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 (행1:1~2, 행28:30-31) 이재훈 목사님
온누리교회는 [사도행전]을 기초로 창립한, “사도행전적인 [바로 그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장 1절에 기록된, ”데오빌로님“이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사도행전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누가]라는 제자가,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하여, [누가복음]에 이어 쓴, 두 번째 책입니다.
여기에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저자 [누가]가 그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로마 사회의 높은 지위의 공직자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문안을 드리면서 정중한 인사말로 시작을 합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과 함께 모든 선교 여행에 함께 동참하고,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바울과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행전을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도들의 복음 증거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복음 사역]이 사도들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었는가?”를 기록한 역사책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①첫 번째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
②그 제자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것을 그가 확인해서 기록한 것이고,
[사도행전]은 그가 함께 바울과 함께 동행하며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서론]은 [누가 복음의 서론]과 같습니다.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가]의 생각 속에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기에,
누가 복음이 바로 사도행전의 서론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장 3- 4절에, “존경하는 데오빌로님, 제 자신도 그 모든 사건을 처음부터 면밀히 조사해
당신을 위해 순서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당신이 전에 배우신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아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눅1:3-4)
이렇게 한 사람, [데오빌로]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은 누가 복음이 유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 이 사람을 위해서 [누가]는 자신이 들은 모든 사건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빠짐없이 기록했던 것입니다.
[누가]가 자신이 [데오빌로]에게 보낸 이 책이, 후에 [성경]이 될 줄 알았겠습니까?
[성경]은 여러 사람들이 ”기독교의 경전을 써보자“고 해서 나누어 쓴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것“을 성령님께서 모아주신 것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기록한 이 책이 후에 [누가 복음]으로 남겨질 줄 모르고 썼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으며,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어떠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 복음 전체가 24장, 또 사도행전 전체가 28장,
합쳐서 [총 52장]이라는 많은 분량을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가장 긴 문장이 몇 장이나 될까요?
우리는 한 번에 보낸 것을 포함해, 모두 다 합쳐서 5장 이상 보내기 쉽지 않죠.
그러나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이 한 사람에게 보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동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①한 영혼을 향한 대단한 열정이고, ②예수님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서,
③그의 믿음을 확신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장편의 기록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2절에서, “그것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며, 일꾼이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과 같습니다.”(눅 01:02) 여기서 [누가]는 “목격자”라는 단어를 씁니다.
▶왜, “말씀의 목격자”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그것은 [복음서]가 어떤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상상이나 신화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 의한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누가]가 그것을 들었을 때, 그것이 ”과연 사실인가를 면밀히 조사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의사]라는 직업이 철저한 탐구력을 가지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살펴야 하는 [직업]이므로,
”자신의 집중력과 탐구력을 총 동원하여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누가]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라고 추정합니다.
① “최초의 말씀의 목격자”가 등장하고,
② “말씀을 전해들은 사람”이 등장하고,
③ “말씀을 들었으나, 가만히 있지 않고 조사해서, 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보십시오. [말씀의 목격자]로부터 말씀을 들은 사람이 –--> [증인]이 되는 거예요.
제가 이 흐름을 [도표]로 만들어 보면, ”말씀의 목격자“는 곧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증인]에 의해서 말씀을 들은 사람은 또 다른 목격자가 되고, 또 다른 목격자는 또 다른 증인이 되는 거예요.
이처럼 목격자는 [증인]이 되며, 그 사람에 의해 [들은 사람]이, 마치 ”처음 목격한 것처럼 똑같은 목격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의 목격자]는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죠.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만이 아니라, [누가]가 최초의 목격자가 아니지만,
그가 목격자와 같은 체험을 했고, 증인이 됐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응답할 때,
이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가 말씀을 체험하고 목격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판정에서 [증인]을 부를 때, 누구를 부릅니까?
증인으로 목격자를 증인으로 부르는 거예요. 그것은 ”직접 목격한 사람“은 담대합니다.
그가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보고 들은 대로만 말하면 담대합니다.
그러니까 [목격자]는 곧 [증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반대로, 증거 할 것이 없다면, 목격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하고 있지 않으면, 나는 전도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좀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전도하고 있지 않다면, 전도 대상자일 수 있다.“
이제, 조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죠. 그러나 서둘러 빠져나가려 하지 마시고,
내 삶속에 증인의 삶이 없다면, 나는 혹시 목격한 것이 없지 않았을까?”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년 한 해의 [표어]로,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라고 정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공부합니까?
내 지식을 풍요롭게 하고, 내 교양을 쌓으려고 할 때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증인]이 되려고 말씀을 연구하면,
놀랍게도 말씀이 깨달아지고, 말씀이 체험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중에 혹시 “나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어요.”라는 사람은
“나는 다른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증인]이 되려고 할 때, [말씀]이 더 깊이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담대한 체험을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것이 [목격자]이고, “체험한 목격자”가 [증인]입니다.
이렇게 [누가]는 누가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가르치시고, 성령을 통해 명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실 때까지의 [일]을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순종했는가?”를 배울 것입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르심]에 순종할수록, “더 담대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역사]는 사람들이 모여 뜻을 합하여 제도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어서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담대한 증인으로의 부르심에 따르는 이들에 의하여, 일어난 역사입니다.
”증인으로의 부르심“을 외면한 채, 자신들끼리의 모임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교회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고, 교회의 영향력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누가]와 [요한]에 이어서 ”말씀의 목격자“가 된 일꾼으로, 담대한 증인이 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장이고, 마지막 구절인 사도행전 28장 30- 31절의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한 영혼을 위해 “어떻게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만 2년 동안,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여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행28:30-31)
[사도행전 1장]은 한 영혼, [데오빌로]를 향한 [누가]의 열정으로 시작됐다면,
[사도행전 28장]은 한 영혼을 향한 바울의 열정으로 끝을 맺고, 끝이 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갇혀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마다, “반성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한 가지 용어를 없애야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선교지]라는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역이 다 [선교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선교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있는 [삶의 자리]가 선교지이고, 그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전도나 선교센터도 없습니다. 그저 갇혀 있는 [셋집]이 전부였지만,
찾아오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은 거침없이 증인으로 살아가는 [바울의 행적]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계속 이어져야 하고, ”바로 그 교회“를 통해 이룩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 하용조 목사님이 ”[사도행전 29장]을 온누리교회가 쓰자”고 제안하여,
[Acts 29](엑트 투에니 나인)의 비전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떤 분들은 “온누리 교회가 이단이라”고 정죄합니다.
그것은 “온누리교회가 사도행전 29장이라고 주장한다.”고 참 답답한 일입니다.
“사도행전 29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28장이 이렇게 진행형으로 끝나기에,
온누리교회가 창립하면서, ”우리 교회가 바로 이 사도행전을 이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심볼릭 하게 [Acts 29]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2024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구호에 합당한 교회가 되기 위해 더욱 더 헌신하기 바라고,
2024년 한 해 동안,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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