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는 기도 (시142:1~7) 2021.04.11

다이나마이트2 2021. 4. 11. 19:09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는 기도 (시142: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사람은 고난이 자기에게 닥치지 않으면, 결코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려운 상황이 다가와야, 그럴 때에 비로소 기도하게 됩니다.

 

괴롭게 하는 것이 의도는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악함 때문에” 그런 고난이 찾아와야 기도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는 것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은 시편에는 그가 도망자로 생활할 때, 대부분 지어진 시 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고, 그것이 시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왕궁으로 돌아 왔을 때도 광야에 있을 때와 같이, 계속해서 기도하였다면,

”다윗의 말년이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시편 142편은 다윗이 동굴 속에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성경의 시편 142편에는 ”다윗의 마스길”이라는 주석이 붙어 있는데,

마스길이라는 말은 교훈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3천 명의 군사들이 추격하고 있을 때, 아둘람 동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 동굴은 너무나 험하고 컴컴하여, 한 번 숨어 들어오면, 도무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고통스러운 환경이지만, 발견할 수 없는 장소이기에,

400명이 함께 하는 아둘람 공동체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이전에, 이렇게 먼저 동굴로 보내어서,

“그를 영적 능력이 생기도록 훈련시킨 것”이고, 그의 영적인 능력을 동굴 속에서 낮추신 것입니다

 

(1) 첫째로 다윗은 이 동굴 속에서 하나님께 숨김없이 고백을 합니다.

 

1~2절을 함께 읽으십시오. “내가 목소리를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내 목소리로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분 앞에 내 불평을 털어 놓았으며,

그분 앞에 내 어려움을 보여 드립니다.”(시142:1~2)

 

개역개정 원문에는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 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소리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소리“입니다.

 

또한 불평의 소리라는 표현은 “자신이 처한 사정을 아뢰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은 “다윗 자신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런 고백을 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수치를 남에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내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꾸밈없이 아뢰어야 하는데, 자존심을 내세우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숨기지 않고, 자기의 사정을 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사정을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은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3-4절 말씀에는 “내 영이 마음속에서 실망할 때도 내 길을 아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 그들이 몰래 덫을 숨겨 놓았습니다. 내 오른쪽을 보아도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내가 피할 곳도 없었으며, 내 영혼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습니다.”(시142:3~4)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이 되면, 방향 감각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길을 아시오니,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게 만듭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을 믿는 것 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내가 일어서는 것”이 믿음 입니다.

그런 때를 알고,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믿음 입니다.

 

그런 믿음이 “하나님은 나를 일어서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 대로 “내가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가는 길에 “무슨 위험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은 ”좁은 길로 가라”고 했을까요?

넓은 길에는 위험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위험한 길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한테는 아무 것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3) 셋째로, 감옥과 같은 어두운 동굴 속에 있어도, 다윗은 ”이곳이 나의 피난처“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주는 내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받는 내 몫입니다.“(시 142:5)

 

개역개정 성경에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고 했어요.

다윗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으로 판단했고, 정직하게 고통스런 마음을 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는 나의 피난처이고, 내가 받을 분깃이라”고 노래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문제가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 믿음 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정직하게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다윗에게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그가 좌절하지 않고, 그에게 소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마굿간이 ”지하 동굴이라“고 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동네는 산간지대이고, 돌이 많은 지역이라 농경이 안 되어서, 축산을 했는데,

지상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마굿간은 지하 동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머물 곳이 없어서, 가축이 머무는 지하 동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되었고,

다윗과 같이, ”그 낮은 곳에서 소망을 품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하늘이 땅 아래로 임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낮아짐으로“, 우리를 살리려는 것입니다.

 

어두운 동굴에서도 ”그곳이 피난처“라고 생각하는 다윗의 지혜를 본받아야 합니다.

어두운 지하에 있는 마굿간이지만, 인류를 구원하는 축복이 온 것입니다.

 

다윗은 그 동굴을 피난처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7절에서 소망을 갖습니다.

 

”내 영혼을 감옥에서 풀어 주셔서,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시면, 의인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게 합니다.“(시142:7)

 

다윗은 ”탄식하게 하는 기도“로 시작하여, 이제는 기쁨의 기도로 끝냅니다.

정직하게 아뢰는 탄원의 기도가 시편에 나오는 대부분의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토로이고, 예배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다윗의 기도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도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이 느끼는 성도들이 계실 것이니,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고 노래하는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믿음으로 지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고, ”우리의 기쁨“입니다.

이런 다윗의 체험이 우리의 체험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