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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죽음으로 완성하신 구원 (요19:23-30) 고난주간

다이나마이트2 2022. 4. 15. 23:00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하신 구원 (요19:23-3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이 겪은 [십자가의 고난]은 “성경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고난]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가운데, 이 [십자가]를 계시하여 주셨고,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매우 상세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가장 먼저는 아담과 하와가 탈락한 직후에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사로잡혀서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부끄러움을 가리다가, [가죽 옷]으로 그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덮어주신 사건으로부터,
계시된 것입니다.
 
▶여기서 [가죽옷]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가죽]은 한 생명의 피 흘림이 있어야 만들어지므로,
“생명이 죽음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덧입혀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생명의 희생을 통해서, [인간의 죄]는 덮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타락한 직후에,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심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모세의 광야시대에 [불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장대에 [구리 뱀]을 달아서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말씀을 믿는 자들이 살아났다.“는 사건을 통해서,
구원자를 바라보도록 [계시]하신 것은 결국에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고 회복시킨다.“는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찢어서 나눠 가지는 사건“도  군병들은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이지만,
[성경의 말씀]에 이르려고 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인,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신 말씀도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받을 때,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것은 ”단숨에 죽이는“ [사형제도]가 아니라, ”서서히 오랜 시간 동안에“
고통 속에 죽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도 서서히 사람들이 떠나가고,
마지막에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어떤 사고 현장에서나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끔찍한 현장]을 보기를 싫어서, 그저 멀리서만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 가까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도 군병들보다 더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19장 25절에 그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요 19:25)
 
여기에 4명의 [여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당시에 [마리아]라는 이름이 아주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 앞에 어떤 지역 이름이나, 출신에 따라 구별해서 부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은 두려워서 그 자리를 떠나서 어디엔가 숨었고, 여인 4사람과 [요한]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5명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베드로, 야고보 등, 여러 제자들은 다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떠났고, 실망해서 떠났고, 또 어디론가 숨었고,
어쩌면 그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는 어리석은 행동을 보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여러분은 [십자가]에 얼마나 가까이 계십니까?
우리는 ”[십자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당시에 [현장]을 보면, 여성의 헌신이 남자 제자보다 4배나 더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교회에 헌신된 분들도 여성이 훨씬 더 많았고, 부활을 첫 번째로 목격한 사람도 여성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인 [가상칠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①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용서]의 말씀이고,
②두 번째 말씀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구원]의 말씀이고,
③세 번째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는 [효도]의 말씀이고,
④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라는 [고난]의 말씀이고,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입니다.
⑤다섯 번째 말씀은 "목마르다."는 [회복]의 말씀입니다. 
⑥여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완성]의 말씀입니다. 
⑦일곱 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는 [부탁]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요한복음에는 세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의 말씀만 나옵니다.
(1)예수님의 세 번째 말씀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그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위탁하고, 부탁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19장 26-27절을 보면, ”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보아라. 네 어머니다.’라고 말하고, 그 제자는 예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요 19-26-27)
 
이제 예수님은 [요한]에게는 ”마리아를 돌볼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아들]로서의 모든 책임을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터키에 있는 에베소 지역에 가보면,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다.”고 하는 [기도원]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요한]과 [마리아]를 새로운 가족”으로 만들어 주셨고,
어떤 신학자는 “이것이 교회의 시작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육신의 관계]를 뛰어넘어, 이제 [영적인 가족]으로 만들어 주셨고,
더 나아가 한 교회의 일원으로서, 한 교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2)그리고 다섯 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입니다.
 
28절에,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성경을 이루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성경을 이루려고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9:28)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고통으로, “목마르다”라고 말한 것은 “목마르지 않는데, 목마르다고 말한 게 아니고,
예수님은 이미 탈수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고,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셨고,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는 과정이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에 적어도 3시간 이상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몸은 이미 탈 수 상태이니까, 그 고통을 아주 단순하게 ”내가 목마르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으로, 그 [목마름]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인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감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①인생의 모든 고통을 십자가로 씻어주시기 위해서,
②죽음은 이기고,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그 모든 고통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3)그리고 여섯 번째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다 이루었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흔히 ”다 끝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패자의 고백]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라는 것은 [승리자의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0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머리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요 19:30)
 
이 [고백]은 탈진한 한 사람의 마지막 힘없는 외침이 아닙니다.
33세의 청년이 삶을 살다가, 이 땅에서 한순간의 낭비도 없이,
”모든 뜻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았던 [하나님의 아들]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인생의 소명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의 [원어]는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라는 단어인데,
그것은 ”완성하다. 이루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쓰는 건, [종]이 ”주인이 시킨 일“을 명령대로 수행했을 때,
주인에게 가서 보고할 때 쓰는 말이고,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다 만들어 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서 “그것은 완성됐고, 아주 만족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내가 갚아야 될 [빚]을 다 청산하였을 때, 쓰는 이 [단어]를
”예수님이 마지막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단어를 남길까요?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 그 말을 우리는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며,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길 말을 생각하면서, 고난 주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