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7가지 치명적인 죄(1) 교만(눅18:9-14) 2019.6.23

다이나마이트2 2019. 6. 23. 23:41

7가지 치명적인 죄(1) 교만 (눅18:9-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 안에 7가지 치명적인 죄가 있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교만]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교만]이라는 우리 안에 있는 []의 실상을 파헤치고, 그것이 []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교만]은 영적 성장과 관계없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아주 성숙한 사람도 교만이 자주 나타납니다.

 

[교만]은 죄 가운데서도 가장 깊이 숨겨져 있고, 뿌리가 내려져 있어서,

아주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죄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나타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어떤 연령대에도 모두 갖고 있는 죄입니다.

 

▶교만이 기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본인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자기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그 [교만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내가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은 과도한 자존심(?)”이랄까, 본인은 스스로 모르고 지냅니다.

 

그렇게 교만하여,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뿌리가 [교만]입니다.

 

C S 루이스는 모든 악 중에서 가장 나쁜 악이, ’우리의 신앙의 중심부까지 침투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덜 나쁜 다른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을 이렇게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동물적인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곧장 나옵니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악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다른 악들에 비해,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입니다. - CS 루이스 -

 

아담이 범죄를 저지른 이후에, 하나님이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른 것은

어디 있는지.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고, “영적인 실종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 안에 있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만족을 찾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자기를 알 수 없습니다.

 

[기도]우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영혼의 창문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의 안에 있을 때,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두 사람이 나오는데, [교만]에 대해 알게 해 줍니다.

누가복음 18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18:10)

 

두 사람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거룩한 [바리새파 사람]이고,

또 다른 사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세리]입니다.

 

두 사람 모두 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바리새인) 대표적인 신앙인라고 말하는 종교인이고,

또 다른 사람(=세리)은 그 당시에 대표적인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나, 이들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찾았어요.

두 사람이 모두 성전에 올라갔는데, 그 당시에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만나는 장소로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모두 기도했고, “하나님이 응답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도를 자세히 드려다 보면, “자신에 대한 자기인식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14절 말씀에서, 예수님이 두 사람을 평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 저 바리새파 사람 보다, 오히려 의롭다는 것을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18:14)

 

예수님의 판단은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는 받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판단을 하셨을까요?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아주 [교만]했고, 세리의 기도는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11-12절 말씀에서,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 보세요.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들, 곧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간음한 사람과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저는 1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냅니다.”(18:11-12)

 

바리새인의 기도는 그의 기도에 []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두 번씩이나 나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창문이 없이, 자기 자신이 창문에 갇혀서 기도를 해요

 

기도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인데, 이 사람은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진정한 기도[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1) 먼저 바리새인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왜, 하나님에게 문제가 되었나요?
첫째로, 그의 기도는 맞는 말 같지만, 그 기도 속에 자기의 만족이 숨어 있어요.

그의 기도 속에 자기 자랑이 들어 있고, 자기를 내 세우는 기도는 곤란하지요.

 

지나친 자기 신뢰도 교만의 증상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신뢰도 []입니다.

 

둘째로, 그의 기도는 자기 죄에 대한 회개가 없어요.

자신을 자랑하기에 앞서, 자기의 죄를 회개해야 해요.

 

셋째로, 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고,

자기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기 의존도가 너무 지나쳐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넷째로, 그의 기도에는 자기 자랑이 많으니, 교만한 증상이지요.

금식과 십일조를 내 세우는 것은 기본인데, 종교적인 헌신을 내세우면 안 되지요.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교만]입니다.

 

다섯째로, 그의 교만은 자기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비교하고 있어요.

자기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분명히 바리새인은 세리 보다 훌륭한 사람이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이 비교할 때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야 하는데,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나 보다 아래만 바라봅니다.

▶왜, 그럴까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를 바라보면서, 겸손해 져야, 당연하기 때문이지요.

 

바리새인 같이,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만함]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2) 두 번째로, 세리에 대한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세리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3절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는,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8:13)

 

[세리]멀찍이 서서, 하늘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짧게 기도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더 가까이 가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마음으로부터 죄를 회개하고, 가슴을 치고, 회개 했어요.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세리]는 자신에게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가슴을 치며, 짧은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누가 올바른 기도를 했을까요?

예수님이 세리의 자세를 더 높이 평가한 거예요.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기도하지 밀고, 세리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은 세리처럼 기도하면서, 또한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는 모습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사람의 마음에는 마귀와 같은 요소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의 마음에는 마귀적인 재주가 있어서, 죄의식을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 할 이유로 내 세웁니다. - 스펄전 목사-

 

우리들은 그저 회개할 뿐이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도덕적으로 청렴하게 살면서도 가끔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교만]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벗을 수 없는 [교만]을 우리 안에서 끊어 버리고,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길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는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얼굴에 매일 자라는 턱 수염처럼, 교만은 매 순간, 순간에 자라고 있으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거룩해 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리의 삶을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리]기도하는 자세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처럼 행동하고, 세리의 기도하는 자세를 품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면,

하나님은 더욱 더 기뻐했을 거예요.

 

여기서 무서운 것은 우리 안에 [세리]와 같이, 죄인 됨을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또 다른 바리새인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리와 같이,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그런 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리의 얼굴을 가진 바리새인이 되면, 더욱 더 곤란합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 받는 죄인임을 느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