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다시 찾는 기쁨” (눅15:31~32) 2024.01.15

다이나마이트2 2024. 1. 15. 11:24

 “다시 찾는 기쁨” (눅15:31~32) 강부호목사 

31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32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그를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복음  15:31~32, 우리말 성경)

이번주 주제: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함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하는 것을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복음을 언어형태로 전하는 것입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누가복음  15:1, 우리말 성경)

강한 말씀이지만 주의 말씀을 듣기 이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구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과의 접촉점이 있있습니다. 

2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
(누가복음  15:2, 우리말 성경)

복음이 증거되는 것보다 규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지도자들은

 죄인들과 음식을 먹는 예수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죄인들과 그리고 예수님과 소통하는 채널이 없었던 듯 합니다. 

세상은 더 나은 사람과 식탁교제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연약한 자들과 식탁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되 찾는 기쁨을 잔치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것을 분노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이 가르침을 주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는 비유, 동전을 찾는 비유,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비유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비유입니다. 

아들이 돌아오자 좋은 옷을 입히고 잔치를 베풉니다. 
잃었던 아들을 찾은 기쁨을 잔치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25 그런데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음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인지 물어 보았다.
27 하인이 대답했다. ‘동생이 왔습니다. 

동생이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와서 주인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5:25~27, 우리말 성경)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와 그를 달랬다.
(누가복음  15:28, 우리말 성경)

큰 아들이 분노합니다. 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려합니다. 
왜 분노했을까요? 

분노한 이유는 동생이 돌아온 것에 대해서 아버지가 잔치를 베푸는 사실 때문입니다.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는 아버지의 은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적당이 훈계하고 일을 마무리 했다면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만약 죄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노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29 그러자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종노릇하고 무슨 말씀이든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30 그런데 창녀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5:29~30, 우리말 성경)

자신이 그동안 수고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합당한 보상이 없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집을 떠나지 않았던 자신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각에는 자신도 적당히 세상을 즐기고 싶었는데 말씀을 지키고자 살아온 자신 대신에 

세상 속에서 방탕하다 돌아온 작은 아들을 아버지가 환대하는 것에 대하여 억울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듯 합니다. 
혹시 우리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은 아버지를 기쁘게하는 삶을 살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31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누가복음  15:31, 우리말 성경)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와 항상 있었지 않았니? 
유산을 받을 상속자가 아니니? 
무엇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니? 

그동안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들을 감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십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야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했던 경험이 많은 것이 진정한 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이에대한 깨들음을 얻을때, 죄인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 

우리는 전도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복음이 흘러가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큰 아들과 같은 생각 때문에 복음이 흘러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은혜인 것이고 복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런 큰 아들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와 그를 달랬다.
(누가복음  15:28, 우리말 성경)

아버지는 두 아들을 모두 사랑한 것입니다. 
큰 아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헌신했던 시기들을 아까워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신 아버지의 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큰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32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그를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복음  15:32, 우리말 성경)

돌아온 아들이 큰 아들의 동생인 것을 일깨워줍니다. 
다시 찾은 아들을 위해 우리가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버지가 말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큰 아들은 살았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듯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동행했지만 기도하는 주님과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안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도 아들의 모습은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삶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우리 안에는 어떤 아들의 모습이 있습니까? 
큰 아들 혹은 작은 아들의 모습?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나도 기뻐하는 사람이 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게 될 것이며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