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임하는 곳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마8:1~13) 말씀: 조만복 선교사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곳에서 그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오셨음을 선포하고, 고난 받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5-7장에서는 산상수훈을 선포하고, 8-9장에서는 10개의 기적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가르쳤던 말씀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에서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무리가 따라옵니다.
그때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한 나병환자입니다.
▶나병환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병은 ”문둥병“이라고 하는데, 문둥병자는 몸이 썩어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병환자가 그 당시에 많았는데, 대중에게 나올 때는 머리를 풀고, ”나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같이 살지 못하고, 혼자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떨어져서 외롭게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사람은 이름도 없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절을 하고, 고쳐 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왜, 그는 예수님에게 왔을까요?
예수님이 “병을 고쳐 준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기대감을 갖고 온 것입니다.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은 그는 "내 병을 고쳐 준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고, 또 자기의 믿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런 행동은 ”예수에게 경배한다.”는 뜻이고, “권위와 능력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병환자는 “주님이 원하신다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니까,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요청한대로 말씀을 해서,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 밀어, ‘내가 원한다. 자 깨끗하게 되어라.
’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마8: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3가지를 생각합니다.
①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만졌는데도 전염되지 않았습니다.
② 그리고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③ 나병환자는 병도 나았지만,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전달되니까,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찾아 다니며, 그들을 회복시켜 줍니다.
예수님은 공동체에도 나타나지만, 한 개인에게도 인격적으로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시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나병환자에게는 100%의 믿음은 없지만, 그런 작은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손을 댓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에게 터치 했다”는 말이고,
그에게 “스킨십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에게 손을 내밀거나 만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만지면서 “네가 깨끗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랬더니 “곧 그의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들으며,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길 바랍니다.
마태는 이어서, 또다시 로마 군인인 백부장을 만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백부장은 왜 예수를 만나려고 했을까요?
그도 역시 “예수님이 병을 고쳐 준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기 병도 아니고, “부하의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고, 부하의 문제입니다.
▶백부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로마의 군인 장교로, 80-100명 정도의 부하를 데리고 있는 지휘관입니다.
백부장은 대속의 죄 때문에, 애통하고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그 사회에서 군림하는 사람으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부하가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서 호소합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병을 치료해 주기 보다는, 다른 노예를 사서 대체하는 시대이지만,
여기에 나오는 백부장은 아주 좋은 사람으로, 자기 종의 병을 고쳐주려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백부장은 힘의 원리로 다스리지 않고, 사랑의 원리로 대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집으로 가려는 예수님을 막아서면서, ”주여, 저는 주를 제 집안으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부탁을 합니다.
백부장이 하는 말 속에는 예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위]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개념”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으로 행동합니다.
그 당시에 로마 황제 시저가 말을 하면, 그 말이 곧 법이 되는데,
백부장은 제국의 원리를 통해서 신적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기도의 응]이 “나의 결심이나, 나의 간청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집에 까지 가지는 말고, ”그저 말씀만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탁에 깜짝 놀라시며, 10절의 말씀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을 듣고, 놀랍게 여겨, 따라 온 사람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도 아직까지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마8:10)
이 대목에서 예수님도 놀랐고, 백부장도 놀랬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소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주신다.”고 했으니,
우리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유대인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세계 모든 민족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나병환자가 원하는 대로,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백부장의 부탁과 같이,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의심하는 믿음으로” 기도를 하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이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매일 접하고, 그 말씀을 되새기며, 말씀 속에서 살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는 말씀이
먼 얘기 같지만, 우리의 내면에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말씀이 우리는 그냥 읽고 지나가는 얘기가 아니고,
평소에도 계속해서 묵상해야 하는 “우리 내면의 문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배우는 게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목적은 “병 고치는 일”이 아니고,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말씀 즉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병 고치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병 고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구원과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마음속에 꼭꼭 채워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과 동행하므로, 기적 같은 삶이 나에게 나타나서 일상화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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