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장막[5] 말씀 앞에서 마음을 찢다 (대하34:29~33)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요즘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함께 모이지 못하여 [예배의 회복]이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런 예배 회복을 위한 노력은 구약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시도한 왕은 [다윗 왕]입니다.
먼저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하나님께 합당한 제도를 정비하고,
잊혀진 [절기]들을 지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절기의 출발점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감격적인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어떤 날입니까?
[유월절]은 어린 양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한 날을 기념하고,
애굽의 포로에서 자유케 되는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삼대 절기 중의 하나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 이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었다"는 말씀에서 유월절이 지니는
<영적인 의미>를 짐작케 합니다.
유월절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는 사건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애굽의 왕이 거부하자,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이 시작됩니다.
그 마지막 [재앙]이 바로 ”모든 만물들이 죽게 되는 재앙“입니다.
예로써, 사람이면 맏아들, 짐승이면 첫 새끼가 죽는 재앙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유월절날 밤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르시기를
”집집마다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르라“고 이르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그렇게 바르면, 십자가 형상이 드러나서 재앙을 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월절에 ”문틀에 발라진 피“를 생각하며, “그 피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은 [예배회복]을 위해, 우리가 따라야 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대로 우리가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쉽지 않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상들의 존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세상의 [세속주의]에 휩쓸려서 지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과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 [히스기야 왕]과 오늘 나눌 [요시야 왕]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이런 사실을 외면하여, 우상을 섬김으로, “참된 예배자로 사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장막]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간으로, [요시야 왕]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시야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요시야 왕]은 8살에 왕이 되어, 31년을 통치한 왕입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왕 중에서 2번째로 어릴 때,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 나라에 “큰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악을 행한 왕으로, 우상을 섬기면서 통치했으니까, 그 자체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았기에,
신하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때, 충신들이 사건을 제압하고, 아들인 [요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가 재임하고 8년이 지난 16세가 되었을 때,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은 그가 “16세에 다윗같이 살겠다고 결단했다“는 말입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본인의 의지대로 ”왕권을 수행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역대기]에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추정하기에 [선지자]들의 사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에 [나흠]선지자와 [스바냐]선지자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 받았습니다.
그가 20세가 되었을 때(= 왕이 된지 12년이 지났을 때)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예배를 회복했다“는 기록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그 사이에 끊임없이 한 세대가 지나갔는데도, 우상이 잡초처럼 남아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니,
개혁을 단행하는 조치를 내립니다.
▶왜, [우상]은 근절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상]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까, 그 시대에 우상을 없애도,
또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 세대에 [우상]이 다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방치하거나 내버려두면,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 가운데 있지 않으면, 우상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그때마다 즉시 없애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푸른 초원의 잔디밭에 잡초가 자라는데, 방치하면 순식간에 잡초로 덮이는 원리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악]이 전파되는 속도는, [선]이 전파되는 속도 보다, 훨씬 빠릅니다.
세상을 겉으로 보면, 과학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끔찍한 범죄는 계속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자신을 우상화하고, 자신의 탐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매일 [면도]를 하듯이, 우리 안에 자라는 [잡초]는 매일 매일 깍아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나라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죽으면, 또 다른 왕이 등극하지만, 우상을 계속해서 [악순환]되어 나타납니다.
이러한 [역사의 순환]은 지금도 계속 이어져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는 [부흥]이라고 말하고, 그때를 [부흥의 때]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 때입니다.
[요시야 왕]이 성전을 청소하고, 성전을 수리하던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구약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되는, 두루마리 형태였기에 수백 년이 지나도 보존된 율법 책입니다.
어쩌면 그 책을 펼쳐보는 순간에, ”그것이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책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요시야 왕]에게 즉시 전달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율법 책에 있는 말씀을 듣고, 19절 말씀과 같이,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대하 34:19)
여기서 ”자기 옷을 찢었다”는 것은 충격을 받아서, “자기 마음을 짲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1절 말씀과 같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들과 온 유다를 위해, 지금 발견된 이 책에 기록된 것에 대해,
여호와께 여쭤 보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에,
우리에게 내린 여호와의 진노가 너무 크다. 우리는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따르지 않았다.“(대하 34-24)
▶[요시야 왕]은 왜, 충격을 받았습니까?
①첫째는,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고,
②둘째는, 그 말씀대로 따르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가 크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 크게 차이 났기에,
왕은 충격을 받아서, “자기 옷을 찢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평범하게 읽고, 그냥 지나가고 끝납니다.
▶[우리들]과 [요시야 왕]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요시야 왕]은 읽은 말씀이 처음 들었기에—--충격을 받았지만,
[우리들]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매일 읽으니까 그렇다”고 변명을 한다면,
우리가 “처음에 그 말씀을 읽을 때”에는 [떨림]과 [두려움]이 있었나요?
[요시야 왕]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이 찢어지고, 충격을 받았나요?”
우리들도 반드시 그런 [감동]과 [충격]을 느껴야 합니다.
주일마다 우리도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지만, 그럴 때마다 충격을 느끼며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주일 마다 읽는 그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아드리고,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그 말씀의 비평자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참된 예배]는 말씀 앞에서 ①충격을 받고, ②내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은 성직자로써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백록에서, “늘 진리에 목마름이 있었는데,
”자신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자기를 교육시켰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어느 날,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에게 들려 온 말은 어떤 소녀들이 주고받는 말 가운데서
“집어 읽으라”, “듣고 읽어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기해서 눈을 뜨고, 성경을 펼쳐 보니까
“그때부터 성경의 내용이 명확하게 해석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그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 주는 말씀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참된 예배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시야의 아버지는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안하게 지냈지만,
[요시야 왕] 자신은 오래 동안 방치된 율법 책을 읽고,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충격을 느끼고,
개혁을 추진하면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따라서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충격을 받은 대로, ”언약을 시행했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6장 4-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인 여호와시다.
너는 온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신6:4~5)
이 [말씀]을 근거로, 금년도(2020년) 우리 교회의 표어로 삼았습니다.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참된 예배]의 회복은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고,
그래서 요시야 시대에 다시 [참된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요시야 시대에 유월절의 절기가 지켜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①마음을 찢는 깊은 회개와/
②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들려오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아드리고,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끝으로/ “여호와의 유월절”이라는 찬양을 함께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주님의/ 나 지금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세상의 신을 벗고서 주 보좌 앞에 엎드리리.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가 사그러져 갈 때
하늘로부터 이곳에 장막이 덮이네.
이곳을 덮으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내 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내 안에 죽어가는 모든 예배 다 살아나리라.”
그때,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고, 우리 안에 무너졌던 예배가 다시 회복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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