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7일 수요일
욥기 21:1~16 모순된 현실, 흔들리는 믿음
소발의 두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두번째 변론의 시작이다.
욥으로서는 여섯번째 변론이 된다.
욥의 친구 소발은 욥의 고난 당함을 악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악인이 받아야 할 분깃이 어떠한 것이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친구 소발의 정죄와 단정에 대한 반박이다.
욥은 몇가지 질문을 함으로 대응한다.
1. 어찌하여 악인이 장수하고 세력이 강하냐?(7)라고 질문한다.
2. 어찌하여 악인의 집들이 평안하며 두려워해야 할 일이 없고
하나님도 그들을 즉시 벌하지 않느냐?(9)
3. 악인들의 소는 왜 새끼도 잘 낳고 낙태도 안하는가?(10)
4. 왜 악인의 자녀들을 양 떼같이 춤추며 노는가?(11)
5. 어찌하여 악인이 이 세상에서 형통하게 지내다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가?(13)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이다.
앞에서 소발은 악한 자의 번성은 잠깐이요 금방 사라진다고 했다.(20:4~9)
오늘 욥의 주장은 악한 자들이 더 잘되고 고난도 받지않고 편안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을 보면 불공평하다는 논리이다.
욥의 주장은 악인이 장수하고 번영하는 것이 마음에 불편함이 있다는 주장이다.
누구 말이 맞는가? 정답은 나도 헷갈린다.
소발의 입장에서는 소발의 말이 맞다.
욥의 입장에서는 욥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
때때로 나도 욥과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예수 믿으면 적어도 악한 사람들 보다는 더 형통하고 더 잘되어야 하는데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실제로 많이 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기 보다는 차라리 자기 욕심 껏 살다가 죽는 편이 낳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실제로는 많이 있다.
어떤이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 땅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악한 꾀를 쫓아 탈세도 하고 이중장부도 만들고 적당히 위반하고 살면
더 잘 되는 것 같고 더 평안한 것 같고 만사가 다 형통하는 것 같지만 실제 그런가?
오늘 욥의 주장이 바로 이런 느낌이 든다.
악인도 이 땅에서 충분히 형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 이 땅에서 장수하고 세력과 물질이 풍성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음 조차도 평안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욥의 친구들이 주장하는 인과응보적인 결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땅에서의 육체적 물질적 행복이나 고난이 반드시
선악의 결과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번영이라는 모순된 현실과
흔들리는 믿음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에서는 무어라고 이야기 할까?
우리의 돌아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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