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에서 좁은 문으로 (마7:13~29) 말씀: 소리샘 선교사님
이 아침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소리샘 선교사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면서, 결론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24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습니다.(마7:24)
▶좁은 문은 어떤 문입니까?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뒤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6절과 같이,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마7:26)는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넓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좁은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인데,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도 주저하는 사람은 ”넓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말씀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좁은 길로 들어는 왔는데, 거기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왜, 주저하게 됩니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3가지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 첫째로,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거짓 예언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거짓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만, “양의 탈을 쓴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같은데, 속은 “늑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펼쳐놓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지만,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런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조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위선자와 같이 전합니다.
그들은 잘못된 지식으로, 백성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 말씀에도, ”여러분은 자신과 양 떼를 잘 살피고, 조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행20:28)
거짓 선지자들은 진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순한 양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좁은 길이 아니고, 넓은 길을 말합니다.
주님은 그런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두 번째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신천지를 보면, 처음에는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이, 열심히 전도합니다.
그들은 우리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주장“을 내 세웁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올바른 길“로 나가야 합니다.
좁은 길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하고, 따라야 합니다.
제가 처음에 선교지로 왔을 때, 그 때는 열심히 전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곳의 “이슬람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하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한 영혼을 생각하고, 현지 언어와 습관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당황했습니다.
아이가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는 선교사 이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한 동안 길을 잃고 말았어요.
저는 선교사의 직분이지만, 저의 마음은 무척 무거웠습니다.
그렇지만, 저 아이와 엄마의 심정은 그 당시에 어땠을까요?
저는 그때에, 제 안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고통을 느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은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고통“을 얘기하고 있지만, 저는 그 때에 그런 심정이 느껴졌어요.
아이로 인한 저의 영적인 방황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는 하나님의 고통보다도 내 고통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참 동안 길을 잃어버려서, 고통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십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그 일부만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고통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 안전과 내 고통“보다도, 하나님의 고통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3) 길을 잃지 않으려면, 천국의 소망을 품고 나가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길을 따라 가다보면,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넓은 길을 기웃거리지만,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적다”(마7:13~14)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은 크리스천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① 첫째, 크리스천은 “섬기는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이 섬김을 받는 게 아니라, 남을 “섬기는 길”입니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길입니다.
② 둘째, 넓은 길을 가지 않고, 좁은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 길은 험하고 사람들이 별로 많이 찾는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손해 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결론을 짓습니다.
▶좁은 길은 어떤 길입니까?
① 좁은 길은 “인기가 없는 길”을 말합니다.
좁은 길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길입니다.
② 좁은 길은 화려한 길이 아니고, “외로운 길”입니다.
사람들의 스포트를 받지 않는, 시선을 받지 않는 “외로운 길”입니다.
③[좁은 길]은 외형적으로 폼 나는 길이 아니고, “내면적인 길”입니다.
크리스천의 진정한 내면의 세계는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크리스천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부정을 억지로 하면 비참해 지지만,
스스로 하면, 예수님의 마음이 되는 거예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대접받기 전에 남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좁은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내가 손해를 봐야, 누군가는 이익을 보게 되어있기 때문이지요.
나의 손해가 전제되어야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는 좁은 길을 걸으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알려 준다”고 배웠습니다.
내 생각을 바꾸고, 내 태도를 바꾸어서, 나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런 좁은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곳 이름은 길갈 (수5:1~9) 2021.02.01 (0) | 2021.02.01 |
---|---|
말씀이 임하는 곳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마8:1~13) 2021.01.29 (0) | 2021.01.29 |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 (행6:1~7) 2021.01.27 (0) | 2021.01.27 |
마지막 때에 주님의 약속, 대 추수 (마24:1~14) 2021.01.26 (0) | 2021.01.26 |
용서받은 죄인이 다른 죄인에게 (행10:24~26) 2021.01.25 (0) | 2021.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