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작은예수 40일 특새27 2020.01.10

다이나마이트2 2020. 1. 10. 21:27

모든 것을 섭리하는 분이 우연히 찾아 오신다. (룻2:1~4, 스7:7~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이용하여 사이를 갈라놓고, 헛된 이론과 이념으로 혼란시킵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꾸 의심을 하게 만드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나같이 사소해 보이는 나의 세세한 문제 까지도 살피시고,

일일이 간섭해 주십니다.

 

모든 것을 질서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완벽하게 보존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온전한 진리]이기에, 우리의 모든 삶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부분에서는 적용이 되고, 또 어떤 부분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하나의 [이념]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어느 한쪽의 단면만을 보고,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념]입니다.

 

[창조신앙][섭리신앙]은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창조]는 믿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다면, 그것은 [가짜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십자가]는 믿는데,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나는 [부활]은 믿지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믿지 않는 다면, 성경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성육신]은 믿는데,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 영역이든 [진리] 속에서는 서로 연결 되어야 하고, 모두 다 같아야 합니다.

어제 살펴 본 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고, 법칙대로 움직이시고 계십니다.

 

인간의 타락한 질서의 이면에는 반드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있고,

그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역사를 [인간]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는 분명히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반역하는 자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기 위해, 하나님은 움직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구원 없이 절대로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런 [섭리]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이라고 하거나,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 되면 [행운]이고, 일이 잘 안되면, [불운]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세상적인 방법으로 []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 []우연히발생했고, ”우연히 세상이 만들어 졌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의 이면에는 무수한 선택이 있었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세상이 우연으로이루어졌다면, [인간의 선택]은 무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역사가 발전하는 것인데,

그러나 좋은 선택을 망가뜨리는 세력이 [사탄]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적인 전쟁]의 실체를 우리는 알아야 하고,

승자가 되신 [하나님]안에서 선택할 때, 우리의 선택은 불완전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선택]을 하나의 [디딤돌]로 삼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무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다 알고, 행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무지 때문에, [우연]처럼 보이고, [우연]이라고 주장합니다.

 가운데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담겨있는 작은 감정의 문제도 하나님은 아시고, 역사하시고 [섭리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섭리에 대한 신앙]이 무너지면, 내가 받아드리기 어려워집니다.

 

나는 내가 처한 고난이 [불행]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행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지 못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고난]을 주십니다.

 

[십자수]를 하면, 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아래에서 보면, 질서가 없지만, 뒷면에서는

엉망진창의 [그림]”과 같지만, 어느 순간에 뒤집어서 보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도 []에서 [하늘]을 보기 때문에, “하늘의 그림을 모르는 것입니다.

요셉이 미움을 받아 팔려가는 것도 나중에 보면,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형들이 식량을 구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때서야 하나님이 도우시려고, ”그렇게 하셨다.”[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당장은 모르고, 뒤돌아보면, 그 때에 해석이 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우연]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연]인 경우에는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우연]처럼 다가오지만, 절대로 [우연]이 아니고, [필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범사에 감사해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뜻]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나오미][]에게 베푸셨던 은혜입니다.

삶에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룻기][나오미]라는 여인이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잘 살기 위해, 모압으로 이민을 가는데,

두 자부만 남습니다. 한 자부는 모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다른 이는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는 여정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룻기]하나님의 선택인간의 선택이 맞물려가는 역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원했어요.

 

나오미는 남편과 자녀들을 잃고 빈털터리가 됐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았어요.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은혜]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호의]입니다.

[은혜]는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나오미와 룻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노력만으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성, 재력, 건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고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고, 풀 수 있는 문제보다,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모 잃어 버렸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도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때가 어쩌면 그때인지도 모릅니다.

 

당시의 이방 여인인 모합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간다.“는 것은 보통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을 보는 [보아스][]을 주목하게 되면서,

[고엘]이라는 제도가 나오는데, 그 당시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무 일도 못하게 하는 [고엘]제도

(그녀와 가문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제도) 때문에,

사랑과 아픔을 선택하는 [보아스]의 선택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녀는 이삭을 줍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하는 []입니다.

오늘 내가 줍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주어 갑니다. 그러니까 쉬지 않고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연히도 그 밭이 “[보아스]의 밭이라는 겁니다.

거기에 간 것이 그 사람을 꼭 만나기 위해 간 것이 아닌데, ”우연히도 그를 만났어요.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간 곳이 보아스의 밭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우연]이 나오는데, 바로 그 때에 보아스가 밭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게 서로 [우연]일까요?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 예요.

노사연의 [만남]같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보아스]의 태도를 보면, 아주 관대하고, 친절합니다.

[]의 겸손한 모습과 성실한 자세를 보면서 [보아스]가 감동하여 []에게 아주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나님의 섭리]는 그때부터 정확하게 작동합니다.

 

[때와 장소]하나님이 [섭리]했기때문에, 그들은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계시지만, 스토리를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

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 있으면, [우연]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쓰임 받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지, [우연]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무지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놀랍게도 [하나님의 섭리]에 작동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연]을 탓하거나, 기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운명]을 걸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아니고, [성실]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선택을 할 때, 나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믿음으로 선택을 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전의 드라마를 나타내십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난 에스더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 당할 때, [에스더][모르드개]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에스더]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심정으로 선택을 하였고, 유대민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자기의 안락을 선택하지 않고, [생명]을 내 던지는 심정으로 다가 갔기에, ”반전의 기회가 찾아 온 것입니다.

 

에스더 61-3절 말씀을 읽으면, 그날 밤에 왕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나이가 들어 불면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 잠이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자신의 [통치기록]을 가져다가 읽었는데,

거기서 자기를 살려 준 모르드개의 기록을 보면서, 왕이 깨달은 것은 포상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모르드개를 축복하고, 상을 내려 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에스더서]반전 드라마입니다. 우리도 잠이 오지 않으면, [성경]을 꺼내서 읽으십시오.

여기 왕은 [역대기]를 읽었지만, 우리는 [역대상하권]을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하만]이라는 신하에게 왕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고 물으니까,

[하만]은 악한 사람으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이상한 대답을 내 놓습니다.

 

▶그럼 [하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총리대신을 지낸 사람입니다.

[하만][모르드개]가 유대인이므로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다.” 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심히 분노하여 모든 유대인들을 멸하려고 계획 했으나, 결국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높은 나무에 결국 자기 자신이 매달려 죽게 됩니다.


▶왜, [악인]은 멸망합니까?

[악인]은 지혜가 없어서 [속임수]를 씁니다. 그 속임수로 사람을 속이려고 합니다.

[악인]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진짜를 말하지 않습니다.

 

진짜 [지혜]는 순결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거기 기록에 왕을 살려줬는데 포상이 없었어요.

왕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고, [모르드개]는 섭섭한 마음을 묻어두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 [하만]에게 폭탄이 되어 떨어지게 되었어요.

 

[악인]은 항상 착각을 하므로, [하만][모르드개]가 말을 끌고 가면서 거리에서 외치게 합니다.

그런데 왕이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태우고, 너가 말을 끌라.”고 갑자기 명령을 내립니다.

이 얼마나 멋진 반전의 드라마입니까?

 

그러고 나서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든 나무에 [하만]이 매달려 대신 죽게 됩니다.

이것은 [모르드개]의 우직한 선택과 에스더의 충성스런 선택으로 [반전]된 것입니다.

 

그래서 [][]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으로 갚으면 망하지만, [][]으로 갚으면,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응대해 주십니다.

 

▶우리도 내가 남에게 복수할 게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복수][앙갚음]은 하나님에게 맡기고, 나는 그 사람에게 []하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하도록 지나가야 합니다.

 

로마서 828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8:28)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온 맘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의 섭리]에 사용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을 기대하고 있지만,

선한 지혜를 선택함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을 이룩할 수 있도록,

내가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으로 바꾸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