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사도행전 4:13~22 복음의 물줄기는 막히지 않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40대 남성의 기적적인 치유와 회복을 두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의 설명을 들은자들 가운데 남자만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하면
기득권 세력들, 종교지도자들, 권력층의 사람들은
즉 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사두개인들등은 사도들을 잡아가두고
소위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서 종교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판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히 말함을 보고 놀란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13)
베드로와 요한은 갈리리 어부 출신이다. 정식으로 신학공부를 하지 않았다.
랍비로서 전문가적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식한줄 알았던 베드로와 요한이 거침없이 말하자
처벌하려고 하던 종교지도자들이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할말이 없으니까 공회에서 나가라(15)라고 명령한다.
그리고는 서로 비밀스럽게 은밀하게 서로 의논한다.(15)
권력을 가진자들의 특징인것 같다.
그런데 베드로와 사도의 말에 결정적인 증명을 해 주는 일이 있다.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다(14)했다.
40년동안 앉은 뱅이로 살았던 이 병나은 사람에게 시선이 끌린다.
이 분은 40년 만에 걷기도하고 뛰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자가
기도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달려 돌아 가버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있어야 할 자리에 떠나지 않고 있으므로 움직일 수 없는 명확한 증거의 역활을 한다.
그렇다 때때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가져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웅변이 될수 있다. 아멘.
내가 존재함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멘.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멘.
예수님과 3년간의 공생애를 지내고 십자가에 고난 받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과 그리스도의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도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게되자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16) 비밀회의를 거듭한 것 같다.
종교지도자들이 서로 거듭 의논한 결과가
이 일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위협하고
앞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하자(17)라고 결정을 한다.
그리고는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18)라고 협박한다.
세상의 참 아이러니이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고
섬기고 전파해야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오히려 진리를 외곡하고 사실을 부정하고 은폐하고 위협하고 협박하고
전해야 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고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항하고 대적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아멘.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이다.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20) 라고 담대히 말한다. 할렐루야.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인데 감사하게도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종교지도자들이 잘 몰랐던 것이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한편으로 든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라고 협박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지 말라 라고 명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는데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은 결국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고난과 예수님의 부활과 40일 후의 승천과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아닌가?
그 핵심들을 종교지도자들 재판관들이 잘 알지 못하고
나타난 현상 만으로 협박할려고 하니 힐난할 말을 차지 못한 것 같다.
이것 또한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것 같다. 아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21) 할렐루야.
나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의 삶이 되길 소원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기도한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사도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대비해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미련한 것 약한 것을 들으사
지혜있는 자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내가 그런 통로로 도구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사도들과 함께 서 있으므로 강한 웅변을 하는
40년동안 앉은 뱅이에서 고침받은 걸인처럼
내가 존재함으로 당신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존재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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