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갈5:16~26) 2021.12.12

다이나마이트2 2021. 12. 12. 20:12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갈5:16~2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지난주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는 자유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유란 죄의 종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약속을 붙잡고,
순종하며 살라”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받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을 건지는 성령의 법에 따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어떤 조항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성령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 연결되어지는 것으로, 다만 교리적인 사상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은 ”성령을 따라가는 새 생명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으로, 5장 16-1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욕망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갈5:16-18)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 것인가?”아니면 “성령에 따라 살 것인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니까 만일에,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육체라는 말은 몸(Body)이 아니라,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영향력으로 그대로 지니고 있는 ”타락한 본성을 지닌 사람“을 말하고,
몸에 스며들어온 죄를 그대로 답습하는 ”본성을 지닌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성경마다 몸을 ”육체나 육신”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언어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읽어보면, “만일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라는 말씀에서도 육신은 “타락한 옛 사람의 본성”을 말합니다. 
 
여기서 ”육신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고,
”육신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을 표현하는 것이니, ”육체의 습관“을 버려야 하고, ”
우리 몸의 습관을 버리고, 성령님이 이끄는 거룩한 습관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어서 살아야 합니다.
 
▶ 여기서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육신의 습관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살아나도록, 우리의 영도 살아나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것은  ”몸을 괴롭게 하라”는 말이 아니고, “죄를 죽이는 방법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몸의 습관을 뛰어 넘어, 우리의 육신 안에 있는 여러 성향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서,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야 합니다.
 
중세 시대의 청교도들은 영으로 몸을 죽이는 방법으로, “죄를 죽이기”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세상과 담을 쌓고, 죄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학대하고, 고행을 통해서 죄를 죽이려고 했으나, 역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십자가를 통해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런 ”생명의 능력“을 주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게 만드신 분도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동경하며, “죄의 법“ 아래에서 살던 사람을
”생명의 법“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령님을 받아 드림으로, 너무도 익숙한 ”죄의 힘“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죄가 이끌어 가는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죽음이니까, 우리는 거기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빠져 나오는 방법은 한 순간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읽으십시오. 
”육체의 일들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종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과 또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 경고한 것처럼, 지금도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할 것입니다.“(갈5:19-21)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옛 사람은 죽었지만, 그 영향력은 육체를 통하여 계속 살아 있습니다.
그것을 여기서 육체의 일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들은 ①주변에 널려 있는 성적인 죄악들이고, ②영적인 주술과 우상들이고,
③관계를 파괴하는 사회적인 죄악들입니다. 그리고 ④술 취함과 방탕함을 포함한 타락한 문화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과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마치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대”와 같다고, 대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움, 방종, 우상 숭배, 원수 맺음, 다툼, 시기, 분노 이기심, 질투 술 취함과 방탕을 말하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얻으려면, ①첫째로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있어야 얻을 수 있고,
②두 번째로 지속적인 실천이 요구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일들은 환경에 따라서 아주 쉽게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를 얻으려면, 십자가 앞에 나와서 성령을 따라 순종하지 않으면, 열매가 맺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다라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고, 성령에 따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오스월드 챔버스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성을 우리의 협력자로 만들지 않는 한, 그분은 결코 도와주지 않습니다.
실천은 우리의 것이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
 
열매는 한 번의 선택과 한 번의 행위로 맺어지지 않습니다.
열매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한 실천이 요구됩니다.
 
▶열매의 종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런 리스트를 ”암송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이것들이 ”서로가 연결되어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예로써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열매로 나타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9가지 열매 중에서 사랑을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인하여, 수 없이 많은 파생적인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①기쁨이란? ----“행복한 사랑”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열매가 됩니다.
②화평이란? ---- “서로 하나가 된 사랑”이고, 화목하게 되는 열매입니다. 
③오래 참음은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오래 참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④자비란 ---- “친절한 사랑”이고,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⑤양선이란? ---- “이기심이 없는 착한 사랑”이고,
⑥충성이란? ---- “책임감이 있는 사랑”입니다.
⑦온유란? ---- “겸손한 사랑”이고, 힘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내재된 강력한 힘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⑧절제란? ---- “훈련된 사랑”이고, 성령의 열매가 나타날 때는 분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처럼, 오염이 된 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하는데 오래 참지도 않고, 화평하지 않은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반드시 “절제까지 이르러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을 모욕하는 재판관에게 항의하지 않고, 말없이 감당하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내 안에 들어 온 주님의 영이, 그 성령의 힘으로 나를 움직여서,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의 본성은 나로 하여금 사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지만,
성령님은 나를 자유롭게 이끌어 풍성한 열매가 맺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