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울고 있느냐? (요20:11~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부활하신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면서, 10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①첫째로,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②둘째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입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회복시키고, [십자가의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그 만남 가운데,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와의 만남“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섬기는 ”여성 제자“이고, 그중에서 ”리더십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와의 만남“을 부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가장 먼저 ”개인적으로 만나주신 만남“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만난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만나 주십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①”부활의 첫 증인“이고, ②예수님의 무덤에 가장 먼저 찾아왔고,
③예수님을 가장 깊이 사랑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기 형]을 당할 때, [베드로]는 두려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마리아]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제자입니다. 어떤 이유든지, ”[십자가]와 멀리 있다”는 것은 “마음의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온 것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고,
안치하는 일에 참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무덤 앞에 도착하자, 이미 돌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돌문을 열어놓은 것은 [예수님]이 무덤 안에서 밖으로 나오시도록, 도와드리기 위해서 열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천사가 도와주지 않아도 능히 나오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무덤 안을 볼 수 있도록 열어주신 것입니다.
만일 무덤이 돌문으로 닫혀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예수님을 예수님인 줄 믿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무덤이 비었다.”는 것과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과 함께 연결되어, 그들이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돌문을 열어주시면서 까지,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확신할 수 있도록 [천사]가 도우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절히 주님을 찾고, 또 찾는 자들에게, “[주님]은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누군가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었던 것입니다.
이 차이가 ”사랑의 깊이“입니다.
▶왜,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그것이 ”사랑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자녀의 사랑“도 서로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들어왔는지”와 상관없이, 그냥 피곤하면 자지만,
[어머니]는 자식이 들어오기 전까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깊이“입니다.
[마리아]가 울고 있는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지요.
[마리아의 눈물]은 순결하고, 고귀하신 분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눈물]입니다.
이 때, [천사]가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라고 질문하니까,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누군가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해서, 울고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 21장 14절에, ”이 말을 마치고 들어서는데, [마리아]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예수께서 가기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분이 예수이신 줄은 깨닫지 못했습니다.“(요20:14)
그러니까 그 때까지,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동일하게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네가 누구를 찾고 있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그가 동산을 지키는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여,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찾고 있는 예수님은 “죽은 예수님의 시신”입니다.
그녀의 [눈]은 “예수님의 시신”에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마리아]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함을 책망하지 아니하셨고, [마리아]를 찾아가서 개인적으로 만나주셨고,
그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현대인들로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도 그렇게 의심하고 믿지 않았어요.
그처럼 [부활]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만일에 “부활이 만들어진 신화”이라면,
이렇게 제자들이 믿지 못하는 모습들은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시점은 언제일까요?
그 때는, “[베드로와 요한]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 나타나셨어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가 아니고,
제자들이 없을 때, [마리아]가 혼자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마리아야,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를 만지지 마라.”고 했을까요?
이 말씀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나에게 매달리지 마라.”는 말씀이에요.
이것은 “ 나는 육신의 몸이 아니라, 만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육]이 아니고, [영]이신 것을 모르고, 만지려고 했던 거예요.
[예수님]은 “[마리아]야, 이제 우리는 [새로운 관계]로 만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데,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감으로 인해서, “새로운 변화를 너희들이 증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단지 내가 다시 살아났다.“고 전하지 말고,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라.“고 당부합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으니까,
이 [새로운 관계]는 “내가 내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가 곧 우리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곧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는 말씀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올라가니, 너희도 장차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는 말씀이니, ”이것을 세상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일 먼저 [마리아]에게 당부하신 말씀은 ”가장 중요한 [복음의 내용]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마리아의 눈물]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복음을 전하는 눈물“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리아]에게 부탁한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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