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분과위원회

선교의 미래 (2021.05.08)

다이나마이트2 2021. 5. 14. 15:30

선교의 미래

주제 강의 : 이현모 교수(침례신학대학교)

 

여러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짧은 시간 동안 나누어야 할 주제는 선교의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이제는 지긋지긋 할 정도로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지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COVID-19 PANDEMIC 현상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가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번 일로 교육과 경제의 기본 틀이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가 있다면 바로 선교 분야일 것입니다. 전체 한국 선교사님들 가운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1/5~1/4은 귀국을 했었습니다. 꾀 많은 선교사님들이 사역지로 되돌아 가셨지만 아직도 많은 선교사들이 사역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아마 선교지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선교지에 남아서 이 위기를 보내시고 계신 선교사님들도 상당수 사역이 중단되거나 많은 사역이 정체, 지연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부에 있는 교회들도 사역이 거의 중단 된 상황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백신이 나오고 조금씩 상황이 바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이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고 위기를 넘어선 상황이 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후의 대응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그런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라는 이 말은 온누리교회분들은 지난 1년 동안 수도 없이 들어 온 이야기 입니다만 제가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변화가 있다 저런 변화가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비하고 준비하라는 것 가운데 구체적으로 선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거기에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에 대해서 좀 다루기를 원합니다. 선교의 미래를 어는 한 사람이 예측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조각 조각 이런 부분에 이런 변화들이 있고 이렇게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할 때 이 조각들을 많이 모아 본다면 어떤 모양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선교의 미래에 대해서 한 조각 부분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려고 합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선교의 관심은 두 단어로 모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길어 지면서 변화속도두 단어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은 속도에 더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선교의 관심은 변화와 속도이다.

최근에는 이중에서도 속도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변화는 새로운 변화보다 기존 선교활동 저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화가

표면에 나타나고 엄청난 가속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변화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 보다는 그 동안 물 밑에서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변화들이 이 코로나 팬데믹 현상을 경험하면서부터 엄청난 가속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변화의 방향성을 보면서 우리가 예측했던 것 보다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가 닥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과 기회가 되겠지만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많은 선교의 사역들이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여 집니다. 우리가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평가를 해 보겠습니다.

 

선교의 4기가 의도치 않게 당겨서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

1 : 지리적으로 유럽 문화와 닿은 해변지역 중심

2 : 문화적으로 내지로 들어 감

3 : 언어 인종학적인 모든 종족 중심의 선교

4 : ?

 

이것은 우리가 뒤를 돌아보고 평가를 한 것이데 앞을 보면서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과감히 이야기 해 본다면 세계 기독교 선교의 제4기 시대가 의도치 않게 당겨지지 않을까? 라는 제 개인적인 예측을 해봅니다. 제가 다 맞다 라고는 이야기 하지 못하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제4기 선교시대를 앞당겨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선교학을 공부하거나 선교분야에서 오랫동안 일 했던 분들은 개신교 선교에 제1, 2, 3기가 있다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십니다. 다 아시니까 길게 강조하지는 않겠는데 개신교 선교의 제1기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복음이 잘 알려진 유럽 문화를 벗어나서 지리적으로 먼 곳의 해안선을 중심으로 선교를 했습니다. 1기는 지리적으로 유럽을 뛰어 넘기는 했지만 유럽의 문화가 와서 해변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가 이루어 지게 됩니다. 선교의 제2기 시대는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에 의해서 시작이 되어 집니다. 이제는 유럽 문화가 도착해 있었던 해변 지역을 넘어서서 전혀 유럽의 문화와 관계가 없는 내지로 들어가면서 문화적 장벽을 넘어가는 시기가 제2기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제3기는 캐머런 타운젠트(William Cameron Townsend, 언어적 집단 강조)와 도널드 맥가브란(Donals A. McGavran, 인종적 집단을 강조)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3기는 지리적, 문화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 세상은 언어와 인종적인 단위로 집합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그래서 언어와 인종적인 모든 장벽을 넘어서서 모든 종족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그래서 제3기 선교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들 이들에게 도달하기 위한 미전도 종족 선교가 중심에 이르게 됩니다. 그 동안 우리가 바라기는 제3기에 전세계 17,000개 정도의 종족 중에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7,000개 정도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들은 상태로 변화를 시키면 세계 복음화의 전략적인 목표는 완성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종족에 대한 집중을 해 오면서부터 많은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아직도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보면 7,000개 정도의 종족이 남아 있긴 하지만 빠른 속도로 이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2030년 정도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주요 종족 가운데서는 미전도 딱지를 떼어주고 어는 정도 선교의 종료를 선포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 밖의 상황들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선교의 제4기가 시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물론 그 동안 미전도 종족 중심의 선교가 성경적으로 올바른 선교의 개념이라는 것을 증명도하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계 복음화에 대한 주님의 약속 마태복음 24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는 세계 복음화의 약속에서 온 세계에 전파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종족 단위의 선교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이야기 할 때에 유일한 성경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개념이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었습니다. 2020년대에 도달 하면서부터 미전도 종족 중심의 선교가 아직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비중이 줄어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선교의 대상들이 예기치 않게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지만 선교의 4번째 시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들을 했었습니다. 몇 년 전에 론 베이미(Ron Boehme)이라고 하는 분이 2017년도에 "4의 선교 물결" 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이게 뭔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아닌가 했었습니다. 그래서 Ron Boehme의 책을 구입해서 바로 읽어 보았는데 조금은 실망했었습니다. Ron Boehme이 주장하는 4번째 선교의 물결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제3기 선교의 내용들을 좀 심화 시키는 정도의 내용 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기회들을 우리가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선교의 1, 2 3기와 다르게 선교를 무어라고 표현 할 것이며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는 합니다.

 

4 : Total Missions

       지리적 거리감과 문화적 장벽

       언어 인종적인 간격을 넘어서는 선교

종교 대 종교 / 세대 간 선교 / 난민을 통한 확산

복음의 총체성을 강조 (Holistic Approach)

 

그러나 저 스스로 저에게 편한 개념으로 한번 이름을 붙여 본다면 제4기의 선교는 “Total Mission”이라고 해도 괜찮지 안을까? 라는 생각을 좀 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교의 3가지 거대한 장벽을 넘어 왔습니다. 첫째 지리적인 거리감을 극복했었고 둘째 문화적 장벽을 넘어 섰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언어와 인종이라는 간격을 넘어서는 일들도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3가지 장벽이 선교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 들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이 세상에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Total”이라는 말을 저는 이런 개념으로 써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종족, 언어적 차이, 문화적 차이, 거리적인 차이를 넘어선 전세계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우리가 모르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모든 교회에, 모든 성도가, 모든 기회 가운데, 모두 직접 선교에 참여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 라는 그런 개념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 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선교의 대상이 항상 종교였지만 21세기에는 아마 종교 대 종교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예측을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서 많은 지리적 확산을 경험했고, 유럽의 문화나 서구의 문화를 넘어서는 일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개신교 즉 기독교 복음이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3가지 거대한 종교 집단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역시 강성 무슬림들 입니다. 무슬림 가운데 개종자들을 얻기는 얻지만 엄밀히 이야기 한다면 아주 소수의 떨어진 씨앗을 줍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정통으로 꾸란을 읽고 생활하는 무슬림들을 Break through하지 못합니다. 두번째는 뜻 밖에도 힌두교를 효과적으로 Breakthrough를 못합니다. 힌두교는 마치 늪에다가 돌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퍽퍽퍽 들어가지만 변화가 안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소승 불교권 입니다. 3종교에 대해서 이제는 아마 정면으로 종교 대 종교로 충돌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종교 대 종교의 시대가 되었을 때는 거리나 문화나 인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선교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당장 한국의 서울에서도 일어 날 수 있는 일 입니다. 또 하나는 Generation to Generation 선교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에 이미 10대 청소년들의 복음화 비율은 어쩌면 중국의 복음화 비율 보다 더 떨어지는지 모릅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33년 동안 중국 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를 파송 했다고 하면 이제는 그 만한 시간을 한국 선교의 10대들을 위해서 투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지리적, 문화적, 인종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세대간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뭔가 또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또 예기치 않게 난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국가의 장벽을 넘어서는 Global Migration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슬람이 붕괴되는 것을 우리는 어쩌면 Liberal Islam이라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면서 멸망 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이슬람권의 난민 사태들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시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세상에 갈수록 경제가 발달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가 심각해 지기도 하고 세상이 부정의와 불의가 더 심해져 갑니다. 그러면서 복음주의 안에서도 복음의 총체성(Holistic Approach)을 강조해서 접근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진보적 신학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서 복음의 총체성을 강조했던 것이 약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로잔 2 로부터 생각해 본다면 지금부터 대략 30년 정도 보면 복음주의 안에서도 통전적 선교, 총체적 선교의 개념이 아주 강하게 부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변화들이 마음으로는 새로운 선교시대가 하나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예측을 좀 해보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한다면 여러 가지 상황적인 변화 요인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내용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상황적 변화의 요인들

1. 복음의 확산 정도 : 20세기 후반부 부흥의 시기를 경험

2. Global South의 약진

3. 민족주의의 확산으로 전통적 선교의 한계와 핍박

4.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가속화

5. 글로벌 분열의 시대

첫번째는 복음이 상당히 확산 되었고 특별히 20세기 후반부에 와서는 전 세계적인 부흥의 시기를 경험해 보았습니다. 옛날의 세상과 비교해 보면 그림이 많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아프리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무게 중심을 같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 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48%가 크리스천이라고 보고가 되고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블랙 아프리카 피부가 검은 흑인들로 구성된 주로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의 블랙아프리카는 63%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프리카의 신학적인 질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기복적이고, 지나치게 오순절 적이고, 지나치게 표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의 교회들은 이런 과정을 다 겪어 가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보면 100년 전에 비해서 복음을 이해 할 수 있는 복음적 그리스도인이 200%가 아니라 200배 정도 늘어났습니다. 아시아 아직도 미복음화 된 대륙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시아도 20세기 후반부를 거치면서 꾸준한 변화를 해 왔습니다. 아시아에서 이제는 교회가 없는 나라는 극히 소수에 불과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이나 북미들의 부강한 나라처럼 교회가 크지는 못해도 현지 교단들이 생겼고, 현지 지도자들이 생겼고, 현지 신학교들이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50 100년전에 생각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선교의 현장은 많이 달라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Global South의 약진입니다. 아마 선교분과 위원회에 계신 분들은 이 용어를 익숙하게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서구, 비서구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서구, 비서구 하면 뭔가 기분이 나쁨니다. 서구가 정상이고 서구가 아닌 나라들은 비정상인 것 같은 용어로 적당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1세계, 3세계라는 말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Majority World라는 말도 세계 인구의 2/3를 가진 나라라고 하는데 적당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에 선교학에서는 Global South 혹은 Global North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번역할 때에 북반구, 남반구라고 하지만 우리가 북반구는 적도 위쪽을, 남반구는 적도 남쪽을 이야기 하는데 Global North, Global South라는 것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전통적인 기독교 지역을 Global North라고 합니다. 새로운 기독교 지역을 Global South라고 합니다. 한국은 북위 38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Global South에 속합니다. 놀라운 것은 지난 약5~60년 동안에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Global North에서 Global South로 옮겨 왔습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부흥은 Global South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예측하는 통계를 하나 본적이 있는데 지금부터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새로 생기는 그리스도인의 둘 중에 한 사람은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이 복음이 Global South로 옮겨 왔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도 복음이 Global SouthGlobal North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 이였습니다만 최근에 들어서 많은 변화가 일어 납니다. Global South 가운데 많은 지도력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세계 침례교 연맹 산하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침례교 선교 책임을 맡는 일을 해왔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를 방문해 보았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침례 교단의 지도자들과 교류를 해 왔는데 30년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만큼 많은 신학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2년전 코로나가 시작하기 이전에 말레이시아 남쪽에 있는 멜라카라는 곳에서 Consultation 모임을 한번 가졌습니다. 그 중에 1/3 가량의 프로그램을 선교 즉 Mission Consultation에 관해서 입니다. 아시아에서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선교에 대한 Consultation을 하는데 서구 강사가 한 분도 없었던 적은 내 기억에는 처음입니다 라고 했었습니다. 지역적으로 작은 모임에는 그런 일이 있을지 몰라도 커다란 그런 국제적인 모임에서 서구 사람을 강사로 쓰지 않고 순수하게 아시아계 사람들만을 강사로 써서 이 만한 대회를 한 것은 아마 역사상 처음인 것 같다고 할 만큼 이제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은 자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점차 선교에도 National 자원 즉 자국의 자원들이 많아진 다음에 변화가 일어 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민족주의가 확산이 되고부터 전통적 의미에서의 선교는 많은 한계에 부디 치고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공산주의가 붕괴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에서 복음화를 성취 할 최고의 기회가 오지 않았나 예측했었지만 그 전 뿌리에서부터 자란 민족주의들이 이데올로기의 갈등의 시대가 끝나도 폭발적으로 성장을 해버렸습니다. 민족주의는 자기의 고유의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이 되어지고 그 문화의 보존을 최고의 가치로 두게 됩니다. 그 문화의 중심은 종교 입니다. 그 이전에는 자기의 전통 종교를 법적으로 보호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는 법적으로 보호하기 시작 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슬람 국가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기독교를 전하냐? 못 들어 온다. 우리나라는 불교 국가인데 왜 기독교 선교사들이 마음대로 들어와서 선교를 하냐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전통적인 선교의 문이 많이 닫히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945년 제국주의가 끝날 때 즈음엔 전세계에 선교사가 못 가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문이 열린 것 같지만 선교에는 문이 닫힙니다. 전 세계 국가 중에 120개 국가 정도가 선교사 입국을 거부하거나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민족주의가 들어서자 전통적인 종교도 변합니다. 불교가 전투적인 불교로 변해버렸습니다. 힌두교가 수용적인 종교였는데 호전적인 힌두교로 변하게 됩니다. 이슬람은 말할 것도 없이 호전적인 종교로 변하게 됩니다. 민족주의와 종교는 전통적인 선교의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동시에 민족주의가 성장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은 말 할 수 없는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통계는 오늘날 전 세계 그리스도인 중에 네 명에 한 명 정도는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특별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1/4이 훨씬 넘는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 하면 1/3 정도가 자기 신앙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고, 무엇인가 제한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상 어쩌면 지금과 같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많은 시기는 없었다고 할만한 그런 큰 시련을 겪어가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4차 산업의 등장입니다. 이번에 팬데믹 현상을 경험하면서 최고의 변화의 속도를 경험하는 것이 아마 4차 산업일 것입니다. 모두 전문 분야에 계시기 때문에 4차 산업을 잘 아실 터인데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loT), 빅 데이터 등 코로나 사태의 최고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4차 산업은 선교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봅니다. 4차 산업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간단히 넘어 갈 것인데 4차 산업이 주는 선교적인 부정적인 영향들을 우리는 빨리 분석을 해 내고 거기에 대비를 해야 되고 동시에 4차 산업이 복음 전파에 긍정적인 부분을 아주 집중적으로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글로벌 분열의 시대 입니다. 아마 일정 시간 우리는 글로벌 분열의 시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글로벌 분열의 시대라는 용어 이전까지는 세계화라는 것이 세상을 지배 했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Thomas Friedman이라는 사람인데 ‘The World is Flat’이라는 책에서 세계화의 전도사처럼 Off-shoring, Reshoring 하면서 신 자유주의를 외친 것이 10년도 안되었습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와 같은 책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벤자민 바버지하드 대 맥월드같은 책이 세계화를 세계의 기준으로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코로나 현상을 맞이하면서 최근에 우리는 그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분열의 시대를 보게 됩니다. 민족주의가 고조가 되고, 자국 화폐의 평가 절하가 되고, 관세를 인상하고, 정치적 분열이 일어나는 이 시대를 보면 이런 정치적, 경제적 분열은 문화적 분열을 일으킬 것 같고 문화적 분열은 결국 선교적 분열이나 한계를 만들게 될 것 같습니다. 패권주의가 힘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전 세계적인 집단 지성이 있기 때문에 글로벌 분열이 더 심해졌을 때 그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현재 글로벌 분열 상태가 반작용으로 글로벌 연대의 시대로 돌아가는 동안 굉장히 많은 고통과 선교의 제한을 경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상황적 변화가 선교에 미치는 영향

1. 선교사의 수적 증가는 정체될 것이다.

2. 선교사의 역할 변화가 요구된다.

3. 소수의 선교사가 최고의 효율을 올리는 스마트 선교

4.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발전 요구

 

이런 세상의 변화는 선교에 직격탄을 주게 될 것인데 이런 변화들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첫째로 전세계적인 선교사의 숫자는 정체되거나 줄어 들게 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43만명 정도의 선교사가 있고 한국 선교사가 2 8천명 정도 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한국에서도 선교사 파송에 정체 현상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매년 1,000, 1,500명 늘어나던 것이 전혀 늘어 나지 않거나 100단위로 이렇게 줄어 든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의 수적인 정체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서 복음화가 진전되면서 Nationalism과 현지인 지도자들의 영향이 커지게 됨에 따라 타문화권 선교사가 줄어 든다는 관점에서는 바쁜 현상은 아니라고 보여 집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지금까지 선교사를 내어 보내는 지역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이런 지역 이였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아프리카에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한가?하는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에 선교사 보내는 것을 여전히 찬성합니다. 다만 교회 개척과 낮은 수준의 제자훈련을 시키는 경우는 아프리카에서도 극히 제한 된 지역에서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짐바브웨라든지 탄자니아라든지 이런 지역에는 여전히 교회 개척과 낮은 수준의 제자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아프리카를 볼 때에는 더 이상 타문화권 선교사가 교회 개척과 낮은 수준의 제자훈련에 몰두 할 필요는 적어지게 될 것입니다. 혹시 신학교육을 시킬 수 있는 수준의 선교사 아니면 고급의 지도력을 가진 선교사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제가 우리 교단에 한번 제안하기를 아프리카에 보내는 선교사들은 최소한 ThM의 학위를 가지고 신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들만 파송을 하면 좋겠다 라고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도 아주 빠르게 성장을 하면서 예전처럼 선교사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시아 아시아는 물론 꾸준히 선교사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기도 변화가 있습니다. 여기는 선교사의 수적인 증가 보다 앞으로는 질적인 성장에 집중을 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두번째는 선교사의 역할에 변화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해 왔던 선교사의 사명, 선교사의 기능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 나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무언가 한다고 해서 기대 만큼의 열매를 맺는 시대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불 필요한 선교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이 다음에 다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번째는 소수의 선교사가 최고의 효율을 올리는 스마트 선교가 필요합니다.

선교사의 숫자가 줄어 들게 되고 Local 이 변화 되면서 앞으로 선교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소수의 선교사가 최고의 효율을 올리는 Smart 선교의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는 가전에도 Smart 가전이 나오지요. 하나의 기계가 굉장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 할 수 있는 것입니다. Smart 기업도 나오고 있지요. 선교사는 계속 필요합니다. 현지 선교사가 계속 필요한 이유가 이 복음과 기독교가 병행하는 건 인격과 인격의 만남과 삶의 공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현지 선교사는 계속 필요하지만 National 지도자들이 성장 함에 따라서 그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의 기능과 사역의 모양은 효과적으로 변해야만 되는 시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네번째는 복음주의 신학의 발전이 요구 됩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 한 상황적인 변화와 선교지의 변화가 일어 날 때에 복음주의 안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Supporting할 신학적인 발전을 요구 한다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정말로 우리가 제4기의 새로운 선교 시대로 접어든다면 제4기 선교를 대응해 주는 효과적인 선교 신학이 변화 발전 되어야 만 합니다. 이런 4가지가 선교의 미래에서 크게 요청 되어지는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중에서 2, 3, 4번이 핵심인데 2번 선교사의 역할 변화를 한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좀 더 살펴 보겠습니다.

 

선교사의 역할 변화

선교사들은 더 이상 부모 역할이 아니라 최소 동역자, 더 나아가서 후원자의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

개척자, 선구자, 씨 뿌리는 자, Reckless Daredevils

동역자(Partner). Along-Sider, Coach, Co-stockholder

현지교단 중심의 협력 선교

선교사의 역할 변화

 

여러분 조금 낯선 말일지 모르겠지만 선교사를 훈련 시켜서 파송 할 때에 선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제가 주로 쓰는 용어입니다만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상황에 따라서 3가지 역할을 아주 빠르게 변화시켜 가면서 감당해야 한다고 훈련을 시킵니다. 처음에는 부모(Parents)의 역할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 동역자(Partner). 그 다음에 후원자(Patron) 역할을 하도록 훈련합니다. 선교사가 처음 현지에 들어가면 부모의 역할을 행해야 합니다. 부모 역할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일방적으로 제공해 주는 역할입니다. 선교지에 처음 들어 갔을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채워 주어야 하고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 입니다. 하지만 현지인 지도자가 성장함에 따라서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부모의 역할을 해서는 안됩니다. 선교사는 현지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는 그 일을 감당하는데 현지인 지도자들의 능력과 역할이 부족할 때에 그 현지인의 역할과 능력이 채워질 때까지만 일하는 임시직 입니다. 선교사 훈련에서 내가 선교사에게 아주 강조하는 것은 선교사는 임시직이다. 정규직 아니다, 일시적이고 항상 언젠가는 손을 놓아야 한다고 강조해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큰 교회의 개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와 똑같은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기능과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는 현지인을 키우는 것이 목표 입니다. 현지인 지도자가 어는 정도 크면 선교사는 더 이상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의 단계 즉 50 50의 권한을 나누는 동역자의 단계로 빨리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동역자 단계가 선교사 생활에서 가장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현지인이 더 크게 성장을 하면 이제는 동역자가 아니라 현지인이 리더십을 가지고 모든 역할을 주도하고 선교사는 뒤로 물러나서 후원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현지에 뼈를 묻는 것이 영광이 아니라 현지인을 키워서 내가 이제는 없어도 된다라는 상황에서 손을 터는 것이 선교사의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한국 선교사는 여전히 내가 좀 후하게 말씀을 드려도 90% 이상이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후하게 말씀 드렸다는 뜻은 95%이상이라고 말하고 싶은데한국 선교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역자 역할을 하시는 분도 사실 찾아 보면은 현지인 몇 명과 같이 일하지만 한국 선교사가 담임목사이고 현지인들은 전도사 정도 합니다. 이것은 동역자의 역할이 아닙니다. 여전히 부모의 역할입니다. 동역자는 50 50의 권한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부모의 역할 조금 성장해야지 최소 수준의 동역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세상의 변화를 보았을 때에 우리 한국선교사의 역할이 부모의 역할에 몰려 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교사의 이미지는 이것입니다. 개척자, 선구자, 씨 뿌리는 자 이런 것 이였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를 보고 무어라 합니까? ‘맨 땅에 헤딩 하는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맨 땅에 헤딩하는 자를 영어로 맛깔 나게 표현하는 방법이 없어서 제가 Reckless Daredevils 라고 표현했습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서 개척하는 것,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선구자로 가는 것, 씨도 없는 곳에 가서 씨를 뿌리는 사람, 그리고 맨 땅에 헤딩 하는 것이 선교의 이미지였지만 이제는 점차 이 단계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현지인 지도자가 없고 현지인 자원이 없을 때 이런 것 입니다. 함부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선교사의 역할이 최소한 동역자, Partner가 되어야 합니다. 영어로 표현 하는 것이 더 이해가 나아서 Along-Sider, 함께 그 과정을 같이 걸어가 주는 사람, Coach, Co-stockholder 주주의 권한을 같이 행사하는 사람 이런 개념으로 빨리 변화하지 않으면 선교를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10여년 전에 싱가포르에서 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제 강의를 끝내고 나서 바로 이어서 필리핀의 어는 침례교의 총회장의 강의가 있었는데 강의 내용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한국선교사들 다 돌아가라. 필리핀에서 한국 선교사들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필리핀에서 다른 교단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속한 침례교단에는 적어도 한 10여개 정도의 건강한 침례교 교단들이 있습니다. 신학교도 있고, 30여년 전에는 선교사들의 지원이 절대적 이였지만 이제는 상당히 성장을 했습니다. 교단들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됩니다. 한국 침례교 선교사들이 이곳에 와서 여전히 독자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자기가 신학교 만들어서 훈련 시켜서 자기가 파송식을 하고 있고, 자기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여기 저기에 이것 저것 진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필리핀 총회들이 화가 난 것이지요. 왜 너희가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느냐? 우리와 최소한 같이 일하거나 우리와 의논해서 일하거나 우리의 산하에서 일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너무 강하게 이야기를 하셔서 화도 좀 나고 상처도 받고 했지만 사실은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침례교 교단이 10여개나 있는데 우리 선교사를 어디에 보내 드릴 것인가?가 문제 입니다.

두번째는 차마 말은 못했지만 현지인 지도자들이 성숙 하다면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당신들이 성숙하지 못한 가운데 우리 선교사를 당신들 밑에 집어 넣어주면 우리 선교사들 다 죽인다 끊임없이 돈을 우리 쪽으로 가져와라 무슨 프로그램을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안되지 않느냐? 4년 전에 침례교 선교 대회에 제가 강사로 갔었습니다. 가서 깜작 놀랐습니다. 여러 침례교 교단들이 합쳐서 하는데 첫번째 놀란 것은 80년대 초반에 한국의 선교와 똑같다. 그런 지도자들이 이런 협정 만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단 합치는 것은 어렵지만 선교는 하나의 채널로 하자 서로가 자기 자원과 사람을 내어 놓고 한 채널로 하자 그래서 One Standing Body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선교사를 한 채널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상황을 보고 돌아와서 교단 선교 지도자들에게 최소한 필리핀에서 만은 우리 교단 선교사들을 현지 교단들과 함께 일하거나 그들의 리더십 밑에 넣어 주어야 될 것 같습니다 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2달 전에 BMS(Baptist Missionary Society, 침례선교단) 책임자들과 대화를 좀 했습니다. 가끔 Zoom으로 특별한 안건도 없이 대화를 좀 합니다. 제가 그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독자적으로 교회 개척하는 일은 오래 전에 멈추었습니다. 항상 현지의 교회와 현지의 교단과 협력해서만 교회를 합니다. 제 속으로 아 벌써 이렇게 변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뭐하고 있었을까? 이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현지인 교단들을 중심으로 National 지도자들이 주인공이 되고 우리는 뒤에서 동역자가 되고 Along-Sider가 되어야 합니다. Coach Co-stockholder 역할 정도로 빨리 변화 되지 않으면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의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침례교 선교 책임을 맡으면서 주로 하는 일이 현지 교단과 선교사들의 불필요한 갈등을 중재하는 일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변화 해야 할 시기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들을 불신하기 때문에 이득 보는 것 보다는 손해 보는 것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만한 시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선교사 역할이 이제는 부모 역할에서부터 무언가 다른 역할로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지 교단 중심의 협력 선교를 생각해 본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Pandemic이 끝나고 나서 Global 분열의 시대가 되고 민족주의가 강한 시대가 되면 선교사들은 합법적인 체류가 어려워 집니다. 이제는 선교사가 신분을 숨겨서 살아 남는다 이거 거의 불가능 합니다. 신분을 바꾸어 봐야 1개월에서 3개월 정도면 그 나라 경찰이나 정보국에서 신분을 알게 됩니다. 결국에는 단물을 다 빼먹으면 쫓아 낼 것입니다. 그러나 현지 교단을 중심으로 해서 선교 사역을 이룰 때는 합법적인 체류가 점차 늘어 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 중의 하나 입니다.

선교사의 기능의 변화

아까 우리가 Smart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Smart… 현대 전쟁을 본다면 Smart Soldier라는 개념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습니다. Smart Soldier 라는 것은 본인이 개별적으로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Network 상에 놓고 모든 Resource가 동원되어 종합적으로 전투를 하는 것이 현대전의 Smart Soldier개념입니다. 선교도 선교사도 이 개념으로 빨리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별 선교사들이 다 흩어져서 각개 약진 식으로 각개 전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Network상에 선교사들이 자기의 위치를 잡고 후방과 전방의 개념이 모호할 정도로 모든 Resource를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사역을 이루어 가는 개념으로 사역을 진행해야 합니다. Smart Soldier에 대한 충격적인 모습을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군인들의 모습입니다.

왼쪽은 2차 세계 대전 때 태평양에서 전쟁을 하던 때의 군인들의 모습니다. 여전히 우리들은 이런 모습의 군인들에 익숙할 지도 모릅니다. 전투모를 쓰고, 소총을 들고, 자기 탄띠에다 탄약을 메고 그리고 전쟁을 수행 합니다.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전쟁은 어머 어마한 군인들의 희생을 요청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전투는 레닌-그라드 전투라는 것 이였는데 당시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이 300만명 이상 사망을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서도 태평양 전쟁 중에 오키나와 전투가 있었는데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을 해서 승리를 선포하기까지 3개월 동안에 미군 14,000명이 사망했습니다. 부상 당한 사람의 숫자는 82,000여명 팔 다리가 잘려 나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합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11만 명이 죽었고, 오키나와 주민들이 12만 명이 죽었습니다. 몇 달 동안의 전투에서 거의 3~40만 명이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게 되는 전투를 벌렸습니다. 한번의 전투에서 300만 명이 죽고, 30~40만 명이 죽고 사는 이런 일들이 벌어 집니다. 그런데 오늘 날의 군인들은 조금 모양이 다릅니다. 무언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군인들처럼 전투모 하나 쓰고 소총 하나 달랑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아주 많이 붙이고 다닙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새로운 장비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통신 장비 입니다. 그래서 모든 군인들이 서로가 대화가 가능합니다. 후방의 지휘관과 통신이 가능합니다. 후방에서 포 사격을 해 줄 지휘부와 비행기로 포격해 줄 공군과 연결이 된 가운데 전투를 하게 됩니다. 이 연결로 인해서 포병과 항공기 지원이 있고, 코브라 헬기 같은 장비가 이 사람의 앞을 가면서 적의 공격을 막아주고 전투기가 즉각적으로 지원을 해 주고 폭격기가 집단적으로 적을 공격해 주게 됩니다. 그리고 전투모를 잘 보시면 야간 장비들이 붙어 있습니다. 밤에도 전투 할 수 있습니다. 탱크가 이 사람들의 주변을 돌아다녀 주고 필요 할 때에는 미사일이 날라 오기도 합니다. 최근에 더 놀라운 것은 드론(Drone)이 떠서 숨어 있는 적군을 다 찾아주고 병사들의 움직임을 한 사람이 보면서 움직임을 다 지시해 줍니다. 그리고 현지에서도 안전하게 움직이도록 병력 수송 장갑차들이 있어서 군인들이 길에서 죽지 않습니다. 때로는 무인 폭격기가 있어서 적진을 공격해 주기도 합니다. 그림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개인들이 전장용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의 능력을 몇 배로 향상 시켜 줍니다. 이 사람이 전투 장비만 가졌는데 보급 물자는 무인 수송기가 있어서 뒤를 따라 다닙니다. 때로는 아주 무거운 짐과 힘든 지형에서는 무인 로봇이 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해 줍니다. Smart Goggle이 있어서 자기가 필요한 데이터들을 눈 앞에 띄워서 보면서 전투를 하게 됩니다. 자 이렇게 Smart Soldier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 졌을까요? 여러분 아시는 되로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라크의 혁명 수비대가 아주 강한 군대이고 상당한 희생을 치를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를 선포하기까지 초기 한달 반 동안에 총 사망자 숫자는 139명 이였습니다. 오키나와 전투 하나에서 30만 명이 죽는 사건,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300만 명이 죽는 것과 비교해서 요즘은 이라크 전쟁에서 초기 한달 반 동안에 미군 139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투의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 후속 전쟁을 통해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의 사망자는 전체 1,700명 정도 나왔지만 이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효율의 전투를 했습니다. 이제는 선교사도 Smart Missionary가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면서 소수의 선교사들이 최대한의 효과를 올릴 수 있어야만 됩니다. 

4차 산업 혁명은 선교사들을 Smart Soldier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요소를 갖추게 됩니다. 이제 선교에서 거리라는 개념은 없어 집니다. 아마 선교의 제4기에 들어가면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거리 개념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거리 개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외국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그것 구별이 없습니다. 저는 아들이 하나고 손주도 하나인데 아들 내외는 직장을 외국에서 선택하는 바람에 덴마크에 살고 있습니다. 엄청 멀리 떨어져 있지요. 그런데 내가 아들 내외와 거리감을 느끼고 살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고, 제 손주가 노는 것을 동영상으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애기와 소리를 내면서 놀 수도 있습니다. 온갖 것들이 다 이루어 집니다. 저는 너무 많은 Communication을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제 스마트 폰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카톡도 있고,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쓰는 Whats App도 있고, Skype도 들어있고, Zoom도 들어있고, 문제가 되는 지역과는 Telegram을 쓰기도 합니다. 일주일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국제 회의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과 하는 것처럼 제 방에서 국제 회의를 진행 합니다. 거리 개념이라는 것이 지금 없어져 버렸습니다. 문화, 문화의 개념이 이제는 거의 옛날이 되어 갑니다. 물론 문화를 단순히 볼 수도 없고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들이 이젠 Netflix를 보고 있습니다. 외국의 문화와 외국의 것들을 거실에서 매일 보고 삽니다. 저는 아직 Netflix가 없는데 Olleh TV가 저희 집에 들어 옵니다. Olleh TV를 보다가 내가 놀란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매일 실시간으로 미국, 영국, 중국, 일본, 호주, 독일, 프랑스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이 변해 버렸습니다. 세계화라는 것은 이미 이루어 졌는지도 모릅니다. 언어 인종적인 문제도 극복이 됩니다. 1년에 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다른 나라로 가고 옵니다. Global Migration 유럽이나 아프리카 쪽에 수 많은 난민들이 끊임없이 몰려 옵니다. 바라기는 인공지능을 통해서 언어의 한계도 어는 정도 극복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파워 포인트를 쓰신다고 하면 여러분 말하시는 것이 자막에 그대로 나옵니다. 그 자막을 중국어 일본어로 눌러 보시면 그 언어로 보여 집니다. 물론 아직은 그 Quality가 많이 떨어지지만우리는 아직 인공 지능의 초기 단계에 이정도 인데 어쩌면 몇 년 안에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게 됩니다. 여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설교나 교회 교육이나 모든 것을 자막을 처리해서 그들의 언어로 현지인들에게 쉽게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선교사 한 사람이 아까 주렁주렁 온갖 것을 달고 있는 현대 Smart Soldier와 같은 모습으로 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 문화, 장벽이 모두 극복이 됩니다. 이제 선교사 한 사람이 가 있을 때 혼자서 전투하지 않습니다. 원격 신학 교육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강의를 하고 그것을 자막을 붙여서 현지인들에게 보내 주어서 그들은 신학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내가 설교와 모임을 했는데 그들에게 파워 포인트로 번역을 중국어로 다 해 주고 제가 한 강의를 자막으로 붙여 주는 데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하는 교육을 중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이런 신학교육인데 우리는 신학교육을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그 오지마다 수준급의 신학 교수들을 채용해서 보내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이 문제도 생각 보다 쉽게 극복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DBS를 통해서 설교 및 영성 지도를 해 줄 수도 있습니다. DBS(Direct Broadcasting by Satellite)는 여러분 교회에서 하시는 CGN-TV 같은 것입니다. 요즘은 유명한 설교자들이 각 나라의 집회마다 가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설교를 도서관처럼 만들어서 선교사들이 그 나라 말로 자막을 붙여서 필요한 주제를 골라서 현지인들에게 보여 주면서 영성 지도를 해 주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또 지도자 교육도 한국에서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Curriculum에 잘 반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변화는 있어야 합니다. 몇 시간 영상 교육이 아니고 30분 정도의 강의로 잘라서 많은 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이미 온누리교회는 미디어 라이브러리나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 하신 것으로 아는데 이것은 선교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선교사가 현지에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많은 이런 후방의 지원을 받아서 화상을 통해서 지도자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연장 교육도 원격으로 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이런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 짤막한 온갖 주제의 것들을 수10개 수100개 만들어 놓은 다음에 선교사들에게 매년 몇 번 몇 번의 강의를 들어야만 그 다음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평생 교육의 시대도 이제는 가능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On-Line Mentoring도 가능합니다. 통역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선교사님들을 현지에서 Burnout 되지 않게 온라인 멘토링이 가능해 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Platform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현지에서 신분을 유지하고 현지인과 접촉을 위해서 플랫폼을 유지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서 플랫폼을 전문적으로 세워주고 운영해 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교회 교육도 온라인으로 가능 할 것입니다. CISD(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 위기상황 스트레스 해소활동) 도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많이 번 아웃이 됩니다. 그럴 때 한국에 돌아와서 회복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CISD라는 전문 사역자들이 한국에서 현지 선교사들과 필요하다면 매일 만나면서 CISD를 훈련 시켜주고 이들의 Member Care가 가능해 집니다. 그 밖에도 전략적 단기 선교도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고도 이루어 지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될 거 같습니다. 또 하나 한국 선교에는 평가가 약한데 이제는 전략평가 지원팀이 현지에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선교사를 도와 주는 것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앞에서 Smart Soldier가 일선에 나가 있지만 온갖 포격 지원과 통신지원도 받고 최상의 전투를 이루고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상의 효율을 이루는 것처럼 선교도 이런 것들이 가능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염려하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Mentality의 문제 일지 모른다. 또 선교라는 개념의 문제 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 가운데서는 당연하게 이루어 져야지만 됩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선교 신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선교신학의 발전

1. 통전적 선교학의 발전

2. 복음주의 종교 신학의 발전

3. 복음에 대한 이해의 발전

4. 문화 개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짤막하게 선교신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신학은 큰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선교학에서 통전적 선교학의 발전이 아주 귀합니다 선교라는 말은 교회에 맡겨진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무엇을 맡기 셨는가? 지난 50~60년 동안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 신학이 머리가 터지도록 싸웠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선교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 만이 하나님이 교회에 맡겨준 사명인가? 아니면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이 맡겨진 것인가? 세상의 해방과 변혁이 교회에 맡겨진 사명인가? 이것을 가지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웠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도 통전적인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맡겨진 사역, 선교 사명은 복음전파와 세상에 대한 책임 둘 다 입니다. 다만 어떤 우선순위와 우선순위라고 표현하는 것도 논란이 되지만 복음주의적 교회들 가운데서도 굉장히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때로는 로잔운동 같은 것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너무 많이 가서 문제라고 하지만 실제로 보면 복음주의 안에서라도 미가 Network(Micah Network) 이라든지 복음주의 안에서도 핵심적인 지도자가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라는 사람인데 크리스토퍼 라이트도 통전적 선교학을 굉장히 지지합니다. 데이비드 보쉬 (David J. Bosch) 라든지 스티브 베반스(Stephen Bevans )같은 이런 사람들의 선교신학 티모시 테넌트(Timothy C. Tennant) 같은 사람 최근에 선교학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상당히 통전적으로 변한 것이 한국 교회는 이런 개념들이 생각보다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성경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영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통전적으로 선교학이 발전적으로 이루어져야 됩니다. 이것은 선교 신학의 책임입니다. 효과적으로 이것을 거론하면서 성경적인 것으로 이것을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복음주의 종교 신학의 발전입니다. 종교 신학이라는 것은 타 종교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보는가를 종교 신학이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 타 종교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거의 타 종교는 마귀의 장난, 거짓의 덩어리, 사탄의 속임수, 타종교를 인정해 주거나 구원의 수단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다원주의 시대가 되면서부터 종교 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면에 있어서 복음주의가 아주 약하기 때문에 21세기에 종교 대 종교에 종교 신학적인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만약에 후배들에게 새롭게 학교에서 신학 과정을 공부한다고 한다면 복음주의의 종교 신학과 다원주의 논쟁에 관해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복음에 대한 이해의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전형적으로 축소된 복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축소된 복음이 뭐냐 하면 두 가지입니다. 죄 사함과 영생을 얻어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의 올바른 의미는 죄 용서 받고 천국 간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넓게 본다면 성경의 거대담론이라는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을 보면 구원의 의미는 타락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는 복음이 나 개인적으로 죄 용서받고 나 천국 간다고 하는 것보다도 내가 십자가의 사건으로, 십자가 사건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거 없으면 안 됩니다. 십자가 사건을 약화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로 죄 용서 받았다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죄 용서 받고 천국 간다라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타락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로 회복 되어 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짜 중요한 목표는 그 회복된 자가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복음은 죄 용서라는 입구와 천국 간다라는 꽁지 두 개 만을 붙잡는 해괴한 모습이 되고 이 사회에 영향력을 잃어 버립니다. 이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문화 개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신학의 문화라는 개념이 들어오게 되자 성경적이라는 개념도 많은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라는 그 기본적인 성경의 절대적인 고차원을 유지하면서도 문화라는 개념을 신학의 개념으로 연구 할 수 있는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는 선교 신학의 있어서는 네 가지의 선교 신학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선교의 시대 가운데서 적절한 후원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강의를 하고 혹시 질문 있으면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질의 응답>

  : 예 감사합니다. 한 시간 좀 넘게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부터는 교수님께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자유롭게 손을 드시고. 마이크를 켜시고. 질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김병순 장로님

김병순 : 교수님 강의 매우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침신대에 계시니까 말씀하신 것들이 해외에 가셨을 때에도 침례교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다른 교단 그러니까 장로교나 감리교, 성공회, 성결교 등 타 교단과도 Consensus가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현모 : 제가 맡은 일이 침례 교단에 있어서 침례교분들과 많이 만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선교사님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꼭 침례 교단만 아닙니다. 현지에 계시는 다른 교단에서 선교사님들과의 관계도 많이 맺고 그 분들이 요청하실 때는 돕는 일을 하거나 그런 것들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예화를 든 것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 주로 침례교단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만 이런 변화는 꼭 침례교회에서 만 겪고 있는 변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교단의 선교 지도자들과 대화를 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예 감사합니다. 또 다른 분, 한정국 선교사님

한정국 : 강의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현모 교수님의 선교 미래에 대해서 100% 공감을 합니다. 우리가 선교를 Going Mechanism 쪽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Coming Mechanism 을 생각할 때, 땅 끝에 있는 수 많은 이런 종족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현상이 더 가속화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유튜브라고 하는 플랫폼과 관련해서 검색 엔진에서 이런 플랫폼을 통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또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다가오고. 선교사들이 이제는 대면으로 다가오고 다가간다는 개념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올 수 있게끔 어떤 Mechanism을 개발 한다거나 플랫폼을 만들고, 그것을 난 곳 방언으로 유익하고, 재미있고, 인상적인 Content를 그들의 난 곳 방언으로 계속해서 제공할 수 있다면 YouTube 상에서도 그분들이 와서, 또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기독교로 돌아오지 않겠냐?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Coming Mechanism 에 대해서 코멘트를 좀 부탁 드립니다.

이현모 : 한 선교사님 지적하신 것이 절대적으로 맞는 이야기 입니다. 제가 Total Mission 이라는 개념을 이야기 했을 때는 가능한 한 모든 개념을 다 Network화 하는 것을 내포하는 의미입니다. 저는 조심스럽지만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2000년의 교회 역사 가운데 사람들이 종교를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첫 번째 Generation이 될 수도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해 봅니다. 사실 100년 전 아니 대부분의 문화권에 있어서는 5~60년 전까지만 해도 종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태어나면 자기 지역에 있는 종교가 진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믿고 살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시작해서 특별히 21세기가 되면서 예기치 않게 수 많은 미디어와 유튜브 같은 것들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자기 문화와 상관없이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다양한 세계의 종교를 접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선교사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꼭 선교사가 가지 않더라도 비자발적으로 조인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미디어일 것 같습니다. 4차 산업이 주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데 긍정적인 부분을 Maximize 할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찾아 내어야 합니다. Mentality라는 이야기를 제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는데 저는 대략 한 4년 전부터 Zoom을 사용해 왔었습니다. 영상으로 회의를 할 수 있는데 뭐 하러 서울까지 가서 어렵게 회의를 하느냐 영상으로 회의를 하면 되지 않겠냐? 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은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회의를 해야지 어떻게 전화기를 보면서 회의를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개념이 Corona 때문에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지요. 이제는 Zoom을 거부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진 사람이 되는 것이죠. 한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Coming Mechanism 을 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는데 어쩌면 우리의 Mentality가 못 쫓아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4기 선교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4기 선교가 온다고 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미디어가 중심에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 예 감사합니다. 정대서 장로님

정대서 : 교수님 강의를 엄청 공감을 하면서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저희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저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기술적인 발전으로 ICT에 맞춰서 가야 되는 것은 분명한데 제일 염려가 되는 것은 영적인 전쟁들 입니다. 우리가 Postmodernism 시대도 이야기 하고 Globalism 시대도 이야기 하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고 그러다 보니까 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이 깨어지고, 사단이 계속적으로 가정을 해체하고 있고, Mammonism 은 점점 더 심해지고, 돈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상이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글로컬리즘도 그런 의미가 있는데 다원주의 그러니까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만 몰두를 하는 것이지요.  제가 느끼기에는 사탄이 계속 이쪽으로 드라이브를 걸어가고 있어요. 원래는 본 회퍼 (Dietrich Bonhoeffer)가 섰던 용어인 줄 알고 있는데 문헌에서는 탈종교 시대다라는 표현까지도 하고 정말 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만들고 있을까? 그러나 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존재인데 정말 못 말릴 정도로 인간은 종교적이다라는 것이 진리이다 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러면 심화된 Postmodernism 시대에 우리가 영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선교적으로 반응을 해야 될까 한 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현모 : 정 장로님이 지적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 사실은 우리 모두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됩니다. 여러 면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메시지인 동시에 파워입니다. 신학자들의 그렇고 전체적으로는 잘 못 하면은 메시지를 너무 집중하거나 파워를 너무 집중하면 앞으로의 세대는 이 균형을 잡기가 더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을 합니다. 아까 제가 4차 산업혁명을 조금 짧게 넘어갔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라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한번은 인도네시아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인도네시아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그들이 원하는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 4차 산업시대에 기독교가 어떤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까? 라는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그들에게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장로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4차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는데 우리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 라고 한다면 탈 종교화를 부추기는 경향이 급속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원주의라든지, 물질만능주의 쪽으로 모든 사람을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4차 산업은 1 2 3차 산업 까지는 결과적으로 복음전파에 다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4차 산업은 역사상 처음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을 하기 시작 합니다. 눈 먼자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에 귀를 열어 주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사람에게 영생을 주고 이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인데 오늘날 지나치게 4차 산업의 테크닉을 따라 가는 사람은 인간이 그것들 다 할 수 있다. 인간의 두뇌를 알고리즘화 시켜서 생화학적인 알고리즘으로 바꿔서 영생을 줄 수 있다. 또 시각장애 자들을 인공 시신경을 통하여, 카메라를 통하여 볼 수 있게 해 주고, 귀머거리들에게 들을 수 있게 해 주고, 인공관절을 통해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주기도 합니다. 현재는 조금 어색하지만 앞으로 4차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 이전에 수 백년에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은 1~2년 이내에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들이 다 한다고 할 때,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지요.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것이 어느 정도 갔을 때는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는 탈 종교화를 부축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미신적인 신앙 이였지 하나님이 어디에 있어? 라고 하면서 탈 종교의 시대로 부추기게 되고 또 Postmodernism 시대에 우리 기독교만이 이런 변화를 겪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도 고도로 발달한 리버럴한 무슬림에 들어가게 되면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다원주의 논쟁도 일어나게 되고 앞으로 얘기지 못할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음 세대 사람들은 진짜 탈 종교화가 심각해 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은 절대적 입니다. 아까 장로님 말씀 하신 데로 인간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지극히 종교적이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20세기 초의 과학주의가 등장하게 되면서 종교는 끝장이다라고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20세기가 역사상 최고의 종교의 부흥을 맛 보았습니다. 21세기도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할 수 있는 것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Generation to Generation의 선교의 모습은 전혀 달라져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세계관 교육 같은 것들이 교회 안에서 다르게 진행되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세속적인 세계관이 완전히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관에 대해서 교회는 넋 놓고 있고,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봅니다. 다음 세대를 접근 할 때는 프로그램만 새롭고,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패턴이 바뀌는 연구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다음 시대의 AI 시대는 4차 산업의 부정적인 영향들을 미리 분석해 내고, 대안들을 계속 만드는 일들이 동시에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예 감사합니다. 또 질문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헌승 장로님

신헌승 :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Total Mission을 말씀 하셨는데 지금 세대가 엄청 빨리 변하는 가운데 모든 성도가 참여하는 선교이런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왜냐하면 아까 말씀하실 때에 120여 국가는 선교 비자를 받기가 어렵다고 했을 때 그래도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사업상 정기적인 일로 인하여 교류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남미라든가 이주민에 대해서 소수에게만 맡기는 선교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러한 변화에 참여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현모 :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 한다라는 개념을 저는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풀 타임 선교사가 아니라 평신도들도 비즈니스를 통하든지 다양한 Network 가운데서 사역을 할 수 있다 라는 개념도 있고 또 하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직접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점차 이런 것들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한국에서도 직접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이 모든 것을 다 열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성도들을 돌아 보면은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한 때는 BAM (Business As Mission)이라는 것이 유행했었죠. 비즈니스를 통해서 선교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BAM에 대한 평가는 서로 극단으로 다릅니다. 내가 평가하는 BAM은 실제로 실패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BAM 가운데 성공적인 사례를 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평가 한다고 하면 결국에 지금까지 가장 비효율 쪽에 선교가 무엇이었냐? 하면 Network가 없이 각자하는 선교였습니다. 독립군처럼 개별적으로 행동 했을 때는 비즈니스를 하거나, 무엇을 했을 때 효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기능을 가진 분들이 좋은 커넥션을 가진 비즈니스맨들 또는 후방에 있는 자원들을 Network 상황에 넣어서 효율적으로 집결 시킬 수 있는 테크닉이 발달 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개별적으로 움직인다면 생각보다 효율이 크게 떨어지지요. 앞으로의 선교에서 모든 성도가 선교에 동원 된다 라는 개념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Network입니다. 서로가 다른 기능을 가졌지만 이것이 서로가 시너지를 일으키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선교에 동참하고 Network 없는 상태에서 모든 성도를 선교에 동참 시켰을 때는 아마 교통 사고가 많이 일어날 거고, 효율성도 떨어지고 투자에 비해서 효율이 많이 떨어질 것입니다. 교회들 단위에서 정말 종합해 가지고 Network을 하면서 선교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 예 답변 감사합니다. 노규석 목사님

노규석 : 교수님 너무 감사하고요. 정말 많은 배움을 얻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주민 선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님이 들어 와서 이제 동역도 해주시고 계시는데 제가 느끼는 바는 선교 생태계의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 못 들어 가시고, 이주민 교회들도 생존 자체가 어려운 1년 이상 모일 수가 없고, 문을 닫는 교회들도 많아지고, 제가 느끼기에는 선교 생태계 또는 목회 생태계 자체가 많이 파괴되고 축소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때 온누리교회 같은 대형 교회 또는 교단 선교부처럼 기존 자원을 갖고 있는 곳은 살아 남겠지만 어떤 역할을 해야 될지? 우리가 어떻게 도와 줘야 할지? 선택적으로 자연계처럼 도태 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사실 좀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선교 생태계를 보전하거나 지키기 위한 대형교회의 역할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면 좀 나누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현모 :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하하. 한국 교회 전체가 추구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넓게 본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은 Emergency 상황입니다. Emergency 상황은 시간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결국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Noc down 이 정상이 되고,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모임을 제한하고,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현재 위기 상황은 변화가 되는데 이 위기 상황을 넘어설 때 이 기회를 어떻게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사실 저도 고민입니다. 한국 교회에 지난 5~60년의 역사를 본 다면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거와 같이 한국 교회도 보이게 안보이게 많은 변화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정확한 시점을 말씀 드리기는 어렵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대략 지금부터 15년쯤 된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나면서부터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기독교에 대한 불만들이 사이버 테러라고 할 만큼 교회에 대한 사회의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라고 생각 됩니다. 이것이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면서 교회 자체도 문제점을 드러내게 되었었고, 특별히 지난 1년 반 동안 기독교가 사회의 코로나 팬데믹 위기 가운데 사회의 소망과 새로운 다이내믹을 주기 보다는 실망을 많이 주었습니다. 이기적인 집단이고 물론 교회에서는 교회에서 나오는 확진 자들을 과장해서 발표를 해서 어렵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또 어떤 면에서 본다면 사회적으로는 이기적인 교회 집단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시기를 거쳐 가면서 지도자들이 좀 방향을 잡아 주신다 라면, 한국 교회에서 좀 죄송하지만 도태되고 사라져야 될 부분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체질이 좀 변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소리에 대해서 우리가 귀를 열고, 인터넷 같은 곳에 보면 교회를 향해서 쌍욕을 해가면서 교회를 욕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하더라도, 점잖게 교회를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면에서 도태되어야 될 부분들은 도태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변화된 모습으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 긍정적인 면을 좀 찾았으면 좋았는데 핵심적인 것은 온누리교회 라든지 사실 한국교회에서 교인들은 착하고 순진 합니다. 문제는 지도자들의 문제가 훨씬 큽니다. 성도들의 대부분은 착하고 순진하고 어떤 면에서는 영적인 면에서도 순진한데 앞서 있는 교회들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을 때 대부분의 평신도들의 변화 속도는 상당히 빠를 거라고 저는 기대해 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의 방향에 대해서 소리를 좀 강하게 내 주는 역할을 큰 교회들이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작은 교회에 재정 지원을 해 주는 것도, 목회자들의 생활 지원해주는 것도 다 필요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기독교의 긍정적인 세상을 향한 지금까지 우리가 기독교가 욕 먹고 있는 부분에 대한 대안이 뭔지를 좀 앞서 있는 교회들이 소리를 높여 줄 수 있다 라면 그것이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딱 키 포인트로 짚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미 그런 역할을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짤막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서 굉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평신도들과 이야기 해 본다면 문제를 많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 앞서 있는 교회들이 소리를 내주고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한국 교회가 회생 하는데 엄청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승배 장로님

이승배 : 교수님 좋은 인사이트를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아까 설명하시면서 Generation to Generation 선교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중요성을 강조 해 주셨고 저도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으면서 모든 것이 온라인이고 Zoom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업 중에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읽혀지지가 않습니다. 오늘 그래도 여기에 참여하신 분들은 얼굴을 바라면서 서로 공감을 할 수가 있는데 학생들은 전혀 읽혀지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세대와 학생 세대는 서로 단절이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하고 있지만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강의는 온라인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내가 볼 때는 젊은 세대들은 종교를 떠났다고 생각됩니다. 이슬람도 그렇고 힌두도 그렇고 NG세대라고 하는 젊은 세대들은 이미 종교를 떠났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세대들은 굉장한 과학주의 입니다. 과학을 잘 해서 과학주의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고 자기가 이해를 해야 결정을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리면 이 자리에 계시는 분은 인류가 화성에 가서 교회를 만들고 살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지금 50% 이상은 화성에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세대와 우리들은 이미 세대가 끊어져 있고 그래서 한국에서의 문제는 우리가 이해 못 하는 Feminism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대 단절이 굉장히 심각하게 벌어져 있기 때문에 선교에 굉장한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종교의 문제가 아니고 코로나-19가 가져온 큰 변화이기도 하지만 이미 선교적인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현모 : 예 최근에 와서 여러 곳에서 Generation to Generation에 대한 논문도 나오고 논의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Generation to Generation 미션이라는 것이 유럽 쪽에서 최근에 생겼고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 교수님이 지적해 주신 문제들이 실제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도 이제 60대 중반인데요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G Generation에 대한 특집을 해 주는 것을 아내와 같이 보고 저는 평생을 학교에서 젊은 대학생 하고 지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아내랑 얼굴을 마주 보면서 정말 저런가? 괴물들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제가 정말 놀랐습니다. 하하하이런 세대들에 대해서 사실은 쉽지 않아요. 몇 가지 제 생각을 그냥 말씀 드린다면 첫째는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습니다. Generation to Generation 할 때 그냥 우리가 옛날에 교회에서 신앙이 좀 있는 어른들이 교회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런 개념이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전문가를 키워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저 부모가 전하면 된다 가 아니라 정말 그들의 세대와 문화를 이해하는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는 전문가를 키워서 파송을 해 줘야 되는 문제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이주민선교도 다른 곳에서 이주민선교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주민선교라는 것이 교인들이 시간 내서 밥해 주고, 봉사해 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채워주고, 그런 수준의 선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언어를 가지고 정말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전문가를 키워야 됩니다. 교회에서 본다면 이주민센터 지어 주고. 밥해 주고, 물건 채워 주고 하는 이런 것보다 이주민 사회를 전문으로 할 수 있는 전문가를 키워야 합니다. 전문가를 키우는데 투자를 해야 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 선교를 위하여 진짜 전문가를 훈련 시키고 만들어서 그들에게 보내야 합니다. 그들을 파송 시켜서 우리는 보조적인 역할만 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주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도 과학을 공부했습니다. 결국 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관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과학은 많은 경우에 가정을 세워 놓고 세계관이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교회 교육이나 다음 세대 교육은 세계관에 대한 교육을 다시 한번 해야 합니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세속적인 세계관이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크로스 시스템이 아니라 오픈 시스템으로 인간들의 시스템 밖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다라는 세계관을 심어줘야 됩니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하여 꼭 필요한 거 같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전문가를 키워서 전문가들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핵심은 전문가를 키우는데 투자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 답변 감사합니다. 전영수 장로님

전영수 : 전영수 장로입니다. 교수님 강의를 여러 차례 듣고, 그 중에 여러 번에 걸쳐서 강조하신 말씀이 우리 선교사들의 역할 즉 기존의 부모의 역할에서 앞으로는 동반자 혹은 후원자의 역할을 계속해서 강조 하시는데 너무나도 공감하고, 이 공감을 여기에서 강의를 듣는 우리들뿐만이 아니고 이미 현지에 있는 우리 선교사들도 교수님 강의를 들은 사람들도 많고 또 적극적으로 공감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 선교사들이 이런 역할의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요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역할 변화를 하도록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제 질문의 요지입니다. 그 현실이라는 것이 선교사님들의 나름 본인의 모든 삶을 바쳐서 선교사로 헌신을 했고, 현지에서 어렵게 어렵게 사역의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이 바로 지금의 모습이고, 지금의 역할인데, 이것을 역할의 변화를 해라하면 공감은 하는데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역에 뿌리를 흔들어 가면서 과연 이 역할에 변화가 잘 될 수 있겠느냐?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지혜를 좀 모아야 된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솔직히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할까? 라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여러 사례를 보셨을 텐데 선교사들이 어떻게 하면 정체성의 변화, 역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현실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셨거나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현모 : , 전 장로님이 지적하신 문제는 선교를 실제로 깊이 아시는 분들이 지적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선교사들이 참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단의 선교사 훈련 센터에서 훈련을 오랫동안 맡아 왔는데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선교사들의 연장 교육입니다. 자기가 해 왔던 것 변화 하지 않으려고 큰 벽을 치고 있는데 그 벽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깊숙이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장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두 가지를 말씀 드린다면 한 가지는 한국 선교에서 제일 연약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한국 선교는 지금까지 평가 기능이 없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독불장군으로 현장에 가서 자기가 해 온 것에 대해서 항상 방호벽을 두껍게 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선교사가 할 일이 아니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 임에도 불구하고 장로님 말씀하신 것처럼 평생을 다 바쳐서 헌신해서 이룬 일이기 때문에 누가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두껍게 칩니다. 선교사의 사역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기능이 우리 가운데 거의 없거나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선교사들은 효율보다는 그들이 일생을 드려서 어려운 나라에 가족과 함께 가서 희생했다라는 것을 크게 봐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희생에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은 지속되어야 하겠고, 인생도 평가해 줘야 되겠지만, 이제는 선교사가 얼마나 유능하고, 영향력이 있고, 전략적인가를 객관적으로 평가 해주는 기능이 발달해야 됩니다. 꾸준히 파송 단체가 선교사들을 평가해 주면서 그 사역의 취약점을 지적하고 또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 주어서 그 벽을 깨는 것이 첫 번째 입니다. 두 번째는 선교사의 벽을 깨워 주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연장 교육입니다 지금 아마 온누리교회 선교훈련 센터에서는 선교 연장 교육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더 많은 연장 교육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에서 선교사 연장 교육을 가장 잘 하고 있는 선교단체는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단체입니다. 그분들은 선교를 초기에 진입하기 위해서도 아주 오랜 기간 훈련을 시키시지만, 선교지에 들어가서도 1년에 대략 20% 정도를 지속적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위클리프 선교사들의 특징을 보면 20 15년 이렇게 오랫동안 고참이 될수록 겸손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영역에서는 정말 객관적인 전문가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이 지속적인 연장 교육을 하지도 않고, 현장 일에 그냥 몰두해서 코를 박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10, 20년 고참이 될수록 더 빡빡해집니다. 절대로 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새롭게 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했던 과거의 것을 계속 반복해서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연장 교육을 많이 제공해 주어서 넓은 세상과 다른 것을 비교할 수 있도록 이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전 세계에 선교 트랜드 변화를 깨우쳐 주었을 때 그들이 변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장 교육을 처음 할 때에는 워낙 안 변하고 안 깨어지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말하게 합니다. 한 두 달 정도 한다고 하면 충분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게 하고 난 다음에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만약에 이런 역할 변화를 앞으로 생각을 하고 평가 기능과 연장 교육을 정말 꾸준하게 많이 해야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사가 10 20년 되어서 언어와 문화가 익숙해지면 아주 비싼 자원이 됩니다. 이 자원을 버려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연장 교육을 통해서 좀 부드럽고, 변화 가능하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 파송 기관의 책임일 것 같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말씀 드렸습니다.

  : , 교수님 답변 감사합니다. 아 지금 상황을 보니까 우리 개별 토론이 중요한 거 같지가 않고 일단 질의응답을 계속 받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호 장로님 잘 정리를 해 주셔서 다음 것까지 해서 6월 달에는 가급적이면 강사 분을 모시지 않고 이 주제를 가지고 서로 나누고, 토론하고 그렇게 해야 될 거 같습니다. 시간이 좀 많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만 이현모 교수님 시간이 좀 괜찮으시다면 계속해서 질문 좀 더 받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현모 :

  : 윤현덕 장로님 말씀해 주세요.

윤현덕 : 이현모 교수님 강의를 내가 매번 감명 깊게 듣고 있고 또 도전적으로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지금 방금 말씀해 주신 것에서 제가 생각했던 대부분의 답이 되었습니다. 많은 선교사님이 말씀 하신 것 가운데 선교사의 기능이 변해야 한다하시면서 Smart Soldier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말씀하셨듯이 Mentality 문제라고 저도 생각이 됩니다. 일부 답변을 해 주셨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셨듯이 선교사는 임시직이다’. ‘선교사 선교지에 뼈를 묻으러 간다.’ 이런 Mentality에서 좀 벗어나는 어떻게 보면 변화에 적응하려면 본인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서 변화하라고 하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부 지금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서 답을 찾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Mentality, 선교사님들의 Mentality가 달라질 수 있도록 하는 물론 지속적인 현장 교육도 필요하고 또 끊임없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근본적으로 Mentality에 변할 수 있는 태도의 변화, 시각의 변화를 좀 더 가속화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답변을 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현모 : 예 사실 장로님 지적하신 이 문제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는 말하기가 참 쉽습니다. 문제를 찾아내는 것도 꾀 오래 이쪽에서 사역을 한 사람들이 보면문제를 찾아내는 것도 쉽습니다.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저도 이제 선교사들의 훈련을 맡아서 가르쳐본 사람으로서 한 20여 년이 되었는데 역시 장로님 지적하신 거와 비슷한 문제들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특징은 굉장히 강합니다. 강한 것을 가지고 불평할 수는 없습니다. 강하기 때문에 가정을 데리고 어려운 곳에 가서, 그런 어려움을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많이 강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 줘야 될 것인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고민을 더 해 봐야 되겠습니다만, 대략 효과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뭔가 하면은 항상 그 단체 가운데서 가장 존경 받는 어른들이 계시면 좋은 거 같습니다. 훈련 받고 나간 선교사들이 그분의 말이라면 내가 정말 신뢰합니다 라고 할 만한 어른들이 계시면, 그분들의 지적은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이것은 아니다 만약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이론적으로 쏟아 놓으면서 선교사 세미나 하면서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하면 귓등으로 듣고 그냥 넘어가지만 자기가 신뢰하는 어른들이 있으면 그 어른들이 가서 말씀 하시면 듣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선교 단체나 온누리교회나 이천 선교회나 이런 곳에서 선교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르신들인 시니어급의 리더들을 귀하게 여러분들이 모시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에게 지적을 해 주고 변화가 되게 지금 말씀하신 대로 태도나 시각의 변화에는 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사들도 연수가 아주 많습니다. 30년 넘은 선교사도 생기고20년 넘은 선교사는 수 100명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사람이 와서 이야기 했을 때 네가 뭘 좀 알어? 꼰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원로급 선교사를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제가 아는 것이 저희 교단 밖에 없으니까 저희 교단에서는 25년 이상 된 왕 고참 선교사들을 현장에서 철수시킬 생각들을 좀 해 봅니다. 그분들을 더 이상 현장에서 시니어 선교사들과 똑 같은 사역을 하시기 위해서는 에너지도 빨리 고갈되고, 고참 선교사들을 불러 들여서 연장 교육을 시킨다면 후배 선교사들에게 새로운 변화와 태도와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하기 위해서 모자를 좀 바꿔 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제안도 했습니다. 그런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 예 감사합니다. 조대식 장로님

조대식 : 오늘 참 귀한 강의인데요. 귀한 강사님 초청해 주신 임훈 장로님께 감사 드립니다. 귀한 시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 드리고 또 이현모 교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귀한 통찰을 나누어 주셨는데 지난 벌써 1년이 되었나요. 지난 이 맘 때 온누리교회 미래준비 세미나를 할 때에도 그 당시에 굉장히 통찰력 있는 것들을 나누어 주셨는데 오늘은 더 또 심화된 통찰을 나눠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말씀들이 많이 나왔는데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 동의를 하고 공감을 하는데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딜레마가 현실적인 것인데 Smart Total Mission에 당위성 있고 가야 되는 것은 당연한데 현실의 삶의 자리에서도 다들 느끼는 것이 다르기는 한데 다 그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데 두 가지입니다. 간격의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개인의 차원 이고요. 다른 또 하나는 교회라는 구조 차원 입니다. 선교사 개인이 지금 나가 있는 Majority지만 스마트 미션을 담아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거든요. 이것을 담아내려고 하는 의지나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상당수가 계시겠죠? 그러나 계시다고 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이것을 담아낼 한국 교회의 구조나 그릇이 되느냐?의 문제 입니다. 부모에서 동역자로, 동역자에서 후원자로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한국교회가 더 이상 후원을 해주겠는가? 거기에 현실적인 고민이 있습니다. 떠나야 되는데 거기에 뼈를 묻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곳을 우리가 또 담아 줄 수 있느냐? 구조에서 이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 이거든요. 그래서 개인도 그렇지만 더 큰 것은 구조인데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은 저희 고민입니다. 또 하나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담아내려고 하면 교회나 종교단체가 구조 즉 그릇에 담으려고 하면은 교회라고 하면 지도자들이거든요. 성도들은 언제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지도자들이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면 이것이 전재인데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이런 지도자들이 있느냐? 거기가 좀 고민인 거 같습니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고 이것이 된다 그러면 지금 얼마든지 몸을 던질 수 있는 성도들이 모든 것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성도들을 활성화를 시켜야 낼 수 있는데, 그 지점이 저는 참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여기 강의를 듣고 있는 여기 그룹만 해도 선교분과에 목사님들 모두 다 평생 이것만 가지고 고민을 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크게 공감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몇 퍼센트 정도가 이런 고민을 하는가? 이것이 한 부분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것도 저는 굉장히 고민스럽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고민하고 하더라도 이런 고민을 과연 한국교회가 같이 고민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이런 갈등들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생각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현모 : 조 장로님께서 크~게 보시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지적을 해주시는데요.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사실 지금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서 화끈하고 100% 당장 이렇게 대답을 하기는 참 어렵죠. 현실에서 한국교회를 변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선교사들이 28,000 명이 나가 있고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선교사의 절반 정도가 10년 정도 사역을 한다면 선교사들의 Generation 교체는 생각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존에 남아 있는 선교사들을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10년만 있으면 이 중에 절반은 다른 사람으로 바꿔 버리고, 새로운 선교사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훈련을 시켜서 선교에 대한 퀄리티를 선교사가 현재 뼈를 묻는다 가 아니라 선교사가 임시직이라고 하던 거를 부모, 동역자, 후원자의 역할 변화의 사이클을 평생 몇 바퀴 도느냐? 이것이 선교의 개념이라고 훈련을 시켜서 이러한 개념에서 새로운 Generation을 새롭게 훈련시켜서 보내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변화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앞으로 동역자 후원자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떠난다고 했을 때 한국으로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지에서 이런 싸이클이 필요한 다른 지역을 이동하라는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언어권을 벗어나는 것 제가 원하지 않습니다. 동일한 언어권 안에서 항상 이 싸이클을 새롭게 시작해서 평생에 몇 번 도느냐?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교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장로님들이 더 큰 사회에서 더 큰 사회조직을 보시면서 잘 아시겠지만 나도 가끔은 멀리 보면서 몇 주 전에 교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1960년대부터 2020년 대까지 지난 60년 동안에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변했는가?에 대해서 대화를 해 봤었습니다. 군부독재 시대, 민주화 시대, 우리가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하던 시대, 올림픽이 지난 이후, 지난 2000년대에 들어와서 또 개인주의가 심화 되고 사회가 변화되어 우리가 교회 안에 살면서 하나도 안 변한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60년을 돌아다 보니까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선교라는 것 자체가 녹이 슬어서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성벽 같은 곳에 달라붙어서 머리가 깨어지고 힘을 다해서 밀지만 꿈쩍도 안 하는 것 같은 사역을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줄여서 본다면 그래도 성벽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하루 아침에 변화를 일으키고 방향을 전환시키고 이런 문제를 계산하고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사실 제가 온누리교회 같은 곳에 가장 큰 소망을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장로님들이나 지도자들이 굉장히 오픈 되어 있습니다. 계속 배우시려고 애를 쓰고 있고, 고민을 하고 있고, 저는 온누리교회에 훈련 자체를 보면서도 온누리교회 이천 선교가 그래도 앞서가고 있고, 오픈 되어 있고, 꾸준히 배우고,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답답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은 다른 면에서는 보고 느끼는 것은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제가 강의를 할 때에 누가 감히 선교의 미래에 대해서 단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 그러나 하나의 조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조각을 붙였을 때에 그림이 완성이 되듯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길게 보면서 조각을 맞춰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또 새로운 의견을 더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예 감사합니다. 이제 1~2분 정도의 질문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정대서 장로님

정대서 : 예 이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질문인데요 아까 말씀하시는 것 중에 스마트 선교사, 전문성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지금 21세기이지만 1세기, 2세기의 선교를 보면 지도자들이 복음을 전파 해서 기독교가 확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삶을 통해 가지고 복음이 확장 되었다고 그렇게 보았습니다. 온누리교회도 그 동안에 평신도 선교 사나 평신도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지만 적절한 용어가 없으니까 손창남 선교사는 풀뿌리 선교라고 요즘 표현을 하지요. 풀 뿌리의 선교의 효과는 지금도 여전히 매우 크다라고 느껴지거든요. 그러면 두 가지를 병행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전문가로서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전후방 Network에 되어서 전업 선교사가 가야 되지만 동시에 풀 뿌리 선교는 이 시대에 맞는 모양으로 계속 되어야 될 텐데 그렇다면 풀 뿌리 선교는 어떻게 해야 될지? 그것에 대해서 의견을 좀 나누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현모 : 예 사실 평신도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교회는 절름발이죠. 모든 자원은 사실 평신도에게서 나옵니다. 지도자들은 앞에 서서 깃발을 들고 흔드는 역할을 하지만 그 깃발을 보고 움직이는 것은 대부분의 교인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풀 뿌리 차원에서 일어나는 선교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렸듯이 풀 뿌리나 평신도 차원에 선교가 기대 할 만큼 열매를 못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이분들이 선교지에 갔을 때 이 선교사를 인정해 주지 않는 부분들도 있고 또 많은 경우는 풀 뿌리 선교사들은 단기 선교사로서 몇 년 동안 섬긴다든지 또 한국에서도 자기 메인 Job이 있고 가정 생활과 사회 생활이 있다던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적인 용량이 있고 하다 보니까 풀 타임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에 이런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Network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10년의 자원을 내어 줄 수 있지 만은 10년의 자원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100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인데 그 10배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Network 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IT 기술을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상담을 공부 했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서 도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통해서 도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교사로 봉사를 했기 때문에 교사로 도울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Network을 통해서 효율성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Network이 안 되면 아주 작은 조각 조각이 되기 때문에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도자의 역할은 Network을 만들어 주어서 그 가운데 자기 위치를 찾아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기만 한다면, 스마트 미션너리의 꿈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안수 받은 전문가 라기보다는 모두가 다 목회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되어야 됩니다. 자기 전문분야가 있는데 그것을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서 살려 줄 수 있는 방법을 쓰는 것이 Network 입니다. 예전에는 Network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Network이 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을 Network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성과가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예 이제 마무리를 좀 해야 될 거 같습니다. 어버이날인데 아침 식사도 좀 해야 될 거 같고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 시간이 더 기대가 됩니다. 강의 내용 중에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선교에 참여 한다고 하셨는데 저희들이 이것도 아주 기대가 되는 거죠. 교회가 어떻게 선교의 부르심에 반응을 하고 모든 성도들이 선교의 리소스를 통해서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항상 고민이고 그것에 대해서 더 좋은 성찰 늘 들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오늘 하고 비슷하게 진행이 될 거 같은데요.

5 22일 토요일 아침 6시에 영상으로 모이겠습니다.

이틀 전에 우리 당회 운영위원회에서 평창 산마루 교회 갔었습니다. 5만여평의 해발고도 700미터에 노숙자들이 자활 할 수 있는 농장과 숙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15개 동에 선교사 숙소를 계획하고 있고, 우리 선교부에서는 3동 정도 선교사를 위하여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가니까 그 동안 일만 하다가 가족 이야기, 사회 이야기, 교회 이야기 아주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창 군수님이 오셔서 같이 밥도 먹고, 식수도 같이 하고, CGNTV에서 제작한 바깥 양반이라고 하는 10부작 프로그램이 있는데 1편을 아주 잘 보고 집에 돌아와서 2편까지 찾아서 보았습니다. 거기 영상에 나오시는 분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아주 재미있는 시간 이였습니다혹시 추가로 광고 해야 하실 분 있으면 광고해 주시고 없으시면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김홍주 본부장님 기도해 주시고 오늘 모임을 마치겠습니다.

 

김홍주: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선교 분과위원회에서 이현모 교수님을 모시고

좋은 통찰과 나눔의 시간 갖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나누어진 내용들이 온누리교회 선교에 잘 적용되게 하시고,

우리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열방 곳곳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로 고백 되어지는

주님의 영향력들이 확장되는데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다 다음 주에 있을 두 번째 모임도 축복하여 주셔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새롭게 주님 앞에 헌신하는 시간들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