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욥기 11:1~9 하나님의 성품 바르게 적용하기
욥의 세번째 친구 소발의 변론이다.(1)
앞의 엘리바스와 빌닷과 비슷한 논점이지만
앞의 친구들 보다 훨씬 흑백 논리로 단정을 짓는 듯한 느낌이다.
친구 욥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고난은 욥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소발의 첫번째 이야기는
말 많은 사람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겠는가?(2) 이다.
말이 많으며 허물을 면키 어렵다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다.
소발이라는 말의 의미가 '수다 떠는 자" 라는 뜻이라고 하니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을 욥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적인 용어로 이런 경우를 '투사'라고 하는데 소발이 오히려
이런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두번째 네 자랑하는 말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는냐?(3)
욥이 지금까지 무죄하다고 이야기 한 부분에 대해서 한마디로
헛소리라고 단정을 짓는 듯한 말이다.
내 주장은 순수하고 나는 주가 보시기에 깨끗하다(4)라고 한 부분을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엘리바스나 빌닷의 정죄에 대해서
욥은 자신은 무죄하고 의로운데 하나님이 징계 하시고 계신다고 주장했다.
세번째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6)
아마도 소발은 욥이 범죄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친구가 맞기는 한가 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욥의 상황은 죽음을 묵상하고 있을 정도로 극한 상황인데
친구라고 하는 자가 위로 한다는 말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싶다.
설사 100번 양보해서 욥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형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친구 앞에서 너가 지금 벌 받고 있는 것이
너가 죄은 죄보다는 가볍다라고 위로하는 것이 위로가 될까?
친구 욥을 두번 죽이는 이야기 아닐까?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던가!
욥의 친구 소발이 이야기 한 것
즉 하나님의 벌 하심이 나의 죄 보다 가벼울 때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죄로 말미 암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욥 과 같이 알 수 없는 시련을 격을 수도 있는 것이고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시련을 격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소발 처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소발처럼 말을 많이 하여 허물을 면하기 어려운 자가 아니라
전후좌우 여러 형편들을 충분히 잘 살피고
충분히 상황을 잘 파악하고 난 이후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훈련이 되길 원합니다.
미련한자의 어리석을 것을 따라 대답하지 않도록
성령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불어 넣어 주옵소서.
소발과 같이 단정적으로 결론을 짓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고난 중에 있는 지체의 마음을 잘 헤아려 위로하고 조언 할 수 있는
지혜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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