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분과위원회

일과 영성 그리고 선교 (2021.06.26)

다이나마이트2 2021. 7. 2. 09:43

일과 영성 그리고 선교

김윤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함께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온누리교회 선교분과위원이라고 들었는데 선교를 하는 것은 찾아가는 선교가 있고, 보내는 선교가 있다고 하죠. 그런데 여러분의 역할은 보니까 보내는 선교 같습니다. 대략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냐 하면 일을 열심히 해서 번 돈으로 선교사나 교회, 선교 단체, 비영리 법인에 많은 후원을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것 그래서 보내는 선교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일터에서 하시고 계시는 일, 비즈니스가 뭐냐? 이러한 사명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는 거죠. 비즈니스가 잘 돼야 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는 겁니까? 수단이 극대화 되어야만 돈을 많이 벌어야만 많이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잘 벌게 해 주십시오. 나는 거룩한 목적으로 비지니스를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하면 선교사님들이에요. 그래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이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세요 여러분들은 어디에 와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많이 배우셔서 이거 보다는 훨씬 더 폭넓게 생각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비즈니스 하는 기독교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나는 정직하게 사업을 해. 올해는 좀 더 친절하게 해. 도덕적인 윤리를 잘 따라 경영을 해, 회사에 십자가를 걸어 놔,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도 봐, 직원들에게 가끔 종교서적도 사 줘요. 음악을 틀어 놓으면 기독교 음악 CCM 복음 성가를 틀어 놓습니다. 그런 것으로 알던 분들이 여러분의 연세가 되면 회사에서 CEO이거나 경영하는 리더십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독교인의 의무로 생각을 하시는 거죠. 그것이 부르심이라면 나는 그런 선교의 역할을 한다. 너무 좋아요. 그것이 부르신 일이라고 하면 너무나 훌륭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일과 영성과 그리고 선교인데 선교는 그렇게 해도 굉장히 좋습니다. 여러분이 꼭 타문화 현장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무엇을 생각해 보냐? 하면 그러면 일과 영성이라는 부분에 맞는 건가? 그 부분을 오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선교의 목적은 뭐냐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불신자들이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함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게 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런 것들이 선교학 책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또 선교는 타문화권에 가야 되는 것이죠. 그러면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그러면 이것이 선교를 다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실 것이지만 그러면 선교가 다 끝나는 것인가?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전도를 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님을 영접하는 아이가 탄생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애기가 출생 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까? 굉장히 많이 돌봐줘야 되지요. 육성에 필요하지요. 타문화권에서 이제 막 예수님을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베이비가 아니니까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사는지를 잘 육성해 주지 않으면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처럼 길가, 돌짝 밭, 가시덤블 같은 곳에서는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생명력이 길지를 못 합니다

그러면 선교의 완성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하면 이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게 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날마다 하고 있는 삶의 영역 속에서 어떻게 기독교인으로 사는가를 가르쳐 줘야 만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터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영접을했어요. 너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일터에 나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마구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터라는 컨텍스트 그리고 또 가정. 제일 큰 것이 가정과 일터 이지요. 가정이라는 컨텍스트 또 그들이 속한 사회, 문학 그 컨텍스트가 어떻게 보면 그들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그런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 가느냐?를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만 홀리스틱 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을 교회에 보내면 다 기독교인이 되느냐? 주일날은 될 수가 있지요. 그러나 나머지 6일 동안은 어마 어마하게 어렵게, 힘겹게 홀로 놓여 지거나 마찬가지에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가면 조금 좋습니다. 그런대로 기독 교인들끼리 좀 돌봐 주는 거 같기도 하고, 기도도 해주고, 목사님 설교도 있고 그나마 갈증 해소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머지 6일 동안에는 뭘 어떻게 살아야 될지 아무것도 모르고, 세속적인 소용돌이 안에서 어린 신자가 살아 나가야 되는 그런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선교사님들도 고민을 해봐야 됩니다. 그들을 정말 도와주려면 주일 날 하루 가지고는 안 되는 거죠. 6일 동안의 그들의 삶을 도와 줘야 되는데 이때까지의 선교는 대부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런 것이 선교사님들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 었습니다. 그렇다고 선교사님이 성도의 일터에 쫓아다니면서 돌봐 줄 수도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평신도들의 일터 일과 영성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의 완성이라는 것은 성도가 자기의 사회나 문화나 일터 속에서 계속 표현으로 해쳐 가면서 거기서 해쳐만 나가면 안 돼요. 영향력도 미치기 시작해야 하고 다른 일터에 동료, 보스, 고객,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 같이 신앙이 오래된 사람들도 힘든데 더구나 어린 신자는 더 힘든 거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이겨 나가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도와줄 수 있을 때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비로서 선교가 좀 더 성숙한 1단계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소위 말하는 The Bussiness as Mission Manifesto가 있어요. 일과 영성이 일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교로서의 직업. 비즈니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며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선교의 후원자가 아니라 선교의 전임 사역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미션너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사도 바울이 돼서 미션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나는 그냥 비즈니스맨입니다. 그 비즈니스 자체를 후원하는 역할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교회는 주일 날 하루만이고 그 나머지 6일 동안 그 성도 된 사람을 받아 줄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는 것이 내 비지니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거의 전임사역자 같은 마인드를 갖는 것을 말을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업인들을 부르셔서 그들이 영위하는 기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심을 믿는다 그러니까 기독교 기업인이라면 그 기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비즈니스를 수행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일과 영성사역을 하느냐?하면 놀랍게도 선교지는 고사하고 우리나라에도 사실은 아까 미국도 팀 켈러가 이것을 시작은 했지만 이것은 아주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미국이 다른 것은 다 앞서가는데 이 면에 있어서는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조차도 이런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내가 어떻게 비즈니스 맨을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비즈니스를 하는가를 배우자를 못 했다는 것이죠. 배웠어도 정확히 알지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복음이 개인과 사회와 공동체를 변혁시킬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 그렇지요. 복음이라는 것은 총체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만 믿게 하는 것이 복음의 끝이 아닙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내 개인이 믿는 것은 구원이에요. 구원이 뭐냐?면 내가 옛날에는 어둠에서 이제는 빛에 속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세상에 사탄의 자녀 였는데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는 의롭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내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Righteous Standing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플랫폼이 달라진 것입니다. 옛날에는 내가 세상에 속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반석 위에 그 플랫폼 위에 내가 서게 된 것입니다. 위치가 옮겨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라라는 말은 이제부터 예수님의 보혈 위에 섰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몰라요. 어떻게 해야 될지?어떻게 사업을 하는 건지? 가정에 와서는 내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 되는지? 아내는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직원은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재무제표 어떻게 써야 되는지? 세금 보고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객이 오시면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되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복음이라는 것은 뭐예요? 내 개인과 사회와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총체적인 것이 복음입니다.이제 예수님 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작입니다. 그것을 Evangelation이라고 그럽니다. 소위 말하는 우리가 복음을 살아내야 됩니다. 복음을 이루어야 됩니다. 또 그것을 성화 거룩한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으로 산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비즈니스를 하는 성도들은 기업을 통하여 이러한 총체적 변혁의 일부를 담당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비지니스나 기업이나 일터가 그 중에 변혁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관심이 어마어마하게 있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는 것이죠. 또 사업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영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변혁이라는 4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일자리 창출과 사업체의 증가가 범세계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한다. 이것을 냉정하게 봅시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경제적으로 완전히 거지라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거지로 살아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예수님을 믿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끝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의문이 듭니까? 당장 굶어 죽어 가면서 예수님하고 굶어 죽으실 것입니까? 지금은 거지지만 예수님을 믿은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인간스러운지 나에게도 살 좋은 방법이 있는지? 내가 평생 거지로 살아가지 않고 다른 스탠딩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질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예수님 믿었으니까 그대로 살아서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한 질문이죠. 예수님 믿은 것이 무슨 유익이 되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당연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변화인가요? 거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런 노력부터 시작이 되겠죠. 옛날에 얻어 먹었다면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먹는 것에서부터 진화를 해야 되겠죠.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라고하는 것은 그것이 내게 일자리를 줍니다. 이것은 우리 사람이 영혼만 변한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 되는 것처럼 사람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일자리를 줍니까? 그것이 우리가 기독교 비즈니스를 하는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거룩한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데 일자리를 주는 것은 굉장히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지금 일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믿지만 다른 것이 다 죽어 갑니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많은 것들이 발휘가 안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되는 목적과 목표는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 목표가 되면 우리는 세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일자리 창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 그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체 내부와 외부에서 세계 각곳의 다양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그리고 이를 통하여 사업계와 그 너머에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믿음의 기업을 영위하기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존재함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사업을 하는 분과 직원들과 내가 먹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원들을 먹이고 내가 먹고 사는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그것만이 목적이 되면 거룩한 목적과 수단을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말한 대로 외부는 뭐예요 일자리 창출을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물건을 만듭니다. 카드를 만드는 회사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므로서 사회에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마어마하게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자체가 거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BAM이 있습니다. Business as Mission입니다. FWIA라고 있어요. Faith & Work Institute Asia입니다. 일의 신학을 가르쳐 주는 것이 FWIA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 돈이 무엇인가? 성공. 성공이 무엇인가? 이것의 기독교적 관점, 성경적 관점, 신학적으로 가르쳐 주는데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왜 우리가 먹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먹는 것이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어마어마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먹을 때마다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그 대신 뭐라고 하시는 건가요? 내가 먹을 것을 주었다고 인정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해서 내가 다 번 것이 아니라 내가 먹게 해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너 사업체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사업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죠. 내가 추구하는 거는 BIM입니다. Business is Mission. 비즈니스 자체가 미션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Missionary를 서포트 하는 것도 미션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6일 동안에 비즈니스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미션 필드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다섯 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직원의 삶을 내가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직원에게 새로운 문화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그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비지니스를 하는 것이 어떤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그들이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서 배우고, 어떻게 보면 배움터입니다. 그러면 비지니스는 완전히 수단이 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영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슈마허가 인간 노동의 3가지 목적을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어마어마하게 성경적입니다. 이것을 소개하면서 덧붙여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왜 일을 하느냐? 우리가 왜 일을 하느냐 화면 첫 번째는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제공합니다.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고 살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사는 일을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일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애당초에덴동산에서 무엇을 만들어 놓았습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에덴에서 만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먹고 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에덴의 모든 것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한가요? 첫날부터 6일 동안 하나님이 내내 일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님을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밤과 낮을 만드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에덴동산이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우리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식물에게 필요합니다. 동물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을 잘 보시면요 생태계를 조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관심사인 누구를 만들었습니까?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들 때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미리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스리고, 관리하고, 이용하고, 만들고, 창작하고, 새롭게 발전시키고, 물질을 유익하게 사용하고,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고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의 허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열어 주신 것입니까? 인류가 번성하려면 애기를 낳아야 하니까 의학이 발달하고, 교육도 시켜야죠. 행정 해야죠. 관리 해야죠. 물물 교환을 하다 보니까 부피가 너무커서 화폐를 만들었죠. 화폐를 하다 보니까 은행을 만들었죠. 은행을 만들다 보니까 그 이윤을 가지고 투자도 하지요. 건축을 만들죠. 광물도하죠. 식물연구도 하지요. 생물, 어류, 조류, 사실은 모든 직업군이 인간이 살다 보면 판단해야 될 일이 있으니까 판사가 생기고, 법률이 생기죠. 그러니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이 무엇인가? 하면요 모든 직업군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마음껏 거기서 누리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땅에 앉기 싫어하는 인간에게 의자를 만드라고 나무를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또 하나님이 무엇을 주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 우리가 머리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 AI가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깜짝 놀라실까요? 나도 모르게 AI도 만드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는 것이죠. 로봇을 만듭니다. 인간들이 로봇을 만드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의 질을 위해서 로봇을 사용하십니다. 이번에도 이천에 큰 불이 나서 한 분 소방관이 순직 하셨잖아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거기에 로봇을 들여 보냈으면 그런 사고가 없었겠지요? 삶의 질을 하나님은 다 열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관점에서 생각해보시면 만드는 것 거룩한 일입니다. AI가 발달하는 것 거룩한 일입니다. 노인이 잘 걸어다니지 못 하시니까 휠체어 만드는 것 어마어마하게 거룩한 일입니다. 의료보험 만드는 거 거룩한 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이지요. 예당초 창세기 1장에서 보시면 하나님이 6일 동안 무엇을 했다고 나옵니까? 7일째 쉬셨을까요? 하나님이 피곤해서 쉬셨을까요? 일만 열심히 했더니 피곤해서 하루 쉬자 그래서 안식일을 가지셨나요? 하나님은 피곤하시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 모범을 보여 주셨을까요? 우리를 위해서 모범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열심히 하나님도 일하시고 하루는 안식을 가져라라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싸이클이고 그것을 창세기 1장에서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은 왜 해야 되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오셔서 다니시면서 계속 무엇을 하셨어요? 먹고, 마시고, 잔치 집에 가시고, 만찬도 하시고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사도 바울도 말을 했습니다. 생산성 없는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신거죠? 노동의 신성함 이것은 굉장히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은 창의력을 발휘하는 수단이라고까지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일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좋을 것 같지요? 아무것도 개발이 안 됩니다. 돈을 만들고 재화를 벌기 위하여 일을 해야 합니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혜택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Meet, Zoom과 같은 온라인입니다. 이거 없었으면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지 사실 모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만들었나요? 아니지요. 안 믿는 사람이 만들었는지 모르죠? 그렇다면 일은 어디에 속하냐? 하면 일반 은총에 속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특별한 은총입니다. 특별 계시입니다. 일은 누구나 일하고 먹고 살게 만들어 주셨고 일을 하면 기능과 기술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최고봉이 무엇입니까? 백신 이지요. 돈을 많이 투입을 하니까 백신이 나오지 않습니까? 지금 백신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백신이 제일 고마운 거죠. 백신을 만드는 것 거룩한 일이 아닐까요? 어마어마하게 거룩한 일입니다. 인류에게 가장 귀한 사람들은 교회, 선교에 가장 귀한 사람들은 백신을 만든 사람들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을 안 하면 성장을 안 합니다. 돈 벌기 위해서 우리가 머리를 쓸 때 우리의 가진 재능이 막 나오는 거지요. 그래서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일을 할 때의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중성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인턴을 하던, 비정규직 말단 사원이든, 사회 중견이든, CEO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충성 해야 됩니다. 누구에게 충성을 해야 됩니까?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사장 없다고 대충 하는 것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내 비즈니스처럼 생각해서 직원들에게 함부로 하는 거 그것은 기독교의 모습이 아닙니다. 돈만 벌기 위해서 적당히 일하는 것 이것도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분법으로 살면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거룩하지 않은 세속적인 것이고 돈만 버는 곳이라면 대충대충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이 일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으로 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이것은 대충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원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일은 또 왜 하느냐? 두 번째까지는 세속적인 사람들도 동일하게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부터는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협력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뭐라고까지 이야기 했냐? 하면은요.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깨끗하게 하셔서 열심히 선한 일을 하는 그의 백성의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디도서에도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선한 일을 많이 그러니까 일에서 비즈니스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끼쳐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 1차적으로 일터에서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냐 하면 직원들입니다. 직원들의 가족입니다. 그들의 안녕입니다. 일터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존중입니다. 그것이 표현된 것이 인권입니다. 휴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인권 그것은 굉장히 성경적인 것입니다. 내가 CEO이고 내 밑에 직원이라도 나랑 동등합니다. 이런 사장은 기독교의 뿌리박은 사장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내 밑이니까 나에게 돈을 벌어 주는 수단으로 그대를 취급하면 이런 생각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재화라는 수단을 함께 만드는 동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재화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인류에게 공헌을 하는 수단을 함께 만드는 동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섬겨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직원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고객을 직원과 함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경영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뭐라고 했냐?면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 간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굉장히 철학자 다운 날카로운 지적 이지요. 그러니까 카뮈가 하나님을 경외하든 안 하든 하나님이 주신 지성으로 철학적인 깊이까지 간 것입니다. 이 사람도 결국은 무엇을 본 것입니까? 인간은 노동을 해야 된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삶은 노동 없이는 부패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띵까띵까 먹고 사는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근데 그 노동에 영혼이 없는 것은 서로 인간을 질식 시킨다는 것입니다.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영혼 없는 노동 돈만 아는 노동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바로 몇 일전 광주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일하니까 사람을 죽이죠?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달리는 버스를 덮쳐서 사고가 났잖아요. 그것은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거죠. 그러니까 영혼 없는 노동을 한 것이죠.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인간에게 유익한가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노동으로 우리가 이 생태계를 얻은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도 일을 해서 인간에게 유익을 끼쳐야 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알죠?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원래 목적은 상실되고 인간은 수단화가 되고 인간이 벌어주는 돈이 내 목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해서 번 돈을 선교 헌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차라리 선교하지 말고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오히려 더 선교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네 번째는 일터에는 영혼 있는 노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일과 영성에도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마진이 없으면 미션도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과 영상이라도 마진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익창출이 있어야 됩니다. 이익창출이 필요 없으면 사업은 살아나지가 못 합니다. 그래서 이익창출을 추구하는 것도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면 차이가 무엇입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이익창출과 우리가 말하는 이 이익창출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올바른 관점에서 이익을 강조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쪽은 이익창출이 목적입니다. 또 다른 한쪽은 이익창출이 수단입니다. 거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제프밴 듀져 :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혁신을 통해 궁핍한 세상을 더 풍요롭고 나은 곳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사회를 지탱하는 경제적 자본을 창출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와서 한 것이 무엇이 였죠? 예배만 드렸나요? 미국 땅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청교도 정신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거기에 무엇을 했습니까?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꿈은 무엇입니까?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 미국의 헌법은 성경을 기초로 해서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처럼 인권을 강조하는 나라가 없지요? 미국같이 굉장한 나라가 성경에 근거한 미국도 죄성이 있으니까 타락한 부분은 엄청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 청교도정신 그 대로한 것은 일터를 바꾸고, 나라를 건설해 간 것은 어마어마하게 기독교 정신이라는 거죠. 좋은 본보기입니다. 백신을 보면 미국이나 유럽 같이 잘사는 나라들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죠. 잘 사는 나라가 결국 백신을 만들어서 전 세계 공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공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이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성공적인 비즈니스이지요. 백신을 통해서 궁핍한 세상을 풍요롭고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풍요를 가지고 백신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 다 죽어야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됩니까? 코로나는 하나님의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일어났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백신을 만들고 또 보급하는 것은 인류를 살리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죠.

선교의 기본은 마태복음 28장 우리가 너무 잘하는 구절 이지요. “예수께서 나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여기에서 보면 전도 선교의 완성 목표를 주는 것이 지상 명령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이것을 해야 선교의 완성입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말씀의 원리에 따라 가르쳐야 됩니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선교지에서 무엇을 보여 줘야 되느냐? 어떻게 비즈니스 해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것이 선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에 가르쳐주고 뼈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Jerry bag이라는 사람이 우간다에 갔다가 아이들이 물을 퍼서 날라오는 것을 봅니다. 물까지 가는데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하루에 다섯 번을 나릅니다. 20분 거리를 하루에 다섯 번씩 왕복하는 거죠. 그런데 플라스틱 석유통 있지요. 10살 미만의 아이들은 10kg 짜리를 나릅니다. 10 살 이상의 아이들은 10kg짜리 두 개씩 해서 20kg의 물을 날아옵니다. 길은 안 좋고 무거우니까 비틀비틀 하다가 차에 치기도 하고 그럽니다. 어떤 사람이 석유통이 아니라 동그랗게 드럼통처럼 만들었습니다. 물을 그게 넣어서 굴려서 가도록 구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간다는 길이 험해서 바퀴를 굴려 가는 것이 더 힘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잘 관찰하다가 짊어지는 빽을 만들었습니다. 석유 통인데 백팩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잘 사는 사람들에게 자선으로 사달라고 광고를 하고 팔았는데 잘 사지를 않았습니다. 이것을 사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요렇게 개발을 했습니다. 위에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요. 이것을 사달라고 했는데 이것도 안 삽니다. 자선으로 살 수는 있지만 사서 필요가 없으니까 사서 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사람 마음을 감동시켜서 비즈니스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비즈니스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비즈니스 연구를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재봉틀을 사고 마을의 여인들에게 재봉으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렇게 만들었습니다. 이거는 사실래요? 시장 빽으로 살 수 있어요. 원 플러스 원으로 해서 이것을 하나 사 주면 아이들에게 백팩을 하나 사 줄 수 있도록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겼냐? 하면 여자들에게는 비즈니스를 하니까 돈을 벌게 됩니다. 그 돈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팔 물어서 적은 수익이긴 하지만 수익 모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비즈니스가 돌아가면 그래서 일꾼들에게나 선교사님과 비즈니스맨이 합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면 그러면서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죠. 내가 왜 일을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나는 그 예수님 때문에 일을 하지 돈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것을 설명해 줄 때 내가 이렇게 해서 살 수가 있구나!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죠. 다르거나 체험적으로 자기 삶의 나아지니까 배울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반면에 과거에 잘못된 비즈니스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포드 회사가 있었습니다. 핀토 하면 여러분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 자동차 모델입니다. 포드가 어떻게 했냐?면 핀토의 연료탱크의 구조적 결함이 있었습니다. 차량을 운전하다가 꽝 부딪치면 화재가 납니다. 500명에서 900명까지 차량 사고에 의한 화재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포드 회사에 계속해서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 연료탱크 결함을 바꾸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포드 회사는 알았다 알았다 하고 안 바꿨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화재 사고가 났을 때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생명 돈을 계산해 보면 20 725달러를 그 당시에 20 725달러만 주면 됩니다. 900명 정도 죽어도 경비가 5,000만 달러가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를 전부 리콜하여 필터를 전부 수거해서 자동차를 수리를 해주면 1 3 7백만 달러가 됩니다. 비교가 안 되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포드 회사가 버티는 것입니다. 이익 창출 때문에 그러면 이것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이윤 중심의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업을 이류 기업이라고 부릅니다. 일류 기업은 뭐를 하냐? 하면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거룩한 목적들을 안 믿는 회사라도 가지고 있습니다. 존슨앤존슨 같은 회사가 그분들이 믿는지 안 믿는지 내가 모르겠지만 굉장히 훌륭한 회사입니다.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어서 그런지는 내가 모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중심의 회사입니다. 이런 기업을 일류기업이라고 부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안 믿는 부류에서도 일류기업 있고, 이류기업 있습니다. 더 못한 3, 4류 기업도 더 있습니다. 얼마나 인간중심에 있냐에 따라서 일류 기업과 이류기업이 나누어 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노동착취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환경도 나쁘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커피가 대표적인 것이죠? 특히 루왁 커피가 그런 거죠. 그 열매가 굉장히 델리케이트 하답니다. 5세나 7세 아이들을 나무 위로 올려 보내서 그거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열매를 딴다고 합니다. 현실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들어가지 않는 예를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커피를 예를 들면 노동착취로 막 욕을 먹죠? 다국적 기업들이 애들의 노동을 착취 한다고 오케이 그러면 그 아이들에게 노동을 못 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나냐 하면 그 애들이 버는 돈으로 그나마 가정이 먹고 살았습니다. 노동착취로 욕을 먹고 애들의 일을 못 하게 하니까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엄마들이 창녀로 나갑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들은 무엇을 해야 되냐? 하면 내가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하고 싶어도 사회의 갈등이 있어요. 이것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하면 이것이 또 손해를 보고 이것을 하면 또 이쪽이 피해를 보고 그런 것들 어떻게 사람 중심의 경영을 할 것인가? 내가 깊이 고민을 해야 됩니다. 단순하면 너무 좋지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을 때 그러면 어떻게 줄일 것인가? 아이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고, 학교를 보내 주고, 복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 인간답게 살게 해 주면서 이익을 창출을 하는 이런 거룩한 고민을 하는 기업이 결국은 일류기업 이라는 거죠. 할 얘기는 많이 있지만 또 이 시간 이후에 또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까 가급적 빨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더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창세기에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의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2:15) 여기서 우리가 다스린다는 것 다스린다라는 단어 이것을 좀 말씀 드리고 싶은데 이것이 히브리어로 아바드입니다. 아바드라는 것은 일 한다라는 동사입니다. 일한다는 동사가 영어로는 Work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레위기나 민수기에 보시면 이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옵니다. 어떤 컨텍스트에서 나오느냐 하면 레위인들이 성막을 짓고 성막에서 하나님을 아바드 한다 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나옵니다. Serve한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이 아바드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오묘합니다. Work 그 다음 Server 다시 말하면 Work and Worship 결국은 삶으로 일로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아담이죠. 아담을 만들고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거기서 뭐를 하게 만드신 거냐 하면? Work 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은 타락 이전에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의 본을 보여주셨고, 아담을 일하는 존재로 만드셨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예배 한다고 하는 것은 알려 주셨습니다. 예배가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하느냐? 일을 통해서 어떻게 할 때 예배가 일어날까요?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예배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네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너의 이웃을 사랑해 하는 것이 십자가의 요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뭐가 필요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하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수익을 같이 창출해서 또 함께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고 사회도 살고 젊은이들도 살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우리가 OECD 국가가 되니까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선교사를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비즈니스가 선교사역도 창출하게 됩니다. 그것 없으면 선교사는 못 나갑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되니까 비지니스를 잘 하게 되니까 선교사도 많이 내어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인 기독교인의 바탕은 무엇인가? 하면 일이라는 것입니다. .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이 일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교회도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거 안 하니까 성경의 사사 시대에는 레위인이 일을 나가버렸습니다. 나라가 혼탁해진 거지요. 아바드 예배하는데 삶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죠. 무엇을 통해서 드리냐?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내 일터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느냐? 오늘 돈을 많이 벌고 있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느냐? 내 일터는 일류기업이냐? 일류문화이냐? 하나님의 거룩한 곳이냐? 내가 그런 정신으로 한다면 내 일터 자체가 하나님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질문을 받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전달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