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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예배위원 헌신예배 (2018.1.27)

다이나마이트2 2018. 1. 27. 22:01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오후3시 30분 양재 화평홀에서 양재 예배위원 헌신예배가 있었다.

이상진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목요찬양 밴드와 주일 2부싱어팀의 찬양으로 헌신예배를 시작했다.

영광의 주님 찬양하세, 찬양하세, 주님같은 반석은 없도다, 주님 임재 앞에 잠잠해,

내 주 같은 분 없네 이런 찬양을 한 20여분 같이 불렀다.

 

예배위원들 헌신 예배여서 그런지 찬양이 더 뜨거웠다.

자유롭게 예배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영으로 예배하며 진심으로 경배하는 모습들이 은혜롭다.

열방을 통하여 예배 받기 원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대표기도 : 오성훈 장로님

 

 

특순 : 양재 교역자 찬양 "예수 닮기를" +  "주님 내 안에"

1.내삶에 소망 내가바라는 한분 예수닮기를 내가원하네 한없는 사랑 풍성한 긍휼 예수닮기를 내가원하네

후)예수닮기를 예수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원하네 내평생소원 예수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원하네

2.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성품 예수닮기를 내가원하네 자비하시고 위로자되신주 예수닮기를 내가원하네

후)예수닮기를 예수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원하네 내평생소원 예수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원하네

 

환영 및 격려사 : 이재훈 담임목사

양재 예배위원 헌신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예배의 영성은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타납니다.

섬기는 자들이 예배자로 드려지는 영성이 없다면 우리들 만의 모임일 것입니다.

예배 위원으로 섬기시면서 예배의 풍성함에 참여하지 못하신다면

방주를 열심히 지어 놓고도 방주에 못 들어가시는 것과 같습니다.

공동체별로 함께 예배를 섬기시되 예배자로 먼저 드려져야 합니다.

제가 양재의 수석이였어서가 아니라 서빙고의 부족한 부분을 양재에서

업 그레이드 시켜 주시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딱 어느 부분이이라고 지목하여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교회에 들어오시는 주차에서부터 예배안내 정말 잘 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재의 예배 섬김이 모델이 되어서 각 캠퍼스로 확산이 되고

또 한국교회에도 나누어 지시는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토요일 오후 목사님 일정도 바쁘실 텐데 양재에 오셔서 환영 및 격려사를 해 주신 담임 목사님 감사합니다. 

 

말씀 : 이상준 목사

에베소서 2:15~16 "새로운 창조"

지난 13년 동안 매년 40일 새벽기도를 해 왔기 때문에 언제 새해가 되는지 잘 모르고 지나갑니다.

금년에 교회 표어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입니다.

온누리교회의 표어들 가운데서 가장 대단한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이런 신비적인 연합이 가능 할까요? 

죄인인 내 안에 거룩하신 그리스도가 머물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고 계획입니다.

창조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구속적 관점에서도 십자가에 죄사함으로 품어주시고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계십니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함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거룩한 흔적으로 내주 하십니다. 내 인격이 망가지거나 분열하여 망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강제적으로 종속되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와 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년의 표어가 가장 어려운 표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라는 표어는 사역의 목표가 아니라 존재적인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3번의 창조가 나옵니다.

첫째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두번째 창조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말씀하십니다.

NIV 성경에서는 New Creation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얻은 새 생명은 첫 창조보다 두번째 창조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번째 창조는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신천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14장에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잃어버린 첫번째 창조를 회복하고 영원한 3번째 창조 그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배의 감격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런가?

내가 영적 감동이 떨어져서 그런가?  예배의 감동이 떨어져서 그런가?

첫번째 물질적 창조, 두번째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재창조,

세번째 영원한 천국을 맛보는 창조가 우리들의 삶 가운데 회복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영원한 창조 역사를 체험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재창조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시간과 영혼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평선을 바라보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 있듯이 예배의 자리는 놀라운 자리입니다.

마치 우리가 5분 10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1주일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1시간 예배하고 그 예배로 1주일을 잘 견디는 것입니다.

예배는 바로 하나님이 영혼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그런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 " ...그리스도가 그 분 안에서 이 둘로 한 새사람을 창조해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15)

16절 "십자가를 통해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셔서 자기 안에서 원수된 것을

없애 버리시기 위한 것입니다".(16)

창조원리에 대한 불순종의 죄악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인간들과도 원수되는 것입니다.

자연들과도 원수되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는 원수됨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담을 허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아니면 이런 신비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임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임하고 성령의 임재하심이 넘쳐야 합니다.

오늘 새벽 생명의 말씀에서도 주의 만찬에 대한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각자의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먹어야 하는데 자기가 먼저 먹어 버린다는거 아닙니까?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있는 형태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예배는 형식은 남아 있지만 내용이 사라져 버린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강하게 말씀합니다.

차라리 집에 가서 먹어라. 하나님의 교회를 하챦게 여기는 것이냐?

가난한 형제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냐?라고 3가지를 책망 합니다.

서로 배려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하면서도 개교회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교회에서 더 심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으로 가져가는냐고 바울이 책망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교회답게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명확한 인식과 하나님 임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만 있는 집과 할아버지 할머님와 같이 있는 집의 분이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을 때 경거망동을 하게 됩니다.

공동체에서 관계의 갈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을 때 갈등이 해결됩니다.

인간적인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해결이 필요합니다.

구원의 감격과 성령의 임재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이것이 예배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함께 쓰며,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누어주며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우리 순예배는 어떻습니까? 점점 음식 나누는 것을 부담 스러워 합니다.

자기 집을 OPEN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왜 이렇까요?

은혜가 넘치면 뭐 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은혜가 넘치면 자연스럽게 양육에 은혜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양육에 은혜가 넘치면 사역에도 은혜가 넘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가장 메너리즘에 빠지는 것도 예배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원수도 하나되는 능력이 있는 그런 공동체 입니다.

 

개인적인 사이즈가 점점 커지면 집단이기주의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도 공동체별로 사역팀별로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내가 먼저 섬겨야 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리더십이 예배로부터 흘러 넘쳐야 합니다.

사역이 사역이 아니라 예배가 되는 헌신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장로님들이 먼저 공동체 리더십이 먼저 섬기고 사랑하고 먼저 끌어 안아야 합니다.

예배에 은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예배는 재창조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행동과 가치와 신념과 세계관이 변화를 받아야 하는 곳이 예배입니다.

오래전 청년부를 섬길 때의 일입니다.

12개 정도의 사역팀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때입니다.

그 중에 어떤 팀에서는 새가족을 새벽 예배에 데리고 나오는 팀이 있었습니다.

새신자임에도 교회에 나오는 것은 새벽 예배부터 나와야 되는 것으로 인식을 시켰습니다.

6개월만에 순장이 되고 유별나게 부흥하는 모습을 경험했습니다.

순원들을 대할 때에 새가족을 대할 때에 리더십이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사역에 지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디서부터 회복해야 할까요? 예배의 자리에서부터 살려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살려내야하는 영적인 부분 회복되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예배입니다.

혹시 사역을 하시다가 힘드시는 일이 있으시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시면

첫째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해 주십시오.

둘째 여러분의 리더십과 소통을 해 주십시오.

제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초신자이거나 새신자입니다.

리더십과는 많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안을 만드는 것은 소수의 사람입니다.

자신이 대안이 되는 사람은 부르심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여기 계신 많은 좋은 분들과 예배하는 것이 축복이고 안심이지만

우리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고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멘.

에배는 많은 사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매 주일 드려지는 예배가 회복되고 충만하여 흘러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예배가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후에도 예배 섬김에 대한 구체적인 오리엔테이션과 성찬식과 헌금에 대한 안내가 있었을 텐데

오후 5시부터 PSP 시험이 있어서 헌신예배 마지막까지 참석을 못했다.

헌신예배 참석하느라 PSP 공부도 못하고 시험보러 갔다. 점수는 주님께 맡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