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6일 화요일
욥기 20:12~29 만족을 모르는 탐욕과 심판
계속해서 욥의 친구 나아마 사람 소발의 충고들이다.
첫번째의 변론에서는 하나님의 벌하심이 너의 죄 보다는 경하니라(11:6)
그러므로 네 손에서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11:14)라고 말했던 자이다.
욥의 친구들이 다 그랬지만 너무나 인과응보적이고 권선징악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다.
고난은 무조건 죄로 말이암아 온다는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두번째 변론에서는 심해도 너~~무 심하게 몰아 부친다.
친구에게 위로하러 온자가 정말 해서는 안될 말들만을 골라서 했다.
물론 소발의 입장에서는 결코 무죄한 자가 고난을 당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친구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라고 서스럽없이 정죄하면서 말하고 있다.
욥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의 마음은 전혀없어 보인다.
차라리 친구를 찾아 오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 싶을 정도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어제에 이어서 동일하게 험한 말들을 이어가고 있다.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12) 표현이 참 재미있다.
악은 달콤하다.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 한 것이다.
악의 속성은 감추는 것이다. 악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또 악을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에 물고 있다(13)
악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쓰레기 버리듯이 쉽게 버리지 못한다.
결국 어떻게 되는가?
그 식물이 창자 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된다.(14)
독사의 쓸개가 된다는 것은 독이 된다는 비유적이 말씀일 것이다.
소발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친구에게는 적절하지 않는 말이다.
아니 지금 고난을 당하고 건강과 재산을 잃고 파산 직적에 있는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더더구나 하나님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요 악에서 떠난자라고 평가한 욥을
함부로 단정해서 정죄하고 비난하고 저주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 이 말들이 천사의 말 같지만 소리나는 꽹과리 같은 소리이다.
소발이 하는 이야기는 점점 더 가관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삼겼을지라도 다시 토할 것이요(15)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다.(16) 틀린 말은 아닌데 참 무서운 말이다.
부정한 재물은 토하게 될 것이고 결국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말이다.
다 맞는 말인데 고난 당한 의인 욥 친구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꿀과 젖이 흐르는 강은 보지 못할 것이요(17)
수고하여 얻은 것, 매매하여 얻은 재물로 즐거워하지 못할 것이다.(18)
왜냐하면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고 학대하고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았기 때문이다.(19)
친구에게 악담을 해도 너무 한다 싶다.
마음에 족한 줄을 알지 못하니 그 기뻐하는 것을 하나도 보존치 못하고(20)
악인의 형통함이 오래 가지 못한다.(21)
악인은 풍족할 때도 고통을 당할 것이고(22)
자기 배를 채우려할 때 하나님이 분노의 불을 비처럼 쏟아 낼 것이고(23)
철 병기를 피하면 놋 화살이 꿰뚫을 것이요(24)
몸에서 화살을 빼어내면 화살촉이 쓸개에서 나오고 큰 두려움이 임할 것이고(25)
사람이 피우지 않는 불(번개, 낙뢰, 유황불)이 그를 멸할 것이요(26)
하늘이 그 죄악을 들어낼 것이요(27) 땅이 일어나(지진, 쓰나미) 그를 칠 것이다.(27)
하나님의 진노의 날(28)에 악인이 하나님께 받은 분깃이다고(29)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악인이 받아야 할 분깃 맞는 말이다.
소발의 주장이 허무 맹랑한 것은 아니다.
악인이기 때문에 악인이 벌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소발이 모르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공의만 알았지 하나님의 사랑은 모르고 있다.
소발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이시다.
그 사랑 때문에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내가 받아야 할 악인의 분깃을 예수님께서 담당 하셨다. 아멘.
이것이 왠 은혜이며 넘치는 사랑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사랑을 경험 했다면 소발은 이렇게 욥에게 정죄하고 저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자들은 자기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준 사랑은 죄에서 해방 시켰을 뿐 아니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셨다.
또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타인도 매우 존중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고 나를 부르셨다.
소발처럼 정죄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하옵소서.
허물많고 자격 없어도 값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자.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사랑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아로새긴 금사과와 같다 하셨으니
경우에 합당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소발의 사랑없는 충고 긍휼이 없는 조언을 듣습니다.
오히려 욥을 향하여 저주하며 정죄하는 모습을 봅니다.
내가 이런 실수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같은 소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위로하는 참 위로자 되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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