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좋은 나무, 나쁜 나무 (마7:15~21) 2022.01.20

다이나마이트2 2022. 1. 20. 14:49

 2021/2022 새벽기도회 39일차 “좋은 나무, 나쁜 나무 “ 이재훈 목사 

15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다가오지만 속은 사나운 늑대다.
16 그 열매를 보면 너희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겠느냐?
17 이처럼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20 이와 같이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21 내게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마태복음  7:15~21, 우리말 성경)

산상수훈의 결론부분입니다. 
자녀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에 생명이 있습니다. 
넓은 문은 왜 멸망으로 이끌까? 그것은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본성이 십자가에서 처리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나 홀로 들어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따라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을 따라 살아가면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열매를 봄으로 우리가 좁은 길로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거짓된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를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타락한 본성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겉은 양의 탈에 속은 늑대와 같은 삶들이 있습니다. 
분열된 인격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이런 모습을 우리 자신도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 관계속에 나쁜 열매가 맺어진다면 문제가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인격과 내면의 인격이 분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변화되는 새 생명은 옛사람과 새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게 합니다. 
주님의 빛이 내 안에 임할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가면 뒤에 감추어진 내 모습은 실제의 자신의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를 깨달을 때 우리는 가난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십자가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 분리되었던 인격이 하나로 통합되어 진실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 하는 사람들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역할로서의 성품과 내면의 인격이 얼마나 심각하게 분리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가족이 이를 더 잘 파악합니다. 배우자가 말할 때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살다보면 같이 못볼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건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거듭난 새 생명만이 해결 방안입니다. 
직분으로서 충실하면서 위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목회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평화와 진실을 전하면서 캐릭터로서의 내 삶과 개인의 삶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리된 인격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금방 나타나지 않습니다. 
열매는 겉으로 나타나는 성격과 내면의 성품이 하나가 되어 행 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악한 동기로도 구제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열매가 아닙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나무의 생명은 뿌리에 있습니다. 잎은 시들수 있습니다. 잎은 마치 우리의 감정과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가 물가에 연결되어 있다면 잎은 다시 푸를 수 있습니다. 
내면의 인격이 물가의 나무뿌리처럼 깊이 하나님께 심겨져 있어야 합니다. 

행사는 자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행사처럼 할 수 없습니다. 
뿌리가 깊이 심겨 있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매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열매를 보고 심판하십니다. 
공급된 영양분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있는 것입니다. 

은밀한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즐거워 하는가? 
거울의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는 내 모습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켜 나가고 있는가? 

46 어째서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누가복음  6:46, 우리말 성경)

주여 주여 부르면서 우리는 왜 열매를 맺지못하는가? 
주여 주여 부르는 것이 오직 역할로서만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여 부를 때 그것이 내 내면의 고백인가? 

진실없는 거짓된 고백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거짓고백하는 백성들을 꾸짖습니다. 

31 그들은 백성이 구경거리를 보러 나오는 것처럼 네게 나와서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 네 말을 듣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행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탐욕을 추구하고 있다.
32 너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네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다.
(에스겔  33:31~32, 우리말 성경)

입으로는 사랑을 행하지만 마음으로는 탐심을 구합니다. 
열매맺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분열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실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좋은 나무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속 사람이 변화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자르실 것이요,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손질하신다.
(요한복음  15:2, 우리말 성경)

헛된 봉사의 가지를 쳐 낼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고 뿌리가 물가에 연결되어 있을 때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