, “전염병과 질병”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네 가지 색으로, “말을 탄자들에 의하여, 세상에 진노가 부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지막 종말로 국한된 심판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곧 [종말]인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 질병과 지진, 이런 모든 것들이 [악]에서 비롯된 것이며,
“[악]을 통해,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진노]가 실행될 때, 주목할 점이 세 가지가 있는데,
(1)첫째로/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하심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땅의 4분의 1]은 “죽일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진노]이지만,
그러나 [땅의 4분의 3]은 여전히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2)둘째로/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악인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계속해서 경고하시며, 부분적인 심판을 통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는 거죠.
(3)세 번째 놀라운 것은 이 심판 가운데서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적 증언]을 통해서, 회개를 일으키신다.”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악에 대하여 심판하실 때, 절대로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십자군]을 만들어 “이런 악을 심판하는 도구가 된다.”고 자처했던 것은
매우 심각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것이죠.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교]이고, “순교적 증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순교와 증언]을 통해,
“심판으로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서운 심판을 받으면, 회개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적 증언을 통해,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진노의 심판이 이루어져 나갈 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입니까?
“나는 구원받아, 진노를 견딜 수 있으니, 구경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순교적 증언]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회개하도록 앞장 서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순교적 증언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린 양에 의해, [승리한 사자]이기에, 그 승리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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