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QT

왜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삼하1:1~16)

다이나마이트2 2014. 5. 1. 22:49

2014년 5월 1일 목요일

사무엘하 1:1~16 남의 불행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말씀요약: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을 치고 시글락에 돌아와 있다.

3일 후에 아말렉 청년이 와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었다고 알린다.

다윗이 어떻게 사울과 요난단이 죽은 줄을 아느냐고 물어 본다.

아말렉 청년은 우연히 길보아 산에 갔다가 부상 당한 사울이 요청해서

자기가 직접 사울왕을 죽이고 왕관과 팔찌를 증거물로 가져 왔다고 보고한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죽음을 인하여 옷을 찢으며 슬퍼하며 울며 금식한다.

아말렉 청년에게는 네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안았는냐?

책망하고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인 댓가로 죽인다.

 

말씀묵상 

새로운 달 새로운 말씀으로 시작한다.

사울이 죽은 이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을 물리치고 시글락에서 머물고 있다.(1)

제3일에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다윗에게 와서 절한다.(2)

다윗이 네가 어디서 오는 길이냐?(3) 묻는다.

나는 전쟁 중에 도망하였고 (4)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4) 보고한다.

 

다윗은 다시 물어 본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사실을 어떻게 아는냐?(5)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크게 부상을 당하여(6)

사울이 나를 보고 불러서(7)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명하시기에(9)

내가 이미 가망이 없어 보여서 그를 죽였습니다.(10)

그리고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왔습니다(10)라고 보고한다.

 

사울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대패를 했었다.

사울은 이방인의 손에 수치스럽게 죽는 것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자기 칼에 엎드려져서

자결하고 말았었다.(삼상31:3~5)

그런데 오늘 다윗을 자기 발로 찾아 온 아말렉 청년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들어낸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울이 전투한 길보아 산에서 다윗이 지금 있는 시글락까지 약 120~130Km나 되는 거리다.

평지가 아니라 험한 산길도 있다. 교통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관과 팔찌를 들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다윗은 적어도 10년 이상 사울에게 피해 도망을 다닌 사실은 외국인도 다 아는 일이다.

다윗을 찾아온 청년도 이 사실을 알고 원수같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은

다윗에게 좋은 소식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전리품까지 챙겨서 찾아 온 것 같다.

기대하기로는 특히 자기가 직접 사울을 죽였다고 자랑하면

다윗에게 큰 상급을 기대하고 인생 역전의 기회다 라고 생각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남의 불행을 자기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던 인간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청년은 하나는 알고 둘을 몰랐다.

비록 다윗은 사울왕을 피하여 오랫 세월동안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얻어 먹기도 하고

원수들의 땅 블레셋  가드로 갔다가 미친채도 하면서 도망다니긴 했어도

엔게디 동굴에서 용변보던 사울왕의 옷자락만 자르기도 하고(삼상24장)

십 광야에서 잠자고 있던 사울에게서 창과 물병만을 취했던(삼상26장) 경험이 있다.

즉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사울 왕을 죽일 수도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청년이 잘못 생각한 것은 모든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해도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는 다른 것을 인정하자.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삼가하자. 

 

사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다윗의 반응은 무엇인가?

얼씨구나 잘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를 죽이려던 원수가 죽었으니 잘~되었다가 아니다.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는다.(11)

사울과 요나단과 또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인하여 슬퍼하며 울며 금식한다.(12)

친구인 요나단의 죽음은 슬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윗은 요난단의 죽음만을 슬퍼한 것이 아니다.

사울 왕의 죽음에도 진심으로 애도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이름모를 민초들의 죽음에도 진심으로 슬퍼 했을 것이다.

이런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의 리더십의 한 모습을 보는 장면 인 것 같다.

 

사울의 죽음을 보고한 아말렉 청년은 어떻게 되었는가?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는냐?(14)

간단히 요약하면 왜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안느냐?(14)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이 점점 악해져 가고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되로 못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한 보름 이상 온 나라가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서 

침통하고 우울하고 분노하고 무기력한 이유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돈 벌이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다 돈이 먼저 우선 순위에 있었기 때문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실로 엄청나고 한심하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경고의 참상이 모두를 우울하고 분노케한다.

 

가서 저를 죽이라(15) 명한다.

내가 내 입으로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심 받은 자를 죽었다라고 스스로의 죄를 시인했다.(16)

고 다윗이 말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 권위에 대해서 존중하자.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잘 사용하자. 아멘.

리더십은 권위의 청기기 이다. 아멘.

 

적용: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자.

내 생각이 항상 옳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남의 불행을 이용하지 말자.

리더십의 권위를 잘 사용하고 잘 존중하자.

 

하나님 아버지

원수의 죽음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슬퍼하며 울며 금식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땅에 애통해하며 분노하는 많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있습니다.

슬픔 가운데 위로하시는 성령님 그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안산 지역에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하옵소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의 고통을 이용하는 악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없도록 인도하시고

권위를 무시하지도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권위를 잘 사용하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모든 권위의 최종 판단은 언제나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판단도 심판도 주님께 맡깁니다. 모든 권위를 다스려 주옵소서.

권위의 절대 주권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