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역기능 가정의 치유 (창27:1~10, 41~46) 2025.05.11

다이나마이트2 2025. 5. 11. 22:56

역기능 가정의 치유 (27:1~10, 41~4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삭]의 가정은 역기능의 가정입니다.

 

[역기능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실 때, 계획하셨던 은혜와 축복이 가정 속에서 누려지지 못하고, “[]로 깨어진 가정을 말합니다.

 

[깨어진 가정]은 마땅히 누려야 할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가정을 말합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런 역기능의 모습을 보입니다.

[리브가]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가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삭의 가정]은 서로 속이는 일로, 가족 관계가 깨어지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죽을 생각을 하면서,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고, 자신이 즐기던 요리를 만들어 오게 하고,

그 말을 엿들은 부인 [리브가]는 자신이 더 사랑하는 [야곱]에게 그 일을 대신하기를 부탁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에서]로 변장시켜, 자신이 준비한 고기 요리로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라.“고 지시합니다.

 

[야곱]은 두려워하며 주저하지만, [리브가]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밀어 붙이니까,

[야곱]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챕니다.

 

뒤늦게 [에서]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하고 흥분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리브가][에서][야곱]을 죽이려는 계획을 알고, [야곱]을 도망시키게 만듭니다.

 

여기서 [역기능 가정]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이러한 [역기능]을 우리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1)첫 번째로/ 여기서 나타난 문제는 부모의 편애입니다.

 

[이삭]은 큰아들, [에서]를 더 사랑했고, ”[리브가][야곱]을 더 사랑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역기능 기정]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을 할 때, “항상 공개적으로 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축복할 때, “아들들을 다 함께 모아놓고축복을 했습니다.

50장에서 [요셉]의 축복도 마찬가지이고, 신명기 33장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그것은 가족들이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함께 축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 자녀만 불러서 좋은 것을 주고, “언니에게 말하면 안 돼.”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그런 것이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2)둘째로/ “조건적인 사랑이 가정에 나타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삭]이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엄숙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줄 때에도 자기 입에 맛있는 고기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삭][에서]축복을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음식][축복]을 바꾸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서 “[사랑]한 게 아니라, [고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 축복]이 아니라, [조건적 사랑]입니다.

 

부모의 조건적인 사랑은 자녀에게 반드시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모든 것을 [거래]로 생각하게 됩니다.

 

(3)세 번째로/ [이삭의 문제]영적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늘 조급하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갑니다.

 

[야곱]이 염소 가죽 털로 위장을 하고, 자신에게 왔을 때, [이삭]은 분별하지 못했어요.

내가 좀 만져봐야 되겠구나.”라고 의심했고, “음성은 [야곱]인데, 손은 [에서]이구나라고 말했으나,

들리는 음성보다 손으로 만지는 감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4)네 번째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이삭]의 가정에서 일어난 이런 역기능의 문제는 일반 가정에도 나타납니다.

[이삭][에서]를 축복하려는 것은 단지 편애를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문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관심과 불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가에서 야곱을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주신 [계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에서]장자권을 이어가야 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문화가 그랬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지금의 문화권과 나의 판단과 다르다면,

그것에 맞춰가는 노력이라도 해야 될 텐데, 그것을 무시한 것입니다.

 

[참된 순종]이란 그 가정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맞추는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미국에 와서, 자녀가 좋은 학교 졸업하고,

좋은 일자리에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교사로 간다.“고 하니, ”놀랐다.“는 겁니다.

 

저에게 찾아와서, ”제발 좀 자녀를 말려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분은 다른 자녀가 선교사 나갈 때는 그래 장하다.”고 축복하던 분이, [자기 자녀]가 선교사로 간다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삭의 모습]이 나타난 단면이기도 합니다.

 

(5)다섯 번째로/ 나타난 [역기능의 문제]대화의 단절입니다.

 

11장에 보면, “대화에 꼭 두 사람씩만 나온다.”는 거예요.

거기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대화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요.

 

여기에 나오는 여러 대화에, “단 둘이씩만대화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가족 구성원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어요.

 

가장 심각한 것은 이삭과 리브가의 대화의 단절이죠.

부부 간의 대화의 단절은 반드시 자녀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리브가][이삭][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한 것을 엿들었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부부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고, 엿들어야 하는 관계이니, 문제입니다.

 

[리브가]는 무서운 여인입니다.

아들이 불안해 하니까, “아들아,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부부 간의 대화가 끊어짐으로, [에서][야곱]도 깨어졌고, 가족 구성원이 깨어졌어요.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도망가야 했고,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거짓의 대가를 다 가족 구성원이 담당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말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 격려의 말, 사랑의 말이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가정]이 이런 역기능 가정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고,

또 더 나아가 그런 가정도 하나님의 가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가정]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은 가정의 어떠한 상처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에 제가 한번 인용한 글인데,

[러셀 무어]라는 분이 쓴 폭풍 속의 가정이라는 책에서,

 

가족은 복음이 아니다. 만일 가족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족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겪었던 [역기능 가정]이나, 당신을 버린 배우자,

또는 머나먼 반항의 나라로 떠나버린 자녀가 당신의 삶을 망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삶]은 우리를 자유케 하여, 가족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악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게 한다.

 

[십자가]에서 짐이 축복인 것을 볼 때, 우리는 가족을 짐으로 여기거나 싫어하지 않게 된다.

또한 우리의 가족이 우리의 모든 욕구와 갈망을 채워주기를 바라지 않게 된다.

 

우리 앞에 영광스럽고 영원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가족은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워할 이유가 아니다. 당신 앞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본향으로 이어진다. []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며,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 어떤 폭풍과 싸우고 있든 당신은 살아남을 것이다.” - Russell Moore -

 

우리의 가정이 때로 엮이는 가정 속에 우리를 십자가로 이끌 때,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과 생명의 빛이 있기에,

우리는 가정으로부터 모든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

또 채워줄 수도 없는 그런 가정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음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정의 기능들이 십자가로 회복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