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QT

에서와 야곱의 만남 (창33:1~11)

다이나마이트2 2013. 3. 12. 21:55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창세기 33:1~11 용서, 묶인 관계를 푸는 열쇠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

가축의 떼를 나누고 서로 거리가 뜨게도 했다.

밤 중에 야곱의 아내와 자녀와 소유는 모두 얍복 나루를 건넜다.

야곱은 혼자 남았다.

날이 새도록 어떤 사람과 씨름을 했다.

날이 새려고 해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이 되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고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밤새도록 얍복강 가에서 씨름을 한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1)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온다.(1)

아이고 이제는 죽었구나 싶었을 것 같다.

 

아직까지 야곱의 성품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순서에 따라서  3그룹으로 배치를 한다.

여종과 자식들은 맨 앞에, 레아와 그 자식들은 그 다음에(2)

가장 사랑했던 라헬과 6살 밖에 안되었을 꼬멩이 요셉은 뒤에 두었다.(2)

 

아마 이 배치를 하면서 에스더 왕비가 수산궁의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갈 때에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에4:16)하는 믿음이 생겨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야곱의 태도가 급변한다.

 

아내와 자녀와 모든 소유를 앞장 서서 보내던 야곱이

그들 앞에 나아가서 몸을 굽힌다.(3)

한번 굽히고 몇 걸음 또 나아가서 또 굽히고 또 몇 걸음 나아가서 또 굽힌다.

몸을 7번 굽히며 형 에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3)

 

에서의 습격에 대비해서 가족을 3 그룹으로 나누고 자신이 맨 뒤로 숨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제일 앞으로 나서서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비는 모습이다.

땅에 몸을 7번씩 굽히며 형 에서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에서가 달려와서(4) 그를 맞아서 안고(4), 입 맞추고(4) 피차 울었다.(4)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눅15:20)

제일 좋은 옷으로 입히고(눅15:22),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눅15:22), 발에 신을 신기고(눅15:22)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15:23)

돌탕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 바로 그 장면이다.

 

예수님도 7번 뿐만이 아니라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2) 말씀하셨고

마틴루터 킹 목사님은 용서할 힘을 갖지 못한 자는 사랑 할 힘도 갖지 못한다고 하셨고

간디도 약한자는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강한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고 하셨다.

C.S. 루이스는 용서란? 절대로 그냥 봐 줄 수 없는 문제들을 너그럽게 용납하는 것이라 하셨다.

중국속담에도 복수하기로 마음 먹은자는 무덤을 두개나 파는 것이라 했다.

용서와 늘 함께 붙어 다는 감정이 분노이다.

분노는 자신을 파멸 시키는 감정이다.

용서 못하는 것은 지옥이고 고통이다.

구원의 결과는 용서 받는 것이고 구원의 결과는 용서하는 것이다. 아멘.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 받지 못한 에서와 야곱의 내면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을까?

에서도 400명을 데리고 올 때는 살기가 등등 했을 것이다.

야곱도 형님을 만나기가 모든 재물과 아내와 자녀를 포기하는 것 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밤 얍복 강 가에서 어떤 사람과 씨름 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에서에게도 마음을 돌려 주셨고 야곱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이 용서는 야곱이 보낸 예물을 초월하는 용서이다.

진짜 사랑은 물질을 뛰어 넘듯이 진짜 용서도 물질을 초월하는 용서이다.

20년 동안 쌓여 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녹아 내리는 위대한 사건이다.

위대한 용서의 사건이다.

 

나는 20년 동안 분노를 품고 있는 문제는 없다. 참 감사하다.

현제끼리 싸움을 안하는 것이 좋겠지만 만약 싸웠더라도 용서하고 화해하자.

첫째는 자신을 위해서요 둘째는 상대방을 위해서요

세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용서하는 삶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 처럼 내가 용서하고 용서 받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

또 분노의 감정을 품고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주님이 날 용서하신 것 처럼 나도 용서하며 용서 받으며 기쁘고 행복하게 살자. 아멘.

 

하나님 아버지

지난 20년 동안 마음에 칼을 갈고 복수심에 불탔었지만

형제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장면들을 봅니다.

먼저 용서를 비는 자가 겸손하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봅니다.

땅에 7번씩 몸을 굽히며 나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은혜 입기를 간절히 구하는 모습도 봅니다.

형님에게 예물을 드리는 모습도 봅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는 형님의 모습도 봅니다.

나도 용서 받은 몸이오니 조건 없이 용서하게 하옵시고

마음에 분노를 품고 살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 미는 자 되게 하시고

용서를 구하는 자에 대해서도 인색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용서받은 자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 가도록 성령님 인도하옵소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