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QT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삼상2:12~21)

다이나마이트2 2014. 2. 4. 23:03

2014년 2월 4일 화요일

사무엘상 2:12~21 불신앙의 아들들과 믿음의 아들

 

말씀요약: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배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두렵게 여기지도 않았고 제사법에 대한 규정도 무시했다.

제사 후 고기를 삶을 때 쇠 갈고리를 넣어 걸리는 것을 함부로 취할 뿐만아니라

기름을 단에 태우기도 전에 고기를 빼앗아 갔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큰 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다.

한편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

엘리 제사장이 엘가나와 그 아내 한나를 축복하여 주었고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아보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고 있었다.

 

묵상:

너무나 대조적인 불신앙의 아들들과 신앙의 아들이 보인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vs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다.

한쪽은 제사장의 아들이다. 다른 한 쪽은 에브라임 산지 시골 촌부의 아들이다.

객관적으로는 제사장의 아들들이 훨씬 경건하고 믿음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 같고

엘가나와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에브라임 산지 시골 출신에 누구 한 사람

주목받을 일도 없고 관심도 같지 않은 그저 평범한 집안의 사람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말씀으로 본문이 시작한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배이다.(12)

좀 심하게 말하면 악당들이다라는 의미이다.

어째서 제사장의 아들이 무뢰한 건달, 악당, 불량배가 되었을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12)

여호와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를 두렵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바꾸어 말하면 여호와를 두렵게 여기지 않은 것은 불량배이다. 아멘.  

이런 의미에서 나도 불량배가 아닐까?

 

앞으로 계속해서 엘리의 아들들의 죄악상이 많이 나오지만

오늘 본문에 구체적인 행동들이 몇 가지가 있다.

1. 제사 후 고기를 삶을 때 하인을 보내어 세 발 달린 쇠 갈고리로(13)

   고기 삶는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 걸리는 것을 함부로 취 할 뿐 아니라(14)

 

2. 단에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제사장이 구워먹을 생고기를 빼앗아 갔다.(15)

 

제사장 아들로서 장차 제사장이 되어야 할 인물로써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내 삶에 적용해 본다면 교회만 왔다 갔다하면서 종교 생활만 열심히 하다 보면

바로 이런 꼴이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지니스를 위해서 대형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직분을 이용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불량배 같은 위인이 있지않겠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예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교회를 다녀도 주님과 상관 없이 산다면

바로 이런 불량배와 같은 악당들이지 않을까?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큰 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다.(17)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제사장은 제사를 섬기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다.

어떻게 제사장이 제사를 멸시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제사를 우습게 여길 수 있을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성경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제사장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을수 있고 제사를 멸시할 수 있구나!!!

나도 일상의 예배가 이렇수 있음을 조심하자. 아멘. 

 

한편 다른 한 사람 배우고 싶은 한 어린아이가 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18)

여호와 앞에 라는 단어에 눈이 머문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말씀이다.

삶 가운데 여호와를 의식하면서 살았다는 말씀이다.

 

마지막 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다.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1) 아멘.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이다.

내 자녀들이 머물러야 할 자리이다.

우리 가문이 머물러야 할 바로 그 자리이다. 아멘.

 

적용:

여호와 앞에서 자랐다는 말씀은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에도 하나님을 의식했다는 말씀이다.

길거리에 침이나 휴지나 껌이나 담배꽁초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삶이다.

교통신호 눈가 보든 안 보든 잘 지키는 삶이다.

누가 보면 잘 지키는 척 하는데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흩으러지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라는 삶은 아니다.

이번 주간에 여호와 앞에서 자라가는 행동의 실천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길거리나 건물 구석에 떨어진 휴지 한조각이라도 주워야 겠다.

 

하나님 아버지

제사장의 아들들이지만 또 제사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불량배들을 보았습니다.

내 안에 이런 불량배의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도 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랐던 것 처럼

늘 주님을 의식하는 삶 깨어 있는 인생되게 인도하옵소서.

주님 오늘 동아시아B국의 박OO 선교사님 수술 잘 마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온전히 잘 회복되게하시고 건강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정직한 영을 새롭게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