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일(토) 오후4시 서빙고 본당에서 2023 장로장립예배가 있었다.
아침6시에 제 400차 확대 당회에서 20분의 시무 장로님들이 은퇴를 하시고 사역장로님이 되셨는데
이번에는 57분의 장로님들이 장립 하시게 되셨다 축하합니다.
우리 동기들은 장로님들만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23년 장로님들은 아내되시는 분들과 다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셨다.
무대가 가득하다. 참 자랑스럽다.
오후4시 정각에 장동원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서빙고C밴드와 예배본부 교역자 6분이 함게 인도하는
찬양으로 장로 장립 예배를 시작했다.
첫 찬양은 '천사들의 노래가' 찬양으로 시작했다.
두번째 찬양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찬양이였다.
3번째 찬양곡은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3곡의 찬양을 드렸다.
대표기도 이인용 장로님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저희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불러주시고 거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꾼으로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오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데 귀하게 쓰임받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장로들의 장립을 위해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장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역에 대한 열심이 자칫 자기 의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재훈 위임 목사님을 비롯한 목회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동역의 길을 가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참 악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부인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진리를 외면합니다.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동성애를 옹호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자고 합니다. 진리가 길을 이룬 곳에서 죄가 주인 노릇하는 것을 목도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오늘 세워진 장로들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복음의 진리로 무장해 이 악한 세상과 담대하게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화평케 하는 자로 세워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온누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저희들에게 ACTS29의 비전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특별히 이 나라를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어 오늘의 대한민국의 토대를 이뤄놓으신 선교사님들을 기억합니다. 이제 저희들이 복음을 들고 온누리에 나아갑니다.
세계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온누리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오늘 세워진 장로들이 사도행전 29장을 써나가는 귀한 사역자의 길을 가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세워진 장로들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특별찬양 : 장로합창단, "축복송'
온누리교회 선배 장로님들이 후배 장로 장립을 맞아 축복송으로 찬양해 주심에 참 감사하다.
사회 : 박종길 목사님
금년에 예배 시간에 늘 했던 축복의 찬양과 성경봉독 말씀을 읽어주셨다.
God bless you 축복의 찬양을 회중 전체가 나누었다.
오늘 안수하실 공동체 대표장로님들과 사역팀의 대표장로님들도 준비를 하시고 계셨다.
2023 장로장립식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6:3~4절 말씀이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니라"(롬16:3~4)
말씀의 제목이 감동이다. "오 새벽별이네"
말씀선포 : 김운용 (장신대 총장)
주님께서 충성스럽게 여기셔서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귀한 일꾼들을 세우신 거 참 기뻐하면서 세움 받으시는 한 분 한 분들 축복하고 축하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분들을 통해서 얼마나 영광받으실지, 주님의 교회는 얼마나 또 힘을 얻게 될지, 우리 성도들은 하늘의 놀라운 능력을 이분들을 통해서 얼마나 맛보게 될지 생각할 때, 참 큰 기쁨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주목 몇 그루가 심겨져 있습니다. 속이 붉은 나무다 해서 붉은 주자를 쓰는 나무이지요. 주로 고산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요즘에는 개량이 되어서 정원수로도 많이 사용되는 나무입니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데 언젠가 산책길에 보니까 바람이 세게 불었던 모양입니다. 한 나무가 비스듬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똑바로 세우고 쓰러진 쪽 반대쪽을 꼭꼭 밟아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쓰러지고 나니까 똑바로 서지를 않았더군요. 아파트 경내를 산책하다가 전에 버팀목으로 사용했던 나무 막대기가 하나 보이길래 그거 가져다가 쓰러진 쪽으로 받쳐주고, 집에 가서 노끈을 가져다가 꼭꼭 묶어주면서 밟아주며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잘 자라라' 그런 모습을 보고, 제 아내가 뭐라고 이야기했게요. '참 우리 남편 자상하기도 하지' 이렇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참 오지랖도 넓다.' 하하하은퇴 후가 걱정 없다. 관리소 소장 하면 되겠다. 그 후 몇 주 후에 또 산책을 하다 보니까 바람이 또 세게 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반대쪽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버팀목은 사각이나 삼각으로 대줘야 되는데 한쪽만 버팀목을 세워줬더니 버팀목이 없는 쪽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파트 경내에서 버팀목 할 막대기를 찾기가 어디 쉽습니까? 저거 하나 다시 좀 세워줘야 되는데 하는 생각하다가 며칠이 지났는데 어느 날 산책하다 보니까 아예 그 나무를 송두리채 뽑아내버렸더군요. 저는 그 나무가 굉장히 귀한 나무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던 중에 저는 소총부대 소대장을 했는데, 화악산이 저희 작전구역이었습니다. 언젠가 진지 보수를 하기 위하여서 한 달 정도 병사들을 데리고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는데 파견 나가게 돼서 대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막 나서려고 하는데 대대장이 저를 불렀습니다. 김중위 내가 임무을 하나 줄게. 화악산에 가거든 벼락 맞은 주목 나무를 하나 캐서 주소를 주면서 여기다가 갖다 줘. 내가 트럭은 한 대 배치해 줄게. 화악산에는 주목나무 주산지여서 등성이에 주목들이 많이 있는데 벼락을 맞아서 그렇게 서 있는 주목들이 꽤 있었습니다. 흔히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간다는 그런 나무이지요. 산등성이에서 뿌리채 캐서 그것을 밑에 도로가 있는 길까지 끌고 내려온다는 거 보통 일 아니잖아요. 그런데 군대에서는 또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병사들 동원해서 그 나무를 캐서 뿌리째 캔 나무를 끌고, 밀고, 당기고 해서 차가 있는 큰 길거리까지 끌어내린 다음에 그거 트럭에다 몇 개가 채워지게 되면 그건 목공소에다 갖다 주는 것 그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그때는 일반적인 관래였는데 아마 진급을 앞두어서 대대장이 상급자들에게 그걸 선물하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목공소에 가보니까 그것을 다듬어서 니스치을 해놓았는데 그때 당시 티테이블, 궤목 이런 것들이 참 유행하던 때인데 완전 예술 작품으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는 주목이라는 나무가 참 멋진 나무고 귀한 나무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파트 관리 직원에게는 귀찮은 존재였던 셈입니다. 만약에 버팀목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나무는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건장하게 자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버팀목이 있으면 세워지고, 버팀목이 없으면 무너진다라고 하는 것 이것은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버팀목에 대해서 복효근 시인은 이렇게 멋진 시를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비친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무가 산나무를 버티고 있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버팀목은 죽은 나무입니다. 그 죽은 나무가 산나무를 지금 버티고 서 있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것이 삭아 없어진답니다. 그런데 버팀목이 있었던 그 자리에 삭아 없어진 그 자리에 산나무들이 우뚝 세워지게 된답니다.
코로나로 학교가 셧다운 되어지고 그때 학교 중책을 맡아서 허덕이다가 이 어려운 때 어떻게 학교를 세워갈지 너무 막막해서 새벽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을 때에, 주님이 이 어려운 때 어떻게 학교를 세워갈까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의 음성은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버팀목이 되면 된다.... 버팀목이 되면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어렵다. 성도들이 어렵다. 교회의 버팀목이 될 사람들, 성도들의 버팀목이 될 사람들을 더 섬세하게 세워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 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면서 그렇지 버팀목 되는 것이지, 쓰러진 나무 고쳐 심고, 기울어진 나무 바로 세우고 그렇게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이지, 그러다가 삭아 없어지는 것. 그것이 인생이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그의 시의 마지막 부분을 그래서 이렇게 이어갑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을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튀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니까. 생각을 해보니까. 죽은 아버지가 내 인생의 버팀목으로 우뚝 서 있더랍니다. 그것이 만져지더랍니다. 누군가가 있어서 내 인생의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었던, 누군가가 있어서 오늘 내가 여기 서 있답니다.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이 부분을 읽다가 저는 부친 생각이 나서 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헌신과 수고, 눈물과 기도, 그리고 나의 희생이 없으면 세워지는 역사는 가능치 않게 누구나! 다 버팀목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섬김을 받기를 더 원합니다. 내가 삭아 없어지는 일이기에 버팀목이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버팀목이 있을 때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됩니다. 그것이 2천년 교회의 역사였고, 온누리 교회의 역사였고, 제 제가 섬기고 있는 장로회 신학대학교 122년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로마서의 말씀은 박해 가운데 있는 로마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서 쓰여진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박해 가운데서 누군가 버팀목이 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결론부에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AD 60년경 네로 황제의 박해, 대대적인 박해가 로마 전역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는 박해기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써보낸 서신서였습니다. 특별히 로마의 어린 교회는 목회자가 없이 자생적으로 흩어진 디아스포아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가 지금 박해로 인해서 무너지기 직전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편지로 보내진 서신서가 로마서이잖아요. 그런데 로마서 어디를 보아도, 조금만 더 견디면 몇 개월만 참으면 조금만 이 기간만 넘기면 박해가 끝나게 된다. 고난이 끝나게 된다. 어려움의 때가 지나가게 된다. 그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그 비결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버티라는 이야기도 없고요. 얼마나 시간이 가면 끝난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대신에 로마서는 전반부, 후반부로 나누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반복해서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 이야기가 로마서 전반부에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면, 후반부에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섬겨야 되는지 그 내용들이 길다랗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 16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회를 신실하게 섬겼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들려지죠.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런 사랑 이야기를 반복해서 반복해서 들려주신 다음에 오늘 그 사랑에 감격하여 교회의 버팀목이 되고, 성도들의 버팀목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니라(롬16:3~4)이렇게 들려줍니다. 안디옥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이 소아시아로 그리고 전 세계로 확장되어 가고 있던 그 확장기의 중심 인물이 누구였습니까?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사람이 오늘 언급되고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답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음란하고, 타락한 문화가 넘실되는 도시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말씀을 보면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난 다음에 사도바울은 힘을 얻어서, 힘을 내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 지역에 교회를 세웠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케도니에 파송했던 실라와 디모데도 불러들였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의기투합해서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1년 6개월 사역하다가 그곳을 떠났습니다. 교회가 흔들리고 있었답니다. 누가 와서 사역합니까? 아볼로가 와서 사역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할 때도 그렇고, 나중에 아볼로가 사역할 때도 그렇고, 이 두 사람은 정말 신실하게 신실하게 목회자들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사람이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부부는 장막을 만들어서 텐트를 만들어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름이 신약 성경에는 6번이 나타나는데, 서신서에 3번, 사도행전에 3번 나옵니다. 이 성경에는 두 이름이 같이 등장하죠. 브리스가 로마식 이름입니다. 브리스길라 애칭에 해당되는 이름입니다. 누가는 브리스길라라고 하는 단어를 3번 다 그렇게 사용하고, 바울은 브리스가라고 하는 로마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역사적인 증거를 찾아보면 로마의 브리스가 가문은 명문가 중에 명문가였답니다. 남편 아굴라는 장막 제조업자였고, 아내 브리스가는 로마의 명문가 출신이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도, 복음이 전파될 때도 그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주의 종들을 돕고, 주의 사역을 세우는 일에 헌신했던 버팀목들이었답니다. 로마에 거주하면서 어린 로마 교회를 섬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 자신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고 그들의 아름다운 섬김의 이야기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에게까지 귀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오늘 섬김의 모습을 오늘 말씀은 요약해서 들려줍니다.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걸었던 사람들....사역자인 바울 뿐만 아니라 그 집에 모이고 있는 교회와 이방인 신자들까지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귀하고 귀하게 섬겼던 사람들.... 이렇게 우리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졌고, 로마의 어린 교회도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민족이 흔들리고, 교회가 무너지고 있을 때, 안간힘을 쓰면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사람이 구약의 예레미야 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죠. 예레미야서 33장 1절부터 3절 말씀을 보게 되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니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까지 그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을 요청합니다. 잘 아는 말씀인데 우리 같이 한목소리로 한번 봉독하실까요?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느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1~3)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사역을 하다가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혔다는 상황 속에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고백 양식으로 갑자기 바뀌지 고백 양식이 바뀔 때 바로 그 앞에 말씀이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성경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마른 뼈와 같은 존재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벌떡벌떡 일어나 여호와의 군대가 되더라. 하나님의 일꾼이 되더라.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을 증거하다가 사역을 감당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하였답니다. 행간에 숨겨진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한다면 예레미야도 살아났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그런 상황 가운데 서 있다 할지라도 말씀을 붙잡고 그가 살아났을 것입니다. 그것을 전제로 해놓고 갑자기 상황 소개가 끝난 다음에 고백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같이 이르시도다. 근데 오늘 성경을 보면 이 말씀이 창세기 1장에서 썼던 동사들을 똑같이 사용하면서 창조 신앙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온 땅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온 땅을 다스리신 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 인생이 종친인 것 같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가 나는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붙잡고 계신다. 그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고백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절로 넘어가면 메신저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명령형 동사인 부르짖으라라고 하는 원어 '카라'라고 하는 단어는 '아버지' 이럴 때는 절대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아버지' 이럴 때도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냥 5장 6부가 끊어질 것 같은 간절함을 가지고 '아~~~뻐~~찌" 라고 할 때 그때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이 있을 때, 버팀목이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역사가 교회 가운데 나타나고, 나의 인생길 가운데 나타나고, 사역의 현장에 나타나게 된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버팀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버팀목들이 우뚝 서 있을 때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들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실제가 된다. 그 말씀입니다.
지난 11월 중순 저는 바쁜 와중에 어느 교회 추수감사절 특별새벽기도를 인도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그 교회로 달려가서 말씀을 전하고 바로 학교로 돌아와서 하루 종일 저녁까지 학교 업무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굉장히 몸이 많이 피곤했습니다. 마음마저 무겁게 하는 문제가 있어서, 하루는 밤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교회를 달려가고 있는데, 그때 누가 툭 치면 눈물이 바로 쏟아질 것 같은, 누가 저를 그냥 툭 건드리면 눈물이 바로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아내의 핀잔을 들으면서 '이제는 조금 거절도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벽에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의 자리로 향하는데 홀로 밝은 새벽별이 우뚝 떠 있는데 그게 왜? 왜 저한테 그렇게 일 위로가 되든지. 마치 위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동녘 하늘에다가 그 별을 박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그러면서 한 시인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 사이에/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뭇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 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함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속에 남아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둘 흩어지고/사라져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 하늘을 서성거리며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사라지나니/....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오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새벽별이네! 이것이 오늘 임직 받는 우리 장로님들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장로님들을 향한 주님의 축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장로회 신학대학교, 저는 22대 총장입니다. 근데 4대 총장, 김인준 박사는 영어와 러시아의 능통했던 수제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었고, 미국 남장로교의 대표적인 신학교에서 유난히 유색인종들은 박사, 박사학위 받기가 어려운 학교라고 하는데, 그 학교에서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모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938년 신사 참배 문제로 학교를 자진 폐교하고, 해방과 함께 문을 열었는데 또 다른 위협 세력이 다가왔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끝까지 공산주의의 회유를 거부하다가 결국 총살을 당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는데 절대 여러분들 이야기하니까 부담 갖지 않고 들으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죽어야 된다고 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죽어야 될 사람이구나. 직 분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만약 죽어야 한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죽을 사람. 주님을 위해서 죽어야 된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이런 사람들이 나섰을 때 세상은 우리 성도님들은 그렇게 외칩니다. 외 새벽별이네. 제일 먼저 떠올라서 제일 나중까지 뭇별들이 다 사라진 거기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주님의 교회를, 주님의 사역을 지켜갈 사람. 오. 새벽별이네. 무거운 마음으로 달려가다가 이런 사실들이 깨달아져서 제 입술에 바로 찬양이 감돌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소.
그것이 우리 모든 임직자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가 섬기기 위해서 서 있는 그 순간순간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우리 성도님들이 우리 장로님들을 바라보시면서, 오 새벽별이네! 그렇게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세워지는 역사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아름답게 아름답게 진행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더 잘 섬기라고 귀한 직분 맡겨주셨습니다. 주님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죽어야 된다고 한다면,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나중까지 남아 있어야 된다고 한다면,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제일 먼저 뛰어나와야 된다고 한다면, 주님 우리가 그런 사람 되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섬김의 자리에 서 있을 때 오 새벽별이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외치시고 우리 성도님들이 그렇게 외치시는 우리 귀하고 귀한 장로님들 다 한 분 한 분들 될 수 있도록 주여 기름 부으시고 세우시고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간증 : 신재영 집사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주님의 사랑을 알고 널리 전하게 하려 함이라"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누님을 따라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포 임마누엘 제일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몇 해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믿음 생활은 즐거움과 기쁨도 많았지만, 율법과 선한 행실만이 구원의 길이요 믿음의 본질이라고 여기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불안해하고, 타인을 정죄하며 율법 아래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생활, 회사생활, 결혼 이후 미국 유학 시절에는 세상의 정욕과 즐거움에 빠져 주를 잊고 떠나 살았습니다. 그러나 미쁘신 하나님은 저를 절대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셨습니다. 결국 지인의 소개로 2008년 양천공동체 순맞춤 전도로 우리 부부를 부르셨고, 온누리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온누누리의 공동체 생활은 뜨거웠습니다. 예배가 뜨거웠고, 말씀이 뜨거웠고, 찬양이 뜨거웠습니다. 큐티와 사역이 참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무엇보다 죄 많은 저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작년 말 장로로 피택된 이후 요나서와 로마서를 묵상해 왔습니다. 고집불통 요나를 절대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깨우치고 고치시는 그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나처럼 저 역시 내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선시하였던, 지극히 이기적인 어리석은 죄인이었음을 회개하고, 저를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기를 매일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며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견고히 세우는 예수 바보 장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평생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 이제 장로로 부르심에 은혜를 입은 저는 과거와 전통에 머무르는 교회를 벗어나 항상 개혁되어야 할 교회, 미래 비전으로 나아가는 교회를 기도하며, 충성과 섬김의 장로가 되겠습니다. 온누리 교회의 비전과 목회 철학을 준행하고 교회 연합을 힘써 지키며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 됨에 앞장서는 겸손과 온유의 장로가 되겠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공동체와 성도와 사회의 본이 되는 사랑과 행함의 장로가 되겠습니다. 기도의 지경을 넓혀 주변과 사회와 국가와 열망을 품고 기도하며, 특히 이 땅에 낙인이 된 자와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기도의 장로가 되겠습니다.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며 특히 차세대와 청년들의 양육과 부흥을 위해 더욱 힘쓰는 청년 멘토의 장로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장로 장립을 받는 우리 23 장로들의 솔직한 심정을 아까 부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찬양의 가사로 대신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네.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실수가 없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네. 작은 나를 부르신 뜻 나는 알 수 없지만 오직 감사와 순종으로 주의 길을 가리라. 때론 내가 연약해져도 주님 날 도우시니 주의 놀라운 그 계획을 나는 믿으며 살리 날 부르신 뜻 내 생각보다 크고 날 향한 계획 나의 지혜로 측량 못하나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신 믿네. 신실하신 주를 찬양하며 모든 영광을 주께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2부 장립식
서약 : 장로에게 이재훈 담임목사
1. 신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고
따르기로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2. 본 장로회 교리는 신 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믿고 따르기로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3. 본 장로회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모범은 정당한 것으로 알고
따르기로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4. 이 지교회 장로의 직분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본직을 힘써 봉사하기로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5. 본 교회의 화평과 연합과 성결함을 위하여 충성하기로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신임 장로님들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과 교우들 앞에서 엄숙하게 서약하셨다.
교우들에게도 서약을 받으셨다.
온누리교회의 교우들이여! 여러분들이 택하여 세운 송기선 성도외 57명을 본 교회 장로로 모시고
성경과 교회 정치에 가르친 바대로 주 안에서 존경하고 위로하며 순종하기로 서약합니까?
(예, 서약합니다)
축하하기 위하여 참여한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들도 엄숙하게 이 서약을 하셨다. 나도 함께 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찬양을 하면서 세족식과 안수식 준비를 한다.
2015년 나도 처음 저 자리에 앉아있을 때 눈물 흘리며 감격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장립자들이 자리에 앉자 곧이어 앞쪽으로는 세족을 해 주실 목사님들이 들어 오시고
뒤쪽으로는 기도해 주실 장로님들이 들어 오신다.
안수기도
장립식 가운데 안수하시는 가운데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머리위에 성령님이 비둘기 처럼
임하셨던 것 처럼 각 장로님들 머리 위에 성령님이 임하여 주셔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의 마음으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바로 그 길을 우리도 걸을 수 있게 하옵소서.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을 주셔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분별 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를 부어 주옵소서. 아멘.
안수기도 : 이재훈 위임목사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온누리교회를 축복하시사 지난 38년 동안 귀한 장로를 세우시고, 지금까지 교회의 버팀목이 되게 하시고, 새벽별 같은 귀한 장로 리더십들을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귀하고 축복된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귀한 장로들을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송기선 성도외 56명의 성도들을 장로의 직분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듯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세상에 연약한 이들의 발을 씻기는 종으로 구별되기 위하여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시기 위해 거룩하게 구별한 종들이오니, 이 직분을 감당할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장로의 직분이 무겁고 큰 직책이오니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위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내려주시옵시고, 가정 전체가 성령과 지혜와 믿음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시며, 사랑하는 가족들이 좋은 협력자가 되게 하여 주시며, 이들의 자녀들도 복되게 하시사, 자자손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며, 순종하는 가문 되게 하여 주옵소서. 봉사하는 직책 이온 즉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자로,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충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존직으로 임직을 받는 이 순간의 감격과 결심이 일평생 변치 않게 하여 주시고, 언제 어디서나, 교회 안에서나, 세상 가운데서나, 충성된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후로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충만함을, 육적으로는 건강함을, 사업에는 형통함을, 가정에는 평강의 평강을 더하여 주셔서 이들을 통하여 온누리 교회가 날로 흥왕할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쓰임받게 하여 주시며, 세계 복음 안에 쓰임받는 종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선 포
본 온누리교회 당회장인 나는 지금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직책과 교회의 권위를 가지고
송기선 성도외 56명이 대한예수교 장로회 온누리교회 장로가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아멘.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참 자랑스럽습니다. 선배장로님들과도 허그하시며 축복했다.
너는 택한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며......서로 찬양하며 축복했다.
권면 : 홍성호 서기장로
제가 장립 받을 때보다 훨씬 더 감격적인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말씀 주신 대로 새벽별 같은 새로운 장로님들이 우리 온누리 교회에 이렇게 별이 뜨듯이 이렇게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정말 크신 축복이다라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앞에 뵈니까 정말 새벽별같이 환하세요. 밝고 깨끗하고 우리 옆에 권사님들 한번 다시 보십시오. 옆에 얼마나 얼마나 깨끗하고.... 저는 학교에서 오랫동안 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있냐 하면요. 고등학교 졸업반 3학년 특히 재수하고 그러면 거의 아저씨급이 됩니다. 그런데 대학교만 딱 들어오면 아주 참신한 그런 아주 맑고 그런 귀여운 그 학생이 돼요.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고등학교 학생들도 가끔 학교에 견학을 옵니다. 그건 아주 노숙합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만 들어오면 아주 가볍고 그런 변화가 뭘까? 그랬는데 제가 장로님들 이제 뵈면서 안수집사 때 더 노숙하셨다. 제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하. 굉장히 참신해지셨어요. 본인은 잘 모르실지 모르겠지만은 굉장히 참신해지셨고요. 저는 이대로 계속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저가 개인적으로 진짜 생각을 해봤는데요. 왜 대학교 들어왔는데 나이가 스무살이 됐는데 왜 더 어려질까? 그리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심지어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기대치 또는 목표치, 기준치가 높아져서 그렇다. 저는 그렇게 스스로 답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가 요구하는 거는 다 충족이 된 거예요. 다 아는 거예요. 뻔한 거예요. 그런데 대학교 들어오면 이제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뭔가 신기하고, 호기심이 생기고 그 기대치가 사람을 그렇게 바꾼다 신선한 존재로 바꾼다.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제 새로 장로님 되신 분들도 어떻게 안수 집사 때보다 이렇게 더 젊어지고, 더 참신해졌는가를 제가 생각해 볼 때 기준이 높아졌다.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5장을 많이 장로 훈련할 때 저희가 봅니다. 거기 보면 베드로가 함께 장로된 자를 권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이로 하지 마라. 그리고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에 본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많이 듣지만 참 큰 부담이 되는 말씀이죠. 우리가 어떻게 본이 되겠습니까? 저는 이 기준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교회가 익숙하고, 사역이 익숙하고, 모든 질서에 익숙해진 그때에 이 말씀은 우리가 양무리의 본이 된다라는 거, 본이 된다는 것, 그래서 저는 이걸 좀 제 식 표현대로 하면 크리스천 샘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샘플로 이 사회에 주어주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크리스찬의 샘플이니까 너희도 보고 크리스천이 되라. 이 책임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이거는 저희가 노력하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장로님들도 일단 포기하십시오. 내 힘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만큼 또 복을 주시는 것이죠.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잘못된 것이 많을 때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소망이 있는 것이죠. 저희는 도저히 그 기준에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도하시는 그런 분들에게는 부르심에 후회함이 없다고 아까 그러셨죠.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제가 이 권면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김영길 장로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온누리 교회의 1호 장로세요. 1987년도에 장립되셨으니까 참 오래되셨죠. 장로님은 많은 교훈을 남기셨습니다. 책도 남기셨고, 한동대학교 총장을 하시면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근데 제가 제가 체험한 장로님 온누리 교회 1호 장로님에게서 제가 배워서 함께 좀 전하고,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짧게 세 가지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개인적으로 김영길장로님을 뵌 것은 1998년이었습니다. 1998년에 제가 재직하는 대학교에서 세계 대학 총장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 유수의 대학들의 총장님을 참 어렵게 많이 모셨고요. 국내는 물론이고요. 저는 이제 젊은 교수였고 거기 기획을 몇 년 동안 했기 때문에 그분들의 메시지가 굉장히 기대됐고, 2천년대를 바라보면서 21세기의 대학은 어떻게 돼야 될 것인가?에 대한 굉장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다 지나고 났는데요. 정말 결산은 김영길 총장님은 정말 작은 대학에서 오셨거든요. 그때는 잘 알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 장로님의 메시지가 가장 간단 명료하면서도 통찰력이 있으셨어요. 그건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끝나면서 피드백을 주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죠. 그분은 공대 출신이고 그 당시에는 공학하신 총장님들 종합대학에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유일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통찰력이 있고 그런 현악도 없습니다. 아주 명확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깨달은 것은 성령께서 기름을 부으시면 샘플 크리스찬으로서 이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도 그에 합당한 지혜와 통찰력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98년도에 그걸 제가 확신을 했고 너무 반갑게 인사를 드렸어요. 장로님 그런데 직접 뵈면 참 소탈하시거든요. 그런 메시지가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인데 그런 거예요. 그래서 성령님께서 이렇게 여러분들도 한 분 한 분 각 분야가 어디든지 이제 샘플 크리스찬으로서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뽑으셨다면 그렇게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영향력을 사회 각 분야에 이루시는 그런 장로님이 될 것으로 믿고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장로님은 정말 겸손하고,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굉장한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는데 21세기로 정작 넘어와서 정말 고난을 당하시고 형무소까지 가셨어요. 그런데 제가 놀라운 것은 뭐냐 하면 정말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그러지 않고 본인이 다 짐을 짊어지신 거예요. 아까 이 총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버팀목이 되신 것이죠. 그냥 작정하신 거예요. 그래서 정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정말 형무소 이런 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실 분인데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서빙고 성전에 새벽 기도할 때면 제가 이제 이촌동에 와서 이 살 때였는데 이렇게 와보면 새벽 기도가 다 끝나고 아무도 없는데 그 빈 자리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걸 저는 여러 차례에 뵀어요. 그러니까 그 기도를 정말 절실하게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겸손과 기도가 저희 후배 장로님들 한 분 한 분께도 다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요. 장로님들께서는 후배 장로님들하고 우리 장로 공동체 자체를 참 사랑하셨어요. 여러분들은 이제 장로 사관학교를 마치셨는데 장로 사관학교는 집사 시절에 하신 겁니다. 이제 장로가 되신 후에 여러 해가 지나면 장로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또 새로운 과정을 학습 공동체로서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2016년 봄에 장로 아카데미의 양지 빌리지에서 비전 빌리지에서 수련회 강의를 초청을 드렸었습니다. 토요일이었는데 오셨어요. 오셨는데 이렇게 강의를 하시다가 말고 오늘은 강의를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중간에 그러면서 뭐라 그러시냐면 사실은 제가 기도받으러 왔습니다. 그러시면서 뭐라고 그러냐 하면 며칠 전에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수명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으셨어요. 권사님하고 같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강의하다 말고 놀래서 이제 강의는 이제 짧게 하고 저희가 다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제 마무리 기도를 섬기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마무리 기도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 김영길 장로님이 그 모든 헌신과 수고의 본이 되는데 그 건강하셨거든요. 아무 그게 없었습니다. 어떻게 췌장암 4기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셨는지 제가 좀 이해도 안 됐지만, 하여튼 그 간절한 마음으로 할 때 저가 느꼈던 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부르심은 그날로 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이 기도해야 되는 것이고 그때 기도했을 때, 장로님은 그다음 해에 암세포가 없어졌었어요. 이 자리에서 간증도 하셨습니다. 결국은 2019년도에 소천하셨는데요. 그때 저희가 장로 공동체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서 탁월하고 그런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만, 우리가 고향처럼 돌아와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해 주는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라는 것을 저는 김영길 총장님을 통해서 장로님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지난 10월달에 이제 교회를 조금 아셔야 되니까 제가 이렇게 소개 겸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제 노회가 있습니다. 그래 노회의 총대 장로님들과 부산역을 거쳐서 갔는데 부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한 장로님께서 저한테 물으셨습니다. 장로님은 장로 수련회. 저희가 장로 수련회를 이제 매년 합니다. 장로수련회에서 천국에 이런 장로 수련의 장로 공동체가 있다라고 그렇게 확신 있게 얘기를 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정말 그런지 궁금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답했겠습니까? 당연히 있죠. 왜냐하면 천국의 그림자 같은 우리가 삶을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양의 본이 되는 장로로 세우시고 이 공동체를 세우셨는데 이게 어떻게 천국에 없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저는 장로 아카데미 과정 중에 그런 중간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그런 것도 보여주셨어요. 장로님들이 이 육신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그런 영의 몸으로 같이 교제하는 그런 모습도 보여주셨어요. 저는 그래서 확신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제 영원한 장로 공동체에 들어오셨고 그래서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는 김영길 장로님께서 정말 간단 명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이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주셨듯이 그런 영향력을 미치시고, 우리가 정말 간절하게 필요할 때 정말 누가 보지 않을 때 기도하는 그런 겸손한 장로, 그리고 저희가 서로 언제든지 어려운 일 당할 때 서로 위로를 나누는 그런 장로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실 거죠 감사합니다. 제가 짧게 기도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23 장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옵시고. 선배님들의 그 본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장로로 한 분 한 분 세워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축하특순 : 테너 최원휘, 소프라노 홍혜란
"나를 통하여' 감동적인 찬양을 해 주셨다.
선물증정 : 교회가 장로에게
23장로회 최대회장님이신 송기선 장로님께 성경책과 꽃다발을 교회가 선물한다.
온누리교회에 임직에는 장로, 권사, 안수집사 모두 임직 헌금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내가 장로가 될때만해도 장로가 교회에 무언가 했던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
또 하나 선물은 "장로의 기도"를 드린다고 하셨고, 전체 장로님들이 한번 낭독을 하셨다.
내가 장로로 장립하던 2015년에 생긴 기도인 것 같은데 장로 장립식에서 매번 낭독이 된다.
장로의 기도 전문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해마다 장로 장립식에서 드려지고 있다,
찬송 : 부름받아 나선 이몸 찬송가 323장 1절, 3절 찬양이 있었다.
축도 : 강부호 목사님
기념사진 : 장로 장립식 을 모두 마치고 전체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
23신임 장로님들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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