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그리스도인과 국가 (롬13:1-7) 2023.01.22

다이나마이트2 2023. 1. 23. 22:43

그리스도인과 국가 (롬13: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작년 연말에 [로마서] 12장까지 말씀을 드렸고, 성탄, 송구영신, 신년예배와 선교 헌신까지, [주제별]로 말씀을 살펴보다가, 이제는 다시 [로마서 13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국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애국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애국심]은 “이웃 사랑”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으로부터 출발해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압제에도 저항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을 섰고,
또 공산주의에 저항하여 나라를 지키는 데 헌신해 왔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신앙]은 나라의 운명과 방향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애국심]이 “자신의 정치적 판단으로 절대화”하거나, “자국민 이기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최근에, 러시아 정교회 한 [주교]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나라만을 잘 살기를 바라고, 세계 속의 책임에 무관심한 처사로,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①“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를 생각하며, 
②그 다음으로 “어떤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입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들라.”는 말씀이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이웃과의 관계”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랑”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리고 13장 8절에서 14절까지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국가에 대한 올바른 사랑”으로도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사랑”을 뛰어넘어서, [공동체]의 사랑으로 제도화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급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로마서]가 쓰여 질 당시에, [로마]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역사가들의 자료를 통해서 보면, 국가가 어떤 시대에는 지도자들의 부정 탐욕 잘못된 문제로 인해서 혼란이 일어나는 때가 있고, 또한 어떤 이들은 무질서한 혁명을 통해서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들도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의 혼란은 “세금에 대한 문제”가 컸습니다. 
조세, 관세, 통관세 등 여러 세금으로 문제가 발생했는데, 많은 부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금을 내지 말자라”는 [조세 거부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모든 국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나라는 붕괴합니다.
 
이럴 때,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보거나, 지금도 일부 유럽이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그런 나라들이 있지만,
”국가가 교회를 다 제거해야 된다.“는 나라도 있습니다.
 
또한 정반대로/ 중세적인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모든 정치까지 다 관여해야 한다.“는 것도
이미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임이 판명되었듯이, 교회와 국가가 서로 정치적으로 결탁하여,
서로의 이권을 챙기는 그런 혼란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잘 나왔는데, 
①그것은 [악]을 제어하고, [선]을 장려하는 것이고, 
②각 영역에서 [자유]가 다른 영역을 침범할 때, 그것을 제어하는 역할로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차별금지법]이나, 사회적인 [성의 문제]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고,
가정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로 구성되는 분명한 [성]을 ”다르게 해석하여 [법]으로 제정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더 자세히 설명하면,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나, “가족 간의 사랑”을 [법]으로 재단해서,
“자녀는 마땅히 부모에게 월 별로, 얼마의 용돈을 지불해야 된다.”는 것을 [효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면,
“효도를 장려하는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런 [법]은 제정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처럼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국가가 모든 것을 [법]으로 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각 영역의 권세를 나누어서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교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첫째로/ 국가의 권세를 세우신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라.“는 것입니다.
 
13장 1절의 말씀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십시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롬13:1)
 
이 말씀을 핀셋으로 한 구절만을 끄집어내서,
”국가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이니, 무조건 복종하라.“고 해석하면, 그건 잘못된 해석입니다.
 
실제로 남미에서는 오랫동안 잘못된 독재자들이 이런 말씀을 끄집어내서,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잘못된 권력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력을 나누어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권세]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권세의 [주인]이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세]도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세이므로, 
”[국가의 권세] 그 위에,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권세]를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권세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을 받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하고,
“그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권세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불법]이 성행하였지만,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로마 법]이 지켜지는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국가“라고 강조하며, 비교적 [법치주의]를 지켰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2) 두 번째 교훈은/ 국가의 권세는 [악]을 심판하고, [선]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장 4절의 말씀에, “그는 여러분에게 [선]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악]을 행한다면, 두려워하십시오. 그는 공연히 칼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롬13:4)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을 장려하는 ”국가의 책임을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국가가 [하나님의 뜻]에 금하는 것을 명령하거나,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금자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에 대한 해답은 성경 전체에 여러 사례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구약]의 예를 보면, 애굽의 막강한 통치 하에서, ”갓 태어난 생명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이를 거역했고, 그래서 [모세]가 태어났어요.
 
이것은 ”국가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국가가 명한다면, 
”내가 죽을지언정 나는 순종하지 못하겠다.“는 히브리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바벨론의 왕의 명령을 어기고 죽을지언정,
”나는 기도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결심을 보인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우리 개인에게는 어떤 권면이 주어집니까?
국가의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이, ”[선]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5절 6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복종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을 위해서도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세를 바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고 있습니다.”(롬13:5-6)
 
이 [말씀]은 국가의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양심]은 국가의 권세로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그 나라의 [양심 지수]가 높으면, 그런 나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입니다.
처벌 받기를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이 살아 있는 나라”가 더 좋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7절에서 ”조세를 납부하는 교훈“을 주십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한 양심]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선한 양심]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앙 교육]이 필요”합니다.
 
저는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교육]에서 기도를 금지시키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없애는 일들”을 보면서,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합니다.
 
이런 현상은 “[양심]을 잃어버린 현상”이고, “[양심의 기능]이 상실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나라”가 되었기에, 그것은 [양심]이 무너진 결과이고, 
그러므로 “미국에는 해마다 수없이 많은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거예요.
 
[생명]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사람]을 총기로 쏴죽이고,
[마약]이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 [어른]들이 그걸 팔고 있어요.
 
그것은 ”[양심]이 없는 행동”이고, [어른]들의 양심이 없어서 그래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린 자녀들이 마약에 중독되어도 그냥 지나가요.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되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양심]을 따라 행동할 때, 나라는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지키고 싸우다 보면, 자연히 순교까지 이르게 되는 거예요.
 
미국이 [세속주의]의 이념에 의해서 무너지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그 뒤를 따라가면서 점점 변하고 있어요.
이건 아주 심각한 현상입니다.
 
제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국방 모든 면에서,
[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이 이것만큼은 “친미를 외친다.”는 사실이죠.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이고, [위선]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서, “[국가]가 움직여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권세를 보았기에,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고 말씀하고,
“[국가]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존재”라고 강조하면서, 
[악]을 징벌하고, [선]을 따르려면, “국가의 권세에 순응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질서]하고, [혁명적]인 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권세]에 두렵지 않으려면, 우리는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적어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국가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