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다윗의 장막[4] 거룩하게 구별하고, 감사함으로 예배하라. (대하29:27~36)

다이나마이트2 2020. 8. 20. 22:14

다윗의 장막[4] 거룩하게 구별하고, 감사함으로 예배하라. (대하29:27~3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이 새벽에,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충만해 지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비록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고, 비록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가 예전에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의 감동과 감격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죄인이 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 모습은 구약의 제사와 율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히스기야 왕]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제사를 드리는 모습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께 나오는 모습을 [율법]을 통해 보여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즐기며 찬양하고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예배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신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먼저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였고,

예배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것을 기뻐했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모습은 이미 여러 번 설명 드린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영혼에게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그런 [축복]이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지라도, 시험과 재난이 닥쳐 올 때에도,

우리는 방황하지 말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히스기야] 왕의 모습에서 “예배자의 모습”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14대 왕으로써, 그가 다윗을 본받아 행동했습니다.

 

▶[역대기]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했을까요?

그것은 ①다윗처럼 얼마나 닮았으며, ②“얼마나 [옳은 일]을 했는가?“

③”얼마나 예배자로 바로 섰는가?“를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윗]도 올바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죄를 지은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과 올바른 예배자로 바로 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18장 5절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했습니다.

모든 유다 왕들 가운데 그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왕하18:5) 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그는 하나님께 합당한 왕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평가했을까요?

다윗 왕 이후의 역대 왕들이 우상을 섬기고 성전을 방치했는데,

그는 더러워진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다윗처럼 예배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여러 왕들은 우상을 섬기고 곳곳에 산당을 세웠는데,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주변의 정세에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앗수르]가 가장 강력한 나라로 군림했는데,

그 나라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주변의 국가들이 위기 때마다 뇌물을 바쳤습니다.

그것은 안전을 담보하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세상에 악한 왕들은 더 괴롭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악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젊은 나이인 25세에 왕이 되어, 아버지의 모습을 탈피하고, 개혁적인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역대하 29장 3-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히스기야 왕 1년 첫째 달에, 그는 여호와의 성전 문을 열고, 수리를 했습니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동쪽 광장에 모으고 말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지금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라.

성소에서 모든 더러운 것들을 없애 버려라.“(대하 29:3~6)

 

그가 왕이 된 후에, 1년 되는 첫째 날에 시행한 [개혁조치]입니다.

그는 오래동안 닫혀있는 성전의 문을 열고, 8일 동안 깨끗이 청소를 합니다.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이전에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을 제거하고,

”방치되었던 성전을 회복한다”는 생각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의 20대 모습과 같은 결단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다윗 이후에, 영적으로 혼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놀랍게도 우리 자신에게 익숙해지면, 판단력이 없어져서, 그것을 그냥 인정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교묘하게 악해져서 자신에게 익숙하면, “그것이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히스기야 왕 이전에는, 모두가 그랬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한다.”는 것은 아주 획기적인 조치입니다.

 

“과거의 전통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에 대한 영화를 보았는데,

그 당시에 루터가 직면한 장벽은 당시 사제들이 [면죄부]를 파는데, 부딪쳤습니다.

 

[루터]는 영혼을 대가로 [면죄부]를 파는 행동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극열히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청]은 그들의 재정에 도움이 되니까, 침묵하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사제들도 정직하게 말하지 않으니까, [루터]는 계속 반복하며 주장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이런 [전통]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 [전통]을 고수하며, 침묵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다른 교회 성도가

”<온누리교회에 임직 헌금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었어요.

물론 임직을 조건으로 드리는 헌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임직에 감사해서 드리는 자발적인 헌금은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로마 교횡청이 이런 혼탁한 현실을 외면하니까,

[루터]는 목숨을 걸고 국회 앞에서 진리를 부르짖으며, “옳지 않은 전통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여,

소위 [종교개혁]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루터]를 사용하셨고, [성경적 신앙]이 바로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그것을 깨닫고, 개혁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도 세속에 물들은 사상과 올바르지 못한 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이외의 성은 다른 것이고, 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여기에도 바로 [히스기야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제라도 혼탁해진 나라를 올바로 청소부터 해야 합니다.

 

[청소],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청소한 이후에 [예배]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배]가 [제사]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첫 번째의 제사는 [번제]입니다.

[번제]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 방법이고,

[화목제]는 제사장 뿐이 아니라, 이외에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제사로, 모두 다 하나가 되어 식사하는 제사입니다.

 

이것이 [성만찬]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화목 제물이 되신 것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히스기야] 왕의 행동에서 놀라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찬양과 경배를 함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29장 27-29절 말씀을 읽어보면,

“번제가 시작되면서 나팔과 다른 악기에 맞추어 여호와에 대한 찬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모인 청중들이 번제가 끝나자, 왕과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히스기야 왕도 “다윗에게 주신 명령을 따랐으며,

모두 어울어 져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감동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 그것은 ”다윗에게 주셨던 예배의 계시“를 이어받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② 모두가 함께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렸다”는 것이고,

③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번제물의 내용은 그 숫자가 너무도 많아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감당 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감사와 찬송이 있었다”는 것이니,

우리들도 온전한 헌신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도 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양과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지만,

동시에 “감사 예물을 함께 드림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단지 [설교를 듣는 것]으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의 제물]을 드림으로, 드디어 “예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이전에는 그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니,

그 뒤에 이어지는 절기도 지켜지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의 절기를 다시 회복하고, 지켰으므로, 역대하 31장 20-21절 말씀에는

“히스기야가 이 일을 해 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온 지역에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하고 올바르고 충성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것과 율법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고, 온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번영하게 됐습니다.”(대하 31:20~21)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은 그 예물을 유다 전역에 분배하였으며,

그의 행동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고, 선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율법과 계명을 잘 지킴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았고, 나라가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 충성하고,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지 번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프러스의 효과]입니다.

이렇게 [프러스의 효과]로 번영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 자]를 원하고, 그런 공동체를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위기와 재난의 상황인 때에도, 우리들은 히스기야 왕이 행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감사와 헌신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적 절기들을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답답해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한다“고 이 상횡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참된 예배자]로 나가야 하고, 감사와 헌신을 드릴 때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이 끄날 때 까지 올바른 예배자로 바로 서야 하고,

온누리 공동체가 함께 진리만 붙들고, 참된 공동체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찬양을 부르고,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 감사해~ 시험이 닥쳐 올 때에 주계서 인도하시니 두려움 없네

또 감사해~ 고통이 찾아 올 때에 주께서 지켜 주시니 승리하리라.

 

나의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니 주님의 성령으로 나를 인도하시리

시험이 나를 찾아 올 때 주님이 지켜 주시리 주님의 성령 나를 인도하시리.“

 

성도 여러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된 히스기야 왕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뉴슬르 들으면, 답답한 마음뿐이지만, 우리 안에 익숙한 전통적인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