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마6:25~34) 2021.04.18

다이나마이트2 2021. 4. 18. 12:28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마6:25~3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제가 졸업한 신학교의 뒷산에는 작은 묘지가 있는데,

그 묘비에,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맡아서 걱정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마태복음 6장 34절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그곳에 가끔 신학생들이 산책하면서, 머무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일을 준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생각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던지, 철저히 준비를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더 나아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을 충실하게 삶으로 행복을 느끼고, ”내일을 걱정하며, 맞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있는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신 것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뜻은 무슨 의미일까요?

(1) 첫째로 내일을 ”나의 날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잠언 27장 1절에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네가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잠 27:1)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나에게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교만입니다.

오늘 만이 나의 날이고, 내일은 나의 날로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 오늘도 나에게 보장된 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일이 있다”는 그런 교만은 우리들이 버려야 합니다.

 

아는 성도님에게 의사가 “당신은 일주일을 산다.”고 말했다고 해서, 제가 위로하러 갔는데,

그 성도는 오히려 “저는 오늘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제가 일 주일이나 산다고 하니, 저는 정말로 좋습니다.”라고 화를 내면서 말을 합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내일이라는 단어를 내 기억에서 없애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을 살라”고 말씀하시며, “오늘이 주의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둘째로 “스스로 내일의 괴로움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괴로운 것, 그 자체보다도, 걱정하는 사실이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암과 싸우는 노력”보다도, 암이 없는 것처럼,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살면서 괴로움은 있지만, “복음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내일은 내일 걱정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염려를 오늘 가져와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일을 만드신 하나님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말이니까,

오늘로 앞당기지 말고, 내일 이 되면 ”그때 걱정하라”는 뜻입니다.

 

(3)세 번째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내일을 의식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죽으실 것을 미리 알았지만, 오늘 걱정하지 않았어요.

▶왜, 예수님은 걱정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영원을 살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몸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어요.

 

▶여기서 “믿음이 적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왜 믿음이 없는 자”라고 부르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라고 불렀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믿음”을 제한합니다.

그것은 우리 믿음의 생활이 “예배당 안에 만” 머무르게 하거나,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오면, 바로 우리의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온실 속의 믿음”이 아니라, 추운 겨울이나 메마른 광야에 있을 때에도,

변함없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라고 책망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에, “믿음 없는 자”라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게, 죄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에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믿음이 강한 자”가 되고,

 

반대로, 믿음을 유한한 인생에 국한시키거나, 영원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

그 때에는 “믿음이 적은 자”라고 지적을 받습니다.

 

▶왜 염려와 걱정을 합니까?

믿음이 적은 자의 특징은 “염려와 걱정”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의존하지 못할 때, “염려와 걱정”이 생깁니다.

염려가 많은 사람은 죄악 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미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시간”이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3가지 믿음으로, ”걱정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십니다.

①그 첫 번째 믿음은 “하물며”라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불 속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마6:30)

 

여기서 하물며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인간을 더 잘 보살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②두 번째의 믿음은 ”아신다.“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에,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나 추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마6:32)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란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우리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계신 하나님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왜, 이미 알고 계신데 말해야 하나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우리가 교만하게 비칠 까바 말해야 하지요.

 

③세 번째 믿음은 ”더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6장 33절에,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마6:33)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지만, ”더해 주시는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염세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고, 모든 것을 더해 주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CS루이스는 말하기를 ”두 번째 것들을 첫 번째로 놓을 때는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것들을 첫 번째에 놓을 때에 두 번째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것들을 첫 번째에 놓을 때, 두 번째 것들은 억눌려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됩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은 ”내일에 대해 걱정을 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정해서 먼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경이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야를 확대하여 주고, “우리들의 종말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이 살게 됩니다.

 

그것은, “영화 속의 주인공이 어떻게 되나?”를 모르는 사람은 긴장을 하며 영화에 집중하지만,

영화의 종말을 아는 사람은(= 끝 장면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전혀 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기 때문에, 염려와 걱정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내일이 존재하지 않고, “오늘 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일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니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