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분과위원회

의성 보나콤과 대안학교 (2021.10.09)

다이나마이트2 2021. 10. 9. 20:33

2021109일 아침6시부터 선교분과 위원회에서 의성 보나콤의 강동진 목사님을 모시고

보나콤과 대안학교에 대한 귀한 강의가 있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옛날에는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하던 사람인데 1997 12월 달에 교회를 사임하고 보은으로 내려왔습니다. 보은에서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보온으로 내려갈 때에 제가 사랑하던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땅도 사 주겠다고 하시고, 돈도 데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 모든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돈 받고 시작하면 좀 쉬울 수 있겠지만 만약에 내가 큰 교회나 개인들에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시작하게 되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 삶의 방식이 길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있었고 그래서 좀 힘들겠지만 내가 힘든 길을 걷겠다고 마음을 먹고 모든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땅도 없이, 돈도 없이, 장비도 없이, 경험도 없이 이 4가지 없이 만약에 내가 농사를 지어서 자립을 할 수 있다면, 그 길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진짜 많은 사람들에게 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보은으로 내려갔고 실제로 목사라는 사실도 숨기고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처음에는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살다가 한 가정 한 가정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집을 지어야 하는데 돈은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아파트 모델하우스 철거 할 때 나오는 폐목들을 구해다가 일일이 못을 뽑고 못을 뽑은 그 나무로 집을 지었습니다. 첫 번째 집, 두 번째 집은 그렇게 집을 짓고 다섯 가정이 함께 모여서 살았었습니다. 보은에서 정말 열악한 아주 산골 두메 마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처절한 실패였습니다. 정말 기도 열심히 했습니다. 아주 열심히 기도했지만 기도로 안 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밭에 가서 열심히 기도했지만 심은 작목들 보다 밭에 풀이 더 잘 자랐습니다. 초근목피 하는 그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리는 아주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공동체가 두 파로 쪼개졌습니다. 공동체가 완전 공동체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사유를 인정할 것인가? 이런 두 파로 쪼개져서 격렬한 싸움과 투쟁을 벌린 끝에 마지막 1 2일로 우리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이런 격렬한 토의가 있었는데 그 토의 마지막 날 둘째 날 싸우던 자리에 주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모두가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통회자복 하게 하셨습니다. 6시간이 넘는 회개와 통회하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안에 들려졌고 주님의 거룩한 계시가 부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가 다시 하나가 되고, 관계가 회복되고, 그 이듬 해에 우리가 빌려서 농사짓던 농가 밭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심은 작목들이 3060 100배의 결실을 맺는 일들이 있고, 온 마을 주민들이 우리의 밭을 보고 우리의 논을 보고 기겁을 하시는 이런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즘에 마을 주민들과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하나가 되어서 우리 마을을 바꿔 보자. 단순히 우리가 쌀 농사 조금 더 많이 짓고 이런 수준이 아니고 마을 전체를 바꿔 보자라고 하는 이런 제안을 마을 주민들에게 했고, 첫 번째 농림부에서 농촌체험마을로 선정하는 것이 있었는데 저희들이 그 공모에 신청을 해서 전국에서 최우수 마을로 선정이 되어서 2 4천만원의 자금을 현금으로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시작이 되었고 다시 2년 후에는 산림청에서 산촌생태마을로 선정이 되어, 우리 마을에 18억의 현금이 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행자부에서 산자부에서 무려 40억의 정부 예산이 마을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예산을 통해서 마을 전체의 마을 길이 새로 만들어지고, 담장을 개량하고, 부엌을 개량하고, 지붕을 개량하고, 마을 전체가 달라지는 그런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작은 공동체를 만든다고 생각을 했는데 성령님의 말씀하셔서 저희 공동체만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던 마을 전부가 달라지고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저희들이 농업이 체계화 되고 농업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보은에서 시작한 양계 사업이 지금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전 세계 65개국에 공급이 되어 있습니다. 수만 개의 양계장이 지어지고, 이 양계장을 통해서 농업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립시키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도에 우리 식구들을 설득하여 내가 농사도 지을 줄 알고, 집도 지을 줄 아는데, 내가 이 보은에 계속 살면 젊어서 몇 년 고생한 것 맨 날 우려 먹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 나는 어쩌면 제2의 최일도나 제2의 김진홍 목사가 될 가능성이 많다. 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한 번 더 공동체를 개척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식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땅을 빌려서, 산을 빌려서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어가는 이런 일들을 한번 해보고 싶다. 만약에 그것이 가능해지면 사막화된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돕는 그런 길이 열릴지 모르겠다 라고 식구들 5년을 설득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6년도에 드디어 허락을 받고 두 번째 공동체를 의성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보은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는 거와 같이 마을 길이 전부 다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정화 시설입니다. 마을에서 나오는 모든 오수와 폐수를 정화시키는 정화 장치입니다. 어떤 오수도 그냥 나가지 않고 이 마을을 최소한의 것이 들어오게 하고 최소한의 것이 나가게 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어 보자라고 하는 취지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저희 보은 마을에 있는 마을 회관입니다. 마을회관을 멋들어지게 지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함께 사용하는 그런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을공원입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마을에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 있습니다. 산자부에서 하는 그린 빌리지에 저희들이 어플라이를 해서 선정이 되어서 마을의 모든 집들마다 태양광 발전기를 올려서 에너지 제로, 에너지 자립마을로 만들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공원을 만들어서 마을 전체의 상황들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희들은 특별히 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양계가 정말 재미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돼지를 길러서 가난한 공동체 식구들에게 한번 자립시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돼지가 아니라 닭을 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돼지도 하게는 하셨지만 이 닭들이 진짜 멋진 하나님의 은혜요. 도구와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양계가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닭을 먹지 않는 민족은 없습니다. 돼지는 안 먹는 민족이 있지만 닭을 안 먹는 민족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닭은 초기 투자비용이 굉장히 적습니다. 돼지에 비해서 대략 10분의 1정도만 있으면 양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닭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좁은 공간. 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인 양계를 할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닭들은 6개월이 지나면 매일 알을 낳아 줍니다. 멋지게 알을 낳습니다. 얼마나 알을 잘 났느냐 하면 백 마리가 대략 88%에서 96%정도의 멋진 산란율을 보입니다. 닭들은 주일 성수도 안 합니다. 일요일에서 알을 낳습니다. 이런 멋진 양계로 알을 낳아 주다 보니까 세계 어디에서나 좁은 공간에서도 닭을 길러서 자립할 수 있는 멋진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양계였습니다. 제가 양계를 연구하면서 아시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양계 이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두 번째 누구나 할 수 있는 양계 무슬림 지역에서도 집에서 쫓겨나서 그래서 혼자 아이를 길러 가는 과부 아주머니도 할 수 있는,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이런 양계를 생각을 했는데 이것이 성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 세계에 수 만개의 양계장이 지어져서 수많은 가정들을 자립시키는 도구와 통로가 되었습니다. 옛날에 우리 어르신들이 알부자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닭들이 전 세계에서 알 부자를 만들어 주는 선교적 도구와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돼지도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하나님이 깨닫게 하셔서 돼지도 냄새 안 나는 양돈으로 사람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닭들이 알 바쳐서 선교하는 중국에서는 소학교의 옆에 양계장을 지어서 아이들에게 계란 먹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을 시작하니까 아이들이 계란을 먹으면서 예수를 믿기 시작하는 알 바쳐서 선교하는 그런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닭들이 알 바쳐서 선교한다는 소식을 돼지들이 들었습니다. 돼지들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도 살 바쳐서 나의 목살을 드리 오니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이렇게 주님의 손에 붙잡힌 바가 되니까 돼지도 닭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멋지게 알 바쳐서 살 바쳐서선교하는 이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풍력 발전기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시작했냐? 하면 어느 날 밭에서 내가 일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에게 한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의 머슴이 되어 달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의 머슴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깊이 연구하고 고민하다가 보니까요. 선교사가 나가 있는 어느 지역이나 예외 없이 선교사가 있는 곳은 복음이 없는 지역입니다. 이 복음이 없는 지역은 복음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만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식량에도 문제가 있고, 에너지에도 문제가 있고, 먹는 물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의식주에 기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들고 나가 계시니까 내가 이 후방에서 식량의 문제 또 주택에 문제, 에너지에 문제, 물에 대한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한 솔루션들을 만들어서 그 대안들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어쩌면 이것은 선교사들을 멋지게 도울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풍력발전기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보이다시피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뒤에 보시면 제너레이터가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자석 집어넣고 코일을 감아 가지고 바람에 의해서 풍력이 만들어지면, 돌아가면서 자기장에 의해서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이 에너지를 배터리에 축전해서 쓸 수 있습니다. 이 풍력 발전기 하나면 대략 1 kW에 발전을 할 수 있는 상당히 효율이 좋은 발전기입니다. 이런 풍력발전기를 만들어서 세네갈 등 다른 아프리카에 여러 나라의 보내서 전기를 자가발전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Solar Cooker라고 태양광 조리기입니다. 모잠비크에서 말라위에서 에너지가 없어서 밥을 못 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태양광 조리기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앞에 센서를 달았고요. 알루미늄 판을 만든 다음에 23.5도 지구의 경사 각도를 맞추어서 설치해 놓으면 여기에 주전자를 올려 놓으면 15분에서 30분이면 물이 끓습니다. 우리 그러면 밥을 해 먹을 수가 있습니다. 물이 끓으면 그것을 페트병에 넣어서 난방으로 더 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장치들을 만들어서 선교지에 보내면 선교지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국에 이런 식의 양계장이 지어졌습니다. 중국에는 벌써 수 천개의 양계장에 지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라오스에 지어진 양계장입니다. 순복음 측 선교사님과 협력해서 그분에게 기술을 가르쳐서 이와 같이 큰 규모,

3,000여 마리의 닭을 기르는 이런 식의 양계장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아시아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프리카까지 길을 여시면서 불어권 아프리카 24개 나라 지도자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매년 가서 제가 불어권 아프리카 리더들을 모아 놓고 양계를 가르치게 하시고 동아프리카 우간다를 중심으로 그 근교에 있는 다섯 개 나라에 사람들에게 양계를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여기는 남수단 입니다. 내전으로 초토화가 되어 있는 남수단에 세워져 있는 양계장입니다. 여기에 양계장이 지어지고 난 다음에 국회의원들과 도지사가 양계장을 견학 온 사진입니다. 그 이후로 매년 남수단의 청년들 30명을 불러다가 매년 양계 교육을 시킵니다. 이 사람들에게 농업기술과 에너지 기술을 가르치고 그 마을의 지도자로 길러내는 이런 일들을 남수단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간다에서 양계장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세네갈에 세워진 양계장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말레이시아 화교 교단에서 어느 날 저를 찾아 왔습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보은에 있던 저에게 그 멀리 직접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서 제게 무슨 말을 하냐? 면 말레이시아의 현재 화교교단이 돈을 데어서 동 말레이시아에 원주민 마을에 교회를 개척에 했다. 그리고 목사들에게 이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가보니까 목사들이 성도들을 데리고 무슬림으로 개종해 있더라 이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두 곳이 아니고 비일비재하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을 만나서 왜 그렇게 했냐? 라고 물어 보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그랬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돌아보면은요 경제적 자립의 문제는 단순히 교회의 문제가 아니고 신앙의 자유를 지켜내는 보루가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직접 요청을 했습니다. 와서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라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 말레이시아 온 지역을 다니면서 양계를 가르쳤습니다. 수 백 개의 양계장이 지어져서 그 사람들을 자립시키는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동말레이시아 쿠칭에서 93개 교회연합 집회가 있어서 제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단지 닭을 기르고 한 조그마한 농촌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총체적 선교에 대한 모델을 만들고 싶었는데 보시는 거와 같이 지금은 인도 차이나 반도에 있는 화교교회들의 교단들과 연계해서 화교 교회들이 이 양계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지역과 서남아시아 지역을 선교하는 도구와 통로로 자기들이 쓰겠다고 자기들이 협정서를 체결하고 그렇게 사역을 함께 동역 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새로 만들어진 의성 보나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성은 지금 5년 정도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한 분으로부터 45,000평에 개인 임야를 장기 임대를 했습니다. 그 주인을 세 번 정도 만났습니다. 만나면서 어르신이 땅은 10년 전에도 수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5년전에도 수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수익이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빌려주시면 이 땅에서 수익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제가 돈을 벌 자신이 있습니다. 이 땅을 빌려주십시오. 이 땅을 빌려주시면 제가 수익의 일정 부분을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설득을 해서 제가 그 땅을 공짜로 빌렸습니다. 그 땅을 공짜로 빌려서 그곳에 제가 헛개나무 15,000그루를 심었습니다. 그 땅을 다 간벌해 내고, 그 땅에 나무를 심고, 그리고 매년 그 나무 사이에 풀들을 제초하면서 숲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사막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마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서부 사하라, 챠드, 모리타니아. 이 지역은 제가 가서 보니까 양계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논농사, 밭농사 자체가 안 됩니다. 이들은 어떻게도 돕지? 라고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이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은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논 농사가 아니었습니다. 밭농사도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 9절에서 하나님께서 그 땅의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심었다이렇게 성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 그렇구나. 농업 이전의 사람들은 수렵을 했습니다. 나무를 심는 것이 맞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래서 제가 산을 하나 장기임대를 해서 그 곳에 직접 나무를 심고, 풀들을 제초하면서, 숲을 만들고, 나무를 통해서 살아가는 법들 숲을 통해서 살아가는 법들을 한번 만들어 보자. 그렇게 되면 사막화 된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9 가정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을 하나 임대를 했고 이 곳에 보이다시피 아홉 채의 집을 지었습니다. 맨 위에 보이는 검정색 큰 집은 꿀을 가공하는 곳입니다. 제가 목사이지만 제가 공동체의 대표가 아닙니다. 형제들 가운데 대표를 따로 세웠습니다. 그분들이 공동체를 대표하게 하고 회의를 주관하게 합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공식적인 직함이 무엇인가 하면 건축 담당입니다. 제가 보은에 내려가면서부터 건축을 직접 공부했습니다. CAD 불법 다운로드 받아 가지고 직접 설계하고, 자재 적산 해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들은 전부 다 저의 손으로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에게 오셔서 선교사들의 머슴이 되어 달라고 하셔서 의식주에 대한, 특별히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어떻게 하면 집을 잘 지을 수 있을까? 이를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이것이 그 산입니다. 드론으로 찍은 모습입니다 주변에 있는 산들과 달리 이 산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작은 숲입니다. 여기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를 심고 길 없던 이곳에 길을 만들고 지금 연구를 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저희들이 심은 헛개나무가 이와 같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헛개라는 나무는요 아카시아 보다 꿀이 더 많이 나옵니다. 이 헛개 꿀은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좋다 라고 이야기하는 마누카 보다 항 산화물이 20% 이상 많은 꿀이 바로 이 헛개 꿀입니다. 이 헛개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이곳은 양봉장입니다. 보은에서는 저희가 양계를 했는데 의성에 와서는 숲을 만들고 나무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양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300통 이상의 양봉이 있습니다. 이 양봉을 가지고 몇 가지 중요한 실험들을 했는데 이것이 성공을 했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은 산삼꿀입니다. 산삼으로 어떻게 꿀을 만드는가? 의아해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없던 꿀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여러분 산삼, 인삼은요. 인삼을 분해시킬 수 있는 효소가 우리 몸에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먹든 6년근 홍삼을 달여 먹든, 생으로 먹든, 어떤 방식으로 먹던 산삼의 성분의 10% 정도만 우리 몸에 흡수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배설되어 버립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6년된 산삼을 길러서 어떻게 했냐? 하면은. 엑기스로 추출을 했습니다. 엑기스를 추출한 다음에 이것을 꿀에 타가지고 벌에게 먹였습니다. 소는 4번 되새김질을 하는데, 벌은 80번 되새김질합니다. 이 벌들이 계속해서 되새김질을 하면서 산삼의 분자 고리가 끊어지고 발효를 합니다. 발효가 되니 것을 먹게 되면은요. 일벌 같은 경우는 45일을 삽니다. 이것을 먹이니까 90일을 삽니다. 여왕벌의 산란율이 12%에서 36%가 증가를 합니다. 저희들이 쥐 실험 통해서 먹인 쥐와 먹이지 않는 쥐를 비교해 보았을 때, 산삼 꿀을 먹은 쥐가 두 배 이상 오래 삽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이 세상에 없던 산삼 꿀을 만들었습니다. 헛개 꿀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녹용 꿀, 녹용으로 어떻게 꿀 만들 수 있겠습니까? 딱딱한 뿔을 저희들이 가수분해를 시켰습니다. 목사가 무슨 이런 짓을 다 하냐? 제가 사막화 된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까? 이것에 필이 딱 꽃 쳐서 녹용이 녹용이라는 것은 진짜 딱딱한 것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닭을 통해서 닭에는 모래주머니가 있습니다. 모래 주머니에 내피, 그 내피는 한자로는 계내금(鷄內金)이라고 합니다. 닭 안에 있는 금이라고 합니다. 금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진짜 귀한 물질입니다. 이것은 강력한 소화 물질이 나옵니다. 닭을 연구하고 공부한 적이 있다 보니까 닭에 대해서 저는 몇 일 동안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닭에 대해서만 떠들 수 있습니다. 닭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까 닭에 모래주머니로 녹용을 감싸면 이 녹용이 녹습니다. 가수분해가 일어납니다. 물이 생깁니다. 이 물을 꿀에 타서 벌에게 먹이면 녹용 꿀이 만들어집니다. 이 실험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이것의 타깃 물질이 두 세 가지가 있는데 아론산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녹용으로 있을 때보다 녹용 꿀로 만드니까 이 프로세스를 다 거치고 나니까 아론산이라는 물질이 1,000배 이상 더 나온다 라는 것이 분석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저희들이 기능성 꿀들을 계속 생산하고 연구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 메커니즘을 그대로 선교지에 적용하면 우리는 산삼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모리타니아에는 우리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만 있는 어떤 제품이 있지 않겠습니까? 약으로 쓸 수 있는 허브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고 이것을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그것을 분해해서 엑기스를 추출한 다음에 이것을 꿀에 타서 벌에게 먹인다 이런 메커니즘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꿀을 생산해서 현지인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는 길들을 만들어 가보자 뭐 이런 식의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홉 가정의 자립을 하게 되고 자립을 뛰어 넘어서 일정한 부분의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희들이 2018년도에 기독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보았습니다. 은퇴하시고 돌아오시는 선교사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대부분의 주거지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400명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는데 1.4% 만 집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다. 나머지는 아무런 답이 없다. 이런 기가 막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시다시피 선교 단체도 교회도 이것에 대한 대안들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밥을 같이 먹습니다. 땅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하! 내가 집을 지을 줄 아니까 집을 한 번 만들어 드리자. 모금을 해서 집을 만들어 드리고 이 주거의 문제가 해결되게 만들어 드리고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양봉을 하니까 양봉 하는 법을 가르쳐 드려서 이 양봉으로 꿀을 생산하게 해서 우리에게 꿀을 팔게 한다. 그래서 그것으로 자립을 하게 합니다. 양봉은 다 사 드리고, 벌통 다 사 드리고, 꿀만 생산하게 해서, 우리에게 팔게 했습니다. 꿀은 한 드럼에 대략 350만 원 정도 합니다. 올해는 이 꿀이 흉년이 왔습니다. 심각한 흉년이었습니다. 전국의 모든 양봉 농가에서 약20% 정도 밖에 채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올해 꿀 한 드럼에 450만원까지 가격이 올라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65세 이상이 되시면 대략 한 가정의 노령 연금이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나옵니다. 제가 은퇴하신 선교사님들께 내게 물어보니까 50만 원이 국가에서 지원이 되니까 얼마 정도만 더 있으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50만원 정도만 더 있으면 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50만원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 여러분 양봉에서 꿀을 만드시면 그 꿀을 우리에게 파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만 하셔도 얼마든지 자립이 됩니다. 양봉은 양계보다 더 쉽습니다. 그리고 양봉은 채밀기와 펌핑기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365일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루에 한 2시간 정도 멋지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우아하게 책 보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은퇴 선교사님 들에게는 너무나 멋진 일자리와 통로가 됩니다. 생산해서 판매할 곳이 없으면 어려움을 주겠지만 우리가 전부 다 사 드릴 수가 있으니까 판매와 유통에 어려움을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공동체이니까 밥 같이 먹습니다. 그리고 의식주에 대해서 중요한 부분들을 딱 해결하게 만들어 드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집 만들어드리고, 자립에 대한 길을 열어 드릴 테니, 대신해 우리 마을 어르신들 전도하십시오. 우리 의성만 하더라도 다문화 가정이 900 가정이 넘습니다. 정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 목회자 님들은 계십니다만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영어도 안 되는데, 베트남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인도네시아에서 오신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 선교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선교사님들은 선교지에서 10, 20년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고, 언어를 알고, 문화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립이 되면 그분들이 가서 예를 든다면 애가 아프면 병원에 갈 때에 선교사님들이 같이 따라 가서 통역해 줄 수가 있습니다. 애들 가정통신문 왔을 때의 이것을 읽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주 단순한 모습으로 김치찌개 끓이는 것 가르쳐 드리고, 이 메일 쓰는 것 가르쳐 드리고, 관공서에 갈 때마다 따라가서 말하는 것 가르쳐 드린다면 어쩌면 이것이 착한 이웃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옆에 있을 수만 있어도 진짜 멋지게 선교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요 2019년도에 집을 짓고 이렇게 집을 두 채를 먼저 지었습니다 가정이 입주를 했습니다. 1년 동안 이들이 여덟 명이나 전도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다문화 가정 여덟 명이나 전도하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 해 다시 집을 두 채 더 만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렇게 해서 한 10채까지 짓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가 모든 선교사들을 다 섬길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선교사들에게 집 문제, 그 다음에 자립에 문제, 그 다음에 의식주에 대한 문제를 딱 만들어 드리면 이런 대안들을 만들어 드릴 수가 있으면, 어떤 다른 선교단체 에서나 따라서 할 수 있는 모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미국에 있는 어떤 한 장로님이 내가 어느 날 미국 뉴저지에 집회를 하러 갔는데 저를 찾아왔습니다. 장로님이 저에게 어떤 제안을 했냐? 하면 그 분이 YOUTUVE에서 내 강의를 열 번 이상 들었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말이 된다.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농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 양계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양봉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그 교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가르치고 나면 우리가 돈을 대겠습니다. 1교회에 10만불씩 어떤 경우는 15만불씩 돈을 내겠습니다. 내가 300만불의 돈을 MPO에 걸어 두겠습니다. 목사님 마음껏 쓰십시오. 대신에 상환을 받으십시오. 상환 받은 돈은 목사님 알아서 쓰십시오.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벌써 16개 교회에 집행을 하고 돈이 들어왔고, 양봉 양계를 통해 교회들을 자립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교회들에게 어떤 지원을 했냐? 면 똑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옆에 은퇴 선교사님들을 모시는 마을들을 만드십시오. 내가 집 짓는 일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한국 교회가 볼 때의 은퇴 선교사님들이 골칫덩어리, 문제 투성이 일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을 때, 그 성전을 재건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디아스포라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그럼 지금 이 시대에 한국 교회, 무너져 가는 한국 교회의 디아스포라 돌아온 자들이 누구인가? 제가 볼 때는 돌아오신 선교사님들 입니다. 선교사들을 한국 교회가 그것도 농촌 어려운 교회들이 이들을 잘 품어 낸다면, 농촌 안에서 새로운 부흥과 갱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농촌 교회가 이 일들을 해 보자. 그분들은 기도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니까 언어가 통하는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운 일입니다. 이것이 꺼져버린 농촌 교회의 기도의 불을 다시 되살리고 예배가 회복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흐리게 하는 은혜의 통로들이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선교사들은 결코 뒷방 노인네가 아니고 골치덩어리가 아니고 한국 교회를 다시 회복시키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천사들이다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마을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모시고, 선교사님들이 중심이 되어서 식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머리도 깎아 드리고, 마을 청소도 하고 하면서, 주민들과 참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멋진 선교에 대해서 계속되어 가는 일들을 우리 마을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40대 젊은 선교사들 제들이 2010년부터 제이에스이라는 학교를 만들어서 무슬림 지역에 있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고는 하지 않고는 선교를 할 수 없는 젊은 선교사들의 대상으로 Business As Mission (BAM) 이라고 하는 미션스쿨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젊은 선교사들을 만나다 보니까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자녀교육에 문제였습니다. 국제학교에 보내기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고, 현지인 학교에 보내기는 또 너무 어렵고, 심각한 어려움을 감내해야 되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제안에 선교사 머슴이 되어 달라고 했던, 그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서 제 안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을 어느 날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있는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을 함께 모여서 살게 하자.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벌써 군대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마음이 섬짓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군대간 아이들이 총을 들고 오히려 자기를 왕따 시켰던 아이들을 향하여 이 총질을 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내 안에 있습니다. 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우리가 제대로 섬겨 내고, 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자기 정체성을 심어주고, 예수 안에서 자기를 다시 한번 재해석할 수 있는 길들을 열어 줘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안타까움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하자. 학교를 해 보자 하는 이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저희 지역의 유지를 몇 분 하고 같이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사립학교 이사장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거기 이사장님께서 하고 계시는 학교가 어려운데 그 학교 저에게 주십시오. 저 한테 주시면 그 학교를 선교사 자녀를 위한 멋진 학교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제안을 했습니다. 이렇게 대뜸 제안을 했는데 이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작년 같으면 드리겠는데 지난 연말에 온 교직원들이 한번 잘 해보자고 심기일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쿨하게 아 괜찮습니다. 열심히 잘 하시기를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몇 달 지난 후에 그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이 왔는데 그분께서 뭐라고 연락이 왔냐? 고 하면 보나 영농조합 이것이 우리 공동체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 공동체에 바로 옆에 네모 난 산이 매물로 나와 있는데, 이 산을 내가 사들이면 목사님 말씀하셨던 그 학교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Why Not? 예 사 주시면 제가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 2 8천평 땅을 기증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진짜 놀라운 주의 은혜입니다. 학교를 하기 위해서 이 땅을 일단 기증을 받았습니다.

저는 생각할 때 이 아이들을 멋진 학교라고 생각하는 진짜 멋진 학교를 만들어 보자. 다른 것보다 정말 행복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만들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100명에서 120명 정도의 사이즈에 학교를 만든다. 생각해보시면 한 100명 정도 모이면 그 중에 20% 정도는 최고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머지 아이들은 몸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일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모두 다 교실에 꼬불치고 앉아 가지고 고생하게 만들지 말고, 내가 집을 지을 때 따라 나와서 나랑 같이 집을 지어 보자. 어떤 아이들은 저희 양봉장에 와서 양봉을 같이 한번 해 보자, 혹은 양계를 한번 같이 해 보자. 나무 기르는 것 같이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 다양한 농업을 통해서 실제적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전인적인 교육들을 한 번 좀 해 볼 수 있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학교는 중앙에 북 카페를 하나 세우자. 멋지고 고가 높은 뻥 뚫려 있는 그런 카페를 하나 세우자. 옛날에 저와 여러분들은 도서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문화가 다릅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북 카페 멋지게 지어 가지고, 거기서 놀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거기서 토론도 하고, 공부도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자. 그리고 또 한쪽에는 교실들이 우리가 다녔던 네모 반듯한 교실이 아니라 숲 사이에 작은 교실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또 한쪽에는 아까 우리가 마을을 보았듯이 집들이 이렇게 있는 이런 식의 작은 숲 속 빌리지를 한번 만들어 보자. 숲 속 마을을 한번 만들어 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업들에게 저희들이 제안을 해서 우리에게 북 카페를 하나 좀 만들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라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들과 연합해서 교실들을 예를 들으면 온누리교회와 연합해서 교실 한 다섯 채 지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온누리교회 선교사님 자녀들 우리에게 보내 주십시오. 숲을 팔아 가지고 아이들 교육시켜 보겠습니다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큰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큰 돈 많이 들일 필요 없이 우리 기숙사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1동씩만 지어 주십시오. 기숙사 방 4, 40평 정도로 가운데 리빙 룸, 그리고 화장실 두 개짜리 정도의 집을 지어 가지고 학년별로 집을 한 채씩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략 학년별로 남녀 기숙사가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고 있습니다. 교실은 한 10개에서 15개 정도 식당을 겸한 실내체육관 하나 크게 짓고, 북 카페 하나 지어 보자. 예배당은 우리 공동체와 함께 사용하는 그런 예배당을 만들어 보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중, 고등학교 과정으로 비인가 대안학교로 만든다. 인가를 받는 순간에 국가의 너무 심한 통제와 제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학교를 한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성 군수를 만나서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원하고 있습니다. 군수님이 이번에 뭐라고 했냐? 하면은 목사님 우리가 학교 건축을 위해 필요한 도로, 상하수도, 전기와 인터넷 인프라 구축 모두 다 우리가 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역 제안을 했습니다. 교사들 내가 볼 때는 교사들이지만, 의성군에서 볼 때는 귀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귀농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임대주택을 좀 지어 달라 라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귀농 하게 될 학부모님들도 의성군에 더 많이 들어오시게 됩니다. 제가 전국에 있는 대안학교를 쭉 다녀 보니까요 학교가 잘 세워지면 학부모들이 귀농을 하게 됩니다. 학교 부근으로 이사를 옵니다. 여러분 혹시 아십니까? 2030년도 의성군은 가장 먼저 자연 소멸될 지방자치단체가 의성군입니다. 이 의성군을 예수의 이름으로, 부활의 능력으로 이 마을을 한번 살려 보겠다 라고 하는 마음이 저에게 들었습니다. 적어도 기독교인 2천명 정도가 들어오는 그래서 다시 기독교에서 한 지역이 변화되고, 소생되는 그런 일을 경험하자. 그 첫 출발점으로 우리 공동체가 들어왔고, 중국에서 추방된 선교사들을 한 10 가정을 모아 가지고 우리 근처에서 공동체 하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의성군에 한 10개 정도의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학교 만들어서 한번 제대로 다음 세대를 길러 보자 그리고 이 아이들 중에서 중국에서 추방된 선교사의 자녀들은 어쩌면 한국말 보다 중국말이 더 편한 아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중국어로 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대학은 한국 대학을 보내지 말고 중국에 있는 대학을 보낸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이들이 중국 대학을 갔을 때 여러 분 중에 CCC 계셨던 분 계십니까? 내비게이토에 계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미 대학교 학생일 때 학생들에게 학생의 신분으로 다른 학생에게 복음을 전한 경험이 있습니다. 20대 선교사의 맥이 끊어져버린 한국 사회 속에서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예수를 경험하게 하고, 예수를 맛보게 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만든 다음에 이 아이들이 중국 가서 중국 대학에서 거기에서 Student Missionary로 다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누리 교회와 함께 적어도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는 여러분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니까. 이 일을 같이 공동으로 동맹의 형상에서 같이 한번 해보면 어떻겠나? 싶습니다. 저는 한 30억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동 재정을 마련하고, 함께 기획하고, 함께 운영하는 학교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희들이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해야 될 일,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해 드렸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앞으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