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고후5:11~21) 말씀: 이재훈 목사님
과거 역사가운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이전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여,
그는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므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그동안 생각했으나,
그것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혁명적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우리의 인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나 자신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이것을 뒷받침 해 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십시오, 새 것이 됐습니다.“(고후5:17)
누구든지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성경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변한 것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할 때, 빛이 있을 때와 빛이 없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다른 비유로 설명하면, 생명이 잉태되기 전의 몸의 상태와
생명이 잉태된 후의 몸의 상태가 완전히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깨닫고, 그 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난 사람들은 “그분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에게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성경을 “오래 동안이나 연구해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는, 패러다임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의 인생”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 ”지구는 돈다.“고 관점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동안 연구해서 아는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여기서는 ”옛것이라“고 표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새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 말입니다.
옛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예수님을 모르는 상태를 말하고, 새것은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전의 모습이 옛 사람인데, 하나님을 믿는 순간에 지나갔습니다.
과거에 내가 갖고 있는 절망과 마음의 상처도 이제는 모두 지나 갔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듯이, 이제 ”새 옷”을 갈아입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옛 것이란 타락한 사람, “죄를 지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고,
성경의 계시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으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소리를 들었으나, “저는 제 정신으로 똑 바로 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미친 게” 아니라, 제 정신으로 사는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미친 세상이 문제이지, 바울은 ”올바른 제 정신“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미친 건, 아니야“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바울이 ”미친 사람이라“고 들은 것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피상적으로 알았으나,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중심“이고, ”나의 중심“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내가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가 들어와서, 내가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그런 변화가 나타났나요?
(1) 첫째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우리가 확신하건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 분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후5:14)
▶ 여기서 ”강권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강권한다.”는 단어는 “지배한다.”는 의미가 있고, “압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강권하다”이지만, “우리를 사로잡고, 지배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이끌어 간다.“고 해석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비유하면, 강에서 헤엄을 칠 때에 조류에 끌려가는 현상을
”조류가 나를 강권한다.“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류가 나를 자기중심적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 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면, 그리스도가 나를 막아서면서, 말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그 사랑으로 하여금,
나에게 섬기려는 마음을 주는 것이 ”강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제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자유 의지에 따라서,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강권함을 받는 것이고, ”자유로운 인생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울 때가 언제인가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일 때,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가 우리 마음에 주인일 때”, 그 때가 마음이 제일 편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때에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기” 때문이지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 “역사를 지배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때부터 변화된 삶이 나타나고,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니니까,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무엇에 의해, 지배를 당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지배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인데, 그런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2) 둘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화해시키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고후5:18~19)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데,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이므로,
그래서 “얼굴을 가리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깝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하십니까?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등의 원인은 인간에게 있으므로, 이런 소외됨의 원인은 죄입니다.
그것은 “죄를 덮어준다“고 해결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눈을 감아 준다.“고 해결되지 않고, 죄를 제거해야 해결 됩니다.
19-21절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시고,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전권 대사)이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우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고후5:19~21)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고, 대신 짊어지게 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수백 번을 들었지만, 실제로 아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보로써 아는 것“과 실제로 ”체험으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죄를 나를 대신하여 짊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이 화목을 이루기 위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죄의 값은 사망이다“라는 것이니까, ”죄를 대신 짊어진다.”는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리시며, 새 생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자기중심적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강권함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목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직분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아까 읽었던 5장 18절의 말씀인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화해시키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화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절(= 하나님의 전권 대사)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정에도 화목 지수가 있습니다.
그 가정의 화목지수를 평가하려면, ”하나님과 화목지수를 높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화목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박된 인생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인생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고 있다면,
그 가정은 화목 지수가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하나님과 화목한 인생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고,
그 축복을 오래도록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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