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아시는 분 모든 것을 듣고자 하신다. (마6:6~7, 살전5:16~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전 같으면 눈이 오는 계절인데, 날씨가 따뜻해서 비가 옵니다.
새벽 빗길을 뚫고 여기에 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때에 맞추어 적당히 내려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고,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지난 며칠간 살펴본 주제는 우리는 [진리의 단편]을 [진리의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니까, 진리의 단편만 붙잡지 말고,
“그 일부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런 생각이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편향된 생각이 [이념]을 만들어 내고, 상대적으로 해석해서 오해를 불러옵니다.
[진리]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신앙]이 “이념화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도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극히 일부만 내가 알 뿐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서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특히 오늘 본문은 [기도]에 대해 중요한 말씀입니다.
저에게도 어린 시절에 “기도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설교에서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했으니,
“내가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에서, 저는 그때부터 기도하지 않았어요.
시편 139편 1-4절 말씀에, ”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니 나를 아실 것입니다.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에서도 내 생각을 아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길을 다니는 것과 내가 눕는 것을 아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오 여호와여, 내가 말을 혀에 답하기도 전에, 주께서는 그것마저 다 아십니다.“(시139:1~4)
내가 말을 할 때, ”말을 혀에 담기도 전에, 하나님은 아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나의 의중을 빤히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이사야 65장 24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하고, 그들이 아직 말하고 있을 때 내가 들어주겠다.”(사 65:24)
이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이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할 것이고,
그들이 말을 끝맺기 전에 내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고 있을 때 “이미 그것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와 같이 저는 주일학교에 다닐 때,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저는 “하나님이 다 아시니까”라고 단정하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점점 자라면서 저의 기도는 더욱 명료해 졌어요.
“하나님, 다 아시죠.”라고 짧게 기도하고, 기도를 끝냈어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니까,
“내가 일일이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철야 기도하며, “주여”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는 어른들에게 “왜. 저렇게 기도하나?”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그러던 제가 몰랐던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부르짖으라.“는 명령은 몰랐으니까,
저의 기도생활은 그렇게 미숙하게 착각을 했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어릴 적에 그때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듣고자 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 “하나님, 다 아시죠?“라고 했더니, 하나님은 ”너는 아니?“라고 반문하셨고,
”너는 무엇을 구하니?“라는 음성을 들으면서, ”나의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왜, ’모든 것을 구하라‘고 하셨는지?”를 [말씀]을 듣다가 깨닫게 되었어요.
(1) 첫째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죄]는 기도를 막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들어오면, 기도를 하지 않게 만듭니다.
이사야 59장 1-2절 말씀을 읽어보면,
”보라, 여호와의 손이 너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가 너무 어두워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너희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사 59:1~2)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만들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기도]가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굴을 돌리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아담을 불렀을 때, ”제가 벗었으므로 숨었다.“고 대답한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장소]를 물은 게 아니라, ”왜, 네가 숨었느냐?“라고 물었는데, 아담은 딴 소리를 합니다.
정답은 ”제가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두려워했어요.”라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벗어서”라고 대답한 것은 [불순종] 때문이고, 아담에게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 겁입니다.
▶왜, 아담이 두려워했나요?
그건 “벗어서“가 아니고, 짧은 순간에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영혼의 정직성]이 회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영혼의 정직성]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40일]이라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30일 정도 지나면, 사람은 지칩니다.
사람은 지쳐야, 그 때부터 영혼이 정직해 지고, 그러니까 모여서 기도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교직자 수련회]가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2박 3일 동안 내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 게 전부였어요. 대부분 모임에 가면, 운동도 하고, 교제도 나누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오직, [말씀과 기도, 찬송]뿐입니다.
참가자들의 불만이 속출했는데, 다른 말없이 행사는 그대로 진행되는 거예요.
거기에 참가한 목회자들이 그런 프로그렘을 다들 싫어했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말씀, 기도, 찬송]을 계속해서 되풀이 하였고, 참가들의 마음이 불편해 지기 시작했어요.
각자 속으로는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표현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가니까,
그때는 다들 자포자기하고 진행에 협조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계속되는 것에 불만은 있지만,
3일 되는 마지막 날에 ”[영혼의 정직성]을 회복하려면, 역시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지나가야 [성령의 역사]가 드러나는 것이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분명해야 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우리는 그때부터 정직하게 되고,
진실한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우리는 기도를 드리지만,
하나님에게 정직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형식적인 기도]를 하니까, 응답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형식적인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CS 루이스]가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모든 기도 보다 앞서야 하는 기도는 “기도하는 이”가 진정 [나 자신]이게 하시고,
내가 기도를 드리고 있는 “대상”이 진정 [하나님]이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어요.
이 기도는 당연히 평범한 기도 같지만, 그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영혼의 정직성]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① 첫째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② 둘째로, [훈련]이 있어야 하고,
③ 셋째로,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지만, 내가 정직하지 못하니까, 그게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이스라엘에서 드렸던 [이방인의 기도]도 내가 정성으로 신을 감동시키려 하니까, [가식]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사람이 정직하게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율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믿는 신에게 알려 주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정직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하게 계셔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6:6)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하게 혼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영혼의 정직성]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문을 닫고 기도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방에 들어가 잘 수도 있고, 혼자 있으면 온갖 잡념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혼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스펄 전 목사님은 ”혼자 기도하지 않는 것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함께] 기도하기도 하지만, [혼자] 기도하는 훈련이 필요 합니다.
그렇다고 “혼자 있다.”고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혼자서 정직하고 솔직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외로워]합니다. ▶왜, 사람들이 [외로워] 합니까?
사람들이 외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의 실체는 [두려움]입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혼자라는 외로움“이 [두려움]을 만듭니다.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니까, 사람들은 혼자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입술로, 나의 마음을 달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몰라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를 모르니까,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와 대화를 나누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과 대화가 잘 안 됩니까? 그것은 [진실]로 대하지 않고, [가짜]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정직성]이 없으니까,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아야 하는데 [대화]가 가능한데, [주파수]가 맞지 않으니까 [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통]해야 하는데, [통]하지 않으니까,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모든 것을 듣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원하면 다 주려고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십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는 부모와 마음을 같이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대 차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녀는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만 얻으면, 얼른 자리를 뜹니다.
이걸 보면, 자녀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지만, 부모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어요.
자녀에게 [선물]이 중요하고, [부모]는 [=부모 자신]을 더 좋아하는 자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선물의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는 선물“의 [내용]보다, ”주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주는 이]를 더 고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원하는 것만 받으려고 하고, 원하는 걸 받으면, [훽] 하고 돌아섭니다.
그러나 그걸 주는 [부모]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자취를 했는데, 부모님은 올 때마다 용돈을 조금씩 주었어요.
일주에 한 번씩, 나누어서 주었는데, 저는 속으로 ”한 달치 용돈을 한꺼번에 주면 좋을 테데...“라고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한꺼번에 주면, 네가 오지 않으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것은 부모님은 용돈 주는 것보다, 자식과 만나는 [만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필요하지만, 사실은 교인이라면, 기도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더 중요하니까, 기도는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3) 세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 삶에도 내가 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다 채워 주셨다.”고 하면, 별로 감사하지 않지만,
내가 간절히 구했을 때 하나님이 주시면, 더욱 간절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천원]을 구한 사람에게 [천원]을 주면 감사해 하지만,
[천원]을 구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이상을 주어도“ 그는 감사해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가 잘나서 생긴 돈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혼은 ”범사에 감사하다“고 생각을 해요.
모든 것을 구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나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나를 약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성취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구하였는데, 하나님은 내가 순종하도록, 나를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나는 빛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비록 멀리 볼 수는 없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 하심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행복할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지혜를 주셨고, 나는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가난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영혼의 정직성]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에게 우리는 모든 것을 솔직히 아뢰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나에게 [힘]이 되시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기도하다 보면, 구하지 않은 것도 주시는 하나님이오니, 나에게 잃어버렸던 기도가 살아나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모든 것이 바뀌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길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가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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