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QT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눅9:49~62)

다이나마이트2 2008. 1. 31. 23:28

2008년 1월 31일 목요일 아내생일

누가복음 9:49~62 꿈이 있는 자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2008년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1달이 훌쩍 지나 간다. 참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

 

예수님게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을 하시고(51)

 

인생의 때를 알고 산다는 것 참 놀라운 일이다.

나는 잠잘 때인지, 일어날 때인지, 울 때인지 웃을 때인지,

심을 때인지 거둘 때인지, 기도할 때인지 일 할 때인지

분간을 못하고 지날 때가 많은데....

주여 지혜를 주옵소서.

 

사자들을 앞서서 사마리아로 먼저 보냈으나(52)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53)

왜냐하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가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보통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요단강 동쪽의 뵈뢰아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왕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사마리아에 유숙을 원했지만

역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의 절기의 순례객에 대해서

미워했기 때문에 받아 들여 지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른 촌으로 가신다(56)

가시는 중에 3명의 사람들을 만난다.

 

3명의 사람들을 만나서 하시는 말씀들이 참 재미있다.

첫번째 사람이 말한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쫓으리이다(57) 한다. 굉장한 말씀이다.

 

두번째 사람도 말한다.

나를 좇으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좇기는 좇겠습니다만 먼저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해 주세요(59) 한다.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세번째 사람이 있다.

네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해 주세요(61) 한다.

역시 틀린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 세사람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내 가슴을 친다.

첫번째 주님이 가시는 어디든지 저는 좇겠습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마8:19에 보면 서기관이였다. 서기관은 율법학자이다. 엘리트 계급이다. 지도자이였다.

이런 분의 어디든지 따르겠습니다라는 고백은 대단해 보이지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58)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부와 권력과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고통과 이보다 더한 것도 견디어 내어야 한다는 각오를 말씀하신 것 같다.

 

두번째 먼저 부친의 장사를 허락해 달라는 자의 대답으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60) 하신다.

참 어려운 말씀이다.

상속 받을 재산을 포기 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인지

고난과 희생을 감내하면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인지

하여간 주님의 대답의 늬앙스는 마땅하지가 않다.

 

세번째 먼저 가족을 작별을 허락해 달라는 분의 말씀에 대해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신다.(62)

 

가족들이 실종신고하지 않고 어디에 간줄은 알게 해 주겠다는 가장의 말씀이

틀린것은 아닌 것 같은데 예수님은 무엇가 마땅치 않다는 말씀이다.

안 믿는 가족에게 발목이 잡혀서 예수님 따라 오는 것을 방해 받을 까봐 하신 말씀일까?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자는 세상의 일상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말씀일까?

예수님의 여정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 된다는 말씀인가?

 

위의 3사람의 말이 틀린말은 아니지만

주님의 제자로써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부족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굳은 결심을 하고 출발하시는데 입으로만 어디든지 따르겠습니다하는 자나

따르기는 따르겠습니다만...하고 토를 다는 자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들이

다 나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같다.

 

명예 때문에, 돈 때문에, 가족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식과 아내 때문에

발목 붙잡혀 있는 모습을 탓하시는 것 같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아버지

인간적으로 이 정도 가지만 봉사하고

이 만큼만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줄로 그어놓고 이것 까지만 간섭하시고

이 이상은 곤란 합니다 주님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한계를 뛰어 넘는 용기를 주옵소서.

쟁기를 잡고 뒤돌아 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