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일 새벽기도[9일차] 예배와 진리 (요4:23-2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제가 오늘 예배당에 들어올 때, 어떤 어머니가 네 자녀와 함께 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가정이 아주 귀한 가정이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릴 때가 생각났는데, 눈이 내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에 [겨울 성경학교]에 다니던 기억이 났어요. 그 때, 제 머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를 왜, 목회자로 부르셨나?“를 잠시 생각나게 했습니다.
어제 우리는 [은혜와 진리]라는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유일한 진리“라는 말씀을 은혜의 시각에서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당 안에서만 통하는 진리“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누어서, ”한 영역에서는 진리이고, 다른 영역에서는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모든 [진리]는 반드시 모든 영역에서 다 같이 진리로 통해야 합니다.
또 한 편으로, “나에게만 해당되는 진리”도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이고, [복음]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
소위 [차별금지법]이라고 불리는 그런 법들이 시행된 나라에서는 “예배당에서조차 이제 진리를 진리로 전할 수 없는 사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처음에는 진리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누다가,
이제는 사적 영역에게까지 ”진리를 무너뜨려 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의 진리]를 바꿔서, 이제는 더 나아가 정체 불명한 ”스스로 자기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해괴한 이론으로,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므로 개인의 영역에서 가정의 영역에까지 가두어 버리고,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죄와 심판, 진노라는 단어는 전부 혐오“라고 규정하여, 없어지게 만들었어요.
그들에게 ”[죄]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저 자신이 불편할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법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나는 죄인이 아니다. “또 필요하면 법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라고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배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예배 자]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예배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영광받기를 기뻐하셨고,
그 인간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최고의 영광을 받으신 겁니다.
또한 하나님이 오직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갈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므로, (그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는 의롭게 되어서,
이제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예배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배가 가능하게 된 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고,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 24절의 말씀에, “이제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한다.”(요 04-23-24)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존재의 근원이 되신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데,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이고 표현하고, 나타내는 [형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은 [물건]인데, 그걸 보면서, 그 앞에서 절을 합니다.
이방 종교일수록 그런 [아이콘](신상)을 많이 만들어서 형상화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중세 시대에는 수많은 신상들을 모두 다 제거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금송아지가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다. ”라고 했는데, 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왜, 금 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그것을 애굽에서 많이 보았던 것이기에,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그렇게 했기에,
그들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이 자신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신이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니,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진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진리이신 예수님”입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예배자로 바꿔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리게 해주시는 분이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이 진리“이시니까,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예배당 안에서만 계시는 분이 아니고,
내 마음속 어디에나 계시므로, 우리의 [예배 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일정하게 시간을 정하여 [공 예배]로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만 “예배를 가두어둔다면, 그것은 ”예배당 안에서 가두어 둔 진리”가 되므로,
우리는 어느 장소에서나 예배가 가능하고, 예배드리는 장소와 상관이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롬12:1-1)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우리의 몸으로 행하는 모든 삶이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이 있는 모든 장소가 예배 처소가 되니까, 여러분은 “예배를 마치고 직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예배를 드리려고 직장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용어]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퇴]한다”는 것이 “이제는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틀린 말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말하면, “지금까지 예배를 안 드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온누리교회에서는 “은퇴한 장로님”을 [은퇴 장로]라고 부르지 않고,
[사역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더 많은 사역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한동대 동문들이 세운 [NIBC](Not I But Christ)라는 개발 회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내가] 아니고, 오직 [예수]”라는 의미입니다.
그 회사의 대표가 [간증]을 하는데, 이들의 [꿈]은 ”선한 개발업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선교사 자녀들이고, 이렇게 선교의 정신으로 자라난 자녀들이니까,
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동기에서 세워진 회사이고, ”부동산을 개발하여 이익이 나면, 그것을 자기가 가지지 않고, 주민들에게 돌려준다.”는 회사입니다.
▶여러분, 대장동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에, 그게 가능할까요?
그런데 [한동대] 출신이니까, “놀랍게도 그게 가능하다.“는 대답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어떤 [직업]이기 이전에,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자유대학교를 설립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깃발이 꽂힐 때까지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학문의 영역에서, 입법의 과정에서, 기업의 영역에서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고, 정직이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비지니스에서 정직함을 나타내고, ”예수님이 진리임을 보여주는 것이 예배”라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드리는 예배“도 분명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삶의 모든 것이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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