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관련

온누리 빛 7월 월례예배 (2021.07.31)

다이나마이트2 2021. 8. 1. 20:08

2021년 7월 31일 토요일 저녁 9시에 온누리 빛 7월 월례예배가 고 최상운 선교사 추모 예배로 드렸다.

지난 7월 14일 수요일 새벽에 선교지 오만에서 코로나로 인하여 순직하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는데

아직 장례도 못한 상황이지만 Zoom을 통하여 사모님과 두 딸과 아들을 함께 모시고

과거 청년부에서 함께 사역했던 형제님을 추모하며 참 의미있는 예배를 하게 되었다. 

지난 달에도 우리가 함께 예배했던 것 같았는데 선교사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황망했다.

8월에는 한국에서 뵐 수 있기를 우리 모두가 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8월 월례예배 순서지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주님은 그 이름 마음에 새겼네  

세상이 주 이름 모른다 하기에 오늘도 그 이름 열방의 새기리

땅의 모든 끝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잃어버린 영혼들 향한 아버지의 꿈 당신의 삶을 통해 이뤄지리.

우리를 사랑하사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사랑의 하나님! 

이 시간 아버지께서 사랑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어디를 가든지 내 말에 순종하라 하신 때에 순종 하였고 또 그곳에 가서 충성하라 하셨을 때 충성했던 사랑했던 故최상운 형제를 위해서 또 이 시간 그 형제를 추모하며 같이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 땅에 우리를 불러 주셔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형제를 생각할 때 참으로 마음이 안타깝고 힘들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품에 있으며 너무나도 또 다시 소망을 갖고 주 앞에 나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사랑하는 남편과 아빠를 잃은 유가족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삶 가운데 그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그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늘 동행하셔서 그들의 삶 가운데 깊이 인도하시고 도와주셔서 그들이 아버지가 걸었던 남편이 걸었던 그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런 상황 가운데 또 이렇게 귀한 주말에 함께 예배합니다. 故최상운 형제를 기억하며 그 형제가 걸어갔던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예배를 통하여 다시 한번 다짐 하는 그런 시간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 품 안에 있는 상운 형제를 기억하며 드리는 예배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고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걸으라고 하는 그 걸음에 동참하며 걸어가는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주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기억하는 상운 형제의 그 순종과 그 축복 다시 한번 다짐하는 귀한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중현 2총무님께서 고최상운 선교사 약력 보고를 해 주신다.

92년이면 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온누리 교회에 오셨다. 하용조 목사님께 세례를 받으셨고 선교사가 되셨다.

정말 놀랍다. 청년부 예배 중에 언젠가 결혼하자 말자 호주로 떠나는 커플이 있다고 축하했던 기억이 난다.

그 커플이 최상운 형제님 이셨는지 그 때는 몰랐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서 44장 21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 아멘. 세상 말로 동네 형님 같았던 최상운 선교사님을 추모하면서 감사 예배를 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시는 말씀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이 말씀으로 여러분들하고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말씀 하신다면 저는 추억이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 하시느니라" (히10:10) 아멘.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고 우리 기억 속의 최상운 형제님이 살아 있다면 그는 죽었으나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오늘 저는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분명히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람들은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 형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십여 년이 지나면 우리는 잊어버릴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최상운 형제님을 기억하시는 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만물을 지으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아버지의 능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그만 풍파에도 쉽게 흔들리고 아주 작은 환란이 와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믿음까지도 송두리째 무너지게 되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한 우리 최상운 선교사님은 하나님에게서 기억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해 주신다면 우리의 육신은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상운 선교사님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최상운 선교사님은 하나님 앞에 살아 있음을 믿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한 그 일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 일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최상운 선교사님은 우리와 이별하지만 우리 기억에 최상운 선교사님이 계시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최상운 선교사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에게 최상운 선교사님이 살아 있는 것처럼 우리들 기억에 최상운 선교사님이 살아 있다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잊어버릴 수 없는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청년부가 나누어 지던 시절에 저는 도중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형을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제가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인데 내 모든 상황을 잘 알던 형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형제님도 결혼을 하는데 "하나님 저도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셨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납니다. 그리고 청년부에서 지금의 사모님을 만나서 결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우리 최상운 선교사님은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많은 청년들이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마음에만 있던 그 열정을 주님을 위하여 과감하게 드렸던 그 선교사님의 결단이 용기가 이제는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최상운 선교사님은 지금도 살아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억에 살아있다면 최상운 선교사님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복음 전하는 그 일을 우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최상운 선교사님은 선교를 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진행 하지 못하고 여기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역, 비전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는 일 입니다. 복음 앞에 바로 서서 우리 모두가 어떤 모양으로든 함께 감당해야 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형님이 하고 싶었던 복음 전하는 바로 그 일, 이어서 우리가 함께 같이 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 사역을 기억하면서 어떤 모양으로든 함께 하게 될 수만 있다면 그 사역은 영원히 이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모양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상황과 처지에도 우리가 감당해야 될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평생 보여 주신 섬김과 사역을 우리에게 남겨 주시고 가셨습니다. 우리 기억에 최상운 선교사님이 살아계시다면 우리는 그 사역을 함께 하는 것 입니다. 이제 슬픔을 뒤로하고 함께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이 추모 예배가 그 마지막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 것을 겸손하게 선포하고 싶습니다. 잠깐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사망 권세 안에 종노릇하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선한목자가 되게 해 주셔서 우리를 직접 보호하시고 우리의 기억을 회복시키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찬양하며 목적되신 그 주님과 함께 천국 본향을 향해 함께 나가는 그의 어린양이 되게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최상운 선교사님이 전하시든 복음 전하는 그 일이 멈춰지지 않고 이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님들의 남겨진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사모님과도 딸과 아들을 붙잡아 주셔서 갑자기 비어버린 그 남편의 자리, 아빠의 빈자리를 마음을 모아 잘 매꾸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악한 세력들과 영적 전쟁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앞서가 주시고, 악한 영들을 물리치게 하시고 날마다 승리로 보장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대장이 되어 주셔서 싸워 주시고 승리케 하여 주시고 강한 용사가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따르는 예수님의 좋은 군사가 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승리하며 승전가를 부르며 승리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승리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위하여 살기로 결정하는 사역자들 되게 하락 하여 주옵소서. 주신 소명 잘 감당하며 천국 소망 바라보며 살아가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축복하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민수> 예 반갑습니다. 예민수 형제입니다.  최상운 형제님 추모 예배를 드리고 이 자리에서 상운 형제를 기억하면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요. 최상운 선교사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최상운 형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많은 곳에서 우리 상운이 형을 기억하면서 추모하고 예배 드리겠지만, 우리는 형으로 부를 수 있다라는 모임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고,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인 것 같아서 청년부 때가 기억이 납니다. 다들 눈이 흐려서 이제는 형제들도 안경을 쓰고 이~렇게 보고 계시는데, 머리카락도 좀 빠지고,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그렇지만 다시 청년부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있고, 특별히 우리 최상운 형제님 자녀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함으로 인해 믿음의 열정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마음이 있어 힘들지만 굉장히 행복한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청년부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듯한 시간들을 짧게 짧게 가지게 되는데 천국을 경험하는 순간이 오늘 이 시간도 우리가 어떻게 보면 천국을 맛보는 경험의 시간들 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는 최상운 형제님을 기억하며 함께했던 시절의 이야기들, 에피소드들 그리고 상운 형제가 남겨줬던, 우리가 천국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Zoom의 한편에 들어와 계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야 잘 이야기 해라' 이렇게 이야기 하실 거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우리가 준비된 순서대로 노창인, 유영춘, 이상호, 이소엽, 황성규 형제들은 마이크를 좀 열어 주시고 이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좀 듣고, 더 나누고 싶은 분들 또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추억들을 함께 나누면서 마음의 무거움도 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그리고 우리가 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상운 형제님이 남겨 준 삶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고민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럼 노창인 형제부터 좀 나눠 주시겠습니다.

 

<노창인>네 안녕하세요? 노창인 입니다. 저는 기억나는 사람들이 이상호, 황능준, 이소엽, 황선규 등등 61년 62년생 들인 것 같습니다. 상운이 형님과 아주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고 후원을 했습니다마는 저는 후원자가 아니고 제가 Zoom 예배를 처음 이렇게 재작년에 시작 할 때에 좋은 모임으로 예배를 할 때에 카톡으로 이렇게 상운이 형제가 따로 반갑다고 개인적으로 문자를 보내 와서 받았어요. 여러분들도 여기에 계시는 분들 가운데 해외 거주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저 같은 경우 우울증이 왔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들도 힘들고, 저는 그런 것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대화하는 것도 그렇게 내키지 않고 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던 그쯤에 상운이 형이 저에게 문자를 보내게 되었고, 카카오톡을 통하여 긴 통화를 두 번 정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누어 주었던 내용들 가운데 호주에서 있었던 사역들, 중국의 사역들 그 다음 오만에서 그리고 앞으로 계획된 알제리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말하는 음성 중에 느껴지는 그 '긍정', '열정'들이 특히 매우 힘드실 텐데 그 긍정적인 마음들이 매우 위로가 되었고, 저에게도 참 큰 위로가 되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주변의 대한, 이웃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구요, 마지막에는 코로나 때문에도 두 딸은 카타르에서 지내고 있지만, 누나들 밑에서 자란 막내 아들은 다른 지역으로 독립을 해 나가야 되는데, 아버지로서의 그 걱정,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불과 몇 개월 전에 나눴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이렇게 현재의 소천 소식을 들으니 정말 마음이 답답 하더라고요. 그랬던 기억이 나고 또 작년부터 양력에는 92년도 왔다고 되어 있지만, 94년도 청년부 4부 시절, 4부로 나누어졌을 때에 제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마도로스를 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부 시절에 정착하던 그 과정들이 머리 속에 슬라이드처럼 지나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정이 들었는지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예민수>예 감사합니다. 많은 모습으로 상운이 형을 기억하지만 청년부 6부를 함께 했지만 교회에서 인상들은 잘 안 쓰시지만 리더십 있다 보면 교회에서 좀 불편한 형제들도 있고 또 어려운 일들도 있고 인상까진 아니지만 고민스러운 얼굴을 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상운이 형에게는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너털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들이 얼마 전에 우리가 처음으로 Zoom으로 예배를 할 때 머리를 밀고 들어오셨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능준 형도 머리를 일부러 밀고 오신 건 아닙니까? 그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유영춘 누님 마이크 좀 켜주시고 상운이 형님과 영춘 누님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으신지 좀 궁금합니다.

 

<유영춘>상운 선교사는 선교사 라기보다는 저에게는 영원한 동생입니다. 청년부에서 알았고 내가 95년도에 처음에 시드니로 DTS 스텝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하태식 목사님은 잘 아시지만 굉장히 시골입니다. 그때는 언어도 잘 안 되고, 처음 한국에서 나갔기 때문에 저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라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언어나 관계나 여러 가지로 문화 충격이나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거의 주말마다 차를 가지고 그냥 제가 사는 곳까지 저를 데리러 와요. 꼭 자기네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태식 목사님도 아시겠지만 월남쌈. 그 월남쌈도 만들어 주시고 허윤정 사모님이랑 셋이서 같이 이야기도하고 너무도 다정하게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습니다. 특별히 하나 기억나는 것은 하용조 목사님이 시드니에 부흥회 강사로 한번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 상운 형제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누나 빨리 와' 그래서 '왜?' 그랬더니 내가 목사님한테 이야기 해서 '목사님이 너 보고 싶대' 하용조 목사님 온누리 선교사라고 했더니 '그래 그럼 한번 만나 보고 싶다' 그래서 한번 만나 뵈었는데요. 하용조 목사님이 친정 아버지처럼 '힘들지' 그러시면서 당시에 200불을 주셨는데 저에게는 매우 큰 돈이었습니다. '맛있는 거 사 먹어' 그러시면서 주셨는데 너무 좋은 기억도 나고, 우리 상운 형제는 그런 중간 다리 역할을 참 잘 하는 사람이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량 역할을 잘 하는 그리고 섬기는 것을 너무 잘 했었습니다. 그리고 또 섬기는 것이 그냥 몸에 베어 있습니다. 섬기는 것이 그냥 몸에 베어 있었고, 저에게도 농담도 참 잘 하시고, 누나라고도 했지만 가끔씩 유영춘 유영춘 하고 이렇게 불렀었습니다. 그런 것이 나에게는 너무 정감이 있고, 저는 97년도에 나오게 되었고, 항상 우리 허윤정 사모나 그리고 최상운 형제는 내 마음 안에 항상 있었지요. 그리고 Zoom을 통해서 몇 달 전에 우리가 또 만났는데 이번에 상운 형제가 오기를 기다리고,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다렸는데 주님이 너무 빨리 데려 가셔서 가슴이 아프고, 제가 사역하는 것은 보지 않았지만 우리 상운님의 사역이 눈에 선합니다. 오만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들을 정말 사랑으로 다 잘 섬겼고, 우리 상운 형제의 그 좋은 부분은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자기의 힘든 것을 다 내어 주시고, 내가 계산하고 유익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했던 분이었습니다. 복음 안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셨을 것이고, 특별히 두 자녀들에게 그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위로와 격려를 주셨던 분이라는 것을.... 그런 좋은 아버지를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만에서도 그렇게 하셨으리라 믿고 또 우리 윤정 사모님 자녀들은 지난 토요일인가요? 화장하는 그 사진을 보고 제가 잠을 못 잤습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갑자기 남편과 아버지를 보낸 아이들과 아내의 마음이 어떨까? 내가 상담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이 느껴졌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하나님의 위로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고 내 마음 안에 우리 상운 형제는 영원한 동생이고, 사랑하는 동생이고, 그 사랑하는 마음이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내년에는 상담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데 우리 상운 형제님이 달려 갔던 것처럼 저도 그 길을 달려 가야지요. 감사합니다.

 

<예민수>예 감사합니다. 선교사님 우리 지체들 가운데 선교사들의 마음과 고민과 열정이 참 이번 일을 통해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호주 시드니의 YM에 계시는 하태식 선교사님 말씀하시는 것이죠? 지금 국내에 들어와 계시는데요. 마이크를 좀 ON 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모임에서 나오는 목사님, 선교사님들도 모든 계급장을 내려 놓고 모두가 다 형제자매로 호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 영춘 자매님도 호주 이야기를 해 주셔서 호주에 계시는 하태식 형제님께서 최상운 형제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나 또 드리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태식>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우리 최상운 형제를 생각하면 신혼여행 겸 해서 호주에 오셨기 때문에 신혼이라는 것이 기억이 나구요. 청년 시절이 기억 납니다. 제가 말씀을 보니까 예레미야 2장 2절 말씀에 보니까 "내 청년의 때와 내 신혼의 때를 기억한다"(렘2:2)라고 말씀 합니다. 그런데 우리 최상운 형제님 같은 경우에는 그가 걸었던 길이 씨뿌리지 못할 그런 건조한 땅, 또 광야와 같은 땅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청년의 때의 대부분은 뭔가 Guarantee가 된 곳을 따라서 가는데 '우리 상운 형제는 그러지 않은 곳을 믿음을 따라 걸었던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형제님은 그렇게 살았구요. 특별히 개인적으로는 함께 교회 생활을 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 생활을 같이 했기 때문에 너무 잘 알고, 한 번도 화내는 일이 없으시고, 허윤정 자매님도 그렇고, 그 길을 포기하겠다고 말해 본 일도 없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형제였고, 누구에게든지 쉽게 다가 가서 도와주시는 분이셨고, 그랬던 분이셨는데 참 이렇게.... 3년 전에 시드니에 한번 방문하셨을때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 참 아쉽 습니다. 오늘 저는 온누리 OB 청년부에 모임이라고 해서 왔더니 청년이 아니라 다 나이가 드셨네요. 지금 보니까 하하하. 온누리라서 감사하고 저는 온누리하고 특별한 관계 이니까요 제가 늘 하용조 목사님하고도 가까이 지냈고 그러면서 이제 하 목사님 돌아가신 것도 생각이나고, 최상운형제가 갔다고 하니까 어떻게 이 큰 일을 다 감당해낼 수 있을까 사모님께서....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모임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민수> 예 감사합니다. 하태식 선교사님은 호주에서 쭉 사역하시고 계셨습니까?

<하태식> 예 그렇습니다. 저는 94년도에 여기에 왔고요. 83년도에 한국에 예수전도단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10년간 사역을 하고 한국에서 파송을 받아서 호주로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여러 번 온누리교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집회에 올 때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서 콜링도 있었고 그렇지만 저의 콜링은 이곳 이어서 제가 우리 하용조 목사님과 몇 번 대화도 했었고, 또 그런 힘들어 한 우리 최상운 형제님께서 어려운 길, 힘든 길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하게 가는 것을 제가 중국에 가시는 것도 보았고, 중국에 가서도 만났었고,  오만에 가셔서 이렇게 사역하시는 것을 보면서 큰 힘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예민수> 예 감사합니다. 특별히 YM에 계셨던 분들, 호주에 계셨던 분들은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태식 선교사님께서 우리 Zoom 모임에 함께 해 주셔서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전용국> 하태식 선교사님 제가 87년도에 예수전도에서 처음 간사 생활을 할 때에 86년도에 운전을 배워서 제 운전 실습을 시켜 주셨던 분이 하태식 선교사님 이셨는데 혹시 그때 저에게 운전연수를 시켜 주셨던 그 형님 맞으세요?

<하태식> 예,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말씀 하니까 제가 얼굴을 보니까 얼굴은 많이 바뀐 거 같은데 기억이납니다. 예 하하하...

<전용국>예, 36년 만에 처음 뵙겠습니다. 그 때만 해도 좀 들어 보였었는데 지금 엄청 젊어 보이십니다.

<하태식> 없어 보여서 좀 있어 보이려고 들어 보이나 봅니다.

<전용국> 아이고 반갑습니다. 형님.

<하태식> 내가 YM에 있다가 보니까 지난 해 코로나 펜대믹이 되고 대면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었을 때 되돌아 보니까 오대원 목사님이 61년도에 한국을 오셨습니다. 데이빗 로스 목사님이라고 제가 한국에서 84년도에 같이 있었는데 나와서 제가 보니까 그분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래서 제가 오대원 선교사님 "한국 60주년 선교 유산"이라는 책을 제가 출간을 했습니다.

 

<예민수> 예 감사합니다. 예 사실 우리가 오늘 최상운 형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고, 처음 소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지만 우리 온누리교회 청년부 영성이 오늘 이 시간을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시간들과 슬픔 가운데 유머들과 이런 것들로 시간이 채워졌으면 좋겠고요. 잠깐 무거운 상황인거 같은데 전용국 형제님 오셔서 "TV는 사랑을 실고" 버전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호주에서 있었던 생활들 시간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이상호 형제님 좀 나눠 주실까요?

 

<이상호>우리 상운이를 기억하면 네 가지 정도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92년도에 저도 같이 생활을 했었고 저랑 작은 오피스텔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놀라는 것은 최상운 형제가 청년부라는 것에 대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두번째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라는 것에 대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 번째는 아까 우리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형제들을 자꾸 사귀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을 보고 상운 형제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네 번째로 이 분은 나보다 건강이 굉장히 좋으셨던 분이고 탄탄한 몸매를 가지신 분으로 기억하는데 나 보다 하늘나라에 먼저 간 것에 대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는 이렇게 간단하게 상운 형제를 추억 하겠습니다.

 

<예민수>상호 형제님 상운 형제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더 많으십니까?

<이상호>예 그렇습니다. 내가 61년생입니다.

<예민수>예 그러시군요. 상호 형제가 뭐를 이야기 하실 때 4가지로 정리해서 이야기하시고 이러시는 분이 아니신데...

<이상호>나이가 들고, 먹고 살다 보니까....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이 정도로 되었습니다. 하하하...

<예민수>상운이 형제는 원래 긍정 에너지가 충만했었고 상호 형제는 사실 말 실력이 길지는 않았는데 궂은 일을 청년부 때부터 몸으로 사실상 선교사의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이소엽 형제님 좀 이야기해 주실까요?

 

<이소엽>저는 추억 나누기를 한번 생각해 보니까 3건 정도가 지금 기억이납니다. 92년에서 94년경까지 동고동락했던 시절하고, 오만으로 선교사 나가기 전에 한국에 왔을 때 들려주는 이야기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서 한번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92년 93년경에는 교회에서 여러가지 집회가 많이 있었잖아요? 집회도 같이 참석해서 제가 믿음은 참 부족했지만 여러집회에 참석을 했고, 집회가 끝나면 지금 기억이 나는데 삼각산 기도원에 기도 한번 하러 가자라고 해서 형제자매 한 다섯명 정도해서 한 차를 타고 새벽 2시 3시까지 함께 기도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서울 도심을 바라보면서 그때 나라를 위한 기도가 무엇이라는 것을,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기도는 그때 처음으로 목격하고 경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저를 기도의 현장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제가 우면동 KT 옆에 방을 얻어서 생활 할 때에 같이 좀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때도 서초구 우면동까지 와서 늦게 잠이 들곤 했는데, 그 때도 새벽 기도를 몇 주일 정도 마음잡고 나갔었는데, 그때 새벽 기도를 늦게 집회에서 돌아왔을 때도 새벽 기도 가려고 하니까 힘이 들긴 했지만 하루는 새벽에 나의 발꿈치를 탁 치는 거예요. "상운이 형!  왜 나를 발로 차느냐?"고 그렇게 이야기 했더니 '안 찾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이 '성령님께서 새벽 기도 가라고 나를 깨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늦지 않고 새벽 기도에 참석했었습니다. 아 그때 참 은혜의 시간들을 함께 가졌던 것이 지금 기억이 납니다. 나에게 영적으로 많이 인도해 주었고 또 통로가 되어 주었던 분이 바로 최상운 형제였었습니다. 세번째는 2011년도에 오만에서 한국에 왔을 때, 2011년도 '아덴만 여명작전'이 있었을 때 해군 함정이 나오고 이국종 의사 아주대 교수 이야기가 나올 건데 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SBS 기자가 현장에 왔는데, 그 때 한 일주일 정도 안내를 해 준 적이 있었는데 하나의 기적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SBS 기자 한 분이 5층 숙소에서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 사람 예수를 믿지도 않는 분이었는데 그때 기적적으로 조금만 다치고 온전하게 되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그런 사건도 한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 최상운 형제는 가는 곳마다 영적인 것에 관심도 많았고 또 다른 제주도 참 많았습니다. 다른 이야기들도 참 많이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해 줬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자기는 그것이 참 도전이 되었고 이 세상에 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고, 그분의 역사 가운데 있구나! 하는 믿음을 주시는 통로가 되었던 것이 우리 최상운 형제 선교사님이 였습니다. 그래서 실천은 처음 추억을 이야기하라고 했을 때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상운이 형제가 늘 예수님을 생각하고 했던 것처럼 성령님과 늘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신분이 바로 상운 형제가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로 저도 선교나 나에게 대해서 이렇게 늘그막에 직장을 다 마무리 할 때가 되었으니까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고 중에 있습니다. 나에게는 영적으로 굉장히 도움을 주신 최상운 형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 정말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사실 사명이 끝나면 소천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다고 했을 때에 사실 저도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우선 한 20년은 더 사역을 하셔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운 선교사님이 소천하신 거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소천하신 의미와 목적과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볼 때 그 분의 뒤를 이어갈 수 있는 부분을 제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에 이런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남은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채워 주시고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면서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예민수> 네 감사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삶을 따라서 남은 생을 또 어떻게 살아야 될지 고민 하신다고 소엽 형제님이 말씀하셨고 그런 말씀하실 때 우리 김성호 목사님 박수를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마 하나님께서 또 그 발걸음 인도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우리가 모두 다 상운 형제의 소천 소식을 듣고 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황성규 형제님, 양철심 자매님 가장 최근까지 친밀하게 연락도 하셨고 한국 들어오시면 여러 가지 계획들도 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충격에 굉장히 컸을 거 같습니다 성규 형제님 이야기를 좀 듣도록 하겠습니다.

 

<황성규>예 갑자기 새벽에 전화가 와서 최상운 형제가 돌아가셨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20일 날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서 한국에 들어오시면 어떻게 지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몇 일 전에는 문자로 통화도 하고 그렇게 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소식을 듣고 참 너무 슬펐습니다. 상운 형제를 생각하면 첫 번째는 같이 생활 한 것 이였습니다. 결혼하기 바로 전에 1년 동안 같이 잤습니다. 같이 살면서 헌신하는 모습, 믿은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로 순종하는 모습들, 나에게는 큰 도전이 되고 내 삶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결혼 하자 마자 바로 호주로 떠났잖아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리고 또 아무런 계획도 없이 중국 선교사로 들어갔고, 또 그 곳에서 나와서 오만에 아무것도 없는 그 곳에 하나님의 부르시는 목적에 따라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그런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자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있었나?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상운 형제를 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많은 추억이 있거든요. 내가 마르페라는 출장뷔페를 했잖아요. 허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선교사로 나가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 전자 침 놓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마루타를 많이 했었는데 마루타를 해도 그 침을 놓았을 때 아픈것이 나았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믿음 안에 내가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그런 믿음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침을 가지고 나가서 가끔 쓰기도 하는데 저도 처음 해외 아웃리치를 갈 때에 전자 침을 가지고 가서 사용했을 때, 병이 낫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으로 나갔을 때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고 경험해 보았습니다. 상운 형제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마루타라고 해서라기 보다는 치료를 받고 나서 아픈 것이 나았기 때문에 또 다시 가서 치료받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부르면 또 와서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아까 우리가 헌신에 대해서 섬기는 모습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 주셨는데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그런 모습들 내 아들에게 한국에 있을 때 음식을 해 주었습니다. 된장찌개를 해 주었습니다. 나는 요리를 잘 못 하지만 상운 형제는 내 아들에게 요리도 해 주고 아들도 돌봐 주고 그런 모습이 친밀하고, 가족간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모습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보령에 내려와 있잖아요. 이곳에 이사를 내려와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때에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되는지? 나 자신에 대해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상운 형제었습니다. 제 아내도 잠깐 말해 보게 할께요. 그 전에 제가 하나 더 생각한다고 한다면 2007년에 마르페를 시작했거든요. 상운 형제가 해외로 아웃리치 나갈 때 선교비를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기 위해서 그런 결심을 하고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돈 버는 것 자체도 내가 어떤 돈을 어떻게 벌어서 쓸 것인가? 이거 자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일이 없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업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계획되어 있었고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발생 되어서 지금은 사업을 거의 접은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마르페 출장 뷔페 사업도 상운이 형제와 같이 시작하고 같이 마치게 된 거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볼 때에 사업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잘 쓰임 받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예민수> 황성규 형제님을 마루타로 사용하여서 마르페를 열개하고 선교사들에게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양차심 자매님에게는 제가 무슨 부탁을 드리려고 하냐 하면은요. 윤정 사모님이랑 특별히 이렇게 교재하시고 또 현실에서 여러가지 정리들을 하시고 하셔야 되는데.... 함께 기도도하시고 하실 텐데. 개인적으로 더 좀 이야기 하시겠지만은 우리 청년부가 있는 이 공식석상에서 차심 자매님이 허윤정 선교사님에게 드리는 하나님의 마음 위로와 용기 격려 이런 말씀을 좀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시지는 마시고...

 

<양차심>저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ㅠ 사실은 알제리로 간다고 할 때도 내가 마음에 품은 것을 말씀드렸더니 하나님이 오만으로 날 떠날 때도 그랬고 알제리로 가게 하는 확신도 이 과정을 통해여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고 제가 이야기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ㅠㅠ. 저도 참 많이 너무 일주일 동안 눈물이 나더라고요.ㅠㅠ. 하나님 주신 마음은 우리 윤정씨가 너무 힘들까봐, 상운 형제가 한국으로 떠나 오려고 모든 삶, 오만에서 사역을 다 정리를 했잖아요. 오만에서의 15년의 삶을 다 정리하고 가셨구나! 사실 얼마 전부터 양가 부모님이 다 하시면서 우리 엄마가 항상 오시면 기도해 주시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고, 나는 이제 고아가 되었으니까 우리 엄마를 엄마를 모시고 따뜻함이 항상 느껴진다고 하시면서 명절 때마다 뭐를 보내더라구요. 왜 안 하던 짓을 하면 이상해 진다고 하는데 왜? 그러냐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윤정씨랑 보령에서 며칠씩 함께 지내면서 윤정 씨가 선교에 대해서 하나님이 시키면 하시겠지만 그 동안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윤정씨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꼭 힘든데 선교사로 나가서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역에지만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자기의 시간을 갖고 좀 쉬면서 위로 받고 그 동안 너무 고생했으니까 자신을 위해서 남편이 누리지 못한 사랑까지 자녀들에게 받고 자유롭게 그래서 해외 선교지에 나가야만 선교는 아니니까 그냥 그곳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한 두 사람에게 전도 하는 것도 우리가 선교라고 할 수 있잖아요. 우리 삶 자체가 선교이기 때문에.... 윤정씨가 그 마음의 부담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고 정리하고 그동안 너무 고생했으니까 하나님은 윤정씨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쁜 남편이죠. 떠난 사람은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있겠지만 남은 사람은 식구들은.... 그렇지만 가기 전에 여러가지 행복한 일을 많이 보고 또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나누어 주고 한국으로 오려고 그랬는데 천국으로 가신 것이 너무 갑작 스럽습니다. 솔직히 윤정씨에게 너무 고생했다고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아닐까? 마음의 부담을 다 내려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예민수> 네 감사합니다. 우리가 최상운 선교사님, 최상운 형제를 기억하면서 나눈 것은 정말 일부분의 시간인 것이지요.  5분의 시간들을 나누면서 동행 하신 하나님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정된 시간 준비된 분들은 다 말씀을 드렸고요 혹시 또 다른 분들도 해 주시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실까요? 정연진 형제님 제가 걱정이 되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되는데 백신 주사는 맞으셨다고 그러셨죠? 정연진 형제님 상황이 어떠신지 잠깐 좀 나눠 주시겠습니까?

 

<정연진> 예, 저는 지금 비자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있고요. 가족은 아직도 델리에 있습니다. 코로나로 안심 할 수는 없지만 뉴델리 상황은 많이 안정이 되었습니다.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저도 상운 형제님 우리 얼마 전에도 Zoom을 통해서 모임을 가질 때 오랜만에 얼굴 뵙고 함께 했을 때 참 즐거웠고 그랬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참 황망 했었습니다. 나는 상운 형제님 보다는 좀 더 시간이 주어져있으니까 남은 시간에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비전과 뜻, 하나님의 뜻을 잘 좇아서 조금 이나마 인도에 계신분들과 여기에 계시는 분들과 함께 사역하는 모든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익이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요즘 종말에 대한 자료도 좀 보고, 강의도 하고 하면서 우리는 공간만 다를 뿐이지 다른 공간에 공간만 다를 뿐이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말을 합니다. 천국에 계시는 분들은 천국에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나는 인도에서 선교사로 살고 다른 분들은 한국에서 살고 그렇지만 만날 수는 없지요.  만날 수는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장차 우리도 천국에서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니까 이런 소망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예민수> 네 감사합니다. 우리 이길영 형제님이 다니시는 서울 광염 교회에 제가 부모님 때문에 예전에 갈 일이 좀 있었는데요. 서울광염교회에서 후원하는 연세 많이 드신 여자 선교사님이 중동 지역에서 폭탄 테러로 순교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는데 조현삼 목사님의 말씀이 지금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기 때문에 다 연로 하시고 요양원에도 계시고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시고 그랬는데요. 노년의 많은 시간들을 굉장히 힘겹게 보내시면서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참 어려운 일들도 원하지 않게 어려운 경험하게 되는데 그 선교사님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가 볼 때 폭탄 테러로 안타깝게 소천하셨지만 갑자기 선교 현장에 있는데 뭐가 '펑' 했는데 눈을 떠보니까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퍼하지만 그분에게는 얼마나 행복한 삶이냐. 그 순간에... 지상에서 바로 한 장면이 바로 바뀌면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 순간으로 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 였는가라는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 위로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연진 형제님 말씀하시는 것도 또 기억에 남네요. 우리 이신석 형제님 오래만입니다. 상운 형제를 기억하면서 좀 나누어 주실 것이 있는지요? 마이크 좀 풀어주시죠.

 

<이신석> 네 반갑습니다. 형님 누님들 제가 지금 치과 치료를 받고 있어서 앞니가 좀 없어요. 발음이 좀 샐텐데 양해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나이를 좀 먹었나 봐요 어쩔 수 없습니다. 상운이 형제와 같이 보낸 시간은 그렇게 길지를 않아요. 한 3년 4년 그 정도의 시간을 보냈는데 사실 사건 사고는 가장 많았던 거 같습니다. 청년부 시절의 그 당시에 조금 좀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오고 그랬잖아요. 상운이 형이랑 둘이서 그런 사람 데리고 본당에 올라가서 가운데 앉혀 놓고, 양 옆에서 방언 하고, 기도하고, 소리 지르고, 나가라, 떠나라 하여튼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 일이 기억이 되고요. 노가다 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반포에 아파트를 지을 때 상운 형하고 둘이서 콘크리트 깨는 노가다를 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때 상운이 형하고 같이 하니까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형은 하나도 안 힘들어 하는거 같습니다. 원래 스타일이 그런거 같은지 전혀 안 힘든거 같이 아까 누가 이야기했지만 산 기도 같이가 보면 정말 열심이고 특심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실 사고를 좀 많이 치잖아요. 상운이 형을 덴마크로 불러서 연어 회도 같이 먹고 그런 추억들도 생각이 나네요. 상운이 형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참 믿음의 사람이었다. 신실하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힘들고 다운 될 때 노가다 뛰고 힘들고 제가 다운 되었을 때 그 때마다 옆에서 나를 보고 따라 와라 이런 모습으로 지켜 주고, 이끌어 주고, 참 변함 없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작년에 들어왔는데 작년에 들어 왔을 때도 상운 형이 카톡으로 메시지도 보내 주고, 어떻게 사냐? 본인 이야기도 하면서 지금도 카톡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우지 말아야 되겠다. 영원히 간직하고 있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 항상 보고 있으면 카톡이나 과거의 모습이나 생각이 나고 또 보고 있으면 믿음의 신실함이 떠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들 속에서 갑자기 비보를 접하니까 당황스러웠고, SNS로 올라오는 선교사님의 소식들을 들으면서 벧세메스로 올라가는 두 마리의 소처럼 좌우로 돌아보지 아니하고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 그렇지만 그 등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실려 있고 하나님의 법궤를 싣고 뒤를 돌아 보지도 않고 선교의 그 길을 묵묵히 걸어 가고 그리고 성공적으로 법궤를 원하는 곳에 갖다 놓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는 믿음의 신실한 모습 우리 모두가 같이 기억하면서, 보면서 가야 되지 않을까? 추억을 생각하면 좋은 일도 많고 기쁜 일도 많은데 하나님이 특별히 저에게 개인적으로 붙여 주신 멘토, 신실한 동역자, 믿음의 선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복 많이 받을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허윤정 사모님하고 세 자녀도 축복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민수>우리 각자가 상운이 형님을 보내면서 느끼는 것들, 함께 했던 것들, 공유하고 싶지만 시간 제한이 있어서요. 다음은 이 자리에 허윤정 사모님과 자녀들이 함께 와 계십니다. 허윤정 선교사님 마이크 좀 풀어 주시고요. 지금 함께 참여하고 있는 자녀들을 먼저 좀 소개 좀 해 주시고 허윤정 선교사님께서 나누실 만한 이야기들 공유하고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자녀들 좀 소개해 주십시오.

<허윤정>  네 감사합니다. 저는 딸 둘 하고 아들이 있는데요. 얘들아 인사 좀 드려 줄래. 주은이, 주영이, 경찬이.

<최주은> 안녕하세요 첫째 주은입니다

<최주영> 둘째 주영입니다.

<최경찬> 네 안녕하세요 경찬입니다.

<예민수> 네 감사합니다. 첫째 딸이 주은이, 둘째가 주영이, 막내 아들이 경찬이 인거죠? 너무 감사하고요. 어머니 말씀 좀 듣고 자녀들 이야기도 좀 듣도록 하겠습니다. 허윤정 사모님께 저희들이 어떻게 위로를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잇기가 참 어려운데요 주마등 같은 시간들 청년부를 같이 한 저희들에게 이 땅에서 남은 시간을 살고 있는 지체들에게 감사와 혹은 나누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좀 해 주십시오.

<허윤정> 내가 사실은 영상을 준비했었는데 하고 싶은 말은 거기에 다 담아 놓았는데, 제가 그 영상을 말하지 않아도 편하게 이야기 하자면 2007년에 남편 혼자 오만에 먼저 들어왔어요. 그 당시에 샘물교회에 사건이 일어나서 저희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비자를 받는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샘물교회 사건으로 인해서 비자를 못 받게 되었습니다. 충격으로 남편은 기도하는 중이었고 찬이가 5살이 였고 8살, 11살 두 딸을 데리고 저는 35도 38도 정도 되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체질인데, 오만에는 6개월 동안에 40도에서 50도까지 오르내리는 그런 무더운 날씨입니다.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게  살기는 하지만 밖에 나가면 40도 50도의 기온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제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너무 너무 더워서 정신이 나갈 정도 였습니다. 남편을 만나서 숙소로 들어가서 그때부터 오만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내 남편은 정탐을 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오만을 잘 몰라서 가자마자 감옥에 갇힌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어린 아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큰딸과 둘째딸은 감옥에 갇힌 아이들처럼 너무너무 힘들어 했었습니다. 똑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것도 잘 적응하게 해 주셨습니다. 오만 무스카트에는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택시를 타면서 이사를 했는데 한국 사람 딱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저희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주시면서 연락하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것이 한국 사람과의 첫 번째 만남이 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오만에 한국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알려지지도 않는 땅이 오만이었습니다. 외국 사람도 모르고 한국 사람도 모르는 그 와중에 그곳에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15년을 살았는데 이번에 남편이 돌아가신 이후에 아는 사람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오만과 카타르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15년 동안에 이곳에서의 삶이 정말 잘 살아왔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슬픔의 단계를 넘어서서 기쁨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고요. 아직도 울컥 하는 것은 있는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영상 만들었던 내용 중에서 내가 중간에만 잠깐 읽어 들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5년이 지났습니다. 사역과 다음에 열매들이 오만에서 보여지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남편에게 말씀하신 것이 지상에서의 떠남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함께 함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기에 남편의 상실은 저에게 아직까지 충격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감사하는 노래만 하고자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4) 최상운 선교사는 죽어도 죽지 않았구나! 우리가 가야 할 영원한 본향 천국에 있는 것을 제가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남편을 만난 것은 1994면 1월 온누리교회 청년부에서 였습니다. 중보기도팀 모임에서 였습니다. 1년 동안 중보 기도가 응답 받아서 저는 1995년 1월 남편과 결혼하여 호주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기 시작하였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변화 되었으니 감사 할 뿐입니다. 쳥년 6부의 모든 지체 가운데서도 형제 자매님들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힘들 때나 좋을 때나 늘 함께해 주신 황성규/양차심님 가정이 오만 사역 시작부터 지금까지 아낌없이후원 해 주신 것에 대해서 우리 주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우리 남편이 너무너무 좋아 할 거 같고요. 보고 싶은 분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저희 남편은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데 오만에서는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남편의 친구 역할을 많이 했고요. 아이들도 남편의 친구가 되었구요. 내 남편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 땅을 위해서 섬기면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살았던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후회는 없는 거 같습니다. 제가 오만을 떠날 때 누가 물어 보았는데 후회는 없냐?고.... 오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다음 선교 예정지 알제리로 가지 못하는 것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그 뜻을 물어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은 제가 카타르에 들어갈 수 있는 비자와 아들 경찬이가 카나다로 대학을 진할 할 예정인데 아직까지 비자를 받지 못해서 비자 받기를 구했습니다. 카나다 비자를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앞날에 대해서 난 걱정이 하나도 안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잘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남편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아이들과 함께 잘 살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하고 축복하고 감사드리고요. 끝으로 이상호 형제님 작은 돈이지만 없어서 힘들 때마다 내일처럼 저희를 후원해 주셨고요. 컴퓨터 시스템을 지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시간을 빌어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예민수> 허윤정 선교사님의 오만에 들어 가셨을 때와 지금까지 사역에 대해서 동영상을 주셨습니다. 가족들이 오늘 Zoom에 못 오셨다면 우리가 동영상을 틀었을 텐데.... 직접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더 좋아서 영상을 안 틀었는데요. 상황을 봐서 오늘 끝날 때 쯤에 영상을 한번 보던지 그렇지 않으면 홈페이지에 올려 드려서 보실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도 잠깐만 듣겠습니다. 주은이 주영이 마이크 좀 켜 주시고요. 사실은 우리 자녀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하고 천국을 느낍니다. 아빠의 삶에 대해서 아빠의 친구들이 선후배들의 이야기 해 준 거에 대해서 감사 하면서도 자기 또래들과의 이야기 아니고 오랜 시간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힘들 수 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주은이 하고 주영이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어떤 비전이나 기도 제목들이 있는지 나누어 주시면 저희들이 기억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주은> 아~~ 우리가 여러 추모예배를 드렸는데 이번 예배는 특별한 위로와 감동이 있습니다. 아빠와 직접 생활 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저희한테는 항상 아빠였지만, 아빠의 친구 분들에게는 친구였고 ,동생이였고, 형님이였던 분들의 이야기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들었고 너무 이 시간이 좋았습니다. 저에게는. 아빠가 오만에서 사실 때 계속 부족함도 들고 그래서 가족으로서 좀 속상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아빠가 섬기시는 사람이 였구나 그런 것을 느끼고, 그런 것이 많은 분들에게 기억이 되어 있구나, 아빠의 그런 모습을 느끼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빠가 갑작스럽게 가셔서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이 시간을 4명의 가족이 같이 보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요. 카타르에서 아버지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원래는 오만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회사에 캠페인을 통해서, 인맥을 통해서 오만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기적같은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아빠를 애도하고 추모 할 수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 갈 준비를 하면서 또 엄마를 카타르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 엄마의 비자와 숙소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잘 되도록 기도를 요청 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알자지라 방송국에서 3년 동안 피디로 취직이 되어 있는데요. 저도 어렸을 때 중학생 때부터인가 저도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빠도 내가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셨고 그런 마음이 있어서 앞으로 제가 저널리스트로서 미디어 분야를 통하여 방송국 일을 하면서 아빠가 하시던 일, 저도 중동 무슬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민수> 예 최주은 자매 정말 상운 형제의 맏딸답게 중심을 딱 잡고 아빠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감동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최주영 자매도 잠깐 이야기 좀 해주세요.

 

<최주영> 안녕하세요 저는 최주영입니다. 오늘 예배를 함께 들으면서 아빠가 참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젊었을 때에 함께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 들으면서 저희가 아빠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솔직히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원망스럽습니다. ㅠㅠ 제가 미국 유학을 가 가지고 그때부터 제가 아빠를 잘 못 만났었거든요. 흐흐흑.. 이제 좀 정리를 하면서 엉엉엉.... <예민수> 괜찮아요. <최주영>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언니랑 저랑 카타르에 있었거든요. 저희가 오만 시민권도 없고, 영주권도 없어서 오만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오만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오만으로 와서 가족이랑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아빠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는 또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와서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엄마 잘 챙겨 드려야 되겠다. 아빠는 좋은데 가셨습니까 슬퍼하지 말고, 엄마 책임지고 잘 돌봐 드려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ㅠㅠ

<예민수>주영 자매는 지금 아직 학업 중인가요?

<최주영>  5월 달에 대학교를 졸업 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알자지라 방송국에 취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빠도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하셨는데 아직 출근은 안 했습니다. 한국에서 아빠 장례 다 마치고 나서....

<예민수> 아 그렇군요. 두 분다 언니랑 같이 미디어 쪽에서 일하시게 되네요. 네 감사합니다. 우리 경찬군 마이크 좀 ON해 주시고요 경찬 형제의 비전이나 기도 제목 좀 간단하게 나누어 주세요.

 

<최경찬> 네 안녕하세요 셋째 경찬입니다. 내가 한국어를 잘 못 해 가지고 간단하게 말 할게요. 저는 9월부터 카나다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예정입니다. 비자가 안 나와 가지고 비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비자가 좀 안 나와서 불안하기는 한데 비자가 잘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민수> 경찬 형제 지금 뭐를 전공 할 예정이예요.

<최경찬>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합니다.

<예민수> 네 감사합니다. 선규 형제님을 통해서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들에게 공유되면서 상운 형제님 가는 길들을 함께 했다는 것을 사진들과 영상들을 보면서 참 듬직 했었습니다. 오늘 너무 귀한 시간들을 힘든 시간이었지만 허윤정 사모님과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 하시는 것을 다들 공감을 하실 것입니다. 상운 형님이 우리에게 주는 평안함, 위로, 믿음이란 것들은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이어서 우리 고길범 회장님과 함께 중보기도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중보기도제목들을 보면서 함께 중보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나누고 싶은 내용은 저도 이 모임을 쭉 들으면서 위로를 하려고 모였는데, 이 만남과 나눔을 통해서 사실은 우리가 더 위로를 받는 거 같은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상운 선교사님 오만 현지에서 거룩한 순교를 맞이 하셨는데, 그 순교가 우리에게는 거룩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나눌 기도 제목은

1. 허윤정 사모님 귀국시 자가격리 2주를 진행하는데 장래 일정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기도해 주시고요

2. 우리 아들 최경찬군 카나다 학업 비자를 속히 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고

3. 카타르에 있는 딸 최주은, 최주영 카타르 거주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4. 마지막으로 우리 허윤정 사모님 나누어 주었던 것처럼 앞으로 모든 일정 가운데 하나님이 선하신 길로 인도하시도록

다 함께 기도하고 마무리 기도를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통성으로 중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 선교자적인 삶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아멘.

오늘 특별한 광고는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우리가 월례 예배로 드리고 있거든요. 8월 달에도 우리 마지막 토요일 저녁9시에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특별한 손님으로 오셨던 허윤정 사모님도 계속해서 앞으로 이 예배에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은이 주영이 경찬이도 다 참여할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청년 6부에서 우리 최상운 형제님을 알았지만 우리 '온누리 빛' 월례 예배를 통하여서 여러번 상운 형제님이 들어 오셔 가지고 오만에서 사역하시면서 외로웠다라는 것을 눈물 흘려 주시면서 이야기 하셨는데 그 장면들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런 모임들이 한 달에 한 번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선교지에 나가 계시는 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시간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더 이 예배를 시켜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들어오신 분들 가운데에 새롭게 소개하실 만한 분이 정혜경 선교사님 조용중 선교사님과 부부이시죠? 부부 이신데 선교지 상황에 따라 지금 따로 떨어져 계시는 것으로 이 예배를 통해서 Zoom을 통해서 만나시고 계시는데 너무 반가웠고요. 오늘은 장현선 /이충환 선교사님 만 잠깐 좀 소개하겠습니다.

 

<이충환> 아 예 안녕하세요. 저는 이충환 장현선 가족입니다. 저희는 지금 레바논에 선교사로 나가 있고 지금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습니다. 최상훈 선교사는 선교지에 나가기 전에도 교재를 하고 있었고 또 최근에는 오만으로 서너번 정도 방문해서 정말 많이 섬겨 주시고, 저희도 외롭고 그럴 때, 갈데 없을 때... 흑흑흑... 훌쩍 훌쩍.... 오만으로 불러 주시고 오만에 갈 때마다 삼겹살도 구워 주시고, 또 경찬이도 갈 때마다 잘 섬겨 주고 그렇게 그런 인연으로 함께 지내왔는데...소천 소식 듣기 한 한 달 전 쯤에도 카톡으로 연락하면서 그렇게 생활 했는데 갑자기 이런 소식을 듣게 되어서 마음이 참 어려웠습니다. 아내도 우리 상운 선교사님 하고 인연이 있어서 저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오늘도 허윤정 사모님이 초청해주셔서 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오늘 하나님께서 훌륭하게 사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들 보다 먼저 하나님 곁에 두고 싶어하셔서 데려간 상운 형제님을 기리면서 온누리 교회 청년부에 함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오늘 한 40여 명이 들어온 거 같은데, 그 외에 많은 사람이 정말 이러한 성도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형제자매로, 하나님 나라의 형제자매로 불러 주시고, 또 우리가 기쁜 일을 만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을 당할 때 함께 슬퍼하면서 우리 주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의 부르신 그 부르심을 좇아서 끝까지 그 달려갈 길을 충성되이 달려가는 최상운 형제의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 특히 3자녀들 그리고 허윤정 사모님에게 너무 너~어~무 훌륭한 남편이 였고, 너무 하나님을 사랑했던 아버지였다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아버지가 달려 갔던 그 길의 바톤을 두 딸과 아들이 잘 이어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우리가 지상에서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을 보고 있을 아버지 앞에 충성스럽게  잘 달려 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우리 청년부 형제들이 왜 상운 형제는 먼저 하나님이 그의 곁으로 먼저 부르시고,  왜 우리들은 이곳에 남게 했을까?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말 주님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원하시는 것을 땅에서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데, 이 땅에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그 일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그 일을 하도록 하시고자 하시는 그 뜻을 쫓아서 내가 남은 삶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되고, 우리 '온누리 빛' 30년 전에 우리가 젊었을 때에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고, 소망을 주셨던 그 하나님의 뜻을 때로는 이곳에 참여한 카톡 방에 있는 146명의 들어 와 있는데, 그들이 직접 얼굴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그러나 각자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맡겨진 사명들을 정말 소중하게 잘 간직하고 습니다. 오늘 재희 자매도 이집트에서 들어오셨는데 선교지에서 많이 수고 하시고, 우리 또 황 디모데 형제, 아마 청년부에서는 그렇게 많은 활동을 안 하신 거 같지만 대학부 때 열심히 사역을 하셨고, 다른 선교단체에서도 열심히 섬기다가 지금 여기 오셨는데....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식들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최상운 형제님을 추모하면서 가졌던 큰 은혜를 우리가 받았는데 고길범 회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의 이 모임을 통해서 형제 자매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그것을 믿고 믿음으로 받아서 그렇게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점심 때에도 어떤 형제를 만나서 이야기를 좀 많이 했는데 우리가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 일어나고 하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이 모든 것을 억압하고 있는 이러한 정부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함께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고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오만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우리 사랑하는 최상운 형제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가 마음과 옷깃을 여미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가장 선하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인간적인 생각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세 자녀 그리고 사랑하시는 허윤정 사모님 하나님이 저들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바라봅니다. 그것 또한 우리 형제 자매들이 믿음으로 중보하고 성원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끌어 주시는 것을 우리가 목도하고 지켜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 한번 우리가 확인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온누리 빛' 우리 형제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롬8:28)라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것을 믿고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각자 주어진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주님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7월 마지막 주 토요일 우리 모임을 마칩니다. 8월 마지막 토요일에 우리가 Zoom으로 다시 만나서, 주님을 높여드리고 찬양하고 주의 뜻을 받들어서 이 땅 가운데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자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는 뜻을 쫓아서 살아가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녀가 되도록 주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시 만날 때에 기쁨으로 만나며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모두 마치겠습니다.

<예민수>허윤정 사모님 앞으로 장례 일정에 대해서 궁금한 형제들이 있어서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중동선교회를 통해서 전달 받은 것은 8월 3일 오후에 입국하시는 걸로 들었습니다 . 남은 장례 일정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허윤정> 제가 일정을 듣기로는 강서구 보건소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하면 4일날 음성이 나오면 7일 날 장례식에 참석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만약 양성이 나와도 7일날 장례를 진행하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혹시 주은이나 주영이가 또 경찬이가 빠지더라도.... 주은이가 6일날 입국을 합니다. 내 일정으로 보아서 왜 꼭 7일날 해야 되냐면 제가 내일 들어가기 때문에 내가 결심을 안 하면 장례를 치르기가 힘들게 되고...,  제가 8월에  8월 29일경에 카타르로 들어 가야 되기 때문에,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화장도 아들이 오만 현지에서 혼자 진행을 했었고요. 만약에 제가 코로나 양성이 되더라도 8월 7일 날 장례식을 진행해 달라고, 상황에 관계없이 장례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제가 8월 7일 날 양성으로 판정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족 모두가 참석한 상황에서 장례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거 같다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이번 남편일을 겪으면서 최악의 경우도 많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CR 검사해서 음성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례식 장소는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KWMA에서 MOU를 맺은 선교사 추모공원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충청남도 금산에 있습니다. 7일 날 장례식을 치르는 걸로 기억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구체적인 일정 들어간 텍스트를 작성해서 같이 공유해 주시면 우리 단체 카톡방에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8월에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마무리 인사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