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맹세 (마5:33~37) 2021.12.21

다이나마이트2 2021. 12. 21. 07:17

2021/2022 새벽기도회 9일차 “맹세” 이재훈 담임목사 

33 또 옛사람들에게 ‘네가 한 맹세를 어기지 말고 주께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는 말도 너희가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하지 말라. 땅은 하나님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또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 맹세하지 말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태복음  5:33~37, 우리말 성경)

산상수훈은 우리 마음의 문제들을 드러나게 합니다. 미움이 살인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움이라는 생각을 금하는 삶,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시선이 간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소중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야 합니다. 

오늘 맹세에 대한 말씀은 죄를 범하게 하는 언어죄악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더럽고 추악한 말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언어가 국민을 힘들게 하고 가족의 실수의 언어 한 마디가 절망과 상처에 이르게 합니다.  
말의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들었을 때 주신 놀라운 능력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의심을 사탄이 불어 넣었을 때 하와가 혼돈에 빠졌던 것입니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말라고 하였습니까? 
만지지 말라는 덧붙인 말로 인해 혼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왜곡된 생각으로 살아가는 타락한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 후에 탑을 쌓고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 하나님이 언어를 혼란하게 하셔서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말에는 거짓이 포함되어 있고 왜곡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말씀을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타락한 죗성이 있는 것입니다. 
함께 못박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혀이며 입술입니다. 
하나님 앞에 죗성을 고백할 때 가장먼저 내 입에서 나오는 거짓 언어, 정죄와 미움의 언어들이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새생명의 언어, 살리는 언어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입술이 더러워 졌던 경험이 있습니까? 

맹세를 통해서 자신의 악을 부정하는 세상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불필요한 맹세를 유대인들은 많이 만들었습니다. 과장하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맹세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진실성을 포장하고 과장하기 위해 맹세를 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맹세가 필요없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아예 맹세가 필요없는 진실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맹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거룩한 보혈로 옛사람이 죽음에 넘겨져 성령에 따라 거룩한 말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면의 진실한 언어가 회복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37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태복음  5:37, 우리말 성경)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은 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하고 싶으면서도 예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위선자라고 합니다. 
예하고 하고선 아니오하는 배반자
이중 인격자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하지 않는 기회주의자

이런 삶은 우리가 악을 행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아니”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때 정확한 소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오” 하는 사람과 함께 동역하셨던 리더십이 하용조목사님이었습니다. 

나와 가까우면 무조건 예하는 타락한 문화, 우리가 피하여야할 사회입니다. 
멀리 있어도 옳은 것에 대해 “예”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와 아니오가 흔들리는 삶들이 있으며 이는 악이 틈타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관계 때문에 진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옳은 것은 예라고 아닌 것은 아니라는 진실된 언어가 우리 공동체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는 공동체가 될 것입이다. 

소문 실명제도 필요합니다. 
특별한 의도를 갖고 말하지 않았어도 그냥 잘못된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공동체는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말은 전하지 말아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시기 때문입니다.  

입술의 파수군을 세워 우리 입술의 문을 지켜야 합니다. 
마귀는 작은 공격으로 시작됩니다. 말 한마디를 통하여 사탄은 일을 합니다.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실이라고 한다면 그 많은 실들이 촘촘히 쌓여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정직한 언어를 통해 성화되고 거룩하게 변화 되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의 언어가 복된 언어로 변화하는 삶의 변화가 우리 삶에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