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수3:1~13) 말씀: 이재훈 목사님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가스펠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매주 씨리즈로 설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가스펠 프로젝트]는 신약1- [위대한 복음]은 어린이를 위한 교재이지만, 성인 예배에도 함께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코로나 사태로 자녀들이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는데 따른 신앙교육으로,
부모가 먼저 교사가 되어, 가정이 예배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미래]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은 낫선 길이므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 처음 가는 길을 갈 때에,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지도]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런 지도를 만들기를 기대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개척자와 같이, 지도를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에 누가 서울을 여행 하고자 할 때, 100년 전의 지도를 가지고 온다면,
그 사람은 어느 곳에도 찾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에머슨]이라는 사람은 “우리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곳으로는 가지를 말아야 한다.
그 대신에 “길이 없는 곳으로 가라”고 조언을 합니다.
▶왜 그는 그런 말을 했을까요?
길이 없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자취를 남기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지도가 없어서 ”갈 수 없다”고 변명을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더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요단강 강가에 서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200만 명의 군사와 함께 요단강 강가에 도착했는데,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서 [출애굽]한지 40년이 지났으니, 그들은 얼마나 많이 고생을 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또 한 가지 [장애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장애물은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은 어떤 강입니까?
요단강은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에 걸쳐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강으로,
북쪽에는 갈릴리 호수가 있고, 남쪽에는 사해 바다가 있습니다.
사해 바다는 해수면보다 395m 낮은 지역으로 염도가 다른 지역보다 5배 이상 높아서 생물이 살수 없고,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한 물이 요단강을 거쳐서, 사해 바다로 연결되어 모아지고 있는 지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에 도착하였을 때는 [늦은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고,
요단강의 하류는 물의 깊이가 3~4m정도 되어서 강을 건너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요단강을 건넌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분명히 어려운 [장애물]입니다. 오랜 여정으로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강을 함께 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이 요단강을 만났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출애굽]을 경험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홍해의 기적도 모르고 있습니다.
▶[장애물]이 놓여 있을 경우에,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범람한 강을 바라보면서 3일을 머물렀는데,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거기서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뒤 돌아갈 것인가?
그들의 힘으로는 “건너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경우를 상상하면서,
오늘의 요단강에서 <영적교훈>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들은 [요단강]을 생각하면, 먼저 찬송가에 나오는 [죽음]을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말합니다.
▶이런 [장애물]을 만날 때, 그들에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지금까지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걸어온 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따라서 걸어 온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따라온 길이니까, 잘못된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뒤돌아 갈 것이 아니라, 이 [길]을 그대로 건너야 합니다.
건너는 방법은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앞장을 서서 건너면, 백성들은 그냥 따라가면, 건널 수 있습니다.
민수기 10장 33절의 말씀에도 언약궤가 먼저 가고, 백성들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갑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산을 떠나, 3일 길을 나아갔는데,
여호와의 언약궤가 쉴 곳을 찾아 3일 동안 그들 앞에서 진행했습니다.“(민10:33)
요단강을 통과하면서 그동안 지켜주던 [구름기둥]이 갑자기 없어지고, ”새로운 길“이 시작됩니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제사장이 법궤를 메고 나서는 것을 보거든, 여기를 떠나 그들의 뒤를 따르라“고 말해 줍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1) 첫째로, ”[언약궤]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4절 말씀에서, ”이제 여러분은 전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법궤 뒤에 바짝 따라가지 말고,
2000규빗 쯤 간격을 유지하고 따라가십시오.“(수3:4)
▶여기서 [언약궤]는 무엇입니까?
[언약궤]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나타냅니다.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은 <궤=상자>로 길이는 1m정도이고, 가로와 세로가 70센티 정도이고,
궤의 안팎은 정금으로 싸여 있고, 윗부분의 가장 자리에 돌아가면서 네 모퉁이는 금고리가 달려 있으며,
금테로 만들어 졌으며, [언약궤]는 천사의 모양을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왜, [언약궤]가 중요합니까?
모세를 통해 이미 언급하신 것과 같이,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언약궤]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①첫째, 십계명의 돌 판과,
②둘째,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
③셋째,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것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었는데,
이제는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게 됩니다.
▶이 [언약궤]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해요.
[언약 궤]는 지성소에 만들어 있던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사람들은 그 [언약궤]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왜 백성들은 [언약궤]를 떨어져서 가야 하나요?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모든 백성들이 “[언약궤]를 바라보라“는 의미이지만, 너무 가까이 불어서 가면 다른 사람이 가리어져서 볼 수 없으므로, 한 900m이내로 떨어져서 <간격을 유지하고 따라 오라는 말>입니다.
▶왜 [언약궤]를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려서 딴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언약궤를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언약궤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므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은 ”정결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3장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했어요. 너희는 스스로 정결하게 하라.
내일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다(수3:5)
▶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무슨 말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걱정하지 말라. 내가 안심하고 강을 건너게 해 주겠다"라는 말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 말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하나님은 <정결하게 하라>고 했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결하기>를 원했어요.
▶그럼, 구약에서 <정결하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결하라>는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육체적인 성결이 아니고,
<영적인 성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결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성결하고, 너희가 거룩해 질 때에 <그런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그 조건이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40년 전에도 이끌어 주셨지만,
신명기 31장 8절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친히 네 앞서 가시고,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며,
너를 떠나지도 너를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신31:8)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그 때, 함께하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이 길이 당황스런 길이지만,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는 확신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독려해 줍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여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로운 길을 열고, 미래의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는 ”언약궤를 따라 가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바라 볼 수 없는 것을 따라가라“는 말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언약궤를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본 회퍼] 목사님은 ”만일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힐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해, 듣게 될 것이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발견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애물을 너머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장애물 너머를 보고 계십니다.
7절에서,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세워 주십니다.
여호수아 3장 7절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모든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너를 높일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했듯이, 너와도 함께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알게 될 것이다.”(수3:7)
하나님은 [출애굽]에도 모세와 함께 하셨듯이,
가나인 정복에도 [여호수아]와 함께 하며, 기적을 기대하십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높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담당하도록 그를 이끄신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어릴 적에 미리 애굽으로 팔려가게 만드신 것도,
미리 거기에 가서, “미래를 대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보지 않은 길로 인도하는 것은
그 후에 놀라운 일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동과 거주가 반복되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명령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가보지 않은 길이 나오면,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작년에 받은 명령으로 오늘을 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요단강이라는 장애물을 만나면, 새로운 명령을 받고, 건너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지나고, ”그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새로운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개인의 위생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사화적인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스스로 청결하게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비상시국에는 내일의 기적보다도,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우리 앞에 있는 새로운 장애물을 뛰어 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홍해를 건널 때와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①[홍해]가 갈라질 때는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요단강]에서는 “스스로 정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②[홍해]는 바다가 갈라지고 난 다음에 군사들이 건너갔지만,
[요단강]에서는 발로 걸어 들어갔을 때에, 강이 갈라졌습니다.
③[홍해]는 모세가 손을 내 밀 때에 바다가 갈라졌지만,
[요단강]은 백성들이 믿음의 발걸음을 내 디뎌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갈라지는 [원리]는 동일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에는 두려움은 있지만,
믿음의 성도들은 [언약궤]를 따라, 새로운 명령을 기대하며 순종하고 나갈 때에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까요?
우리 인생에도 살아가다 보면, [요단강]과 같은 장애물을 많이 있어요.
▶여기에서 [요단강]은 무엇을 말합니까?
①첫째, 그것은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②둘째,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잘 극복하기만 하면, 그것은 <축복>이기도 해요.
우리 인생에는 이런 [요단강] 같은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장애물>을 잘 극복하면, 더 좋은 일들이 생겨서, 좋은 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머물고, <그대로 안주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갈 때,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을 주실 것이므로,
믿음으로 자신 있게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성결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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