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모든 족속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 (창12:1~3, 요6:15) 2021.03.23

다이나마이트2 2021. 3. 23. 17:46

 

모든 족속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 (창12:1~3, 요6:15)    말씀: 박은조 목사님(은혜샘물교회)

 

오늘은 제가 은퇴하고, 제가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가볍게 고백하므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저는 비교적 빨리 은퇴하였고, 쉰지가 2년이 자나고, 3년차가 되었을 때, 새삼 평안함을 느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당으로 내려왔을 때의 일을 회고해 봅니다.

성남의 복정동에는 인력시장이 있는데, 아침 새벽부터 왔는데,

그 중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가 하루를 맡고, 청소까지 끝나면, 다음 날에는 다른 교회가 맡아서 제공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거기에 오시는 분들은 아주 초췌하고, 어려운 분들이라, 먹고 갈 때에는 아주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그

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연합회 총무가 ”내년에는 안 오셔도 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감당이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분당에 200개 교회가 하던 일을, ”서로가 어렵다.”고 대답하여, “이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혼자서 맡기에는 어려워서, 이제는 다시 성남에 800개 교회가 있는데,

이 일을 멈출 수가 없어서, 상의한 결과 성남 태평동에 60평짜리 식당을 빌려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서 기쁨으로 봉사했고, 지금, 그곳은 성남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 지역의 리더들의 반응에 저는 고무되었고, 성남 시장님이 식사대접을 한다고 찾아왔던 기억과,

구청장이 제게 와서 90도로 절을 하고, ”가난한 지역민에게 밥을 먹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은 선교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일반 사람들은 선교보다는 구제하는 일에 더 반응이 좋습니다.

 

제가 지금 회개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사를 제공하고도,

정작 전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밥 한 끼 제공하고, 전도를 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지금은 후회합니다.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모든 민족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오로지 이삭, 한 사람에게만 축복을 받았어요.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후계자인데,

런 우리를 통해서 불신자들에게 은혜가 미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나 하나 살기도 힘들고 어려운데, ”나를 통해서 축복을 준다.“는 말씀은

혹시나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 것인지?”를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 그렇게 축복을 이어가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는 사람 같지만, 우리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도, “우리를 통하여서”

또 “우리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하겠다.“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지금은 ”나 하나의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이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식들을 다른 집안의 아이 보다, 더 반듯하지 못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러나 그건, 그게 아닙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세상을 비난하지만, ”그 세상을 마음에 품으라.”는 게, 주님의 뜻 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오는데,

그런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 중에“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것은 아주 멋진 발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피하고,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럴 때, 뭐가 문제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돌아다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보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빛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부탁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선교만 생각하다가, 구제를 시작하니까,

바로 ”그 일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당연히 선교는 해야 하지만, 교회가 그 동내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건 아주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한 마디 말 보다, 행동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달라.”는 것은 “경제 문제를 우선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까, 그랬던 것입니다.

로마의 군정이 포악해 지고, 점령군들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습니까?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일제 36년을 겪었지만, 로마 제국의 통치는 세금으로 압박하는 통치입니다.

 

그런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으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출석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아파트에 당첨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실망이 클 것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불평이지만, 예수님은 “그런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속에서 여러 번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얘기가 “내 얘기”라고 생각을 하면,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얘기가 나와 상관없는 얘기로 읽으니까, 그게 마음에 와 닫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고, 그 분의 은혜에 축복을 받는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자매가 독일의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그가 결심하게 됩니다.

 

이 분이 귀국해서 용인 동백에 와서 레슨을 하면 좋을 텐데,

하나님이 이 분에게 ”장애인들을 섬기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어려운 장애인에게 음악을 가르치다가 보호자인 어머니와 아빠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음악 공동체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뮤직 코이노니아라는 단체가 되었고, 지금은 용인시에서 아주 유명한 전도 단체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 자매를 보면서 느낀 것은 ”세상 속에서 연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하여, 선교활동까지 하게 되었으니, “어찌 그 여인을 뛰어난 사역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그 여인은 하나님의 사역자]고,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니까, 우리 모두가 가야하는 길 입니다.

 

동내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끓여 주고, 우리 집에서 그런 모임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길 입니다.

 

미국의 어느 시골에서,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지내는 평범한 보통 할머니인데,

우리 집에 왔다가는 사람들에게 그냥 보내기 싫어서 차 한 잔에, 쿠키 한 조각을 대접하는 일이,

나중에 발전하여 “OM선교회의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가 할 일이 뭘까?”를 생각하면,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자신이 천국에 가서, 놀랬을 것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의 길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 앞에 제가 감히 기도로 나아갑니다.

먼저 지금까지 살아 온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그 다음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이 아니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 : 화종부 목사 (남서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