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에 주님의 약속, 대 추수 (마24:1~14) 말씀: 주누가 선교사님
새벽은 아주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사야 26장을 보면, ”새벽이슬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새벽은 우리의 심령을 깨우는 시간이고, 어두웠던 마음이 일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자리가 매우 특별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송되었기 때문이고,
여기서 제가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유아 세례를 받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사의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지금은 돌팔이 의사입니다.
저는 이라크에서 생활하느라,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슬람 선교에 몸을 담아 온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다.”라고 예언하셨는데,
“그 때의 징조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까, 그 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언제일까요?
그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현혹되고, 미혹당해서 분별이 안 된다.”는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진리와 거짓이 분별이 안 되고,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피를 흘릴 것이고,
곳곳에 기근이 나타나고, 모든 재난이 시작될 것입니다.
또한 “아기를 낳는 산통과 같은 고통이 따를 것이며,
서서히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엄청난 탄압으로 다가 온다.“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욕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종말의 징조“가 자세히 나오니까, 집에 가셔서 읽어보십시오.
12절 말씀에서,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갈 것이다.“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주신 사랑이 식어간다“고 했으니까,
교회 안에서도 불법이 판을 치고, 교회의 영광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무너진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마지막 때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우리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내용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예배드리기가 어렵지만, 조만간 예배가 폐쇄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8절에서 “이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일 뿐이다.(마24: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아이를 낳는 산통이 시작되고, ”끝이 온다.”고 했으니, 앞으로 “대 추수의 날“이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게 대 추수의 날이 오면, ”주님이 그 때에 오고, 인류역사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끝이 없는 분”이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은 매우 흔들립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선교도 하지만, 선교하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힘이 벅차면 멈추고, 믿음이 떨어지면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13절 말씀에, “그러나 끝까지 굳게 서 있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마24:13)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그러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가 너무나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기록되기를 ”끝까지 굳게 서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끝까지 참고, 견딘다.”는 의미이니까,
우리들은 그 때까지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하고, 주님의 주권 아래에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면, ”자신의 영광을 얻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그렇게 버티면, “그 때에, 주님의 영광이 찾아온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도 ”환난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란은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고, ”주님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그런 환란이 ”나의 믿음을 견디도록“ 단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그런 구원은 ”믿음 있는 자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견뎌내야 합니다.
요한이 많은 무리들이 찬양을 할 때, 한 장로가 요한에게 묻습니다.
“저 흰 옷을 입은 자가 누구냐?”고 물으니까, “요한이 모른다.“고 대답하니까,
주님이 ”환란에서 이기고 승리한 자“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오직 ”주님의 계명을 지킨 자“이고, ”어린양의 피로 씻은 자”입니다.
▶여기서 흰 옷은 무슨 의미입니까?
흰 옷]은 “거룩한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환란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다지고, ”내면을 정결케 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깨끗케 했다“는 것은 ”구별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흰 옷은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고난을 허락하는 것은 ”고난 속에서 놀라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환란을 피하고 싶지만, ”환란을 겪으며 거룩한 울림이 있는 군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항상 너희는 거역했지만, 나는 기억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레미야 2장 2절 말씀에,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쳐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네 어릴 적의 헌신과 네 결혼 때의 사랑과 네가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따랐는지를 내가 기억한다.“(렘2:2)
주님은 ”나는 기억한다. 광야에서 나를 따른 것“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1세대가 아니고,
광야에서 거친 삶속에서도 거룩한 순종을 배웠던 ”2세대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정결한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14절 말씀에서, “그리고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 될 것이다.
그 때서야 끝이 오게 될 것이다.”(마 24:14)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환란 가운데서 승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흰 옷입은 자“ 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고,
② ”오직 주님만 바라본 사람“이고,
③ ”고난 속에서 자원해서 참여한 사람“이고,
④ ”그들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서 주님을 따랐고, 계명을 지킨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로마 제국의 압박 가운데서도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무슬림의 80%는 기독교를 모르고 죽었습니다.
요즘에 아프리카의 여자들이 중동에 와서 식모(가사 도우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가정에서 ”이슬람의 문화 속에서“ 생활하며 인내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충격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중동의 등대라고 부릅니다.
▶왜, 그들은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멸시를 받으며 지낼까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그 ”가정의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에 있는 형제들과 자매들을 후원하고,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회를 세울 테니까, 도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매일 총소리가 들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길에 다니기가 어려운데도,
“염려하지 말고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은 ”안전하다“는 것은 테러를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을 때가 안전하니, 우리는 죽어도 안전합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제가 새벽시간이라, 시간이 없어서 다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이들이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핍박이 사라지도록 기도하지 말고, 핍박을 이기게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중동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이지만, 반드시 주님은 올 것입니다.
중동에 있는 교회가 이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매일 두려운 날이 계속되지만, 이들은 악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으니,
환란의 날은 곧 무너지고 거룩한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들을 돌보아 주고, 잘 견뎌 내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의 가치”가 우리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은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또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 가운데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상황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이런 날들을 고대하면서 기도할 것입니다.
나의 주님과 함께 하면, 이런 환란 가운데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지금과 같은 환란의 때만 보이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 이후를 상상하시면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익숙하면, 안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한 사람과 헤어지기를 싫어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 때까지 저희에게 흰 옷을 입혀주시고, 그런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십시오.
”마지막 때의 징조“가 바로 지금입니다.
대 추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런 환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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