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프로젝트[1] 족보에 드러난 약속 (마1:1~17) 말씀: 이재훈목사님
오늘부터 3개월 동안 주일설교를 [가스펠 프로젝트]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여, 가정에서 부모님이 교사가 되어 가정예배를 드림으로,
자녀가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지만 말씀도 배우게 되고, 자녀와의 관계에도 좋아질 수 있도록 기대하면서,
가정이 예배당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누구나 처음으로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신약의 처음에 나오는 마태복음에서 당황하게 됩니다.
그것은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나오니까,
지루하기도 하여 쉽게 읽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낳고]가 계속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계속하여 이어지는 [낳고]라는 말씀에 질려버리지만,
그러나 신앙의 연조가 깊어지고, 성경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면서, [마태복음 1장]의 [영적 뜻]을 깨닫게 되고,
나중에는 깊고, 오묘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구약의 말씀에는 [죽고, 죽고]의 말이 연속해서 나오는데,
여기서 ”죽고“는 [사망]을 의미하고, 신약의 ”낳고“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구약은 사망의 기록”이지만, 그러나 “신약은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죽고]가 아니라, [낳고]로 시작되고, 계속 낳는 얘기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약]은 곧 “생명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심판과 사망의 책“ 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구원과 생명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이어지는 [낳고, 낳고]의 기록에서 “생명의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읽기에 지루한 [마태복음 1장]이 아니라, 달고 오묘한 [마태복음 1장]이 될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뿌리]라는 드라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입양한 아이가 그 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기의 정체성의 중요함”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면, 먼저 [조상]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조상의 출발“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출발에서, 조상의 얘기로 시작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 그건 당연합니다.
”다윗의 아들“로 시작되는 [족보]는 긴 역사를 압축해서 생각해 보면,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의미이고,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족보]는 지루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유대인들은 자신의 [계보]를 알려고 노력을 했고,
그것을 찾으려고 모든 [기록물]들을 찾아내고, 또 한 편으로 기록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족보]가 알려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선택된 역사이고, 거기에 나오는 한 인물, 한 인물들이 모두 선택된 인물들인데,
그 분(=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록된 역사적인 기록물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 부분이 가장 지루한 본문이지만,
성경을 알고 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떤 분들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하고,
어떤 분들은 정중히 무릎을 꿇었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록입니다.
그 [약속의 핵심]은 ”[다윗의 자손]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중에서,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거스린 적이 없지만, 그러나 ”다윗의 후손”이라고 했고,
1대인지? 2대인지? 아니면 “100대 이후의 후손인지?“는 단언하지 않았기에,
해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직계]일수도 있고,
3~4대에 나올 수도 있고, 100대 이후에 나올 수도 있기에,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합니다.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말로는 [다윗]의 자손, 영어로는 [다비드]의 자손으로 표현하지만,
역시 [다윗의 자손]이 역사의 중심에 있고, 중요한 인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새의 뿌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수치스런 장면도 빠짐없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허물이 있는 [이방 여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명문 가문이 아니더라도, 흠이 많고 부정한 가정에서도, 그런 혈통을 통해서라도,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을 그대로, 사실대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에서 예수님이 탄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1절에 보면, ”내가 사사들을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때와는 같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또 너를 네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할 것이다.
나 여호와가 직접 너를 위해 왕조를 세울 것을 선포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떠돌아다니던 시절이므로, 너희는 다시는 옮겨 다니지 않게 할 것이다.
과거에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절에는 괴로움을 받아 왔으나,
“이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왕조 시대를 열어, 안정을 시켜줄 것이고,
나라를 견고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자손]으로 하여금, ”영원한 나라를 세우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역사에서 배우는 게 뭡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2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는 위대한 이가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다.“(눅1:32)
누가복음에도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포로가 되었는데, 그런 절망의 상황에서도 그 당시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라고 계속해서 말해 왔고, 2천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의 군정] 하에 있었는데, 과거의 바벨론 시절과 같이,
어둡고 처절한 시절인데도 예정한대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그분으로 하여금, 사람들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소망의 별]이 되실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아주 이상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라는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라고 기록한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반대로, 마태복음 1장 16절 말씀에는,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야곱은 요셉을 낳고, 요셉은 예수를 낳고“라고 기록하지 않고,
”마리아가 예수를 낳고”라고 기록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동정녀 마리아]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한 때부터 수 없이 많은 자녀들을 낳고, 낳고,
또 죽고, 또 죽고해서,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이미 예고된 [예수님]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수 없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완전히 절망하는 가운데 있을 때에,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그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그분은 [참 하나님]이고, [참다운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역사의 중심]이 되신 분이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족보]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절망 가운데에 있어도,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역사는 계속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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