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QT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니(욥26:1~14)

다이나마이트2 2012. 11. 15. 23:20

 

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17번째 가고시마 러브소나타

욥기 26:1~14 하나님은 완전하고 무한한 지혜자

 

빌닷의 3번째 충고에 대한 욥의 8번째 대답이다.(1)

빌닷은 마지막 충고에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롭다고 할 수 없다(25:4)

하나님은 권능자이고 절대 통치자이시지만(25:2)

인간은 벌레와 구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25:6) 심하게 이야기 했다.

 

우리말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듯이

빌닷의 말에 까시가 돋히자 욥의 말에도 거친 표현이 보인다.

때때로는 말의 내용 보다도 말의 전달 표현 목소리의 크기나 태도 표정에 의해

더 많은 이미지를 전달 받고 전달이 되기도 한다. 

 

욥의 말의 태도가 매우 공격적으로 바뀐듯한 느낌이 든다.

성경에 목소리 톤은 표현이 안되어 있지만 아마도 평소보다 훨씬 큰 소리로

언성을 높여서 대답 했을 것 같다.

욥의 말하는 표정도 말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상상해 본다면

빈정거리며 찡그린 표현이지 안았을까?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2)

기력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2)

지혜 없는 자에게 참 잘 가르쳤구나(3)

너의 훌륭한 지식을 잘 나타내었구나(3)

 

힘 없는자, 기력없는 팔, 지혜없는 자가 욥을 지칭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친구들을 조롱하고 있는 욥의 말이다.

 

위로하러 먼 곳에서 모인 소중한 시간이고 귀중한 자리이지만

난장판이 되어버린 자리가 되었다.

왜 위로하러 모였다가 싸움판이 되어 버렸을까?

 

빌닷이나 친구들이 하나님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빙자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욥에게 공격했기 때문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는데 욥도 지금 상황은 어렵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격해 올 때 더 큰 공격으로 방어하게 된다.

 

일상의 삶 가운데 이런 경우들이 다반사다.

동창회 모임에 오랫만에 만났다가 술먹고 싸움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명절 때 원근각처에서 온 가족이 장남의 집이나 한 곳에 모인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모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모인다.

그러나 싸움으로 모임이 끝나는 경우도 많이 있지 않는가?

 

서로 공격하고 서로 상처주고 서로 목소리 높여봐야 정답이 없다.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고 배려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을 하는 곳에는 화해와 일치는 있을 수 없다.

욥과 세 친구 사에서와 마찬 가지로.......

 

이렇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욥의 태도에서 배울 부분이 있다.

욥도 분명 화가나서 목소리도 높았고 말투도 빈정거림과 조롱이 썩여 있던 것에서

갑자기 하나님께로 모든 생각과 시선과 사고의 전환이 생긴다.

 

아마도 친구를 향해서 조롱하던 그 순간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던 것 같다.

삶에서 갑자기 화를 막 내다가 나도 모르게 절제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 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상황이 확 변화되니 조금은 놀랍지만

감정 조절이 안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무한 하심을 찬양하고

심히 세미한 그분의 음성을(16) 들을 수 있다면 엄청난 영성이다.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는 죽은 자의 세계가 드러나고 아무것도 가리워진 것이 없다.(6)

하나님은 북쪽 하늘에 허공을 펴시며 지구를 공간에 매달아 놓으시고(7)

BC10세기 경에 어떻게 지구가 공간에 달려 있은 줄을 알았을까???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다.

물을 짙은 구름으로 싸시며 그 무게로 구름이 찢어지지 않도록 하셨다.(8)

그 옛날에 자연과학을 이렇게 잘 설명 할 수 있을까?? 놀랍다.

그분은 자기 보좌를 구름으로 가리시고(9)

수면에 경계를 그어 빛과 어둠의 한계를 정하셨다.(10)

참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지혜를 찬양합니다.

 

갑자기 싸움을 하다가 주님을 찬양하니 좀 쌩뚱맞기는 하지만

문제 해결의 근원은 논쟁이나 토론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아멘.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상황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분명히 그분의 세미한 속삭임(16)이 분명 들릴 것이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아멘.

 

그분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나의 귀이고

그분의 말씀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나의 눈이다.

눈에 덮힌 비늘을 제거해 주시고 귀에 덮힌 귀마개를 제거해 주옵소서.

마음에 속삭이며 내면에 속삭이는 당신의 세미한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17번째 러브소나타 가고시마 집회를 허락하심을 찬양합니다.

일본 땅에 당신의 사랑이 가득 부어지게 하옵소서.

위로하러 모였다가 논쟁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봅니다.

공격이 더 큰 공격을 비난이 더 큰 비난을 불러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움니다.

환경 위에 역사 하시는 당신에게로 시선과 사고와 태도를 변화 시켜 주옵소서.

완전하고 무한하신 당신의 능력과 지혜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옵소서.

일상의 삶 가운데 당신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