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QT

사울을 또다시 살려준 다윗 (삼상26:1~12)

다이나마이트2 2014. 4. 1. 23:33

2014년 4월 1일 화요일

사무엘상 26:1~12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말씀요약:

십 사람이 또다시 사울에게 와서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어 있다고 밀고를 한다.

사울이 3,000명의 정예요원과 함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는다.

다윗은 사울이 온 것을 알고도 오히려 사울의 진영으로 잠입해 간다.

다윗은 한 밤중에 아비새와 함께 사울이 잠 자는 곳까지 칩입을 했다.

아비새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생각하고 단창에 찔러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이고, 여호와께서 친히 그를 치실 것이고

또 여호와께서 기름부은 받은 자를 치는 것은 금한 일이기 때문에 죽이지 말라 한다.

그리고는 사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돌아온다.  

 

말씀묵상:

십 사람들은 고발의 명수들인가 보다.

오래전에 요나단과 마지막으로 작별하고 다윗이 십 광야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었을 때

그 때에도 십 사람들이 다윗에게 밀고를 했었다.(삼상23:19)

십 사람은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에게 다윗을 자꾸 고발하고 있다. 참 고약한 사람들이다.

하기야 예수님도 4복음서 모두에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받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거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니....

 

사울의 추적본능이 다시 살아난다.

지난번 엔게디 동굴에서 용변을 보다가 봉변을 당했으면 또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사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간인가 보다.

오직 한가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왕위를 지키는 일에만 온통 관심이 있다.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을 부을 때만해도 참 겸손하고 잘 생긴 인간이였는데....

 

사울이 일어나 다윗을 찾으려고 정예요원 3,000명을 데리고 십 황무지로 내려 온다.(2)

일반적으로 이렇게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수색에 나서면 도망가는 것이 상식일 것 같은데

벌써 최소한 7~8년은 광야로 도망을 다녀 본 도망 전문가 다윗은 이번에는 도망을 안간다.

 

다윗도 정면대결을 선택한다.

다윗은 사울이 도착한 것을 알고 정찰병들을 보내어 동향을 살핀다.(4)

한 밤중에 다윗은 사울의 진지에 몰래 접근해서 사울왕과 군사령관 아브넬이

진지 안에서 자고 있고 부하들은 그 주변에서 졸고 있는(5)것을 확인했다.

 

다윗이 누가 나와 함께 저곳에 가겠느냐 물을 때 아비새가 함께 가겠다고 자원한다.(6)

다윗과 아비새가 사울의 진지까지 갔는데 사울은 가운데 누워있고

창은 땅에 꽂힌채 그의 머리맡에 있고 아브넬과 부하들도 주변에 자고 있다.(7)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사울 왕은 천하태평이고 특공대라고는 하지만 오합지졸들이 였는가 보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한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8)

제가 가서 단번에 해 치우겠습니다.(8)라고 죽이기를 요청한다.

상황이 조금 유리 할 때 함부로 하나님이 내 편이다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한다.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 아니시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한다.

아비새처럼 착각하지 말자. 아멘. 

 

다윗은 아비새에게 죽이지 말라고 명령한다.(9)

지난번 엔게디 동굴에서 옷자락만 베었던 이유와 동일한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기름부으신 사람에게 손을 대면 어찌 죄가 없겠는가?(9)

둘째는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이다.(10)

세째는 여호와께서 기름부으신 사람을 치는 것을 금하셨다.(11)

라고 말하고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고 제안한다.(11)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해 동안 계속해서 도망만 다니고 있는 입장이다.

함께 먹여 살려야할 식구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600명이나 된다.

또 새롭게 장가도 갔다. 예쁘고 현명한 아내도 있다. 안정된 생활이 필요하다.

지긋지긋한 도망자 생활 끝내고 싶지 않았을까?

지난번에 엔게디에서 한번 살려 주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때 분명하게 사울은 왕으로 체통도없이 울면서 내가 왕이 되면 내 가족을 죽이지 말고

또 후손들의 혈통도 끊어 버리지 말라고 약속한 것이 아니였던가(삼상24:16~22)

다윗도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실 생각인가?

처음부터 변함없이 중심을 잃지않고 초지일관하는 마음을 본받고 싶다.

도피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 질수록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다윗 하나님 중심의 사고에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다윗 원수마저 사랑으로 그 머리에 숯불을 얻어 놓는 다윗

모든 최종 심판과 최종 권위는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 이 믿음을 내가 배워야 한다. 아멘. 

 

다윗은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떠난다.(12)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시므로 깨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어다.(12)

참 희안한 하나님 이시다.

 

적용:

십 사람들은 두번이나 고자질을 했다.

같은 유다 지파인데도 도움을 주기는 커녕 어려움에 빠진 자를 더 어렵게 한다.

남의 허물이나 잘못을 보더라도 고자질은 가급적 하지 말자.

아비새처럼 상황이 조금난 유리하면 하나님이 내편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편도 아니다.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편 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죽을 때가지 하나님 편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한 경외함이 있었다.

최종결정은 여호와께 맡기는 믿음이 있었다.

기름부음받은 권위자들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자.

끊없는 관용을 통해서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자.

 

하나님 아버지

사울을 또 다시 살려주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시는 당신의 은총을 기억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한 십 사람들은 같은 지파의 다윗을 고발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다윗은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모습을 봅니다.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두려움이 없게 하옵소서.

복수보다 호의를 선택하는 다윗의 삶 처럼

원수 갚는 것이 당신에게 있음을 고백하며

모든 주권은 모든 결정권은 주님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나에게도 깊고 넓은 사랑과 관용과 이해의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