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강화도 선교역사 여행, 갑곳 순교성지, 성공회 강화성당 (2018.9.15)

다이나마이트2 2018. 9. 16. 21:47

 

2018년 9월 15일(토) 아침 8시 1530장로회 장로님들 부부가 강화도 선교역사 여행길에 올랐다.

집에서 출발을 할 때에는 비가 내렸는데 서빙고 교회에 도착을 할 때에는 비가 멈추었다.

8시 10분 문현구 회장 장로님의 기도로 강화도 선교역사 여행을 출발한다.

버스 비용도 사실은 만만치 않은데 강화도에서 무료로 버스를 대여해 주신다고 하신다.

(사)강화섬 나들길에서 버스를 대여해 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강화도에 관광을 오셔서 식사도 하시고 전통시장에 들러서 강화도 특산품을 구매해 주실 거라 믿고

미리 단체로 예약을 하시면 무료로 버스를 준비해 주신다고 한다.

한 시간 남짓 달려서 첫번째 도착한 곳이 갑곳 순교성지이다. 강화대교를 지나자 말자 바로 왼쪽이다.

1871년 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 시키려고 미국 군함이 강화도에 쳐 들어 온

신미양요 때 처형당한 강화에 살던 천주교 신자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의 순교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갑곳 순교 성지를 조성하였다.

모든 천주 교회에 다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방문해 본 천주 교회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형물과 함께 잘 조성이 되어 있었다. 이곳 천주교 갑곶 순교성지에도 역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인원이 많기 때문에 영성팀, 지성팀, 감성팀 3개 팀으로 나누어서

우리 1530 장로회도 따라가야 할 그 길 "십자가의 길" 순례에 동참 한다.

예루살렘에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순례하는 정도의 감동은 아니지만

나름 총무님께서 준비를 철저히 해 주셔서 "십자가의 길" 기도 안내를 따라 기도도 함께하며

찬송도 불러가며 의미있는 십자가의 길 체험을 함께 했다.

시작찬송 :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 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 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힘 입어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아멘

시작기도

자비로우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한 없는 사랑으로 저희에게 아드님을 보내 주셨지만

저희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모른 척하며,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간절히 기도하오니 성령님께서 이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마음 속 깊이 세기게 해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곳의 형상 앞이다.

인도자)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가 주님을 경배하며 찬송합니다.

회중 )  주님은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구약말씀(시편22:1~17 참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온 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 하십니다.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녹아내려 절망에 빠졌습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형 처럼 되어 있는 곳에 있다.

영성팀이 가장 먼저 십자가의 길을 통과했다. 자신에게 맞는 십자가를 메고 오신 분도 계신다.

나는 십자가를 대신해서 카메라를 메었다.

감성팀도 십자가에 돌아가신 곳에 도착 하셨다.

신약말씀 (마가복음 15:33~37참조)

낮 열두시가 되었을 때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시까지 계속 되었다.

세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이것을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다.

 

찬송 (찬송가 147장, 너 거기 있었는가? 3절)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감성팀도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신 것 같다. 사진 전해 주신 분께 감사

지성팀도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송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순례 하시고 계신다.

모든 팀을 다 잘 찍어 드리고 싶은데 인간적인 한계로 한 팀 밖에 못 찍었음을 이해해 주세요.

얼굴만 뵈도 딱 지적으로 생기신 분들이 지성팀이 시다.

지성팀 이상율 장로님께서는 유행성각막염이라고 하셔서 갑작스레 불참을 하시게 되셨는데

원종호 장로님이 대행을 훌륭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원장로님이 빠지신 것 보니 원장로님이 찍으신 사진 인 것 같습니다.

순교자 삼위비

천주교회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이 갑곳돈대에서 효수되었다는 문헌에 따라

인천교구에서 이곳을 성지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분들의 세례명이나, 후손이나 생애의 기록들은 없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믿음 하나를 온전히 지켜내신 것 만으로도 순례자들의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성지가 된 것이다.

뒤에 궁궐처럼 보이는 곳이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강화 문화재 야행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야로(夜路), 야화(夜畵), 야숙(夜宿), 야사(夜史),

야설(夜說), 야식(夜食), 야경(夜景), 야시(夜市)가  강화 사방8밤 행사라고 한다. 

관광을 위해서 머리 많으 쓰신 것 같다. 비가 약간 내릴까봐 음향기기를 전부 비닐로 씌워 놓았다.

용흥궁 공원에 도착했다. (용흥궁(龍興宮)은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조선의 25대 왕 철종(哲宗)이 강화도에

은거하며 살았던 집을 후일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난 이후에 보수하여 단장하고

그 이름을 궁이라고 고쳐부른 이름이다.)

(사) 강화섬나들길(032-934-1906) 김용수 대표님의 환영인사가 있다.

(사)강화섬 나들길 대표님과 단체 사진

강화섬 나들길이 강화도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참으로 수고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지방 자치 단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시고 계신 느낌도 들고 이 사업을 통해서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도해 본다. 

성공회 강화 성당 (교회설립: 1893년 7월 24일, 성당축성: 1900년 11월 15일)

성당 같은 느낌이 아니라 한옥 같은 느낌도 있고 심지어는 불교의 사찰 같은 느낌도 든다.

성공회 강화 성당은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건물 또한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한다.

여고시절 소풍을 가면 이렇게 일렬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하하하 (옛날 사진을 보면)

우리 사모님들 감수성이 풍부하신 소녀들 같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이라고 적혀 있다.

대문이 태극 문양을 하고 있는 것이 참 인상 적이다.

고요한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오로성당으로 불리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했는데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성당 터를 배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과 내삼문, 동종을 배치했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으며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했다.

입구에 교회 종이 있다. 사찰에 가 보면 있는 종과 모양은 비슷하다.

위에는 성령의 불꽃을 상징하는 불꽃 모양이 있고, 십자가 문형이 있고, 태극을 형상화한 문양도 보인다.

사진의 좌 우에는 요한복음 말씀이 새겨져 있다. 불교의 종과는 아주 다른 내용이다.

1914년 영국에서 강화 성당에 기증한 종은 1944년에 일제에 징발을 당하고 현재의 종은

1989년 교우들의 봉헌으로 제작 하였다고 한다.

(나라 잃은 슬픔이 이곳에서도 느껴진다)

전면에 보이는 기둥은 모두 5개이다. 이 기둥에 모두 주련이 달려있다.

전면 보이는 우측으로부터 주련에 쓰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처음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시다.

宣仁宣義聿昭拯濟大權衡 (선인선의율조증대권형)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 되었다.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

삼위일체 천주는 만물을 주관하시니 참 근본이 되신다.

神化周流囿庶物同胞之樂 (신화주류유서물동토지락)

하나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것은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다.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 (복음선파계몽중민영생지방)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의 길을 가르치도다.

성 마루에 높게 자리 잡은 성당 터는 배 모양의 구원의 방주로서 역할을 하도록 상직적으로 표현 했습니다.

성당 규모는 250명의 신자를 수용 할 수 있도록 40칸 규모로 지었다고 합니다.

경복궁이 25칸 이라고 하니 40칸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이 된다.

100년 전에 이 정도의 규모라는 것이 상상이 안된다. 지금의 롯데빌딩 정도의 건축규모이지 않을까?

목재는 수령 100년 이상된 백두산 적송을 신의주에서 뗏목으로 운반을 해 왔고,

석재와 기와는 강화도에서 나는 것을 사용했다.

목수는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 였으며, 중국인 석공과 강화 지역의 교우들이 참여하여

1여년 만에 완성을 했다고 합니다.

대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양식의 짜 맞춤식으로 건축하고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2층에는 유리창문을 내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건물 외형은 전통 한옥 고건축 기법을 따랐지만 경건한 외양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층 구조의 익공식 건축양식을 선택하였다. 

뒤에 보이는 큰 나무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보리수 나무라고 한다.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이지만 지역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토착화 신학의 선교정신을 가지고

토착불교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심었다고 한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 구조로 한국정통양식을 따랐으나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해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냈다.

내부로 들어가면 두꺼운 갈색 기둥과 선이 간결한 의자, 높은 천장이 어우러져 고풍스럽다.

건물 내부는 1층 부분에 전실(현관)과 퇴실(예복실) 그리고 두 줄로 늘어선 기둥 외측에 회랑을 배치,

기둥 내부 중측 부분에는 지성소와 회중석을 배치 했다.

초기에는 커튼과 발을 쳐서 남녀 회중석을 구분했던 것 같다고 하신다.

가장 앞에 보이는 것이 세례대이다.

修己(수기), 洗心(세심), 去惡(거악), 作善(작선) 이라고 적혀 있다.

아마도 교인이 세례를 받을 때 마음 가짐의 표현이 아닌가 싶은데

지금도 세례 받는 자들이 반듯이 기억 해야 할 것 같다.

중층에는 자연 채광을 위한 유리창을 냄으로 서구 교회의 전통 건축 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을 도입했다.

4각 목재 기둥은 실대 지금 보이는 것의 몇 배 크기의 나무라고 하는데 지금 보이는 모양도 엄청난데

실재 크기는 얼마나 되었을지 짐작이 잘 안된다. 왕궁에서도 저런 목재는 못 본 것 같다.  

과거의 사진을 보면서 비교해 보니 얼마나 큰 교회였는지 짐작이 간다.

초가 집 동네 언덕 위에 구원의 방주 처럼 세워진 교회 정말 대단하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입니다. 라고 적혀 있는데 옆에 보면 일본의 사쿠라 꽃 모양이 있다.

전통 교회의 양식으로는 참 파격적이라 생각이 된다.

불교 사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청과 주련이 있는가 하면, 인도산 보리수 나무가 있고

서양의 교회 양식이 아니라 전통 한옥의 양식을 따른 것

도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 문양을 사용 한 것,

유교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여 구분하는 자리등이 있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그 들의 문화에 맞게 본질을 홰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지정 문화재(사적424호) 강화 성당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사이에 총무님이 개인적으로 선물을 준비하셨는지.....

성당 뒤 족에 사제관도 전통 한옥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십자가 형상이 들어 간 태극 문양이 선명한 출입문이 있다.

와~~우 드디어 점심 시간이다. 왕자정 묵밥집이다. 오랫만에 묵밥 정말 잘 먹었습니다.

존귀하신 장로님들과 함께 식사 함이 즐거움 입니다.

버스를 무료로 사용했으니 이렇게 식사하는 사진으로 보고를 하면 된다고 하시네요.

(사) 강화섬 나들길 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점심 식사 이후에 민통선을 지나 강화평화전망대에 들렀다.

입장료가 있다. 어른 2,500원/1인, 20인 이상 단체는 2,200원이다.

단 강화군민과 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신분증 지참)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매 시간 전문 해설사님이 안내를 해 주시고 계셨다.

강 하나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저기는 왜 저렇게 민둥산이냐고

물어 보고 나서 다시 바라 보니 북한 땅이 였다.  개성이 모형의 맨 위 쪽에 보인다.

예성강이 북에서 흘러오고 있고 연백 평야가 바로 건너 편에 보인다.

최단거리로는 1.8Km, 전망대에서는 2.3Km 건너가 북한 땅이다.

개성공단 까지는 약18Km의 거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망원경으로 보려면 500원 동전을 내어야 하지만 나는 카메라가 망원경이다. 하하하하하

600mm 망원 줌이 되는 카메라를 새로 구입 했는데 이 때는 딱 안성맞춤이다.

건너편에 북한 땅이 내 카메라에 잘 찍힌다.

날씨만 조금 더 좋았더라면 더 선명하게 찍혔을 텐데..... 

건너 연백 평야에도 금년에는 풍년인 것 같다. 북한에도 쌀 농사가 잘 되어서

쌀이 부족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비료가 없으니 농작물이 잘 생육하는지 모르겠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티 나게 일정하게 만들어 놓았다. 군사 시설 같지는 않은데....

아파트 같지도 않고......지붕은 슬레이트 같이 보인다. 

마을에 꾀 큰 건물도 보인다.

군 부대도 있는 것 같고........외견상 참 평화롭게 보이기는 하다. 북한 개풍군의 모습이다.

꾀 큰 건물이 보인다. 군 부대이거나 마을 회관 같은 곳이거나 할 것 같다.

마을의 모습도 꾀 가까이 보인다. 들 판에 일하는 사람도 보이고.

군 초소도 보이고 농작물이 썩 잘 재배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내 카메라에 찍한 북한 송악산의 모습 흐리지만 분명하게 보인다.

조대식 장로님 단체 사진을 찍고 계신 모습이다. 장로님도 사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전망대 옥상에서 바라보는 평화전망대 광장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 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 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송악산이 바로 저기인데......

통일 염원을 담은 스티커가 이렇게 많이 붙어 있다.

이 마음과 마음이 모여서 평화 통일의 그 날이 앞 당겨 지길 기도해 본다.

강화평화통일 전망대 버스 주차장 한편에 통일 광장 기도회가 있었다.

통일이 오는 그 날까지 이곳에서 기도 하신 다고 한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31:8) 아멘.

남북, 북미 관계와 북한 인권을 위하여, 중국내 탈북자 강제 송환 반대를 위해서 기도하신다.

현재 북한에 억류중이신 6분의 목사님들이 빨리 석방 되시길 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