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순종” (행4:18~29) 2024.01.09

다이나마이트2 2024. 1. 9. 12:52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순종” (행4:18~29) 박철웅 목사 

18 그러고 나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들여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19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사도들을 다시금 협박하고 나서야 겨우 풀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그 사람은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23 베드로와 요한도 풀려나자마자 자기 동료들에게 돌아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2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함께 소리 높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25 주께서는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해 성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째서 민족들이 분노하며 사람들이 헛된 음모를 꾸미는가?
26 세상의 왕들이 일어나고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있구나.’
27 그런데 정말 헤롯 안티파스와 본디오 빌라도가 주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반대하며 

음모를 꾸미려고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성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28 주의 능력과 뜻에 의해 미리 정하신 일을 그들이 단지 이룬 것뿐입니다.
29 그러니 주여, 그들의 위협을 보고 주의 종들을 도와 주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소서.
(사도행전  4:18~29, 우리말 성경)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8, 우리말 성경)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이 권능을 이적을 보는 것으로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술사 시몬은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습니다. 

복음의 확장이 일어나는 데에서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권능이 오늘 제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나타났습니까? 

18 그러고 나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들여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19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4:18~19, 우리말 성경)

영적 전쟁은 순종과 불순종간의 싸움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방식을 따르라고 유혹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고난을 통해 유혹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드는 담대한 용기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주체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권력으로 협박합니다. 예수가 부활한 사건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는 위협이라고 여기고 물리적 압력을 가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협박을 받으면 두가지 방법을 보입니다. 

협박에 굴복해 중단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협박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위협 앞에 똑같이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능력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협박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화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드로 처럼, 요한 처럼 성령의 권능을 우리가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택하는 순종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큰 권위를 두는 것입니다. 육신을 복종시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이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성령의 권능은 실패를 극복하고 말씀을 선포하도록 나타나셨습니다. 

21 그들은 사도들을 다시금 협박하고 나서야 겨우 풀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그 사람은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21~22, 우리말 성경)

협박 앞에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전하겠다는 담대한 선언입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매우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실패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베드로의 모습은 사라지고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성령을 받고 권능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실패로부터 자유롭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17 주께서는 영이시며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7, 우리말 성경)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와 패배로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두려움을 떠나 보내고 자유케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 안에서 온전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4:18, 우리말 성경)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주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하며 그 사랑을 보증합니다. 

그래서 담대히 예수를 고백하고 인정하게 도와줍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실패했던 연약함으로부터 승리하는 자로 바꾸어줍니다. 

그 자리에서 끝까지 싸움으로 예수를 인정하게 만들어 줍니다. 

실패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예수를 담대히 고백할 수 있게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길 축원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베드로의 담대한 선포 앞에서 그들은 당황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해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나이가 40을 넘었다고 굳이 밝힙니다. 

40년을 앉아 있던 사람 뼈가 변형되고 근육이 굳었던 사람이 재활 치료없이 그가 걷고 뛰고 찬양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인 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공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플어줍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자들에게 능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을 , 실제로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어둠은 빛이 오면 떠나갑니다. 성령이 오시면 두려움이 떠나 갑니다. 
사망까지도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원수마귀는 우리를 놓아주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두려워하면 계속 우리를 협박할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악한 것들이 떠나가기를 담대히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상령의 권능이 임할 때 교회는 함께 담하게 기도했습니다. 

23 베드로와 요한도 풀려나자마자 자기 동료들에게 돌아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2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함께 소리 높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25 주께서는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해 성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째서 민족들이 분노하며 사람들이 헛된 음모를 꾸미는가?
26 세상의 왕들이 일어나고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있구나.’
27 그런데 정말 헤롯 안티파스와 본디오 빌라도가 주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반대하며 

음모를 꾸미려고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성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28 주의 능력과 뜻에 의해 미리 정하신 일을 그들이 단지 이룬 것뿐입니다.
29 그러니 주여, 그들의 위협을 보고 주의 종들을 도와 주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소서.
(사도행전  4:23~29, 우리말 성경)

믿음의 경주는 장거리 마라톤과 유사합니다. 
한번 승리했다고 계속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의 경주는 함께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풀려난 베드로와 요하는 제자들에게 나아가 설명하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제목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교회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사탄은 위협하고 핍박합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깨뜨릴 수 없는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그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방언의 은사가 나오고 찬양이 터집니다. 말씀이 임하고 말씀을 새롭게 깨닫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공동체의 기도가 변합니다. 담대하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핍박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교회는 믿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의 충만함이 담대하게 복을 전할 수 있도록 변화를 불러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나타내는 온누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기도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고난 앞에 서 있습니까? 
고난으로부토 도피하지 않고 성령의 권능으로 고난을 통과하며 예수를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담대한 순종으로 실패한 자리에서 담대한 믿음의 선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