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QT

가서 압살롬을 데려 오라 (삼하14:12~24)

다이나마이트2 2014. 5. 27. 23:02

2014년 5월 27일 화요일

사무엘하 14:12~24 회개든 용서든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요약:

드고아 여인이 어찌하여 내어 쫓긴자를 집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십니까? 묻는다.

다윗 왕은 이 모든 일에 요압이 함께 하였느냐?라고 여인에게 묻는다.

여인은 사실대로 요압이 모든 말을 알려 주었다고 고백한다.

다윗은 요압을 불러 가서 압살롬을 데려 오라고 명한다.

요압이 그술에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다윗 왕은 압살롬을 자기 집에 머물게하고 그 얼굴을 보지 않았다.

압살롬은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말씀묵상:

계속해서 요압의 인간적인 계획의 일환으로 다윗 왕을 찾아가 애통한 연기를 하는

드로아 여인과 다윗왕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다말을 강간했던 암논을 2년 후에 압살롬이 보복 살해하고

외할아버지 집으로 도망가서 3년이나 지내고 있는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한 작전이다.

 

요압이 드고아의 슬기로운 여인 하나를 불러 할 말을 다 일려 주었다.

나는 불쌍한 과부인데 두 아들이 싸워서 한 아들은 죽었고

남은 아들은 온 집안이 죽인 형제를 대신해서 보복으로 죽이겠다고 하고 있어서

왕에게 원수 갚는자로 더 죽이지 못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호소한다.

이에 왕은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맹세를 했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여인이 왕에게 한 말씀만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겸손히 구한다.(12)

다윗 왕이 허락한다.

왕은 어찌하여 내어 쫓긴자를 집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십니까? 묻는다.(13)

왜 암논을 보복 살인하고 도망간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는냐는 말씀이다.

 

형식은 지난번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한 다윗의 죄를 지적하던

나단 선지자와의 방법과 매우 비슷하다.

직접적으로 왜 이렇게 하지 않는냐고 지적하기 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서 깨닫고 용서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했다.

 

그러나 이 인간적인 요압의 계획은 압살롬이 저지른 죄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또 다윗의 바른 판단을 막을 뿐이다.

하나님은 감정에 이끌리어 눈물을 보인다고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자비와 용서는 죄를 회개하고 돌아 올 때 베풀어 지는 은혜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자비와 용서는 임시 방편일 뿐이다.

아무튼 드고아 여인의 간청을 들은 자윗의 마음이 흔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의 눈물은 남자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가 보다.

 

다윗이 여인에게 반대로 물어 본다.

여인의 배후에 요압이 있음도 눈치챘다.

다윗 왕은 이 모든 일에 요압이 함께 하였느냐?라고 여인에게 묻는다.(19)

여인은 사실대로 요압이 모든 말을 알려 주었다고 고백한다.(19)

결국 다윗은 요압을 부른다.(21)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오라라고 명령한다.(21)

 

요압이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다.(23)

그러나 다윗 왕은 압살롬을 자기 집에 머물게하고 그 얼굴을 보지 않았다.(24)

그래서 압살롬은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24)

 

이런 면을 보면 참 다윗도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 인 것 같다.

다윗은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강간했을 때 아버지로서 무언가 행동이 있어야 했지만

그 때에도 아무런 행동이 없었다. 그저 혼자 화만 내었었다.

또 이 일 때문에 동생 압살롬이 형 암논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지만

다윗은 몇 년 동안 아무런 조취도 없었다.

지금 요압의 요청에 의해서  지난 모든 것을 잊고 압살롬을 용서하고 데려 오기로 했으면

조건없이 용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하든지 했어야 하는데

예루살렘에 데리고만 오고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아라 하는 마음은 도데체 어떤 마음일까?

 

용서를 할려면 확실하게 용서하고 관계를 정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미적지근한 상태로 일 처리를 해 버렸다.

다윗의 이런 어정쩡한 결정이 나중에 압살롬의 반역을 일으키는 씨앗이 된다.

마음속에 학습된 거절감이 분노로 폭발 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다.

요압이 압살롬을 데려오기 위한 계획을 만들기 이전에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은 사랑의 대상이지 노엽게하고 마음에 분노를 쌓게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녀에게 거절감이 학습 되지 않도록 해야 겠다. 아멘.

용서 할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용서하자.

 

하나님 아버지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를 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봅니다.

아들을 온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한 다윗의 성격을 봅니다.

주님 누가 무어라고 정죄하고 욕해도

내 자녀를 사랑 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 주시고

용서와 사랑으로 바른 가치관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용서해 주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