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신 보호자의 세심한 돌보심 (마2:13~23) 말씀: 이기원 목사님
예수님은 태어 날 때부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제 헤롯은 자기가 왕인데,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추적합니다.
오늘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 말씀드립니다.
①첫째로, 아기 예수의 피신과 하나님의 돌보심이고,
②두 번째는, 헤롯이 유아를 학살하는 단락입니다.
먼저 13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박사들이 떠난 후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어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찾고 있으니, 내가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마2:13)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자세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왜 피신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서, 언제까지 머물러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자세히 알려 주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모두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아기 예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알고 게십니다.
그래서 ”피신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애굽(이집트)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그 당시에 애굽은 세상 나라에서 가장 번성하고, 죄악에 물들은 나라입니다.
▶왜, 우상들이 가득한 ”애굽으로 가라”고 했을까요?
아기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나라가 여러 곳이 있지만, ”그게 어떤 나라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느 나라에 있던지,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죽은 다음에, 천사가 나타나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하였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헤롯“이 있습니다.
헤롯의 아들인 아켈라오가 집권하여, 마찬가지로 폭정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요셉은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 왕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요셉은 꿈에 지시를 받고, 방향을 바꿔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마2:22)
그래서 요셉은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은 “너가 왜, 두려워하나?”라고 묻지 않고,
두려워하는 요셉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한 마음도 받아주시고, 우리를 안전하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나사렛으로 가서, 어린 시절을 안전하게 성장합니다.
▶그 당시에 나사렛은 어떤 성읍입니까?
나사렛은 구약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지명이니까, 사람들에게는 외면을 받은 마을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입장에서는 편안하고, 한가한 곳에서 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지명의 이름이 “어린 새싹”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11장 1절 말씀을 찾아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의 뿌리에서 가지가 돋아나 열매를 맺을 것이다.”(사11:1)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는 이런 작은 동네에서 자리를 잡고, 그가 30세가 될 때까지 거기서 지냈지만,
하나님은 그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곳은 작고 초라한 마을이지만, 아기 예수가 위대한 메시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품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아기 예수처럼,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곳에서 자랐을지라도, 그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는 곳“, 그곳이 가장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과 동향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은 나에게 나타나지 않느냐?”라고 반문을 하지만,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어리석은 우리가 민감하지 못해서,
그 말씀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바빠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늘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요즈음 여러 공동체가 함께 새벽기도회에 같이 참석하고, 통독에 참여하는 모습을 카톡 방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기뻐하시며,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그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가 더욱 민감해 져야 합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마태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호세아 11장 1절 말씀에서,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였을 때, 내가 그를 사랑했고,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호1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출애굽시켰고,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말씀이 출애굽기이고, 그 책을 읽으면서 더 자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고, 배가 고플 때는 만나로 먹여 주셨습니다.
그 오랜 기간이 고통스럽고 힘든 길이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광야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에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도 우리들을 눈동자처럼, 돌보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이 가득한 애굽에서도 지켜 주셨고,
아기 예수를 지켜 주신 것과 같이, 지금도 우리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2) 두 번째 단락으로,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어린 아기들을 모두 죽이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1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헤롯을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이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박사들에게서 알아냈던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마2:16)
동방박사에 의해,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왜,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벌린 끔찍한 사건입니다.
역사를 보면, 타락한 권세욕으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의 부유]을 지키기 위해, 그런 끔찍한 살육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헤롯은 사탄에 의하여,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인터넷에서 “대학살“이라는 제목을 치면, 수많은 학살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헤롯의 학살 장면을 예레미야 2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태가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보아라 오늘 내가 견고한 성읍 철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
곧 유다의 왕들과 그 땅의 백성들이 맞서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들이 싸우겠지만,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해 너를 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이다.“(렘2:18~19)
자녀들이 포로 끌려가는 안타까운 현실과 ”두 살 이하를 모두 죽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미 예언을 했고, 마태가 헤롯의 죄악을 보면서, 마태복음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꿈에서 깨자마자, 아내와 아기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급하게 피신합니다.
비가 오면 피해야 합니다. 갑자기 비가 올 때, 비를 맞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비를 맞으면, 감기만 걸립니다.
헤롯왕이 샅샅이 아기예수를 찾고 있을 때에, 그와 대항해서 싸우면 바보입니다.
비와 폭풍우는 슬며시 피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멈추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그렇게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그럴 때는 피해야 하고,
②기다리다 보면,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적절히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고,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때도 일하고 계셨으며, 지금도 역시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권사님이 아들이 죽게 되어 충격을 받았을 때, 천국 환송예배를 드리고 하시는 말씀이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상실의 아픔이 있었지만,
저는 이제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그 아픔을 이겨내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역시 하나님의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에게서 제가 본 것은 ”권사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왜, 데려갔는지?“ 우리들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권사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시고,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코로나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축복은 은혜이고, 내가 내 안에 가져야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현금을 좋아하지만, 제 생각에는 현금보다 더 좋은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것 같아도 감기 한번 걸리면 꼼짝도 못합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계단을 오르듯 한 계단 한 계단씩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처음에는 연약하지만, 자꾸 성경을 읽다보면, 그 말씀이 내안에 들어와서,
병든 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낫는 것과 같이, 말씀이 결국은 나를 자유케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믿음이지만, 우리는 이성으로 믿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믿음을 갖기 위해.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지금은 재난의 때이므로, 살아계신 예수님의 임재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더욱 더 친근하게 예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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