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새벽기도[10일차] 자유와 진리 (요8:31-36) 말씀: 이재훈 목사님
[복음]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이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고난 속에서도 가치가 있고, 그 빛을 바라며, 계속해서 전해집니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흰 눈이 오면, 우리가 늘 기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1장 18절에 있는 말씀으로, “비록 너희 [죄]가 주홍빛 같더라도, 눈처럼 희게 될 것이라. ”라는 구절입니다.
흰 눈이 오면, 온 세상을 눈으로 모든 것을 다 덮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색깔도 모두 다 하얗게 덮어버리고, 심지어는 쓰레기까지 모두 다 덮어 버립니다.
그래서 “무엇이 더럽고, 깨끗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이번 주 첫날은 “진리가 있기에,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고,
어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고,
오늘은 [자유]를 얻으려면,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자유]에 가장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단어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한마디로, ”얽매이기 싫다.“는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예수를 믿으면, 자유롭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내 인생의 주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오해이고, [죄]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대표적인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만일 너희가 내 말대로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자유가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제자들은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되는지?“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유일한 진리이고, 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는 축복이 바로 [자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새]를 상상 할 것입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의 모습]에서 [자유]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원하는 대로 갈 수 있고, 남북의 철책도 뛰어넘을 수 있으니, 자유의 심벌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날아다니던 [새]도 오래 동안 새장에 오래 갇혀 있으면, ”자신이 날개가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날아다니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 오래 익숙해져 있으면, ”자유로운 삶을 잃어버리는“ 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것은 [죄]에 이끌려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무엇입니까?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의 한 단면일 뿐“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목적이 있는 겁니다.
운동 경기에도 모든 규칙이 있는 것처럼, 모든 존재에는 목적이 있고, 규칙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대로 사는 것이 자유“이고, 그 창조된 목적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계와 원리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규범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한 가지 [금지 명령]이 있고,
그 밖에 모든 것은 자유였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그 인간이 창조될 때의 모습을 살펴봐야 하는데,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땅을 정복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엄청난 자유“를 주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사단으로부터 꼬임을 받아서,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은 진짜 우리가 자유로워지려면, “이 규칙마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렇게 생각할 자유까지 주셨기에, 그런 [행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과의 대화로 판단이 가능합니다. ”보암 직도 하고, 먹음직스럽기도 하다.“는 표현에서
인간의 감정과 의지에 전 인격적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으로, 그때부터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잘못 선택하면,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죄의 종]으로 살게 되고, 겉으로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모든 인간들은 ”본능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인간은 본능대로 살 수 없는 존재“에요.
▶왜, 사람들이 고민하고 방황합니까?
그것은 본능대로 살아보니, 고통스러운 거예요.
자기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마음껏 살아보고 싶어서, 회사 돈을 횡령해서 흥청망청 살아보고 싶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살면, 그게 자유입니까?
그러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평생 자유를 잃어버린 인생으로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자유인가요?
그런 선택을 하는 순간에, 전혀 자유롭지 못한 인생으로 끝이 나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자유로운 삶이 됩니까?
그것은 내 본능을 따라 살지 않고, ”예수님이 진리“라는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진리는 무엇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 는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 한 가지 [진리]만 지켰다면, 축복을 받았을 것인데,
그러나 그들은 그 [진리]를 어겼기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린 거예요.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①먼저 우리는 ”본능을 따라 사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있고,
②”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자유로운 인생]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진리]이고,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 [진리]이고,
인간은 ”스스로 죄의 종 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우리를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케 하신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결론적으로 [진리] 되시는 그분을 믿고,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중력]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이 지구 중심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으로써의 중력이 있고,
②또 하나의 중력은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 자신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는데, 이것이 [죄]라는 중력입니다.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이런 [죄의 중력]“에 이끌려서 살아요.
그래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이 [죄의 중력]에서 벗어나게 하고, [죄]를 끊어 내고, 우리의 [옛사람]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님]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나는 것이 [비행기]인데,
그것은 공기 역학의 법칙을 이용해서, 날아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연료를 공급하고,
엔진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넣어주는 힘으로 날아가는 거예요.
저는 [진리]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악보]를 떠올립니다.
음악 하는 분들은 [악보]를 보면서, 그 [악보]에 따라서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연주하는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따서 자신을 움직일 때,
“자신과 악기가 하나”가 되어서 연주하게 되고, “자유롭게 연주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것은 [악보]에 따라서 철저히 자신을 훈련시킬 때,
이루어지는 결과로 수많은 관중들이 거기에 호응하여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보가 되는 것”이 바로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가 악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악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라는 말씀에서, “안다”고 할 때는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연주자가 악보를 자신의 몸에 하나가 되도록 연습할 때,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할 때, “놀랍게도 우리는 자유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수가 보내고자하는 대로 정확하게 공을 보낼 때, 라인을 벗어나지 않고 공을 몰아 갈 때,
그 선수는 날아가는 새와 같이 “자유를 만끽하고, 축구를 즐기는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자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움직여질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킬 분은 오직 예수님 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길이고, 진리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알고, 그분과 동행하고, 그분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인생이 되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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