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QT

요나단과 다윗의 집과 언약 (삼상20:12~23)

다이나마이트2 2014. 3. 17. 23:16

2014년 3월 17일 월요일

사무엘상 20:12~23 자기 생명을 사랑하듯 사랑할 책임이 있습니다.

 

말씀요약:

오늘 본문 전체는 요나단의 말이다. 다윗은 듣고만 있다.

먼저 요나단이 내일이나 모레쯤 아버지 사울왕이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한지

아니면 너를 해하려 하는지 알아서 꼭 알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다윗에게 몇가지 부탁을 하면서 언약을 맺는다.

너는 나의 사는 날동안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 나로 죽지 않게 해 달라는 것과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을 이 땅에서 끊어 버리실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고

요나단과 다윗의 집과 언약을 맺었다.

사흘 후에 자신이 쏜 화살이 이쪽에 있다 가져오너라 하면 돌아오고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면 즉시 떠나라라는 신호를 약속한다.

 

말씀묵상:

다윗은 요나단에게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이야기 했다.

실제로 사울은 거의 10번에 가까운 다윗의 살해 시도가 있었다.

요나단은 신중하게 아버지의 의중을 알아 보겠다고 약속했다.

 

사실은 요나단도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기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지는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아버지 사울이 마음을 돌이키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오늘 본문은 전체가 요나단의 일방적인 이야기 이고 다윗의 대사는 하나도 없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야기 한다.(12)

내일이나 모레 이맘 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 대한 의향이 어떠한지

즉시 알려줄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약속한다.(12)

만약에 아버지 사울이 화를 내고 너를 죽이고자 하는데도 알리지 않아서

너가 도망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여호와가 나를 죽이기를 원한다.(13)고 고백한다.

 

사울을 피해서 도망다니던 다윗이 요나단을 찾아와서 요청해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요나단도 최선을 다해서 다윗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읽혀진다.

 

지금 다윗과 요나단의 신분은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이다. 차기 대권 주자이다. 왕자의 신분이다.

다윗은 국가보안법(?) 위반의 지명 수배자 신분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이 상황이면 다윗이 요나단에게 부탁을 해야 맞다.

그런데 반대로 요나단이 다윗에게 부탁을 하고 언약을 요청한다. 특이하다.

요나단은 안목과 통찰력이 참 뛰어난 인물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 것인지 미리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뭐가 아쉬워서 이런 언약을 요청하겠는가?

 

요나단이 다윗에게 요청하는 하는 언약이 대단해 보인다.

첫째 너는 나의 사는 날동안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 나로 죽지 않게 해 달라는 것(14)

이 요청은 사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지금해야 하는 요청이 아닌가?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에게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베풀어 달라고 한다.

 

둘째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을 이 땅에서 끊어 버리실 때에도 (15)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15)고 요청한다.

정확히 몇 년 후에 이 일이 이루어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윗이 30세에 왕이 되고 40년간 다스렸으니 대략 20여년 정도 지난 이후에

요나단의 지체 장애인 아들 므비보셋을 살펴주는 언약의 근거가 바로 이 언약이다.

 

요나단은 어떻게 이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현재 왕자의 신분으로 도망자 다윗에게 나로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또 미래에 내 집안을 부탁하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을까?

 

죽을 고비를 넘겨보면 이런 지혜가 생기는가?

지난 번에 전쟁 중에 금식 명령을 못들어 어기고 꿀을 지팡이에 찍어 먹었다 죽을 뻔했다.

험한 바위 틈을 비집고 적진에 홀로 뛰어 들어서 20여명쯤을 살해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본 경험이 있는 불굴의 용기를 지닌 장군이 요나단이다.

이런 용기가 있으면 이런 지혜가 생기는가?

 

요나단의 분명한 신앙 고백은 전쟁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삼상14:6)

라는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의 소유자 이였다.

이 믿음이 이런 통찰력을 가져다 준 것일까?

 

현재는 자신이 왕자의 신분이지만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기름 부으심을 알았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요나단은 자기 왕자의 신분을 미래의 왕위를 포기할 정도로

다윗에 대한 신뢰와 우정과 믿음 또한 큰 것이 분명해 보인다.

상식적으로 인간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 사울로 부터 친구 다윗을 보호하는 요나단의 그 사랑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한 사랑이다. 사울 왕에게 걸리면 자신도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이런 이해 안되는 언약과 약속을 기록해 놓으셨다.

 

바로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내용이 이와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이 아쉬울 것이 무엇인가?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다.

아쉬운 것은 나다. 부족한 것은 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나 같은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요나단을 통하여 복음을 보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요나단의 사랑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요청하는 그 요청 언약이

내가 주님께 요청해야 하는 바로 그 언약임을 고백합니다.

나로 주님의 은혜안에 머물게 해 주시고

마지막 날에 나의 가문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사울로 부터 친구 다윗을 보호하는 요나단의 그 사랑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한 그 사랑이지만

이 사랑보다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이 예수님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나도 그 크신 사랑에 반응하는 인생되길 원합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날 사랑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