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독교 100년의 역사를 품에 안은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2012년 11월 개관을 했다고 한다.
순천시 기독교 역사 박물관은 근대문화의 시작과 함께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어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순천시 기독교 역사 박물관 안내 간판이 있다.
전남 순천시 매산길 61번지 이다.
순천 기독교 역사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 한국의 근대 역사와 종교가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시 예산을 반영해서 이런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참 신선하다.
순천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 곳' 이란 지명을 가진 곳인데 지명에 맞게 발전 하는 것 같다.
중국의 맹자도 '順天者興, 逆天者亡' 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자는 망한다고 해석한다.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도시로 발전하길 기도한다.
담당 전문 안내자가 나오셔서 순천 기독박물관의 유래와 전시 현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조선 후기의 피폐해진 민심,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역사, 해방 전후의 극심한 이데올로기 대립, 한국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가난과 사회 혼란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민족적 주체성과 한국 기독교 선교의 역사 체험관으로 진한 감동이 있는 곳이다.
지하 1층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하시고 계신다.
19C말 우리나라에 유입된 기독교의 발달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종교가 아닌 서양의 학문으로 시작된 기독교가 근대식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발전되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으며 당시 조상들의 생활 양식이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ㄱ'자 교회
19C 조선시대에 남자와 여자가 한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유교의식 (男女七世不同席)을 바탕으로 독특한 예배당 구조로 근대 사회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소중한 자료이다.
가운데 설교하는 강대상이 있고 강대상의 오른쪽이 남자들이 예배하는 공간이고 왼쪽이 여자들이 예배하는 공간이다. 가운데는 커튼으로 막혀져 있다. 옛날 시골에 우리집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옥 가옥의 한 가운데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안채를 분리하는 담장이 있었고 안채에는 부엌과 우물이 있었고 사랑채 마당이 있었다.
화장실은 따로 따로 분리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지하 1층 전시관 다양한 유물들과 쪽 복음서와 여려권의 성경책, 당시 선교사님들이 사용하시던 여러가지 가전 제품과 생활 용품, 편지글 등도 전시 되어 있었다.
호남지역 선교의 개척자인 유진 벨 가문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되어 있다.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대표적인 선교사로 벌써 4대째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문가이다.
1대 유진 벨 목사(1868~1925)는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5년에 한국에 오셨다.
" 이 백성에게는 복음 외에는 결코 다른 희망이 없구나" 판단하고 기독교 복음으로 희망이 되고자 나주와 목포, 광주에 선교부를 세우고 복음 전파와 교육사업, 병원을 세우는 일에 큰 공헌을 하셨다.
목포에 영흥학교 정명학교, 광주에 숭일학교 수피아 여고 등을 세우셨다.
2대 윌리암 린톤 목사님은 1922년 유진 벨 목사의 딸 샬롯트와 결혼을 했다.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지내다 신사참배 반대로 학교가 폐교되고 이후에 현 한남대학교를 세워 근대교육의 선구자가 되셨다.
3대 휴 린턴 목사님은 검정 고무신을 늘 신고 다녀서 '순천의 검정 고무신'이라고 불리셨다.
순천에 기독진료소, 결핵 요양소등을 세우셨다.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순천 결핵요양소 앞 묘지에 묻히셨다고 한다.
4대 존 린턴 (인요한 목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타 소장님이시다.
아버지 존 린턴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한국의 응급구조 체계에 관심을 갖고 일반 승합차를 앰블런스로 개조하여 순천 소방서에 기증함으로 한국 119 구급대의 효시가 되었다고 하신다. 휴 린턴의 5자녀들은 어머니 로이스 린턴과 함께 '유진 벨 100주년 재단'과 함께 북한에 식량 원조 사업과 결핵 퇴치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기도 하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역사는 과거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앞으로 우리의 밝은 미래를 여는 중요한 열쇠이므로 역사 박물관은 언제나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순천 기독교 역사 박물관 앞에서 전체 단체 사진.
진리와 자유를 향한 세상의 빛 매산여자고등학교 내부에도 선교 유적지가 남아 있다.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어서 사진은 찍었는데 설명을 못 찾았습니다.
1965년식 랜드로바 자동차이다, 나 하고 나이가 같네....ㅋㅋㅋ
순천의 검정 고무신이라고 불리던 인 휴 선교사님이 타고 다니시던 자동차라고 한다.
인휴 선교사와 안기창 목사님은 6.25 전쟁 때 미국 전략 지도와 건설부에서 발간한 지도를 구입하고 각 교단의 교회 주소록을 수집하여 지도를 정리하고 교회 개척 후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국 농어촌 구석 구석을 누비면서 각 지도에 표시된 교파들의 교회 개척후보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이 때 비포장 도로를 잘 달리기 위해서는 이런 튼튼한 차량이 필요했다고 한다.
휴 린턴 선교사 부부가 결핵 환자들을 위해 세운 순천기독진료소이다.
1963년 결핵환자 진료소로 개설되었다고 한다.
조지 왓츠 (George Watts)기념관이다.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 박물관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다.
2000년 '등대선교회'가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미국남장로회 한국선교역사박물관 전시실을 만들기로 한 후 조지왓츠 기념관 2,3층을 빌려 박물관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조지왓츠 기념관 내부에도 여러분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조지왓츠는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로 순천 선교부 사택 7동, 병원, 매산학교 등의 모든 건축비와 수년 동안 13가정의 선교사의 생활비를 지원하였고 신사참배 반대로 매산학교가 폐교 위기 일 때 총독부와 교섭해서 폐교를 막은 인물이라고 한다.
참 훌륭한 평신도 사역자이다.
조지왓츠 기념관 1층은 휴 린턴 선교사가 결핵환자를 위해 세운 순천기독진료소, 2층은 선교역사와 사역 당시 생활용품, 서적과 등대선교회 사료가 전시 되어 있고, 3층은 주거공간인데 호남선교의 선구자이신 유진 벨 선교사님과 그 후손들이
한국 선교에 헌신한 역사적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지붕은 위에서 내려 보면 십자가를 형상화한 형태로 되어 종교적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순천만 정통 꼬막정식집인 도원정에 도착했다.
여수에서 온누리의원을 하시고 계시는 박해한 집사님께서 마중을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유명한 꼬막 정식집을 섭외해 주신 분도 바로 박집사님이시다. 박해한 집사님 감사합니다.
남도 꼬막정식 나는 처음으로 먹어 보았는데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김장렬 장로님께서 함께한 모든 인원을 대접해 주셨다.
장로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인 이상이어야 주문 가능하고 15,000원/1인당이다.
저녁 식사 이후에 최종 목적지인 여수 애향원으로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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